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심보가 고약하다
한서화가 심씨 가문을 선택한 이유는 심씨 가문의 쌍둥이 자매 때문이었다.
심씨 자매는 아름답다고 소문난 미인이었다.
그는 ‘쌍둥이 미인’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심씨 가문의 자매를 맞이하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한씨 가문과 비슷한 명문가 아가씨를 맞이했을 것이다.
제경에는 집안, 미모, 재주가 뛰어난 미인이 적지 않았다.
“오늘 일이 다른 사람이 함정을 판 것이든, 아니든, 한씨와 심씨 가문의 혼사는 이미 정해졌소.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것이오.”
한서화는 일어서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심완 낭자, 내가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심씨 가문의 자매이지, 심씨 가문의 큰 소저도, 둘째 소저도 아니오. 둘 중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이 혼사는 취소될 것이오. 그리고 심씨 가문의 운명 또한…… 낭자가 생각하는 대로 되겠지.”
한씨 가문은 심씨 가문을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었다.
말을 마친 한서화는 화가 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심완을 쳐다보지도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간 뒤에 심명덕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 언제 나갔는지 심완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이번 혼사는 이미 정해진 일이고 그녀에게 거절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는 이날 밤의 일이 누가 꾸민 짓인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의 심씨 가문은 한씨 가문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대항한다 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기에, 결과는 뻔했다.
“제 어머니는 연약한 분이셨습니다. 한씨 가문의 강경한 자세에 반항하지 못하신 거죠.”
한경백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간 뒤, 단숨에 마셔버리고 빈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결국 어머니는 한씨 가문으로 시집가셨습니다……. 한씨 가문에서는 심씨 가문의 자매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두 가마가 모두 정문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심교가 앞이고 제 어머니가 뒤에 따르셨죠. 그때 사람들은 이 일을 오랫동안 칭찬했다 합니다. 한 공자가 두 여인을 공평히 맞이했다고 말이죠.”
한경백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남에게 운명이 맡겨진 여인의 일생은 처량할 것이 뻔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한씨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처량하게 살다 가실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심교는 심보가 고약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드세고 거짓말에 능했다.
자신의 친동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씨 가문의 가주 부인 자리에 앉은 뒤부터 심교는 자매 사이가 좋다는 핑계를 대며 심완더러 매일 아침마다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는 먼저 문안 인사를 올려야 했다.
첩실이 가주 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올릴 때에는 무릎을 꿇고 차를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쁜 말속에 바늘을 숨긴 심교는 자신의 친동생을 깔아뭉갤 계획을 조금씩 짜고 있었다.
그러나 심완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했다.
혼인을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심교의 이간질 때문에 한서화는 심완의 거처를 거의 찾지 않았다. 그는 매일 심교의 곁에서 밤을 보내며 그녀의 꿍꿍이가 담긴 말들에 세뇌되었다. 심교는 월경 기간에도 한서화를 심완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의 시중을 드는 아리따운 시녀를 시켜 한서화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
그녀는 심완이 자신보다 먼저 한씨 가문의 아들을 낳지 못하도록 아예 싹을 잘라냈다.
얼마 뒤, 심교는 임신했다.
임신한 것은 좋은 일이나 임신한 열 달 동안, 즉 거의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에는 남편이 다른 여인의 시중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심교는 임신하여 기쁘면서도 자신의 임신 기간 동안 심완이 한서화의 총애를 받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지독한 책략을 꾸몄다.
심교는 심완에게 독을 썼다.
그녀는 구해온 독약을 매일 심완의 음식에 넣었다. 그 약은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피부색이 어두워지고 빨간색 돌기가 오돌토돌 올라오는 부작용이 있었다.
여색을 좋아하는 것은 남자의 본능이나 한서화는 얼굴색이 어두운 데다가 여드름이 잔뜩 난 여인의 얼굴을 보자 잠자리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생이 요즘 무슨 일인지 얼굴에 갑자기 여드름이 많이 나더라고요.”
심교는 새삼 모르는 일처럼 말을 꺼냈다.
“제가 의원을 불러주겠다고 했는데 싫다고 하는 거예요. 왜 의원에게 치료받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들은 한서화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심완이 의원의 진료를 거절한 이유가 일부러 자신의 외모를 망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날 거부하려고 그런 거겠지? 그때 심씨 가문에서 만났을 때도 나한테 시집오기 싫다고 직접 말을 했었잖아. 정말 속이 시커먼 여인이야.’
한서화는 곱게 자란 사람이라 여인을 달랠 줄 잘 몰랐다. 마음속에서 미움이 싹을 피우자 그는 다시는 심완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의원을 부르지 못하게 한 사람이 심교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씨 가문의 쌍둥이 자매는 친정에 있을 때, 부모에게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심명덕은 가문의 이익을 항상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이지만 두 딸은 끔찍하게 여겼다.
그러나 두 딸이 한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선 뒤로 신분이 크게 달라졌다.
한 명은 가주 부인으로 한씨 가문의 대권을 도맡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첩실로 허락 없이는 자신의 거처에서 나가지도 못했다.
저택의 하인들은 모두 가주 부인의 말을 듣기에 바빠 심완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심교는 만족하지 않았다.
한서화의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옆에서 시중을 들 사람이 필요했다.
심교는 임신 전까지 며느리의 신분으로 살뜰하게 모셔 한서화 어머니의 호감을 샀다. 그녀가 임신하자 한서화 어머니는 그녀더러 마음 편히 쉬라고 했다.
심교는 효성을 나타내느라 시중들 사람으로 여동생 심완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한서화의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심완의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퍼진 것이다.
심교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심완이 잠자리를 피하느라 일부러 제 얼굴을 엉망으로 꾸몄다고 온갖 말로 한서화 어머니에게 각인시켰다.
이 일로 한서화 어머니는 심완을 아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느라 집안의 잡다한 일에 신경 쓰지 못하는 법이다. 한서화는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심교의 미모가 한창 물이 오를 때여서 심교에게 푹 빠져 있는 한서화는 심교가 말하는 대로 믿었다.
심교와 심완은 쌍둥이 자매이기에 일반적인 자매보다 사이가 더 좋을 것 같다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서화와 그의 어머니는 혼사가 정해진 뒤로 심교가 조금씩 자신의 친동생을 나락으로 빠뜨릴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모든 일이 심교의 예상대로 벌어졌다.
심완은 한씨 가문 전체에서 미움을 받아 누구도 그녀를 신경 써주지 않았다. 그녀는 한씨 가문에서 아주 고된 나날을 보냈다.
명문가의 저택은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데 익숙해진 곳이었다. 하인들까지 심완을 무시했고 심완은 힘들게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러나 심교는 관리를 잘한 덕에 점점 예뻐졌다.
열 달 후, 그녀는 순조롭게 한씨 가문의 적장자를 낳았다.
지위가 더욱 단단해진 그녀는 갈수록 기고만장했다.
심완에 대한 미움이 커질수록 한서화는 혼인 전에 꿈꿨던 ‘두 여인을 품에 안는’ 환상을 점점 지워갔다.
아이를 낳은 뒤, 심교는 열심히 저택을 관리하고 한서화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그리고 애를 써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다시 원래의 미모를 되찾았다. 그러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 심교는 그동안 심완을 괴롭히지 않았다. 심완은 이미 한씨 가문의 버려진 존재로 더 이상 그녀의 자리를 위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점차 심완을 잊어갔다.
자신의 얼굴을 관리하고 권력을 움켜쥐는 데 바쁜 심교가 언제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 신경을 쓰겠는가?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한서화는 조정에서 새로 떠오르는 샛별 같은 존재라 일에 바빴다.
집에는 어여쁘고 유능한 아내가 있으니 그도 당분간은 첩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2년이 지난 뒤, 심교는 다시 임신을 했다.
다만, 이번 임신 반응은 좀 심했다. 심교는 먹은 대로 토하며 비릿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 그녀는 매일 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있느라 남편을 모실 수 없었다.
한서화도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라 심교가 쉬는 데 방해되지 않으려고 종종 서각에 가서 잠을 잤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서각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심완이 떠올랐다. 그는 심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기척을 듣지 못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저택의 하인에게 물어보려고 하다가 결국 스스로 심완의 거처인 운하원(雲霞院)에 가게 되었다.
운하원은 낡고 허름했다. 한서화는 초라한 뜰에 발을 들이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바로 고개를 돌리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저택의 시녀들이 지내는 곳도 여기보다는 낫겠네.’
그러나 그가 돌아서서 떠나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는 오랜만에 강렬한 설렘을 느꼈다.
낡아서 색깔이 바래진 청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마당의 채소에 물을 주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비춘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로 돌아와 있었다. 가히 경국지색이라고 불릴 만한 미모였다. 허름한 옷은 그녀의 가녀린 몸매를 가려주지 못했다.
머리의 장신구라고는 나무 비녀뿐이었다. 양옆의 머리가 몇 가닥 흘러내려 청순하면서도 소탈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서화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길을 지나던 하인이 낸 소리에 어여쁜 여인이 고개를 돌릴 때까지도 그는 시선을 돌릴 줄 몰랐다.
둘은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여인의 시선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미움도, 원망도, 서러움도 없었고 기쁨도 없었다.
한서화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잘 지냈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순간, 그는 예전에 쌓였던, 심완에 대한 미움이 모두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잘 지냈냐고?’
어디를 봐서 잘 지내 보인다는 말인가?
심완도 예전에는 심씨 가문의 귀한 소저였다. 비단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으며 집을 나설 때는 마차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묵고 있는 곳은 여름이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겨울이면 바람을 막을 문풍지조차 없어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매일 멀건 죽을 먹으면서 수시로 하인들의 비웃음도 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어찌 잘 지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심완은 이런 나날에 익숙해져 마음이 더없이 평온했다.
그녀는 한서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지냈어요.”
그러나 한서화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는 진작 심완이 원래의 미모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그녀를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두 미인을 품에 안고 싶은 환상이 남아 있었다.
둘은 얘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모두 한서화가 묻고 심완이 대답하는 식이었다.
한서화는 하인더러 오동원(梧桐院)을 청소하고 심완이 묵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시녀 두 명을 시켜 심완의 목욕 시중을 들게 했다.
그날 밤, 한서화는 오동원에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