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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34)화 (3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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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미련이 남았다

야홍릉이 형부에 도착하자 형부상서 정창이 직접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옥금을 심문한 결과를 말해 주었다. 한옥금이 호국 공주를 찌른 혐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이별로 인해 마음이 아파 술을 많이 먹은 탓에 술기운에 찔렀다는 것이다.

정창은 야홍릉에게 진술서를 보여주며 계속 심문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황제에게 올릴 것인지 물어보았다.

야홍릉은 싸늘한 얼굴로 진술서와 처참한 몰골의 한옥금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죄수복에는 채찍 흔적이 가득했다. 심지어 얼굴에도 채찍을 사용한 흔적이 가득했다.

안색이 창백하고 눈에 생기가 없는 그는 예전의 온화하고 준수하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심한 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한참 침묵한 뒤, 야홍릉이 말했다.

“이렇게 올리시게.”

이 말을 들은 정창은 저도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호국 공주가 아직 한옥금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지 못했나 보군. 그러니 이리 쉽게 한옥금을 봐주나 보네.’

공주를 의도적으로 죽이려고 했던 것과 과실 상해는 죄질이 아예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실수가 맞을까? 심장과 그렇게 가까이에 박혔는데? 조금만 옆으로 가도 공주는 틀림없이 죽었어.’

사실 정창은 야홍릉이 그더러 심문을 계속하라고 하길 바랐다. 하루라도 더 심문한다면 한씨 가문에 나쁜 점만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참에 한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사랑했던 사람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듯했다.

정창은 스스로 호국 공주가 옛 연인에 대해 미련이 남았다는 설정을 생각해냈다. 과실 상해로 공주를 다치게 한 것이라면 공주를 암살하려는 죄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공주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면 한씨 가문까지 연루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한 어사가 복직하게 되려나?’

여기까지 생각한 정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는 야홍릉의 마음을 잘못 짐작했다.

미련이 남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야홍릉은 일반적인 여인들과 달리 좋으면 한없이 좋고 싫다고 하면 아예 정을 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질질 끄는 것은 그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심문하라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한옥금이 정말 그녀를 찌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도 4년 후이지,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한옥금이 저지른 죄는 기껏해야 그녀를 속이고 그녀의 마음을 모독한 것이었다.

게다가 야홍릉은 한씨 가문이 이렇게 쉽게 끝장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심씨 가문을 잃었고 한령은 금군 통령직을 잃었다. 한 어사가 이번 일에 연루되지 않는다고 해도 다시 복직될 리는 없었다.

지금은 이만하면 되었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녀가 대적해야 할 사람은 야소숙과 한씨 가문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여기에서 끝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황제는 진술서를 받은 뒤, 정장에게 말을 몇 마디 물었다.

그러나 야홍릉이 이 진술서를 묵인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과실상해를 인정했다고?

지난번 도화산에서의 소란이 일어난 뒤, 야홍릉은 직접 한옥금이 좋아하는 사람은 야자릉이고, 자신에게 접근한 것은 병권을 빼앗아 3황자에게 주기 때문인데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의도까지 들키자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옥금이 일부러 야홍릉을 찔렀다는 말이 된다.

한옥금이 인정한 것으로 봐서는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니 과실 상해는 변명에 불과했다. 죄명을 최대한 축소해 한씨 가문의 부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야홍릉이 그를 봐주기로 한 거군. 이 진술서를 그냥 넘기다니.”

의자에 앉은 황제가 말없이 진술서를 바라보았다.

“신이 보기에 7공주께서 한옥금이 고생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넘어가기로 한 듯합니다. 7공주는 사실 겉모습만 차갑고 마음은 약한 분이십니다.”

정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겉모습만 차갑고 마음은 약한 사람이라고?’

황제는 잠깐 침묵했다.

“3년간 좋아했으니 그렇게 빨리 내려놓을 수도 없는 거겠지.”

과실 상해든 암살이든 이번 일의 피해자는 야홍릉이었다.

황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한옥금을 곤장 쉰 대 친 뒤, 돌려보내게.”

야홍릉이 과실 상해가 맞다고 했다. 그녀도 이 일로 더 이상 따질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황제도 한씨 가문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한씨 가문 2공자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으니 한 어사와 한씨 가문 공자의 금군 통령직은…….”

정창이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금군 통령?’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금군 통령은 지금 한묵이 아닌가?”

정창의 말을 알아들은 황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홍릉이가 과실 상해가 맞다고 한 건 한옥금에게 자비를 베푼 것일 뿐이다. 사실은 한옥금이 공주를 죽이려고 한 것이 맞지 않나? 한 어사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것도 사실이니 한씨 가문이 조정에서의 모든 직무를 파직하고 한가한 황족의 친척이나 하라고 하게. 더는 억지로 고생할 필요가 없이.”

이는 한씨 가문에 대한 벌이었다.

이로써 한옥금이 야홍릉을 죽이려고 했던 사건은 막을 내렸다.

한씨 가문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정창은 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손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옥금 사건을 지금 바로 해결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굽히고 떠났다.

한가한 황족의 친척이나 하라고 한 건 한씨 가문이 황후의 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황후를 어떤 자세로 대하든, 황후가 폐위되지 않은 한, 한씨 가문은 영원히 황족의 친척이었다. 이 점은 바꿀 수 없었다.

물론 한가한 황족의 친척이 어찌 조정에서 호령하는 권세 있는 신하처럼 위풍이 넘치겠는가?

게다가 한씨 가문이 몰락한 것은 3황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정창은 어서방(禦書房)에서 나왔다. 강렬한 햇빛에 그는 저도 모르게 실눈을 떴다.

그는 속으로 황자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태자를 책봉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폐하는 누구를 생각해 두신 걸까?’

어서방 안에서 황제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덤덤하게 말했다.

“심씨 가문의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

심탁이 뇌물을 챙긴 일은 증거가 명확했다. 현재 정왕이 맡고 있었다.

대리사는 심씨 가문의 차남 심천이 사람을 죽인 일로 마지막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손평이 눈을 내리깐 채, 말했다.

“대리사는 오늘 아침 심씨 저택의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또 여인의 시체를 한 구 파냈다고 합니다.”

‘또 여인의 시체를 파냈다고?’

황제의 안색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고항(顧航)더러 얼른 이번 사건을 조사하라고 하거라. 심씨 가문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절대 누구도 사정하지 말라고 전해라.”

손평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황제는 시선을 책상에 고정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상주서에서 정보를 꺼냈다.

그것을 펼쳐본 황제가 실눈을 뜨고 물었다.

“진양왕이 오늘 호국 공주부로 갔더냐?”

손평은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황제도 그가 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정보 위에 쓰인 내용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육연지가 야홍릉에게 미인을 선물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손평, 이게 무슨 뜻인지 한 번 생각해 보거라.”

“네?”

손평은 깜짝 놀랐다.

“진양왕이 7공주에게 미인을 보냈다고요?”

황제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침묵을 지킨 뒤, 말을 고쳤다.

“미소년이라고 해두지.”

‘아.’

손평은 미간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7공주께서 이미 병권을 내놓으셨는데…… 진양왕도 아마 잘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도화산의 일로 진양왕은 공주 전하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보상하려고 말입니다.”

‘단지 그것뿐이란 말인가?’

황제는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고 정보를 옆에 내려놓았다.

“홍릉에게 주려고 준비한 소년들은 어떻게 되었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나이에 맞는 소년은 예닐곱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명문가 자제들은 대다수 도도하여…….”

손평이 말했다.

“도도하다고?”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호국 공주를 모실 기회를 가진 것은 그들의 복이지.”

손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문무백관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죠.’

황제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한묵더러 오라고 하거라.”

손평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 * *

심씨 가문의 일은 황성 전체에 쫙 퍼졌다.

일반적인 세가의 공자는 아무리 망나니라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예쁜 여인을 통방 하녀나 첩으로 들일 뿐이지, 미치광이처럼 여인을 괴롭힌 뒤, 죽여서 시체까지 묻어두는 짓은 하지 않았다.

심씨 저택에서 연이어 파낸 여인 시체는 모두 저택에 팔려 온 하녀였다. 나이가 가장 많은 여인은 열여덟이었고 가장 어린 이는 열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여인의 일생 중 가장 반짝이는 나이에 악마의 손에서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겉보기엔 품위 있는 세가 공자가 뒤에서는 이렇게 난폭하고 잔인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대리시경 공항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여러 날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큰 개를 끌고서 심씨 저택을 여러 번 수색한 뒤, 이것이 마지막 시체라는 것을 확신한 뒤에야 사건을 종료시켰다.

뇌물을 받아서 관직을 판 죄로 심탁은 이미 감옥에 들어갔다. 스무 명이 넘는 그의 식솔들도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함께 벌을 받고 있었다.

법률에 의하면 저택의 주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인들도 같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물과 나무 아래에서 여덟 구의 젊은 여인 시체가 발견되자 심씨 저택의 하인은 이 주인들 눈에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개미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고항은 상주서에서 황제에 심씨 가문의 부자는 악독하기 그지없으나 하인은 억울한 사람들이니 그들까지 연루하여 벌을 받게 하지 말라고 청을 올렸다.

황제는 그 청을 허락했다.

그래서 심씨 가문의 가주 심탁 부부, 아들 둘, 딸 하나, 심탁의 심복 관리, 및 가주 부인 뜰의 심복 어멈, 두 아들의 호위무사와 심복 하인, 이렇게 모두 쉰여섯 명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대리시에서는 며칠 간이나 밤을 지새우며 심씨 가문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결국 오월 초사흗날에 자세한 주장(奏章, 천자에게 아뢰어 올리는 문서)을 올렸다.

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다 읽고 난 뒤,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을에 참형을 내리겠다고 결정했다.

한씨 가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으스대던 심씨 가문도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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