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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0)화 (2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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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내가 시를 짓겠소

육연지는 실소를 터뜨렸다.

야경함은 수시로 산 아래쪽의 방향을 내려다보며 소매 안의 약병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진양왕의 시위가 야홍릉을 어떻게 다시 데려올지 궁금했다.

‘진양왕의 체면을 야홍릉이 세워줄까?’

야정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

야홍릉과 야모침은 진작 모습을 감춘 뒤였다. 야정연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진양왕이 부디 야홍릉을 다시 불러올 수 있었으면 좋겠군…….’

“한씨 가문 3공자는 매일 밤 7공주의 침대에서 밤을 보내는데도 얼어붙지 않았는데 한기 자네의 목숨이 뭐가 그리 대단하오?”

위걸이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자네도 7공주의 침대에 오르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차마 입 밖에 꺼내지는 못해서 이렇게 3공자에게 알랑거리는 것이오?”

한기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자네는 참 경우가 없군.”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위걸의 어깨를 잡아서 강에 던졌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튀었다.

순간, 냇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위걸은 한기가 정말 그를 내던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방비상태에서 당한 그는 초라한 몰골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강이 깊지 않아 그는 곧 강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퍼레진 얼굴로 화를 내며 말했다.

“한기,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아까도 말했지 않았소? 또다시 나한테 비아냥거리면 강에 처넣을 거라고.”

한기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위 대인이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내가 대신 혼을 내준 거요.”

위걸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화가 나 한기에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7공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이때, 들려온 목소리에 아슬아슬하던 분위기가 돌변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야홍릉과 야모침이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둘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화기애애해 보였다.

하지만 야홍릉을 직접 찾으러 간 육장청은 알고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내내 야모참만 얘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중요하게 논의할 것이 있으니 한사코 야홍릉더러 자신의 저택에 놀러 오라고 했다.

7공주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런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거는 야모침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심연은 위걸을 강에서 끌어냈다. 꽃이 피는 따스한 봄이지만 강 속은 여전히 차가웠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강에 내던져진 것 때문에 위걸은 체면이 많이 깎이고 말았다.

위걸은 온몸이 홀짝 젖어서 화를 삭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그는 몸서리를 크게 쳤다.

“누각에 준비된 옷이 몇 벌 있네. 다 새 옷이지. 위 공자, 감기 들지 않게 먼저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게.”

말을 마친 진양왕은 다급히 옆에 있는 시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봐라, 위 공자를 모시고 가서 옷을 갈아입히거라.”

화가 잔뜩 난 위걸은 이렇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추운 데다가 이렇게 엉망인 몰골로 계속 서 있는 것도 창피한 일인 것 같았다.

게다가 7공주가 돌아온 뒤로 황자들과 진양왕의 신경은 온통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누구도 나서 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한기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이 원한을 마음에 새긴 뒤, 절대 한기를 놔두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진양왕부의 하인을 따라 누각으로 들어갔다.

“진양왕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야모침은 육연지를 보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일곱째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중요한 얘기 말입니까?”

육연지는 놀란 얼굴로 무표정한 야홍릉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제가 선왕과 공주 전하가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사죄드립니다. 두 분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몸을 살짝 숙이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했다.

“하지만 제가 주최한 연회에 7공주를 초대했으니 잘 접대해야지요. 만약 7공주께서 언짢은 기분으로 돌아가신다면 저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장청이를 시켜 공주 전하를 다시 모셔온 겁니다.”

육연지가 왜 연회를 열었는지 야모침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이미 이루었으니 빨리 돌아가든, 늦게 돌아가든 큰 차이가 없었다.

그는 육연지의 말을 듣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곡수유상을 시작해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육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왕비와 함께 냇가 끝쪽에 있는 정자로 걸어갔다.

사람들도 냇가의 포단(蒲團)에 앉았다.

“언니, 여기 앉아요.”

야자릉은 야홍릉의 손을 잡고 끌었다.

“저쪽엔 모두 냄새나는 남자들이니 저들과 앉지 말아요.”

‘냄새 나는’ 남자들은 입가를 실룩이며 실소를 터뜨렸다.

더 모진 말로 그들을 표현했더라도 그들은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감히 황후의 적녀에게 불만을 품겠는가?

야홍릉도 거절하지 않았고, 둘의 자리는 아주 가까웠다.

야홍릉은 포단에 앉은 뒤, 흐르고 있는 냇물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야자릉은 고개를 돌리고 몰래 야경함을 슬쩍 본 뒤, 곧 시선을 거두고 냇물을 바라보았다.

시녀는 정교한 술잔을 꺼내 들었다. 진양왕비는 그 술잔에 술을 따른 뒤, 강의 상류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러자 술잔이 흔들거리며 강을 따라 내려갔다.

수십 쌍의 눈이 그 술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술잔이 마지막으로 누구의 앞에 이르면 그 사람이 이 술을 마시고 시를 읊거나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이 곡수유상의 규칙이었다.

귀족 여인들에게는 황자들과 명문가 자제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얌전한 여인들은 평소 모두 집에서 시를 읊거나 수를 놓고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곡수유상은 노래를 하거나 시를 읊는 실력을 뽐낼 수 있으면서도 남에게 점잖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걱정이 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들은 곡수유상에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들을 두고 뭐라고 하지 못했다.

여인들을 배려하여 곡수유상에 사용되는 술은 모두 진양왕비가 직접 빚은 과일 술이었는데, 그 술은 부드럽고 술기운이 강하지 않았다.

술잔이 흔들거리다가 결국 맞은편의 파란색 긴 치마를 입은 소녀 앞에 멈춰 섰다.

한경백은 이 소녀가 대리시경(大理寺卿) 고씨의 여식 고우비(顧雨菲)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어여쁜 미모에 별처럼 아름답고 맑은 눈을 가진 소녀였다.

곡수유상의 처음을 차지한 그녀는 좀 쑥스러운 얼굴로 술잔을 건져서 입에 가져다 댔다.

우아하게 술을 마신 그녀는 술잔을 옆에 내려놓았다.

오늘 이곳에 온 사람 중에 신분이 고귀한 황자와 공주도 있어 다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떠들썩하게 환호하지 않았다. 고우비는 평범하게 복숭아꽃을 주제로 한 시를 지어 읊었다. 자신의 학식을 나타내면서도 지나치게 잘난 척하지 않은 것이다.

곡수유상이 계속되었다.

진양왕비는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른 뒤, 냇물에 올려놓았다.

두 번째 술잔은 가깝게 붙어 앉은 야홍릉과 야자릉 사이에서 멈췄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술잔이 멈춘 곳을 보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공주를 바라보았다.

야홍릉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야자릉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니는 이 술잔이 누구의 거라고 생각해요?”

“일곱째와 여덟째가 같이 마시면 되겠네.”

야경함이 웃으면서 손을 뻗어 술잔을 들었다.

“일곱째는 무공이 뛰어나고 여덟째는 글에 능하니 이 술은 일곱째가 마시고 시는 여덟째가 짓는 게 어떻습니까? 간만에 자매끼리 협업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자릉의 시선도 야홍릉에게 닿았다.

“언니 생각에는 어떤 것 같아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손을 뻗어 야경함의 손에서 술잔을 받았다. 야경함의 제안을 수락한다는 뜻인 듯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하얗고 길었지만 여리여리하지 않았다.

술잔을 받아 드는 그녀의 행동에는 강인하고 느긋한 기운이 느껴졌다.

야경함은 시선을 살짝 피했다.

“여덟째가 마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과일 술이라 취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인즉 무공을 연마하지 않은 사람도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시를 지을 테니.”

‘뭐라고?’

야자릉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

야경함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에는 당황함이 스쳐 지나갔다.

야자릉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 그냥 제가 시를 지을게요. 언니는 무인이라…….”

“난 몸이 좋지 않아. 월경 중이라 술을 마실 수 없어.”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야자릉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여인에게 월경은 지극히 은밀한 일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할 것이 못 되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수많은 남자도 있었다.

‘야홍릉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야자릉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모인 사람 중 무공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청력이 좋았다.

야홍릉의 말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같이 땅을 보거나 먼 산을 보면서 야홍릉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야홍릉은 술을 야자릉의 앞까지 가져갔다.

야자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8공주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자에 앉아 있던 진양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오늘 곡수유상에 사용되는 술은 모두 아내가 직접 담근 과일 술이라 달콤하고 술맛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고 낭자도 마셨으니 정 못 믿으시겠으면 이분에게 물어보시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의 고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 전혀 독하지 않아요.”

야자릉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손으로는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진양왕과 고우비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이 저리도 많은 거야? 지금 독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술에 약을 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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