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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화 (948/978)

948화.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2)

한편, 진강은 사묵함에게 소식을 전한 뒤 사방화와 설성으로 향했다. 

하루가 지나고 막북 군이 100리 떨어진 평산곡으로 후퇴했다는 소식이 들릴 무렵, 진강과 사방화는 설성까지 딱 100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진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평산곡을 바라보았다.

“북제가 계속해서 평산곡을 공격해올 것 같소? 제언경이 북제 군영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모든 전략은 언신의 뜻대로 돌아갈 것이오. 당신 생각엔 언신이 계속 평산곡을 치고 들어올 것 같소?”

사방화도 평산곡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평산곡은 수비는 쉽지만 공격하긴 힘든 험지예요. 빈틈없는 책략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쉽게 공격하긴 힘들죠. 언신 성격에 더 이상 평산곡을 치고 들어올 리 없어요.”

진강이 눈썹을 들썩였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소?”

사방화는 또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진강은 문득 사방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방화의 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방화, 당신 정말 요괴를 가진 건 아니겠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렇다 해도, 그 총명한 머리도 굳은 것 같아 걱정이오.”

사방화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요괴를 가진 거라면, 그럼 당신은 아버지 요괴인 건가요?”

진강은 그래도 눈을 깜빡이며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정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상상도 잘 안 되오.”

사방화는 다시 웃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석 달이 다 돼가니, 앞으로 일곱 달 뒤면 태어날 거예요. 그때 마음껏 보세요.”

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화를 끌어안았다.

“당신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오.”

사방화도 천천히 진강의 품에 기대 말했다.

“우리 아이만 건강하다면 그런 건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요.”

진강은 홀연 마차를 모는 청암을 불렀다.

“청암!”

“예, 소왕야!”

“오늘 밤은 쉬지 않고 계속 가자.”

사방화가 진강에게 말했다.

“앞으로 백 리 정도 남았으니 설성에 도착하면 아마 자정이 넘었을 거예요. 설성의 야간 통금 시간이 언제죠? 자정이면 아마 닫혀있을 텐데요.”

“뭐, 이 몸이 왔는데 열리지 않고 배길 성문은 없지.”

사방화는 진강이 당당하게 눈썹을 까딱이는 걸 보고 다시 웃음이 터졌다.

“하하! 네, 당신 참 대단해요.”

“그럼! 우리 예쁜 부인.”

진강이 다시 사방화의 머리를 쓰다듬자, 사방화가 곧장 그의 손을 내렸다.

“제 머리가 굳어진 것도 전부 당신이 만져서 그런 거예요. 그만 좀 해요.”

진강은 힘없이 탄식했다. 

“들끓는 힘을 풀 데가 없어서 그런 것이오.”

사방화는 얼굴을 붉히며 진강을 째려보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강은 정말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매번 쓸데없이 솔직했다.

* * *

청암은 진강의 명령에 서둘러 길을 재촉했고 삼경(*三更: 밤 11시 ~ 새벽 1시) 무렵, 일행은 설성에 도착했다. 이들은 정화곡에서 왔던지라, 설성의 북쪽 성인 뒷문에 다다랐다.

역시 사방화 말처럼 설성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라 성 문이 닫혀있었다.

곧이어 마차가 멈추고, 진강이 청암에게 분부했다.

“진강이 왔다고 전하거라. 사방화도 왔다고 하고.”

“예, 명 받들겠습니다.”

사방화가 진강을 살짝 돌아보았다.

“당신 이름만 대면 되지, 뭐 하러 제 이름까지 대요?”

진강이 눈썹을 까딱였다.

“당신 이름이 더 쓸모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뒤, 진강이 진 영감을 찾았다.

“진 영감.”

진 영감이 즉각 뒤에서 다가왔다.

“예, 소왕야.”

진강이 설성의 웅장하고 견고한 성벽의 보루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성 성주가 우릴 만나줄 것 같나?”

진 영감이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설성 성주를 보러 오신 것 아니십니까?”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만,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말이지.”

진 영감이 말했다.

“보고하는 사람에게 천계산에서 왔다고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진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

잠시 후, 청암이 성 문지기에게 다가가 말을 전하자 그는 곧장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문지기가 돌아와 성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주께서 자리를 비우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남진의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서 오셔도 대접해드릴 수 없다며 죄송하단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진강이 눈썹을 들썩였다.

“대단하신 설성 성주 납셨네. 이 몸의 체면이 바늘 끝보다도 못하단 것이냐? 밤새 설성까지 왔는데 이따위 대접을 하시겠다?”

문지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방화 역시 설성 성주가 아예 성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진강은 이내 종이와 붓을 꺼내 몇 글자 쓱쓱 쓰더니 청암에게 건넸다.

“청암, 가서 성 내 주사(*主事: 관직 이름)에게 전해라. 여태 이 진강이 들어가지 못하는 성 따위는 없었어.”

청암이 곧장 문지기에게 종이를 건네자,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다시 또 안으로 향했다.

사방화는 진강이 쓴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에게 물었다.

“뭘 쓴 거예요?”

진강은 이내 사방화를 꼭 껴안고 말했다.

“방화, 나랑 혼인한 지도 꽤 지났는데 내 앞으로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사방화는 눈을 깜빡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뭘 그런 걸 물어요?”

“어서 대답이나 하시오.”

“몰라요.”

“정말?”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인 전에 나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는 것이오?”

사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뭘 알아보기까지 해요? 무명산에서 돌아온 뒤로 당신 곁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붙잡혀선, 선황폐하와 지금의 황제폐하와 겨루느라 정신도 없었는걸요. 이제야 사씨와 충용후부가 안정을 되찾았잖아요.

남진 황실과 사씨도 화해한 뒤 서로 적과 함께 맞서고 있는데, 제가 언제 당신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있었겠어요? 게다가 제가 알아본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었을까도 의문이지만, 당신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서 뭐 해요?”

진강이 미간을 문지르며 웃었다.

“하긴, 충용후부 아가씨가 내 재산이 궁금하진 않겠지.”

사방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말해줘 봐요. 아무리 사씨 가문이라도 재산은 거의 우리 오라버니 것이라, 출가한 제게 떨어지는 콩고물로는 아이를 키우기에도 부족할지 몰라요. 앞으로 당신한테 기대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진강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어쩜 이렇게 장난까지 늘었을까. 당신 재산으로 우리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모자란다면, 그 아인 실로 엄청 먹어대는 요괴가 분명할 거야. 금과 비단 같은 건 사씨가 가진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세력으로 따지자면 사씨는 내 세력에 비할 수 없을 것이오.

황조모님, 어머니, 아버지께서 내게 암위를 내주신 것 외에도 내가 또 데리고 있는 암위들이 있소. 황숙께서 내게 임종 전 지궁령까지 주셨으니 지궁의 암위도 내 손 안에 있는 것이지. 세상이 이 많은 암위를 거느리고 있는 자를 본 적 있소?”

사방화는 진강의 말을 경청하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제가 본 건 청암이 전분데 그럼 나머지는 어디 있어요? 설마…….”

“응, 다 설성에 뒀소.”

사방화는 그제야 진강이 닫힌 성 문도 겁내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 많은 세력을 설성에 뒀다면 언제든 들어가고도 남는 게 당연했다. 

“일찍이 계획했던 거였어요?”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경미 고모님, 옥계언 고모부님보다 먼저요?”

진강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진 왕가랑 북제 옥가 사람이 뭘 하겠어? 그냥 명목상일 뿐이었지. 정말 설성을 움직이려 한다면 어찌 두 분에게만 기댈 수 있겠소?”

사방화는 미간을 문지르며 높게 쌓인 성벽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튼튼한 성벽이라 할지라도 내부 분열을 막아낼 수 있을까?

진강도 곧 설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이 전쟁에선 설성의 병력이 관건이오. 양쪽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일 때 설성은 반드시 쟁취해야만 하는 곳이지. 근데 내가 어찌 설성을 놓칠 수 있겠소? 다만, 당시 북제에 대항할 때도 아무 대가 없이 내게 덥석 병마를 내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만 지금 이렇게 성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 거란 건 더 예상치도 못했소. 재밌군.”

* * *

그러나 반 시진이 지나도 문지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강이 오랜 기다림에 진저리를 낼 무렵, 때마침 문지기가 와 성문을 열었다. 

“소왕야, 소왕비마마, 사야(*師爺: 지방관의 개인 고문)께서 안으로 모시라고 하십니다.”

진강이 눈썹을 들썩였다.

“성주는 어디 있느냐?”

“성주께선 정말 성에 안 계십니다.”

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암에게 성으로 들어서라 분부했다.

대열이 설성 안으로 진입하자 성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사방화는 설성에 처음 와봤기에, 마차 휘장을 열어 바깥을 구경했다. 

길가에 늘어선 점포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으며, 다루나 주루에서 흐르는 노랫소리와 사람들로 인해 거리는 매우 시끌벅적했다. 설성은 남진의 황성보다 훨씬 더 번성한 듯 했다.

백성들은 문지기가 이끄는 웅장한 대열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각자 볼 일에만 전념했다. 

진강과 사방화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 * *

곧 높고 큰 저택 앞에 다다르자, 아주 좋은 인상에 엷은 수염을 기른 한 사내가 있었다. 나이는 대략 50대 즈음으로 보였다.

그가 바로 설성의 사야(師爺)였다.

“어?”

진 영감은 갑자기 그를 보고 소리를 냈고, 사야 역시 진 영감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진강과 사방화도 동시에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참 진 영감을 멍하게 보던 사야는 서둘러 사방화, 진강에게 예를 갖췄다.

“소왕야, 소왕비마마께서 간밤에 설성을 찾아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주께서 말씀만 남기지 않으셨다면 당연히 성 문까지 나가서 두 분을 모셔왔을 텐데요.”

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초대 없이 왔다지만 성주께서 우릴 이렇게나 반겨주지 않으실 줄은 몰랐소.”

사야가 말했다. 

“이 늙은이가 보기에도 좀 이상합니다만, 성주께서 명을 남기신 이상 감히 그 뜻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두 분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지요.”

“어쨌든 이렇게 들어왔으니 아량을 베풀 것도 없지. 성주께선 언제 떠나신 것이오? 언제 돌아오신다는 말씀은 없으셨고?”

사야가 고개를 저었다.

“며칠 됐습니다만, 언제 돌아온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라도 성에 숨어 있다가 내 눈에 띄는 날엔, 알아서 해야 할 것이오.”

사야는 즉각 간곡히 말했다.

“비록 출가한 몸은 아닙니다만, 부처님을 믿고 선을 베푸는 자로서 거짓을 고할 일은 추호도 없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소왕야께서 설성을 한바탕 뒤집어 성주를 찾아내시는 그땐, 저도 두말하지 않고 소왕야의 처분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진강도 사야의 진심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야께서 설성을 맡고 계신 것이오?”

사야가 고개를 저었다.

“어마어마한 큰 결정은 내릴 수 없지만, 소소한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어떤 것이야말로 큰 결정으로 칠 수 있는 걸까? 설성의 10만 병마를 빌리는 것쯤은 돼야 하나?”

사야는 순간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소왕야께 설성의 10만 병마를 모두 내어드린다면 성을 지킬 자가 남아있질 않습니다.”

진강이 눈썹을 가볍게 까딱였다.

“내 질문에 대답부터 먼저 하셔야지.”

사야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요, 큰 결정이고 말고요. 병마는 설성의 뿌리나 마찬가지잖습니까.”

“병마가 설성의 뿌리라고? 그렇게 보이진 않소만, 설성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몇백 년이나 지났소? 물론 병마로 기근을 다잡은 건 맞소만 이 뒤의 정화곡과 천계산이야말로 설성의 뿌리라고 보는데.”

사야는 일순 동요하다, 고개를 돌려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사방화는 마차에서 내린 후, 줄곧 진강의 뒤에 서서 사야의 행동을 살피던 중이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사방화는 담담히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사야의 시선이 다소 불러오기 시작한 사방화의 아랫배에 멈췄다. 잠시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던 사야가 다시 공손하게 대답을 올렸다.

“눈과 귀가 많은 길목이니 안에서 말씀 나누시지요.”

진강은 사방화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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