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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47)화 (4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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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여섯 명의 측군

야홍릉의 말투는 여전히 싸늘했다.

“입으라면 입거라.”

야홍릉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단의를 입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 없고, 어영위가 아니게 되는 것이냐?”

능묵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아닙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의 머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갈아입거라.”

“……네.”

능묵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주인의 명령대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는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가장 금지된 사항이었다.

소년은 구석으로 가서 조용하게 검은색 단의를 벗고 장포로 갈아입었다.

허리띠까지 다 맨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오며 낮은 목소리로 야홍릉을 불렀다.

“주인님.”

야홍릉의 시선이 그에게로 떨어졌다.

소년은 훤칠한 키에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넓이를 가진 허리띠가 그의 허리선을 조여주자 소년의 차분하고 단단한 분위기를 더욱 잘 보여주었다.

야홍릉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말없이 그를 훑어보았다.

“오늘부터 넌 나의 측근 호위무사의 신분으로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

한씨 가문의 일은 일단락을 지었고 장양후의 일도 거기서 끝이 났다.

숭준은 화가 났지만 울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더러 야홍릉과 척지라고 했던가?

제경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야홍릉이 궁문에 들어설 때부터 수많은 시선이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녀가 황궁 문을 나서는 순간, 숨어서 몰래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호국 공주를 적으로 두는 것은 가장 멍청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후조차 호국 공주를 어찌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황자들도 최근 벌어진 일로 야홍릉의 존재가 뭘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야홍릉은 여전히 야홍릉이었다.

그녀는 외부의 시선에 관심이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녀는 나신의 상황을 살피러 갔다.

“폐하께서 전하께 뭐라고 하지 않으시던가요?”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있던 나신은 야홍릉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안심했다.

“태후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별말 안 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나신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태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있지 않으면 어떡하겠느냐?”

야홍릉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자네는 마음 편히 회복에나 신경 쓰도록.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고.”

나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하, 언제 떠나시려는 겁니까?”

야홍릉이 말했다.

“자네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 때쯤.”

* * *

황제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

자안궁에서 측부와 시군에 대한 얘기를 꺼낸 뒤, 그날 저녁에 내관을 시켜 용모가 뛰어난 소년 몇 명을 호국 공주부에 보냈다.

낮이면 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소년들의 체면을 지켜주느라 일부러 사람들이 별로 없는 밤에 보낸 듯했다.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무 살 남짓했으며 외모가 뛰어났다.

야홍릉은 고 집사의 보고를 듣고 그들을 진향사로 데려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홍릉원에서 영영의 보고를 들었다.

“단홍상(段紅裳), 단백의(段白衣)는 쌍둥이 형제로 나이가 가장 어립니다. 궁중 악사 단리(段黎)가 그들의 의붓아버지지요.”

야홍릉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쌍둥이 형제?’

그녀는 지난번에 육연지가 그녀에게 보여준 그림을 떠올렸다.

‘육연지가 말한 것이 이 형제인가 보군.’

“감진(甘塵)은 열여덟 살로 빙란각(憑欄閣)의 간판 얼굴이자 실제 사장입니다.”

“빙란각?”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거기는 어디냐?”

영영은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빙란각은 제경에서 가장 큰 기방 중 하나인데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수많은 관리와 귀족들이 좋아하는 곳이지요. 그 안의 기녀와 소관(小倌, 남자 기생)은 모두 절색이라고 합니다. 감진 공자는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인물이고요. 그러나 그는 재예(才藝)만 보여줄 뿐, 몸은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영이 말을 마치자 방 안의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야홍릉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재예만 보이고 몸을 팔지 않는다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시선을 영영에게 돌렸다.

“그렇다면 빙란각에 귀족 낭자들도 자주 드나든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영영은 목을 가다듬고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했다.

“제경에 취향이 특이한 귀족 대인들이 좀 많습니다. 소관을 좋아하는 거죠. 빙란각에 가는 사람 중 절반은 감진 공자를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들 중 삼 할은 감진 공자에게 사심이 있어 이 규정을 내세웠답니다.”

감 공자는 규칙에 엄할 뿐만 아니라 본성도 난폭했다. 그는 자신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 상대가 어떤 손님이든, 그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손이나 발을 자르거나 목을 베기까지 했다.

야홍릉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대충 어떤 사람일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빙란각의 미인 사장이니 잘생겼을 것을 뻔한 일이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둥, 성격이 나쁘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도 그는 결국 얼굴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련한 사람이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황제가 왜 이런 신분의 소년을 그녀에게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유(楚瑜)는 초각로(楚閣老)의 손자로 스무 살입니다. 초각로는 예전에 황자들의 스승이기도 했지요. 4황자와 친한 사이입니다.”

“매현근(梅玄瑾)은 스물두 살로 초 숙비의 사촌 조카입니다.”

“영정(榮廷)은 열아홉 살로…… 제국의 인질입니다.”

이렇게 모두 여섯 명이었다. 상세한 소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빙란각 사장인 감진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쌍둥이 형제는 육연지가 미리 말한 사람들이었다. 야홍릉은 그들의 진실한 출신을 알고 있었으니 나쁜 마음을 먹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유는 초각로의 적손자로 제경에서는 한옥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귀공자 중 한 명이었다. 귀족 출신인데다 얼굴까지 잘생긴 그는 초씨 가문 사람들이 떠받드는 보물이었다.

‘그렇게 귀하게 큰 자제가 시군의 신분으로 공주부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고?’

야홍릉은 이것이 절대 황제의 뜻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황제가 직접 지시를 내렸다면 이는 초씨 가문에 굴욕을 주는 일이니, 황제가 직접 그렇게 했을 리 없었다.

‘왜 온 거지? 스스로 원해서 온 건가? 설마 4황자 때문에?’

야홍릉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다면 초씨 가문의 충성심을 다시 봐야 했다.

매현근은 초 숙비의 사촌 조카이자 매씨 가문의 서자였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조정에서 2황자를 지지하는 사람이 보내왔을 것이다.

영정은 제국의 인질이었다. 목국에 온 지 이 년 지났지만 하도 조용히 지내 잊고 있었던 존재였다.

야홍릉은 영영더러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말없이 창밖의 오동나무를 바라보았다. 어여쁜 눈가에 한기가 맴돌았다. 한참 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검은색 비단 장포를 입은 소년 시위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둘은 진향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목국에서 나고 자란 두 공자든, 제국에서 인질로 잡혀 온 영정이든, 아니면 빙란각의 간판이자 사장인 감진이든 모두 황제가 비를 간택하는 것처럼 공주에게 간택 당하러 오게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측부나 시군이 되려고 말이다.

이런 기분은…… 치욕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신기한 느낌이었다.

최근 호국 공주의 명성이 하도 대단하여 그녀의 사연을 제경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일이 끝나는가 싶으면 또 다른 일이 생기고, 그 일이 끝나는가 하면 다시 다른 일이 생기기에 그녀를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진향사로 가는 화랑에 들어서자 야홍릉은 화청에 있는 여섯 명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으며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 사람도 있었고 호수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다들 서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듯했다. 그들은 도도한 얼굴로 다른 사람을 하찮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허리가 조이는 암홍색 긴 치마는 여인의 마른 몸매를 더욱 잘 드러나게 했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눈매는 담담한 표정을 담고 있었고 늘씬한 몸매에서는 고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겼다.

공주가 왔다고 아뢰는 사람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야홍릉이 지나는 곳마다 공기마저 얼어붙는 한기가 감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모퉁이를 돌자 화청에 앉아 있거나 서 있던 여섯 명은 그녀가 온 것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이 화청에 들어서자 여섯 명은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굽혔다.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섯 명의 소년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느긋하게 몸을 돌려 미인 탑 위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지난 뒤, 야홍릉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나한테 하는 인사인 것이냐? 다들 하나같이 도도하구나.”

그녀의 말에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여섯 명은 선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가장 오른쪽에 선 쌍둥이 소년은 준수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한 명은 깔끔한 흰 옷을, 다른 한 명은 강렬한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이목구비는 지난번에 야홍릉이 그림에서 봤던 쌍둥이 형제와 똑같았다.

그들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야홍릉의 옆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소년에게 닿았다. 둘은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곧바로 시선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꿇어앉았다.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야홍릉은 쌍둥이의 찰나의 눈빛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놀랐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람을 바라보았다.

옅은 파란색 경포를 입은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남자인지 여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접선을 쥔 모습에서 요염하고 매혹적인 느낌이 풍겼다.

야홍릉의 무표정한 시선과 마주친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경포의 옷자락을 살짝 들며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행위마저 멋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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