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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9)화 (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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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함부로 한번 해보시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마차는 남겨 두마. 연회가 끝나면 혼자서 마차를 타고 돌아오너라. 마부와 시위는 산 아래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경백은 깜짝 놀랐다.

“전하께서는 지금 돌아가시려고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냇가로 걸어갔다.

명문과 공자와 소저들은 모두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야자릉도 먼저 다가와 야홍릉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도 올 줄 몰랐네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에요.”

야홍릉의 싸늘한 표정을 보았는지 그녀는 야홍릉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경백을 보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셋째 오라버니.”

한경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8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오라버니,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한경백은 고개를 돌리고 야모침, 야정연과 야경함을 바라보며 몸을 살짝 구부렸다.

“세 전하를 뵙습니다.”

야정연과 야모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한씨 가문에 한옥금과 아주 닮은 서자가 있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서자는 그들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홍릉 때문에 그들은 한경백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한경백은 예전에 항상 무채색 계열의 장삼만 입고 다니며 사람들의 앞에 잘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비단옷에 허리띠까지 한 그는 용모나 분위기로나 이곳에 있는 황자들에게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인사를 안 해도 돼.”

야경함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는데 번거롭게 인사를 주고 지 않아도 돼. 동생, 안 그래?”

그의 눈에는 야홍릉밖에 없었다.

야홍릉은 항상 차가운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야경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진양왕, 오늘 당신네 부부가 개최한 연회인데 곡수유상에 쓰일 술과 음식은 다 준비했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 시녀가 진양왕 부부에게 다 준비되었으니 곡수유상을 시작해도 된다고 말했다.

“일곱째, 몸은 좀 나았느냐?”

야모침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속에는 여동생을 걱정하는 오라버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에 일곱째가 아파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네가 조용히 요양하는 데 방해가 될까 찾아가 보지 않았단다. 이 오라버니를 원망하지는 않겠지?”

그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또 한 번 조용해졌다.

수십 쌍의 눈이 모두 야홍릉에게 향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다들 생각하는 게 다른 듯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신경 쓰는 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옥금이 정말로 야홍릉을 죽이려고 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야홍릉이 도화산에 왔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급히 따라나섰다.

다들 느긋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자릉과 야경함이 궁금한 것은 한옥금이 무죄로 석방될 수 있는지였고 야모침과 야정연이 궁금한 것은 야홍릉이 정말로 한옥금과 사이가 틀어졌는지였다.

그들은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야홍릉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아무 곳에나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마침 냇가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파란색 긴 치마의 여인이었다.

야홍릉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야홍릉이 떠나려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이때, 멀리 있던 진양왕 부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어왔다.

야경함이 입을 열었다.

“너도 간만에 왔잖아? 둘째 황형과 넷째 황형처럼 바쁜 사람들까지 어렵사리 모였으니 술이라도 한 잔 들고 가거라.”

말하면서 그는 손에 든 약병을 꽉 움켜쥐었다.

얼마 전, 황후는 야경함에게 약병을 주며 말했다.

“이 약은 술을 마시면 사실대로 고하게 되는 약이다. 이것만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진실을 얘기하게 되지.”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야홍릉의 술에 타기만 하면 된다. 걔가 사람들 앞에서 옥금이를 모함했다고 자백한다면 이번 일은 끝이나 다름없지.”

황후는 그가 이번 일을 잘만 완성하면 황제에게 청을 들어 그를 왕으로 봉하겠다고 했다.

지금 황자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왕이 되지 못했다. 열다섯 살 된 아홉째마저 왕으로 책봉된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던 야경함에게 이 조건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그래요, 언니. 간만에 다들 모였는데 앉아서 술 한 잔 하고 가요.”

야자릉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정사에 바쁜 예왕, 전쟁터에 간 숙왕, 그리고 시집간 5공주 및 아직 상서방(上書房, 황자들이 공부하는 곳)에서 글을 읽고 있을 명왕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야홍릉은 잠시 멈칫했으나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야경함은 뭐라고 말을 더하고 싶었으나 야홍릉이 이미 멀어진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다들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산에서 내려가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진양왕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내와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저희가 오는 것을 보고 가시다니. 제가 7공주께 미움이라도 받은 겁니까?”

이 말을 들은 야모침은 언짢은 표정을 숨기고 피식 웃었다.

“일곱째는 원래 이런 성격이니 진양왕께서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도 일이 있으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들 연회를 즐기세요.”

순식간에 또 한 명이 사라졌다.

야정연은 주먹을 움켜쥐고 야홍릉과 야모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야홍릉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치미는 한편, 야모침의 뻔한 속내가 혐오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야자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몰래 야경함과 눈빛을 교류했다.

“일곱째는 친해지기 참 어렵군요.”

야경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그는 여전히 야홍릉과 야모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일곱째는 겉모습만 여인일 뿐, 다른 건 모두 사내 같지 않습니까? 차갑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능력은 황자들보다 더 뛰어나지요. 무공, 병법 어느 하나라도 빠지는 게 있습니까?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게 아쉬울 뿐이죠. 그게 아니었다면…….”

‘그게 아니었다면 뭐?’

야자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곱째 언니가 사내로 태어났다면 셋째 황형에게 기회가 있었을까요?”

말하는 사람은 별 뜻 없지만 듣는 이는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야경함과 야자릉도 별 뜻 없이 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오히려 이 사실을 더 알리지 못해 안달 난 쪽이었다.

야정연은 생각에 잠겼다. 순간 그는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입술을 꾹 닫았다.

“3황자에게 기회가 없다니요?”

진양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8공주 전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7공주께서는 여인이기에, 네, 여인이라서 다행입니다. 안 그러면 8공주 전하의 말로 화를 입을 수도 있을 겁니다. 8공주 전하께서 언행을 조심하여 주십시오.”

야자릉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왕(郡王)께서 오해하셨네요. 제 뜻은 일곱째 언니가 사내로 태어났다면 지금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간 사람은 일곱째 언니일 테니 셋째 황형은 전쟁에 나갈 기회가 없었을 거란 얘기였어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홍릉이 정말 남자로 태어났다면 한옥금과도 연인 사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을 뻔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그녀가 황자였다면?

무수한 공과 불패의 신화를 따낸 그녀와 함께 황위를 다투는 것은 다른 황자에게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런 화제가 너무 민감하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도 황족의 일을 더 깊게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곧 한기가 부채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곡수유상을 계속할 겁니까? 다들 흥미가 없다면 이만 자리를 파할까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야정연, 야경함과 야자릉은 모두 야홍릉이 온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다. 지금 주인공이 빠졌으니 그들도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한 공자도 참. 이제 막 시작했는데 끝나다니요? 진양왕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오?”

위걸이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한 공자도 오늘 다른 목적으로 참석한 것이오?”

한기는 손을 뻗어 한경백의 어깨에 얹었다.

“난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나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 위 공자, 또다시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면 강에 던질 것이오.”

위걸은 안색이 변했다.

“뭐라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은 명문가 자제들이었다.

그는 한기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거칠고 난폭한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번 또 비아냥거려 보시든지.”

위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런 수모를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반격하려고 했다.

이때, 심연이 말했다.

“위걸, 그만하시오.”

위걸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심 공자가 눈치 있군.”

한기는 얄밉게 웃으며 시선을 한경백에게 돌렸다.

“3공자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있어야지.”

그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한경백에게 쏠렸다.

그들의 표정은 아주 복잡했다. 분위기도 말할 수 없이 이상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한 서자와 평등한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서자는 쉽게 깔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 다들 장난은 그만하시오.”

진양왕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는 산 아래쪽의 방향을 보며 말했다.

“7공주는 제가 초대한 사람인데 어찌 언짢은 기분으로 떠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청, 가서 내가 아직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하고 7공주를 다시 모셔오거라.”

육장청(陸長靑)은 육연지의 측근 시위로 무공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강했다.

육연지의 분부를 들은 그는 공손하고 대답한 뒤, 경공(輕功)을 시전하며 뛰어갔다.

“진양왕께서 7공주와 나눌 얘기가 아직 남아 있습니까?”

한기가 부채를 흔들며 물었다. 그의 모습은 호방하고 소탈해 보였다.

“7공주처럼 차가운 여인과 함께 앉아 있는다면 차 한 잔 마실 시간에도 몸이 얼어붙을지도 모릅니다.”

육연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하니, 내 이따 자네에게 7공주와 차 한 마실 시간을 마련해 주겠네.”

한기는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전 아직 더 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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