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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3)화 (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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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중상을 입은 대가

호국 공주는 올해 열일곱 살이었다.

열네 살 때부터 홀로 병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간 뒤로 지금까지 무려 3년이 지났다. 그녀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엄청난 명망과 권세를 쌓아왔다.

야홍릉의 신분은 고귀했다. 그녀는 항상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는 했다.

호국 공주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매일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으나 그녀를 실제로 만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태의와 집사, 나신과 봉우 두 장군, 그리고 야홍릉의 측근 시녀 냉월(冷月)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야홍릉의 저택에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했다.

황제의 방문 요구마저도 태의에게 완곡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상태가 위중하니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무려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제야 태의는 호국 공주가 일어나 앉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침대에서 내려올 정도는 아니라 했다.

황제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가슴에 묵혀 두었던 궁금증을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바로 공주부로 걸음을 옮겼다.

야홍릉이 혼수상태에 있는 일주일 동안 조정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각 세력에서 호시탐탐 움직일 준비를 했다. 황위를 욕심내는 황자들 중 야홍릉이 한옥금과 사이가 틀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한 어사는 매일같이 대전 앞에서 억울하다고 외쳤다. 한옥금이 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호국 공주를 죽일 리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일은 아주 수상하다고 했다.

황후도 나서서 황제더러 이번 사건을 낱낱이 조사하여 한옥금의 결백을 입증해달라고 청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이번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는 야홍릉과 한옥금의 혼사를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는 알고 있었다. 야홍릉은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한옥금은 황후와 야소숙을 위해서라도 야홍릉을 죽일 리 없었다.

황제는 그 누구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이 기회에 한씨 가문의 세력을 약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옥금을 며칠 가두어 두었다가 야홍릉이 깨어나면 다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수상태였던 야홍릉은 일주일 만에 드디어 깨어났다.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마음을 졸였으며 또 누군가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야홍릉과 상관이 없었다.

무기력한 몸을 침대 머리에 기댄 야홍릉의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했다.

황제가 왔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시선에 차가운 한기가 스쳐 지났다.

그러나 그녀는 곧 차가운 표정을 감쪽같이 숨겨냈다.

“홍릉아.”

황색 용포를 입은 황제가 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침대 머리에 기댄 채, 기운 없는 야홍릉의 얼굴을 본 그는 입을 열었다.

“좀 어떠하냐?”

야홍릉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황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널 보러 왔지.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아주 걱정했단다.”

황제는 무거운 얼굴로 말하며 시위가 가져온 의자 위에 앉았다.

“홍릉아, 너와 한씨 가문의 아이는 사이가 좋은 것 아니었느냐? 그 아이가 왜…….”

야홍릉은 눈빛을 돌리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연기를 위해 중상을 입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상처는 진짜였고 창백한 안색도 진짜였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저도 궁금합니다…….”

야홍릉은 덤덤한 말투로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슬프게 보이도록 했다.

“저도 제가 그에게 뭘 그리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요.”

야홍릉은 그에게 뭘 그리 잘못해서 그의 칼에 찔려 죽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한옥금이 저지른 일이더냐?”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멍한 그녀의 표정이 큰 충격을 받았음을 말해주었다.

황제는 한 마디도 더 물을 수 없었다.

‘사실인가 보군. 그런데 왜?’

황제는 한옥금이 무슨 이유로 야홍릉을 죽이려고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대전 안은 한참이나 조용했다.

“아바마마.”

야홍릉이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한옥금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황제가 대답했다.

“천뢰(天牢)에 있지.”

‘천뢰라…….’

야홍릉은 입을 닫았다.

천뢰는 들어가기만 하면 날개가 있어도 나오기 힘든 곳이었다. 그곳은 큰 죄를 저지른 왕실이나 귀족들만 가두는 곳이었다.

“제 상처가 나으면 직접 물어보고 싶어요.”

그녀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말투가 더없이 차가웠다.

“당분간 그를 가두어 주세요. 죽이지 마시고요.”

야홍릉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직접 괴롭히는 게 좋았다. 한옥금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의 매정함과 악독함, 배은망덕함에 걸맞은 짐승으로 태어날 것을.’

황제는 뭔가를 더 물으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야홍릉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가슴팍을 움켜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황제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태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의가 급히 들어왔다. 황제는 급히 자리를 내주는 순간, 야홍릉의 흰색 침의(寢衣)에 빨간 피가 스며 나온 것을 보았다.

호국 공주는 다시 혼절했다. 태의가 상처를 싸매고 황제가 떠날 때까지 야홍릉은 깨어나지 못했다.

황제가 궁으로 돌아와 보니 한 어사는 여전히 대전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한경, 이번 일은 나도 어찌할 수 없네. 며칠 두고 봅세. 당분간은……. 한옥금에게 죄를 묻지 않겠네. 그러나 앞으로 어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한 어사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황제의 뜻은 한옥금이 호국 공주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럴 수가…….’

황제는 의자에 앉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와 한 어사는 모두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야홍릉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작년과 재작년에 야홍릉이 그의 앞에서 두 번이나 사혼 해달라고 청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야홍릉은 한옥금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성미가 차가운 야홍릉은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았으나 유독 한옥금만은 마음에 품고 있었다.

황제는 누구보다 야홍릉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공이 강하고 병법이나 책략이 뛰어나나 사실 전쟁에 나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깔끔한 성격 탓에 야홍릉은 전쟁터의 피와 땀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수많은 남자와 함께 먼지 가득한 전쟁터를 누비는 것을 원래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야홍릉이 전쟁에 나가는 것은 오직 한옥금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황제는 더더욱 그녀와 한옥금의 혼인을 허락할 수 없었다.

황제는 군대 셋을 호령하는 공주가 한옥금과 혼례를 올려 3황자와 한씨 가문의 뒷배가 되는 것을 가만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옥금은 야홍릉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더없이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이다.

‘정말 이해를 할 수 없군. 혹시…….’

미간을 찌푸린 황제의 시선은 어두워졌다.

‘혹시 야홍릉이 더 이상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아서…… 또는 3황자가 직접 군공을 세울 기회를 주느라 혼자서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쓴 건가?’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황제는 곧바로 머리를 저었다.

‘야홍릉이 전쟁에 나가기 싫다고 쳐도 한옥금이 자신을 죽이게 함정을 꾸미지는 않았을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한옥금을 그렇게 사지로 몰아넣었을 리 없지. 한옥금은 홍릉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할수록 이번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번 일이 야홍릉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사건의 진실을 알 만한 사람은 한옥금밖에 없었다.

황제는 사람을 파견하여 한옥금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궁중 어림군(禦林軍)의 수령은 한옥금의 형 한령(寒翎)이었다.

한옥금이 호국 공주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한옥금의 형인 그가 사실대로 말하겠는가?

황제는 깊은 의심이 들었다.

한씨 가문은 한옥금의 일로 하룻밤 사이에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신하들도 호국 공주가 다친 일에 대해서 제각각 생각이 달랐다. 조정과 후궁에서 모두 이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황제는 한옥금을 벌하라거나 심문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호국 공주부에서 돌아온 뒤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야홍릉도 이 일에 나서지 않고 저택에서 요양할 뿐이었다.

그렇게 또 보름이 지났다.

태의원에서 온갖 좋은 약을 사용한 덕에 공주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나았다. 게다가 야홍릉은 원래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라 몸이 튼튼하여 보름이 지날 즈음에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침대에서 나올 수 있게 된 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천뢰로 가는 것이었다.

황제는 이 일을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야홍릉에게서 보았던 어둡고 서글픈 시선을 떠올리자 야홍릉이 한옥금에게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럴수록 황제는 한옥금이 호국 공주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야홍릉은 옥졸의 안내를 받으면 길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돌문을 네 번이나 통과해서야 한옥금이 갇혀 있는 감옥에 도착했다.

옥졸은 몸을 돌리고 허리를 숙였다.

“전하, 바로 이곳입니다.”

야홍릉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나가 보거라.”

“네.”

돌벽 높은 곳에 걸린 등불에서 희미한 불빛이 전해졌다. 천뢰 안에는 어둡고 습한 기운만 가득하여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철문 하나를 사이 두고 야홍릉은 죄수복을 입은 채 구석에 앉아 있는 한옥금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기척을 느낀 한옥금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를 응시하는 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 듯했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둘은 경성의 사람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철문 하나를 사이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지금은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 명은 여전히 고귀한 공주이나 다른 한 명은 죄인으로 전락했다.

“한옥금.”

야홍릉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음울했다.

“저는 당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할 것이고,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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