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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41)화 (4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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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황후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태후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불만부터 쏟아냈다.

“황상께서 야홍릉을 너무 편애하시네요.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 것도 벌하지 않고 봐준다면 나중에 야홍릉이 태후마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들겠습니다.”

“너무 편애한다고?”

태후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그는 화난 얼굴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게 편애가 아니고 뭔가요? 그래서 야홍릉 그것이 어른들도 무시하고 방자하게 구는 거라고요!”

‘3년 동안 군공 좀 쌓았다고 이렇게 사람들을 무시해도 돼? 말끝마다 무장, 무장! 정말 자신이 없다면 목국이 안 돌아가는 줄 아는 건가?’

황후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무릎을 꿇고 있는 궁녀들을 보고는 손을 내저었다.

“다들 물러가거라.”

“네.”

궁녀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태후는 그들을 힐끗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았다.

궁녀들이 모두 나가자 방 안에는 태후와 황후 둘밖에 남지 않았다.

황후는 태후의 바로 아랫자리로 걸어오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 신첩은…… 야홍릉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후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황후, 그게 무슨 말이더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화가 나 지끈거리는 머리도 무시한 채, 놀란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설마…….”

황후는 서슬 푸른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

“야홍릉은 소숙이에게 장애물이에요. 그 아이가 살아 있는 한, 소숙이의 입장은 아주 난처할 겁니다.”

한옥금이 야홍릉을 찌른 일부터 모든 일이 야홍릉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황후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하는 상황에 당황할 뿐이었다.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야소숙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변방으로 갔고 한씨 가문의 명망과 권세도 확 꺾였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어사직을 파면당했고 한령도 금군 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야자릉은 자신의 궁에 감금당한 상태이고 한옥금은 곤장 오십 대를 맞고 침대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황후는 이 모든 게 누가 꾸민 일인지,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기운이 없었다.

그녀는 한씨 가문과 자신의 두 아이에게 생긴 일들 모두 야홍릉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밖에 몰랐다.

황후와 야홍릉의 사이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서 화해할 가능성이 없었다.

지금 그녀와 야홍릉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상태였다.

야홍릉이 살아 있는 한, 야소숙은 황위에 순조롭게 오르지 못할 것이다.

야홍릉이 야정연이나 야모침의 손을 들어줘 그들 중 한 명의 조력자가 된다면 야소숙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황후는 야홍릉을 제거해야겠다는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

“아예 그냥…….”

“아니.”

태후는 실눈을 뜨고 말했다. 그녀의 눈으로 차가운 한기가 스쳐 지났다.

“홍릉이는 실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옆에는 대단한 고수까지 있지. 직접적으로 죽이기는 어려울 거야.”

그 말을 들은 황후는 흠칫 놀랐다.

‘태후께서 내 제안을 허락하신 건가?’

“알겠습니다. 야홍릉 같은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무모하게 죽이려고 들면 안 되지요. 제가 완벽한 계획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황후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완벽한 계획?’

태후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야홍릉의 도도하고 건방진 모습을 떠올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완벽한 계획이 필요하긴 하지.’

* * *

한편, 한씨 저택 주원의 송학청(松鶴廳)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한참 지난 뒤에야 한경백이 입을 열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뱉은 첫 번째 말은 놀랍게도 거절이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대청 안은 다시 무거운 정적에 빠졌다.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의 어두운 시선에 노기가 어렸다.

“뭐라고 했느냐?”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경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심씨 가문의 일은 대리사에서 전적으로 맡고 있는데 한낱 서자인 제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하나…….”

“한경백, 네가 안 되면 호국 공주더러 나서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

한 부인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투에서는 대갓집 안주인다운 도도함이 흘렀다.

“베갯머리 송사도 할 줄 모르는 것이냐?”

한경백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으로 느껴 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한 부인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심씨 가문이 멸문될 위기에 놓였는데, 한 부인은 어떻게 이토록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나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지?’

“베갯머리 송사가 먹히든 안 먹히든 7공주께서는 심씨 가문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실 겁니다.”

한경백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느긋한 그의 말투는 한 부인의 도도한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더 이상 절 힘들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호국 공주의 뜰에 들어설 때도 하인을 시켜 말을 전하고 허락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베갯머리 송사를 한다는 말인가?

“한경백, 잊지 말거라. 네 어머니도 심씨 가문의 여식이었다. 네 몸에도 심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한 부인이 싸늘하게 한경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한경백의 거절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와 네 아버지가 위하는 게 아니라 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잘 생각해보아라.”

‘날 위해서라고?’

한경백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최고급 모첨(毛尖) 차로, 한씨 가문에서 귀한 손님이 올 때만 내놓는 것이었다.

한경백은 예전에 저택에 있을 때 싸구려 차만 마셨지 이렇게 고급 차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 공주부에 들어간 뒤에야 좀 마셔봤을 뿐이었다.

‘오늘 누구 덕에 이런 대우를 받는 거지? 호국 공주가 대단해서일까? 아니면 심씨 가문이 망하게 생겼으니 한 부인이 고개를 숙이는 걸까?’

한경백은 상석에 앉아 있는 부부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는 자세를 낮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혀 부탁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쯧, 이래서야 무슨 부탁을 한다고.’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제가 정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아버지와 마님께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쨍그랑!

한 부인이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 그녀는 차가운 눈길로 한경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국 공주에게 빌붙더니 부모도 안중에 없구나!”

한경백은 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본 한 부인은 울화가 치밀어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

“한경백, 무릎 꿇어!”

‘무릎을 꿇으라고?’

한경백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짐짓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는 한 부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뭐 하고 서 있는 것이냐?”

한 부인은 어두운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내 말을 못 들은 것이냐?”

‘들었으니 이러지요.’

한경백은 그녀의 말을 들었기에 당황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옅게 웃었다.

“마님께서 뭔가를 잊으신 듯합니다.”

한 부인은 실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전 이제는 호국 공주부의 사람입니다.”

한경백은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아직 아버지의 아들인 것은 맞으나 공주 전하의 측군이라는 신분이 더해져 나름 황실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 마님?”

“너!”

한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한경백, 무엄하구나!”

‘쯧쯧, 연일 충격을 받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예전의 한 부인은 우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경백에게 벌을 내릴 때에도 적절한 핑곗거리를 대어 그를 매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한경백이 학대가 아닌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내 몇 마디 말에 품위를 잃고 화를 내다니. 정말 대갓집 가주 부인 같은 기품이 전혀 안 보이는데.’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더니 셋째는 신분뿐만 아니라 간도 커졌구나.”

차갑고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몸집이 거대한 남자가 문으로 들어왔다.

“공주의 측군이 되었다고 어머니께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셋째, 네 눈에는 부모가 있기는 하느냐?”

한경백은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한씨 가문의 장남을 바라보았다.

청색 장포를 입은 그는 더욱 훤칠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한옥금이나 한경백보다 온화한 느낌이 덜하고 훨씬 더 날카롭고 매서운 인상이었다.

궁에서 일을 오랫동안 해온 한령의 몸에는 무장 못지않은 날카로운 기세가 흐르고 있었다.

‘아쉽게 되었군…….’

한경백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직 부모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오늘 특별히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는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아무리 부모님을 존경하고는 있지만, 신분을 내세워 자식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자칫 억지를 부리고 생트집을 잡는 것이 되니까요.”

“한경백, 무엄하구나!”

한 부인이 이를 악물고서 호통쳤다.

“지금 우리가 억지를 부린다고 했느냐?”

‘그럼 억지가 아닌가?’

한경백은 씨익 웃은 뒤, 차를 마셨다.

“심씨 가문의 일은 네가 호국 공주에게 사정만 하면 되는 일인데 이것도 못 한다고?”

한령은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의 어머니처럼 악을 쓰지는 않았다.

“한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망하면 너한테도 좋은 점은 없잖느냐?”

‘좋은 점은 없어. 하지만 나쁜 점도 없지. 오히려 내 기분만 후련해지지.’

한경백은 이렇게 생각하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아버지와 마님은 원한을 마음 깊이 새기는 사람이시죠. 두 분께 밉보인 사람이 있다면 두 분은 어떤 기회를 찾아서라도 반드시 복수하는 분들인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자세를 낮추시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들고 한 어사 부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옥금은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습니까? 분명 심하게 다쳤겠지요. 아버지의 관직도 되찾아 오기는 그른 것 같고 큰형님도 금군 통령직을 잃었는데……. 이 모든 게 호국 공주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두 분은 왜 공주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7공주가 정말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나? 참 뻔뻔스럽군.’

이 말에 송학청에는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한 어사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한 부인은 이를 악물고 한경백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지금 바로 한경백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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