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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화 (947/978)

947화.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1)

언신은 다시 지형도를 보며 제언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어릴 적, 옥가 장로당에서 제가 바로 북제의 유일한 황자니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북제 역대 황실과 옥가 사람들의 숙원인 천하통일을 이뤄야 한다고요.”

언신이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만약 북제가 대패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북제가 질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지금껏 수십 년을 거쳐 준비해왔는데 어찌 질 수 있겠습니까? 막내 외숙, 어찌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요.”

제언경의 물음에, 언신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한번 여쭤본 겁니다.”

“막내 외숙께선 쓸모없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시는 법이 없지요. 당연히 이 질문에도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신은 곧 제언경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한 달 전, 진강에게 중상을 입으셨던 그때 진강과 사묵함의 모략 아래 패하신 건 분명했지만, 한 가지 더 간과한 게 있었단 걸 알아냈습니다.”

제언경이 물었다.

“어서 말씀해주시지요.”

“한 달 전, 설성에서 진강에게 병마 1만을 내주어 우리 군 후방이 기습당했던 거였습니다.”

제언경은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막내 외숙, 그게 사실입니까? 설성에서 남진에게 병력을 지원해줬다고요?”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합니다.”

“어째서요? 설성은 줄곧 남진과 북제 일엔 간섭하지 않았잖습니까? 근데 어찌 남진을 도와줬단 거고 저는 이 소식도 몰랐던 겁니까?”

“남진 사병의 군복을 입고 있어 몰랐던 겁니다. 당시엔 대군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혼란스러웠던 탓에 남진 군이라 착각했던 거지요.”

“어찌 이럴 수가!”

제언경은 탁자를 치며 화를 냈다. 그의 힘에 탁자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언신은 시종일관 담담했다.

“태자전하,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으니 함부로 힘을 쓰셔선 안 됩니다. 진정하십시오.”

“막내 외숙, 대체 어떻게 된 거랍니까?”

언신이 고개를 저었다.

“성주가 내린 명령이라는데 무슨 이유인진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제언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미친 성주가 진강과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닙니까?”

언신이 고개를 저었다.

“진강은 성주를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제언경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빌어먹을 설성 성주 같으니! 이제 남진과 북제의 전쟁에 끼어들겠다 이거지? 설성이 어찌나 평온했으면 지겨워질 대로 지겨워져 밖으로 나와 좀 놀아보겠다는 거 아닙니까?”

“설성의 1만 병마는 3만 병마에 맞먹고, 10만은 30만에 맞먹는단 건 잘 아시지요? 거기다 무기와 장비도 엄청나다고 알려졌습니다. 거기다 무수한 무공 고수들과 천재들도 쥐고 있지요. 만약 설성도 참전한다면……. 태자전하께선 북제 홀로 둘을 제치고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장담하십니까?”

제언경은 안색이 심히 어두워졌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담 못 하시지요? 북제와 옥가가 몇십 년을 준비해왔든, 남진이 내정으로 혼란을 겪으며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한들 설성이 힘을 합친다면 승산은 없습니다.”

“막내 외숙, 진정 방법이 없는 겁니까?”

이제 제언경에게선 대승을 앞두고 기뻐하던 기색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언신은 잠시 침묵 끝에 입을 뗐다.

“현재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설성을 손에 넣거나, 설성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제언경은 입만 뻥끗 대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언신은 다시 탁자로 돌아와 지형도를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제언경이 말했다.

“막내 외숙, 설성을 손에 넣는단 건 불가능합니다. 북제와 남진이 세워지기 한참 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설성을 어찌 건드린단 말입니까? 300년 전, 서로 나뉘어 격렬히 전쟁을 벌일 때도 설성은 무사했습니다. 300년 전 그때의 두 황조들께서도 설성을 손볼 엄두는 내지도 못했단 건, 결국 가능성이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설성을 무너뜨리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겉보기엔 그저 북제와 남진의 접경에 있는 성지일 뿐인 것 같아도 천성 못지않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곳입니다. 꼭 현철로 축조된 감옥처럼요. 100만 병마를 감당할 30만 병마가 있는 데다 어마어마한 성벽까지 있으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요.”

한참 고요히 듣던 언신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무너뜨릴 수 있다면요?”

제언경은 깜짝 놀랐다. 

“막내 외숙! 정말 우리 북제 군력으로 설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겁니까? 설사 무너뜨린다고 해도 그 후엔 더 이상 남진의 병력에 당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럼 결국 남진에게 이 좋은 걸 내주게 되는 꼴 아닙니까?”

언신은 돌연 말이 없어졌고, 제언경은 다시 그를 재촉했다.

“막내 외숙?”

언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점령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고 불가능하다면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지요. 설성이 진강에게 병마 1만을 빌려줬으니 10만, 30만 병마까지 빌리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것보단 먼저 손을 쓰는 게 낫다는 말이지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아시겠지요?”

“당연히 알다마다요. 근데 막내 외숙께선 설성을 어찌 손에 넣겠다는 말씀인지요?”

언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운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언경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사묵함과 대적을 치르고 있던 그때 란비마마께서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 상심에 빠져 있었던 게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봐라!”

“예! 공자님.”

“제운설 공주의 종적을 찾아내라.”

언신이 분부했다.

“설마 막내 고모께서 설성과 왕래를 하고 있었던 겁니까? 찾아내 어쩌시려고요?”

제언경의 물음에, 언신이 담담하게 답했다. 

“지금껏 옥가의 지지를 받으며 그저 황자, 황태자 노릇만 하느라 강산 밖의 일에는 관심도 없으셨던 겁니까?”

제언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좋은 황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요. 아바마마께서 태자에 봉해주시고 나선 북제의 숙원을 이루려 조정 외에도 남진의 안팎 동향을 살펴왔습니다. 

막내 고모께서 줄곧 옥가와 아주 가깝게 지내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옥가 장로들께서도 제게 신경 쓰지 말라시기에 더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았던 거고요. 그랬으니 설성은 생각지도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언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태자가 돼서 황실 비밀조차 알지 못하다니요. 장로들께서 그간 황태자를 기르신 건지, 아니면 되레 망치고 있었던 건지 참 알 수가 없네요.”

“막내 외숙,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실의 비밀이라니요?”

“선황폐하께선 설성에 출사를 나가셨던 그때 란비마마를 만나게 되어 황궁으로 모셔왔던 겁니다. 란비마마께선 설성 사람이셨어요.”

제언경은 깜짝 놀랐다.

“란비마마께서 설성 사람이셨다니……! 전 정말 몰랐습니다. 민간 출신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선황폐하께선 란비마마를 무척 총애하셨지요. 하지만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시자 선황태후마마께선 란비마마를 용납하지 않았고 란비마마께서도 더는 북제 황궁에 머물 생각이 없어 운설과 함께 떠나셨던 겁니다. 란비마마께선 그간 북제 옥가와 왕래하지 않았지만, 운설은 매년 옥가를 드나들었어요.”

“막내 고모께선 막내 외숙을 위해서 그랬던 거군요. 두 분은 정혼한 사이시니까요.”

언신은 잠시 침묵했다.

“설성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혼자서 가시겠단 겁니까?”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전하께서도 이제 많이 회복하셨으니 군중을 진두 해주십시오. 남진이 평산곡으로 후퇴했으니 함부로 출병해선 안 됩니다. 제가 설성에서 소식을 전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제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가 참 미친놈이라던데 조심하세요, 막내 외숙.”

“옥계언도 설성에 있습니다. 북제를 떠난 지 한참 되긴 했지만, 그래도 옥가 사람이란 건 변함이 없지요.”

제언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언신은 제언경의 막사를 나와 떠날 채비를 끝마친 뒤 설성으로 향했다. 

* * *

옥운수는 모든 일을 마치고 언신이 보이질 않자 제언경의 막사를 찾았다.

“막내 외숙께선 설성에 가셨다.”

제언경의 말에, 옥운수는 깜짝 놀랐다.

“설성에는 왜 가신 겁니까?”

제언경은 옥운수에게 간략히 설명한 뒤 말했다.

“막내 외숙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평산곡의 움직임을 엄밀히 주시하거라. 남진 군이 움직임을 보이면 곧장 내게 보고하고.”

옥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성까지 건드리려 하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제언경은 미간을 문질렀다.

“어쨌거나 북제를 위해서일 뿐이지. 막내 외숙께서 계신다는 건 북제 강산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동안 내 곁을 따라다니긴 했다만, 늘 옥가에서 살았으니 혹시 막내 고모와 옥가 사이가 어떤지 아는 게 있느냐?”

옥운수가 고개를 저었다.

“옥가에서 딱 한 번 마주친 게 전부입니다. 아주 냉랭한 눈빛으로 절 한 번 보시곤 가버렸지요. 막내 숙부께서 옥가를 떠나 무명산으로 갔을 때였는데 그 뒤론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옥가에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저 멀리 숨어버렸어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럼 막내 고모와 옥가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느냐, 나쁘다고 생각하느냐?”

제언경의 말에, 옥운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막내 숙부를 좋아하시니 사이가 좋지 않을까요? 옥가에서도 혼인하고 나면 당연히 옥가 사람이 될 거란 생각에 일찌감치 한집 식구로 대하던데요.”

“근데 막내 외숙은 막내 고모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옥운수도 곧 당연하단 듯 눈을 깜빡였다.

“그거야 저도 알고 있지요. 사방화를 좋아하시잖습니까.”

“그러니 말이다. 한때는 막내 외숙께서 사방화 때문에 영영 북제로 돌아오지 않으실까 걱정도 했었지. 마음속에 이미 한 사람이 들어차 있는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겠느냐?”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도 후원에 많은 처첩을 두고 계시는걸요.”

제언경이 순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게 어찌 같을 수 있느냐? 됐다. 너와 이런 얘길 해서 뭐하겠느냐. 막내 외숙 말씀이 틀린 게 없다. 넌 발전한 데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옥운수는 곧장 불만을 드러냈다.

“막내 숙부께서 오시고 난 뒤 태자전하께서도 절 미워하시는군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너랑 내가 어찌 막내 외숙과 비교될까. 설성에 가셔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쳐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뭐요?”

제언경도 지친다는 듯 옥운수에게 나가란 손짓을 했다.

옥운수 역시 자신이 옥가 장로들과 황태자 밑에서 방임돼 멋대로 자랐기에 사무에는 완전히 무지하단 걸 잘 알았다. 그런 그가 이제 와 사무를 보려 하니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이 군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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