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치사한 수단
야홍릉의 싸늘함에 숭준은 벌벌 떨었다.
문을 열고 나온 나신이 물었다.
“장양후, 궁에서 태후를 모시지 않고 나는 왜 잡아들였소? 태후 그 노친네와 노는 게 짜릿하지 않아서 그랬소?”
숭준은 아파서 신음을 흘렸다.
“사, 사람을 풀어 주었으니 공주 전하께서…… 약속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야홍릉은 나신의 예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매에서 약병을 꺼내 나신에게 건네주었다.
나신은 야홍릉이 왜 약병을 건네준 것인지 알기에 두말하지 않고 약병을 열었다. 그리고 약병에서 검은색 알약을 한 알 꺼내 숭준의 입에 밀어 넣었다.
숭준은 고개를 저으며 알약을 토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검은색 알약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버려 입안에는 역겨운 쓴맛만 남았다.
야홍릉은 채찍으로 숭준의 목을 감싼 채, 그를 감옥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스쳐보며 입을 열었다.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멍청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지하 감옥을 떠났다.
나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벽에 붙어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토하려고 애를 쓰는 숭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애써도 소용없을 것이오. 지금 토한다고 해도 중독이 될 대로 되었을 것이니. 걱정하지는 마시오. 멍청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제 때에 해독약을 보내겠소.”
그리고 떠나려고 하다가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참, 절대 태후 그 노친네에게 가서 고자질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그러면 더 빨리 죽게 될 테니.”
말을 마친 그는 코웃음을 치고 야홍릉을 따라갔다.
나신은 지하 감옥에서 나오자 저택이 이상하도록 조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저택을 둘러보며 물었다.
“전하, 여기가 장양후의 저택이 맞지요?”
호화로운 가구들을 보자 장양후의 주원이 맞는 것 같았다.
야홍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계단을 지나 주원의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숭준 저택에 호원(護院, 집안을 지키는 사람)이 많은데 왜 주원에 이렇게 큰일이 일어나도록 저택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지요?”
나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저택의 호원들은 돈을 날로 받는 사람들인가?’
야홍릉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길을 걸었다.
호원이 쫓아올까 걱정하는 조급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양후 숭준이 머무는 주원 바깥은 대나무숲이었다.
대나무숲을 가로질러 가니 멀리서 흑의 소년이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뚝 서 있는 소년은 어두운 밤에서 한기를 번뜩이는 칼날과 같았다. 그의 주변에는 시커멓게 모여 선 호원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호시탐탐 소년을 노려보았지만 어찌하지 못했다.
서서 소년을 노려보는 사람들보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 땅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시체 같은 사람들을 보자 나신은 저택이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군가 호원들을 묶어둔 것이다.
저택의 등불이 다리 아래의 호수를 비춰 주었다. 밤바람이 지나가며 잔잔한 호수에 물보라를 일구었다. 그러자 호수에 빠진 시체들이 불빛에 드러나고 말았다.
맑고 깨끗하던 호숫가의 풍경은 널브러진 시체로 흐려지고 말았다.
야홍릉이 다리 위로 올라가자 다리 위의 흑의 소년이 몸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자.”
“네.”
능묵은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주인님, 이들을 살려 둘까요?”
야홍릉의 말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네 얼굴을 보았으니 남겨 둘 필요는 없겠구나.”
이 말을 들은 나신은 소년을 자세히 살펴보려던 시선을 옆으로 홱 돌렸다.
‘저 아이의 얼굴을 보면 살 수 없다는 건가?’
그는 목숨을 위해 호기심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의 힘으로 장양후부의 모든 호원을 쓰러뜨린 소년이 아주 궁금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지? 전하의 옆에 언제 이렇게 강한 소년이 나타난 거지?’
하지만 호기심을 만족시키기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의혹을 담은 채, 나신은 말없이 야홍릉을 따라 호국 공주부로 갔다.
야심한 시각이니 길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공주부 밖은 암위가 지키고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오늘 밤 크게 봉변을 당한 사람은 장양후 숭준이었다. 날이 밝은 뒤에도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공주부로 돌아온 나신은 야홍릉을 따라 홍릉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음속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장양후가 절 그의 저택에 데려간 목적은 무엇이랍니까?”
야홍릉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나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다친 데는 없느냐?”
“없습니다.”
나신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입가에 피가 새어 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허리를 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잡고 비틀거렸다.
창백한 그의 얼굴에서 굵은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다…… 다친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쓰러질 것처럼 몸을 휘청거렸다.
이제 막 대전 안에 발을 들인 능묵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하고 시선을 들어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없이 나신 입가의 핏자국을 보았다.
곧 그녀는 허리를 부여잡은 나신의 손가락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새빨간 피는 유독 눈에 띄었다.
“편전의 침대에 눕히거라.”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여봐라, 의원을 불러오너라.”
“네!”
나신은 침대 위에 눕혀졌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옆에 서 있던 야홍릉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너를 찌른 칼에 약이 묻혀 있었던 것 같구나. 사람을 기절시킬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지혈이 가능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는 칼에 찔린 뒤에도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았다. 약효가 다하지 않아 막 깨어났을 때도 통증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약효가 지난 뒤에야 그는 크게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신은 힘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방금 장양후부의 지하 감옥에서 깨어났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하, 장양후가 왜 절 잡으려고 한 겁니까?”
야홍릉은 그를 힐끗 보고 입을 열려고 했다. 이때 도 의원이 걸어왔다.
그는 약상자를 들고 들어오다가 야홍릉이 편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
“전하.”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침대에 있으니 가서 보아라.”
잠깐 말을 멈춘 그는 다시 덧붙였다.
“허리에 부상을 당한 듯하구나.”
“네, 알겠습니다.”
도 의원은 침대 앞으로 걸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안색이 창백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본 그는 곧바로 전에 공주부에 자주 오던 나신 장군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나 장군, 다치셨소?”
나신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당했지. 함정에 빠졌다오.”
도 의원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시선을 나신의 허리로 돌렸다. 그리고 옷을 헤쳐 상처를 살폈다.
“상처가 너무 심하십니다.”
도 의원은 깜짝 놀랐다.
야홍릉도 나신의 상처를 보았다.
살이 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상처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만도(彎刀, 칼 일종)는 찌르고 벨 수 있는 일반적인 칼이지만 구부러져 있어 상처를 더욱 깊게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칼을 사용하는 사사들도 무공이 강한 사람들이었기에 나신의 상처는 아주 심했다.
도 의원은 미간을 찌푸리고 검사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이군, 급소를 찌르지는 않았어.”
허리는 위험한 곳이었다. 조금만 잘못 찔러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전하, 제가 다친 걸 봉우는 압니까?”
나신이 시선을 들고 물었다.
“현갑군은 앞으로 훈련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겠습니까?”
야홍릉은 침묵했다. 그녀의 눈은 싸늘하기만 했다.
현갑군의 좌우 장군 중 한 명이 줄어든 상황이니, 반드시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했다.
만약 암살당할 뻔했다고 말한다면 자객을 잡아내야 이치에 맞았다.
그러나 장양후도 오늘 밤에 사고를 당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의 일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전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도 의원이 나신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내는 사락거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도 의원, 이 정도 상처면 얼마 정도 지나야 나을 수 있겠소?”
도 의원은 눈을 내리깐 채, 그의 상처 바깥쪽을 깨끗하게 처리했다.
조심스러운 도 의원의 행동에도 나신은 아파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물고 숨을 몰아쉬었다.
“한 달쯤 걸릴 것이오.”
도 의원은 약상자에서 붕대를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상처에 좋은 연고를 발라 준 뒤, 붕대로 싸매기 시작했다.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되오.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담백하게 먹고 절대 무술을 사용하면 안 되오. 상처에 딱지가 앉은 뒤에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소.”
‘한 달이나 걸린다고?’
나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달은 너무 긴데. 그러면 일은 어떻게 보라고 그러오?”
도 의원은 그를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상처가 자네 몸에 난 것이니 자네만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전쟁을 벌이지 그러오.”
나신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양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까 떠나기 전에 그 개자식을 담가버려야 했어!”
‘개자식?’
도 의원은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누가 간 크게 호국 공주 휘하의 사람을 건드렸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냥 생각에 멈출 뿐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그는 호기심이 강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의술로 환자를 치료하는 게 중요했다.
상처를 다 치료한 도 의원은 약상자를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난 이만 가서 약을 달이겠소.”
최근 며칠 동안 그는 줄곧 능묵의 위병을 치료할 약을 달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 장군까지 다쳐서 들어올 줄이야.
‘며칠 새 공주부가 조용할 날이 없군.’
도 의원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야홍릉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야홍릉에게 말했다.
“그 공자분은 약을 몇 첩 먹은 뒤부터 천천히 따뜻한 음식을 드셔도 됩니다. 그러나 생식과 따뜻한 음식을 번갈아 먹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위는 뜨거워졌다 차가워지는 걸 견디기 어려워하니까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능묵이 숨어서 듣고 있기에 그녀가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나신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봉우가 공주부에 오지 않은 동안 전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군.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년은 또 누구일까?’
그러다 그는 문득 뭔가가 떠올라 야홍릉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전하께서 병부를 황상께 바쳤다면서요? 현갑군은 전하께서 처음부터 키운 자들인데 어떻게 그리 쉽게 내놓으신 겁니까?”
나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