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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1)화 (1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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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이지

야자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야 한다는 건가요?”

“먼저 소문내지 마시고 이 사실을 황후 고모께 몰래 전하세요.”

한령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홍릉이 정말 역심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그녀가 조금씩 꼬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가 유인하면 됩니다. 나중에 그녀를 상대할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야자릉은 잠깐 침묵했다. 그녀는 한령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

한옥금은 아직 죄가 입증되지 않아 천뢰에서 고생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우선 때를 기다리면서 차분하게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야홍릉은 싸움은 잘해도 권모술수 쪽으로는…….’

야자릉은 도도하게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될 거야.’

야홍릉은 궁에서 벌어진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호국 공주부에서 전해진 소식에 제도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최근 며칠간 황성 안팎에서는 호국 공주부에서 전해진 소식들에만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큰일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공주부에서 나온 새로운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또 쏠렸다.

호국 공주 야홍릉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암살당할 뻔한 뒤, 저택에서 한 달 넘게 요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처가 낫자마자 바로 한씨 가문의 서자를 측부로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황성 전체가 이 일에 대해 수군거렸다. 다들 야홍릉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쳐 이렇게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측부라니?

황자가 측비나 첩을 들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 봤어도 여인이 측부를 들인다는 것은 다들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무리 금지옥엽으로 자란 공주라고 해도 이렇게 방자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도덕적 관념을 완전히 뒷전으로 여기는 행위가 아닌가?

호국 공주가 세속의 법도를 무시하고 목국 최초로 측부를 들인 여인이 되겠다고?

그것도 한씨 가문의 서자를?

그러나 놀라운 것은 제도의 사람들 대다수는 그저 이 일을 재미있는 구경거리로만 여길 뿐이었다.

앞장서서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호국 공주가 나라를 지키는 데 많은 공을 세운 데다 얼마 전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평소 툭하면 조정 대신의 약점을 잡아 상소문을 올리던 고리타분한 대신들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야홍릉이 한씨 가문의 서자를 측부로 들이려고 한다고?”

청화궁(淸華宮)에서 이 소식을 접한 황제는 깜짝 놀랐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황후, 내가 잘못 들은 것이오?”

“아닙니다. 신첩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황후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담긴 싸늘한 시선을 숨겼다.

“호국 공주가 정말 그렇게 청을 올렸습니다, 신첩…… 신첩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폐하께 여쭈러 온 것입니다.”

황제는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야홍릉이 한씨 가문의 서자를 측부로 들이는 것을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옥금은 야홍릉을 죽이려다 실패해 천뢰에 갇혀 있었다.

아직 그에게 죄를 묻지도 않았는데 야홍릉이 한씨 가문의 서자를 저택으로 들인 것이었다.

‘홍릉이가 한옥금을 내려놓지 못해 대체품을 찾은 것인가? 들어보니 서자 한경백은 적자인 한옥금과 아주 비슷한 온화한 미남형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적자와 서자는 신분 차이가 어마어마하지.’

“황후.”

황제는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

“홍릉이가 최근에 기분이 좋지 않소. 그러니 측부를 들인 것에 대해 당분간은 간섭하지 마시오.”

“하지만 폐하, 예로부터 여인이 측부를 들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호국 공주는 황족 여인이기도 한데 이러한 행위는 상식을 어긋난 게 아닌가 해서.”

황후는 한숨을 내쉬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이지.”

황제의 말투는 무덤덤했다.

“게다가 그 아이는 호국 공주요. 여인의 몸으로 병사를 이끌고 전쟁터까지 나갔는데 측부를 들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다. 겨우 측부일 뿐이었다.

게다가 한씨 가문의 서자이니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홍릉이가 한옥금 때문에 마음이 크게 다쳐 한씨 가문에 복수하려고…….’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황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옥금은 지금 천뢰에 갇혀 있었다. 야홍릉의 반응을 보면 그들은 이미 사이가 틀어진 게 분명했다. 한옥금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은 한씨 가문과 틀어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야홍릉은 더 이상 3황자의 뒤에 서지 않을 것이다.

‘힘도 없는 한낱 서자가 조정에서 무슨 소란을 일으키겠어? 이렇게 된 바에 아비로서 딸의 청을 한 번쯤은 들어줄 수도 있지. 당분간 조정에는 홍릉이를 대체할 만한 무장은 없으니 말이야.’

황후는 황제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주가 측부를 들이는 것도 허락해 준다면 앞으로 야홍릉이 하는 일 중에서 허락받지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들이는 것은 한씨 가문의 서자였다.

황후는 태후가 전에 한경백을 천뢰에 넣고 한옥금을 내오자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런데 지금 한경백이 호국 공주부에 들어갔으니 그들의 계획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화를 냈다.

황후는 원래 야홍릉에게 미안한 마음을 약간이나마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야자릉에게서 야홍릉이 반역을 꿈꾼다는 말을 들은 뒤로 그녀는 지금 야홍릉에 대한 악감정밖에 남지 않았다.

황후는 어젯밤 야자릉이 한 말을 떠올리고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황제에게 사건의 진실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억눌렀다.

‘만약…… 만약 폐하께서 야홍릉이 황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처럼 측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긋하게 얘기할까?’

예로부터 오직 황제만이 후궁을 거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야홍릉의 행위는…….’

어젯밤 야자릉의 말을 들은 황후는 한경백의 일까지 생각했을 때, 야홍릉의 야심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공주인 야홍릉은 물론이고 아무리 다른 황자라고 해도 감히 황위를 노린다면 그녀는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이 없으면 황후는 돌아가서 쉬시오.”

황제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처리해야 할 정무가 남았소.”

황후는 정신을 차리고 화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담담하게 말했다.

“폐하, 옥금의 일은…….”

“한옥금?”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후의 뜻은 내가 직접 나서서 심문하라는 것이오?”

황후는 흠칫 놀랐다.

“신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녀는 황제가 얼른 이 일을 잘 조사하여 한옥금의 결백을 입증하기를 바랐다.

한옥금을 이렇게 감옥에 넣은 채, 세월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옥금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황후는 걱정하지 마시오.”

황제가 말했다.

“이만 가보시오.”

황후는 멈칫했다.

그녀는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무릎을 구부리고 예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선실(宣室) 안이 조용해졌다. 황제는 붓을 든 채, 말없이 책상에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진지했다.

내시 총관 손평(孫平)이 걸어와 공손하게 차를 따랐다.

“손평.”

황제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너는 홍릉이가 왜 이러는 거라 생각하느냐?”

손평은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는 깊은 뜻으로 하신 거라 전 감히 억측할 수 없습니다.”

‘깊은 뜻으로 한 것이다?’

손평은 예의를 차리고 그저 조심스럽게 한 말이었는데 황제는 한층 더 깊게 생각했다.

“깊은 뜻이 담겨 있긴 하겠군.”

황제는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갑자기 딸이 낯설게 느껴지는구나.”

“저는 공주 전하께서 한 공자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공자가 전하께 한 일 때문에 전하께서는 마음이 크게 다치셔서…….”

손평은 말을 잠깐 멈췄다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한씨 가문의 서자가 한옥금과 아주 닮았다고 합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의 시선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한참 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측부가 이미 하나 생겼으니 몇몇 더 들이라고 하지.”

‘아니?’

손평은 깜짝 놀랐다.

“폐하의 뜻은…….”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묘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청화궁을 나선 황후는 봉황이 수놓아진 손수건을 꽉 움켜쥔 채, 시선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을 보니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봉의궁(鳳儀宮)에 들어서자 시녀들은 다급히 그녀에게 몰려들어 옷을 벗기고 차를 따르는 등 시중을 들었다. 황후는 귀비탑(貴妃榻)에 기대어 앉았다.

곧이어 시녀들이 그녀의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깨를 주무르고 다리를 두드렸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뜨고 담담하게 물었다.

“6황자가 예를 올리러 왔더냐?”

봉의궁의 대궁녀 간월(簡月)이 대답했다.

“네, 지금 소의(昭儀) 마마의 궁에 계십니다.”

황후는 알았다고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6황자 야경함(夜輕晗)과 숙왕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줄곧 숙왕 야소숙을 잘 따랐다. 숙왕이 병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간 뒤로 그는 매일 소의전(昭儀殿)에 가서 인사를 올린 뒤, 봉의궁을 들리곤 했다.

숙왕을 대신해 황후에게 효도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후는 눈을 감고 잠깐 쉬었다. 이때, 밖에서 궁녀가 말을 전했다.

“황후마마, 6황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단 옥포를 입은 젊은 남자가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문발 밖에서 예를 올렸다.

“황후마마께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일어나거라. 황자께 의자를 드리거라.”

황후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수심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경함아, 오늘 다른 일이 없으면 어미와 얘기를 좀 나누자꾸나. 소숙이 떠난 지도 한 달이 지났는데 그 아이가 그리워도 어디 얘기할 데가 없으니 너한테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그런다.”

야경함이 다급히 말했다.

“어마마마의 고민을 들어드리는 것은 아들 된 저한테는 더없이 큰 영광입니다.”

야경함은 올해 열여덟 살로, 성격이 난폭하고 충동적이었다. 황자와 공주들 중 여섯째인 그는 아직도 왕으로 책봉되지 못했다.

그는 어렸을 적 글공부를 할 때부터 야소숙과 친하게 지냈다.

야경함은 욱하는 성질이 있었지만 때로는 사랑스러운 구석도 있었다. 그의 친어머니는 후궁에서 지위가 낮아 항상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래서 야소숙은 그를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항상 둘은 친하게 지냈다.

황후도 아들에게 조력자가 생긴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숙왕(肅王) 야소숙 옆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조력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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