53화 터무니 없는 요구로구나
문지기는 깜짝 놀란 얼굴로 열일여덟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두 소년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어린 나이에 누구를 속여? 우리 도련님이 독에 당하고 나서 돈이나 뜯어낼까 하고 온 인간들이 이번 달만 해도 너 하나가 아니야…….”
“돈을 뜯어낸다고 해도 네 돈은 아니지 않느냐?”
소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잔잔하게 말했다.
“봉씨 가문의 가주는 내가 사기꾼이라 화가 난다고 해도 너한테 화를 내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네가 막아서 봉회근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목을 치는 것으로 쉽게 끝나지 않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문지기는 마지막 말을 듣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온 게 맞든, 아니든, 그는 그냥 가주에게 보고만 하면 되었다.
다른 일들은 가주가 직접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정말 용한 의원인데 그가 들여보내지 않아서 도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크게 봉변을 당할 것이다.
문지기는 두 소년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돌아서서 보고하러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지기는 다시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회색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집사인 듯했다.
“호(胡) 집사, 저들입니다.”
“두 분이…….”
호 집사라고 불린 중년 남자가 걸어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소년을 찬찬히 훑었다.
“정말 도련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겁니까?”
청의 소년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
호 집사는 이 말에 말문이 막힌 듯했으나 곧바로 냉소하며 말했다.
“저희 어르신께서 조건을 내건 이후로 수많은 의원이 찾아와 도련님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지요. 하지만 여태까지 치료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지요. 공자가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걸 보아 도련님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되는지 모르나 봅니다?”
흑의 소년은 청의 소년의 옆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청의 소년은 여전히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결과를 보든지 그것 또한 나와 봉씨 가문의 가주 사이의 일이다. 넌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집사로서 할 일만 하면 된다.”
담담한 말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과 기세가 들어 있었다.
“너…….”
호 집사는 발끈하며 음산한 얼굴로 소년을 한참 노려보았다.
그러나 소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울화가 서서히 한기로 변하더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짐짓 태연한 척, 콧방귀를 뀌었다.
“따라 들어오너라.”
말을 마친 그는 대문 안쪽으로 걸어갔다.
둘은 말없이 따라갔다.
호 집사는 그들을 저택의 상학청(祥鶴廳)으로 안내했다.
“두 분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시녀더러 차를 올리라고 했다.
청의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곧게 편 그의 허리와 싸늘한 얼굴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기운을 뿜었다.
호 집사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금 밖에서 잘 보지 못했으나 지금 다시 보니 소년의 앉는 자세와 표정에 소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청의 소년은 나이가 많지 않으나 기세가 아주 강했다.
청의 소년은 앉아 있고 흑의 소년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청의 소년의 신분이 더 높은 듯했다.
‘아니면…… 청의 소년이 주인이고 흑의 소년은 하인인가?’
아까 청의 소년에게 우산을 씌워 주던 흑의 소년이 말없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수행 하인인 듯했다.
호 집사는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두 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소년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난 능야이고, 이 아이는 내 하인인 능묵이다.”
이 두 소년은 바로. 제경을 떠난 호국 공주 야홍릉과 측근 어영위 능묵이었다.
능묵의 이름은 그녀가 지은 것으로 공주부의 소수 인원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모르기에 가명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호국 공주인 야홍릉의 이름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장하고 이름을 바꾸어 신분을 완전히 숨겼다.
“공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바로 가서 주인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호 집사가 말을 마치고 곧 가주에게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청색의 비단 장포를 입은 남자가 집사와 하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들어왔다. 그는 이목구비가 진하게 생겼는데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호령하던 상급자의 기세가 남아 있었다.
대청으로 들어온 그는 평온하나 위엄이 넘치는 시선으로 야홍릉과 능묵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상석에 앉았다.
“자네가 우리 회근이의 독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나?”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으나 초조한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야홍릉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있기에 온 것이지요.”
“회근이가 무슨 독에 당했는지 아나?”
야홍릉이 대답했다.
“무슨 독인지 중요한 게 아니고 해독할 수 있는 게 중요하겠지요.”
싸늘하고 덤덤한 말투에는 반드시 해독에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봉형은 당황하더니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정말 회근이의 독을 치료할 수 있다면 사례를 톡톡히 하겠네. 그러나…….”
“봉씨 가문 재산의 이 할을 주시지요.”
“뭐라고?”
봉형은 당황했다.
“봉씨 가문 재산의 이 할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국의 서남쪽에 있는 제염과 제철 사업 및 마장(馬場)까지 전부 다요.”
봉형은 이 말에 말문이 막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불난 틈에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건가?”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허락하거나 거절하는 건 어르신의 선택이지요.”
봉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랫동안 봉씨 가문의 대권을 움켜쥐고 살면서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지금, 그는 소년의 요구에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그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터무니없는 요구군.”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봉형은 어두워진 시선으로 한참이나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제가 누구인지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야홍릉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저는 봉회근의 독을 치료할 수 있고 보수는 제가 말한 조건입니다. 만약 가주께서 이 거래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없던 일로 하지요.”
말을 마친 그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잠깐.”
봉회근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화가 담겨 있었다.
“좀 더 협상할 수는 없는 건가?”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평온한 말투로 물었다.
“봉회근의 생명은 협상할 수 있는 겁니까?”
봉형은 할 말을 잃었다.
“전 협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제염과 제철, 그리고 마장을 허락하신다면 지금 바로 치료할 것이고 거절하신다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봉형은 손을 꽉 잡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화가 났지만 망설이는 것 같았다.
‘봉씨 가문 재산의 이 할이라…… 정말 통도 크군.’
“봉회근은 봉씨 가문의 후계자가 아닙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후계자인 그가 사라진다면 봉씨 가문은 몇십 년 안에 몰락할 겁니다. 그때면 이 할의 재산은 물론이고 다른 재산도 지킬 수 없게 되겠지요. 가주께서 세상의 유명한 의원을 찾아 봉회근을 치료하게 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닙니까?”
봉형은 흠칫 놀라더니 어두운 시선으로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 할의 재산이 아까우시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보시지요.”
야홍릉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이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이었다.
“전 제염과 제철 사업, 그리고 마장을 원하는 것이고 봉 가주는 봉회근의 목숨을 원하지요. 이 거래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면 바로 거래하는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오늘 일은 없었던 거로 하면 그만입니다.”
봉형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더는 협상이 안된다는 거지?”
“네.”
야홍릉이 대답했다.
봉형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
“봉회근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하나?”
야홍릉이 대답했다.
“네.”
봉형은 또 침묵을 지키다 시선을 들고 준수한 소년을 훑어보았다.
“나한테 열네 살 된 딸이 있지. 자네, 혼인했나?”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가 봉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된다면 같은 식구이니 재산을 나누어 줘도 아깝지 않겠지.”
봉형은 상업계에서 오랫동안 있은 사람이라 견식이 넓었다.
그는 준수한 소년이 분위기가 남다르고 감히 그와 조건을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보아 절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박을 건 것이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첩실이 여섯이 있어서 봉 가주의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습니다.”
‘첩실이 여섯 명이라고?’
봉형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말없이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능 공자, 올해 나이가 어찌 되나?”
“열일곱입니다.”
“열일곱 살에 첩실이 여섯 명이라니…….”
봉형은 입가를 실룩거렸다.
“능 공자는 참 복도 많군.”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참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군.’
봉형이 생각했다.
봉형은 이미 상업계에서 몇십 년을 굴러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수록 이 소년이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소년이라면 봉씨 가문 가주와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움직이거나 아부를 떨어야 마땅했다.
용기 있는 척 연기를 한다고 해도 예의를 갖추어 그를 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능야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차가운 사람인 듯, 뼛속 깊이 박힌 도도한 분위기를 떨쳐내지 않았다. 또 속세에 물들지 않은 것 같은 고결함도 갖추고 있어 그의 속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첩실을 여섯 명이나 두었다는 말은 그다지 믿지 않았다.
소년이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댄 핑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능야의 용모나 분위기가 남다른 것을 보아 신분도 평범하지 않을 것 같으니 정말 첩실이 여섯 명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봉형의 말투는 화가 나던 전과 달리 평온해졌다.
“능 공자, 먼저 회근이를 보러 가는 게 좋겠네. 능 공자가 정말 회근의 독을 칠 수 있다면 빨리해야 하네. 봉씨 가문에 그 아이가 해결해야 할 일이 많으니 말일세.”
야홍릉도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제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봉 가주께서 재산 양도 수속을 먼저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바로 봉회근을 치료해 줄 겁니다.”
봉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함께 밖으로 걸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능 공자는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