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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0)화 (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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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황제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

야자릉은 호국 공주부에서 궁으로 돌아온 뒤, 한나절이 지나도록 생각을 하다가 저녁이 되자 황제에게 찾아갔다.

“오늘 언니의 저택에 다녀왔어요. 언니는 제가 천뢰에 가서 옥금 오라버니를 뵈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좀 놀랐으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의 몸은 어떠하더냐?”

“많이 좋아지셨어요.”

야자릉이 대답했다.

“단지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여서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어요.”

황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홍릉의 성격을 볼 때 이런 일을 가짜로 꾸밀 리는 없지. 그러나 한옥금이 홍릉이를 죽이려고 한 것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군.’

황제는 여기에 뭔가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기회에 한씨 가문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싶은 그는 여태껏 한옥금을 심문하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다.

한 달이 넘게 지나니 한 어사는 조정에서 전보다 훨씬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사적으로 관리들과 왕래하는 경우도 많이 줄어들었다.

대다수 조정 대신들은 한씨 가문에 대해 여전히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만약 한옥금이 호국 공주를 죽이려고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가볍게는 한옥금 한 명만 엄벌을 받을 것이고 심각하면 한 어사도 강직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호국 공주가 한옥금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를 선처해 달라고 사정할지가 관건이었다.

지금 시기에 한씨 가문과 거리를 두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황제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천뢰에 가서 한옥금에게 이번 일에 대해 물어보고 나에게 알리거라.”

야자릉은 기쁜 얼굴로 무릎을 굽히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야자릉은 황제의 수유(手諭, 상급자가 친필로 써서 하급자에게 보내는 지시)를 받고 자리를 뜬 야자릉은 문을 나서다가 우연히 순찰 중인 한씨 가문의 한령과 마주쳤다.

“오라버니.”

금군 통령복을 입은 한령은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다.

칼은 밝은 등불에 반사되어 음산한 빛을 번뜩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8공주 전하.”

“오라버니, 예를 올리지 않으셔도 돼요.”

야자릉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천뢰에 가서 옥금 오라버니를 뵐 건데 한령 오라버니가 길을 안내해주세요.”

‘천뢰에 간다고?’

한령은 당황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라 고개를 돌려 청화궁(清華宮)을 바라보다 시선을 다시 청순한 야자릉의 얼굴에 돌렸다.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야자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부황께서 제가 옥금 오라버니를 뵈러 가도 된다고 하셨어요.”

한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야자릉은 미소를 지으며 가마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령과 함께 천뢰로 향했다. 듣는 귀가 있을까 걱정되어 둘은 길 가는 내내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천뢰에 도착한 야자릉은 황제의 수유를 꺼냈다.

옥졸은 그것을 보고 난 뒤, 야자릉 한 명만 들여보냈다.

한령은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길고 어두운 통로와 여러 개의 돌문을 지나는 동안, 야자릉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곱게 자란 옥금 오라버니는 이렇게 엉망인 환경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옥졸을 따라 한옥금이 갇힌 감방 앞에 도착한 야자릉은 문틈 사이로 구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앞의 이 사람이 고결하고 고귀하며 온화하고 우아하던 옥금 오라버니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죄수복을 입은 한옥금은 얼굴이 초췌하고 창백했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엉망이었다.

얼핏 보면 길거리의 거지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야자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꽉 움켜쥔 채, 한옥금을 불렀다.

“오라버니?”

그녀는 이 사람이 한옥금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목소리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구석에 있던 남자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야자릉을 본 순간, 그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렸다.

“자릉?”

야자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예요.”

한옥금은 아침에 야홍릉이, 저녁에는 야자릉이 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 멍하니 있은 그는 급히 일어서서 다가왔다. 둘은 감방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릉.”

한옥금은 쓴웃음을 지었다.

“못 볼 꼴을 보이는군요.”

“옥금 오라버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오라버니가 억울하다는 걸 잘 알아요.”

야자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초췌한 얼굴의 한옥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오라버니, 일곱째 언니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모함을 당한 건가요? 아니면 오해인가요?”

‘모함? 오해?’

한옥금은 어두운 시선으로 차갑게 말했다.

“야홍릉이 절 모함하는 겁니다.”

‘뭐라고?’

야자릉은 깜짝 놀랐다.

“언니가 모함하는 거라고요?”

한옥금은 고개를 끄덕이고 우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한 달 동안 저는 악몽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릉, 야홍릉이 갑자기 성격이 확 변한 건지, 왜 그런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비수는 그녀의 것이고 암살극도 그녀가 벌인 것입니다……. 전 무방비상태에서 당했던 지라 지금까지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야자릉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한참이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진실이 이럴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야홍릉이 왜 한옥금을 모함하는 거지?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오늘 아침에 와서 놀라운 얘기를 전하더군요.”

한옥금은 야홍릉이 말했던 ‘대권을 차지하겠다’는 말을 떠올렸다.

“자릉, 반드시 황후 고모께 전해주세요. 야홍릉이 황위를 차지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뭐라고?!’

야자릉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라버니?”

“사실입니다.”

한옥금은 눈을 감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야홍릉이 직접 말해준 것입니다. 제가 거짓말을 꾸민 것이 아닙니다.”

호국 공주는 권력이 강했다. 봉호(封號)도 친왕과 같은 등급이었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어 일부 황자들보다도 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대권을 차지하는 날’이라고 했다.

대권을 차지한다? 호국 공주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자리라면 황위가 아닌가?

야자릉은 멍하니 있다가 한옥금이 말한 것을 차츰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야홍릉은 결국 여인이었다. 이 목국에서 여인이 황제가 되어 정권을 장악한 선례는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정말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야자릉의 눈에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났다. 그녀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부황께서 이 말을 들으시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갑자기 이 말을 들은 부황의 반응이 아주 기대되었다.

“옥금 오라버니.”

야자릉은 시선을 들고 한옥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련한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꼭 오라버니의 결백을 증명할게요. 그러니 제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요.”

그 말을 들은 한옥금은 가슴이 뭉클하여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지저분한 자신의 몰골을 떠올리자 다급히 손을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숙왕(肅王) 형님을 도울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자책하지 마세요.”

야자릉이 말했다.

“황형께서 변방에 가시면 병권을 가진 황자가 되는 거죠. 앞으로 공을 세워 돌아오시면 더더욱 인심을 살 거예요. 병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보다 스스로 움켜쥐고 있는 게 훨씬 좋아요.”

야홍릉이 쓸 만하지 못하면 버리면 그만이었다.

3황자는 황후의 적자여서 나중에 군공을 세우고 돌아온다면 더더욱 큰 병권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때면 어느 황자가 감히 그에게 대항하겠는가?

야자릉이 할 일은 3황자가 돌아오기 전까지 한씨 가문을 무사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오늘 한옥금의 말을 들은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야홍릉이 혼자 꾸민 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한옥금의 결백을 증명하기만 하면 한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복원될 것이다.

‘야홍릉이…… 자해를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대신의 자식을 모함하다니. 이 일이 까발려지면 부황은 절대 그녀를 용서하지 않겠지!’

야자릉은 이런 마음을 품고 씩씩하게 천뢰를 떠났다.

한령을 본 순간,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큰 오라버니.”

한령은 그녀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고 입을 열어 영문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야자릉이 먼저 앞질러 말했다.

“먼저 부황을 뵈러 가죠.”

한령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옥금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야자릉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령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야홍릉이 황위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어요. 암살 사건은 그녀가 옥금 오라버니를 모함하느라 벌인 고육책이고요.”

‘뭐라고?’

한령은 깜짝 놀랐다.

야자릉이 급히 말했다.

“지금 바로 부황께 가서 야홍릉의 음모를 까발려야겠어요.”

“잠깐만요.”

한령은 정신을 차리고 가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야자릉을 다급히 막았다.

“안 됩니다.”

‘뭐?’

야자릉은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이 모든 것이 야홍릉이 꾸민 일이라면 바로 황제에게 말해 황제가 직접 조사하여 한옥금의 결백을 입증하는 게 상책이었다.

“폐하께서는 믿지 않으실 겁니다.”

한령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예로부터 공주의 몸으로 황제가 된 선례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폐하께서는 믿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옥금이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고 7공주를 모함하는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한령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폐하께서 믿는다 해도 이 사실을 절대 다른 사람이 이 일을 알게 하지 않을 겁니다.’

야홍릉은 호국 공주였다. 3년간 세운 군공으로 그녀는 병권을 제외하고도 대신들과 무장들의 존경을 받았다.

만약 이런 시기에 호국 공주가 역심을 품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대신들과 무장들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씨 가문에서 한옥금이 공주를 죽이려고 했던 죄를 씻으려고 핑계를 댄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제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황제는 의심이 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권모술수에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야홍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야홍릉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몰래 대처할 것이다. 절대 다른 사람들이 그가 딸조차 믿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야자릉이 이 사실을 말한다면 황제는 야홍릉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대신들의 의심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옥금이 암살을 하려고 했다는 죄명을 오히려 명확하게 할 것이다.

성지가 내려오게 된다면 바꿀 수 없었다. 황제가 속으로 야홍릉을 의심하고 있다 쳐도 한씨 가문으로서는 절대 이득이 될 일은 없었다.

“그럼 지금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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