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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4)화 (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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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날 좋아하나요?

한 달 동안 감옥에서 지낸 한옥금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예전의 준수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가 전하를 왜 암살하려고 했는지 물으시려는 겁니까?”

이 말에는 옅은 조롱이 담겨 있었다.

야홍릉은 서리가 낀 듯한 차가운 시선을 보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날 좋아하나요?”

한옥금은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네.”

야홍릉은 지금도 이런 대답을 들은 것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싸늘하게 물었다.

“얼마나요?”

한옥금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시의 신분으로 내 옆에 평생 있을 정도로 좋아하나요?”

‘뭐라고?’

한옥금은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옥금, 당신은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날 이용하는 것뿐이었어요. 아닌가요?”

야홍릉은 차가운 눈빛으로 몰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야자릉, 내 여덟째 동생이죠.”

한옥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어떻게 알았나 궁금한가요?”

야홍릉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내가 말해 줄 일을 알려드리죠. 당신이 좋아하는 야자릉도 곧 이곳에 와서 당신과 함께하게 될 거예요.”

한옥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공기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한 것처럼 차가워졌다.

어두운 불빛이 야홍릉의 어여쁜 얼굴에 요염하고 기괴한 빛을 불어넣었다.

“전하!”

한옥금은 침착함을 잃고 절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죄명을 저한테 뒤집어씌우는 겁니까? 3년 동안 전하에 대한 제 마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당신의 야자릉을 향한 마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야소숙에 대한 마음 역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겠지요. 하지만 나에 대한 마음은 아니에요.”

야홍릉은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내가 소중한 진심을 이렇게 개와 같은 자에게 줬었더라고요. 앞으로 그 개를 쇠사슬로 묶어 짓밟고 지옥에서 구르게 할 거예요.”

싸늘하고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야홍릉은 또박또박 말했다.

“한옥금, 천천히 기다리세요. 내가 대권을 차지하는 날이 바로 당신이 아랫도리를 잃는 날이에요. 이 말을 가슴에 꼭 새기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으나 외로워 보였고, 한편 단호함이 묻어났다.

한옥금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싸늘한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당신은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날 이용하는 것뿐이었어요. 아닌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야자릉, 내 여덟째 동생이죠.

내가 대권을 차지하는 날이 바로 당신이 아랫도리를 잃는 날이에요…….

한옥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야홍릉이 어떻게 안 거지? 알 리가 없는데. 지금 알면 안 되는데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내가 티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어떻게……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옥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무런 징조 없이 시작된 악몽 같았다.

천뢰에 들어온 한 달 동안 그는 매일같이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수많은 추측을 해보았었다.

그리고 오늘, 야홍릉의 말을 들은 그는 모든 추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야홍릉이 천뢰를 나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그녀에게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 전하.”

검은색 대내시위(大內侍衛) 통령복을 입은 한령은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태후마마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태후마마께서?’

야홍롱은 싸늘한 얼굴로 그를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한령, 난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천뢰에 들어가 한옥금을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한령은 흠칫 놀랐다가 시선을 들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폐하의 지시가 없다면 누구도 감히 천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궁금한 것이……”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말거라.”

야홍릉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나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늘씬하고 마른 뒷모습은 대나무처럼 곧기만 했다. 그 속에서는 침착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령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돌리고 그녀가 걸어가는 방향을 한참이나 주시했다.

그제야 그는 야홍릉이 자안궁(慈安宮, 태후가 묵는 궁)의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공주 전하!”

그는 몸을 날려 빠른 속도로 야홍릉을 따라잡은 뒤, 그녀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태후께서 다녀가라고 하셨습니다.”

야홍릉이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다.”

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으로 지나갔다.

‘시간이 없다고?’

한령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야홍릉이 곧장 궁 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당황한 그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야홍릉은 한옥금을 만나기 전의 성격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얼음처럼 차가워 그 누구도 감히 다가가지 못했던 그때처럼.

심지어 그전보다 더 차가운 것 같았다.

태후가 만나자고 하는데 이유도 둘러대지 않고 시간이 없다고 하다니?

한령은 주먹을 움켜쥔 채, 태후가 묵는 자안궁으로 걸어갔다.

호국 공주 야홍릉은 야씨 황족의 가장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병권을 움켜쥔 유일한 사람이자 무수한 군공을 세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한 유일한 여인이었다.

모든 황자와 공주 중에서 그녀만 태후와 황제를 만날 때,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야홍릉은 그전에 아주 차가운 사람이었다.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옥금과 사랑에 빠진 3년 동안, 그녀는 한옥금을 위해 많은 것을 바꾸었다.

특히나 한옥금과 연관된 사람들을 대할 때면 더없이도 편안하게 해주었다.

태후의 말에도 대답하고 황후도 존중해 주었다.

심지어 한 어사를 만났을 때도 공주의 신분을 잠시 제쳐두고 어르신을 대하듯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늘부로 완전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야홍릉은 여전히 예전의 야홍릉이었다.

제멋대로고 도도하고 싸늘하며 그 누구 때문에도 바뀌지 않는 차가운 사람.

하지만 한령이나 태후, 황후, 심지어 황제도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야홍릉이 오지 않겠다고 했느냐?”

태후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한령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한령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7공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야홍릉이 이렇게 자신을 무시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야홍릉은 예전에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는 척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태도였다.

“어마마마, 화를 가라앉히세요.”

황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호국 공주의 기분이 많이 안 좋은 듯해요. 그래서 무례를 범한 것 같네요…… 전에도 성미가 안 좋지 않았나요?”

태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언짢은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성격이 좋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례한 것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성미가 차갑고 자유롭게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심지어 황제의 앞에서도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다. 황제에게 총애받는지, 황제와 태후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는지는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황궁에서 황제부터 궁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의 태도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옥금을 만난 뒤로 그녀가 조금씩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황후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한령, 네 동생은 만났느냐? 옥금이 정말로 호국 공주를 찌른 것이냐?”

한령은 고개를 저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7공주께서 허락 없이 누구도 옥금을 만날 수 없다고 명하셨습니다.”

“야홍릉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황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정말 옥금을 미워한다면 지금쯤 무슨 말이든 했을 것 아니냐? 가둬두기만 하고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남은 정 때문에 모질게 대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한령.”

태후의 위엄 서린 시선이 한령의 얼굴에 닿았다.

“이번 일이 오해일 가능성은 없느냐?”

한령은 흠칫 놀랐다.

‘오해라고?’

“옥금이 7공주를 그리 좋아하는데 어찌 죽이려고 했을 수 있겠느냐?”

태후의 말투는 싸늘하기만 했다.

“분명 누군가 모함한 것이니라.”

한령은 눈썹을 꿈틀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마마마의 뜻은…….”

황후도 태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태후의 뜻을 대충 눈치챈 듯했다.

“한씨 가문에 서자가 있었지 않느냐?”

태후는 찻잔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숨겼다.

“한경백(寒卿白)을 들여보내고 옥금을 빼낼 생각을 해보거라. 7공주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한경백이라고 하거라.”

이 말을 들은 한령과 황후는 모두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은 저도 모르게 어두운 얼굴로 서로 마주 보았다.

한경백을 천뢰에 넣고 한옥금을 빼내는 일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었다.

방금 야홍릉이 이미 천뢰로 가서 천뢰에 갇힌 사람이 한옥금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야홍릉이 한옥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겠는가? 칼에 찔릴 때도 한옥금을 잘못 봤을 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경백을 천뢰에 넣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한경백이라고 한다고?

그런 얄팍한 수에 야홍릉이 넘어가겠는가?

한옥금이 야홍릉을 죽이려고 했는지 아닌지를 둘째치고 호국 공주는 한경백이 억울하다는 것쯤은 확실하게 알 것이다.

서자가 적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한옥금과 야홍릉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

이유는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어사부의 서자가 야홍릉의 눈을 속여 한옥금으로 변장하고 그녀를 찔렀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태후와 황후와 한령, 세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야홍릉은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제와 관리들 또한 누가 모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다른 수가 없었다.

이것만이 한옥금을 살릴 유일한 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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