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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화 (934/978)

934화. 서럽게 울다

진연은 분통을 터트리다 돌연 침상을 내려왔다.

“당장 찾으러 가야겠어!”

그때 소천자가 웃으며 다가와 진연을 말렸다. 

“군주, 고정하시지요. 조금 전 막북에서 돌아오셨는데 어찌 다시 가신다는 겁니까? 고운 피부도 다 그을리셔서 소인도 알아보지 못할뻔했습니다. 태후마마와 왕비마마께서 군주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데요.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진연은 소천자도 밀어내며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나와, 난 사묵함과 결판을 낼 거야!”

하지만 소천자도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 진연에게 당연히 밀려나지 않았다.

“막북에서 황성은 쉬지 않고 달려도 열흘은 넘게 걸리는 곳입니다. 사 후야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말씀하시지요.”

진연은 금세 풀이 죽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만약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면? 다시는 못 만나게 되는 거잖아!”

소천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 후야께선 집이 이곳 황성이신데 당연히 돌아오시지요. 노후야께서도 곧 돌아오실 테니 당연히 돌아오십니다.”

진연은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데 사돈 어르신께서 돌아오신대도 무슨 소용이 있어? 진짜 너무해! 어찌 사람을 이렇게 괴롭힐 수 있어! 날 이렇게 보내버렸으니 이젠 홀가분하겠지…….”

소천자는 분명 진강의 명으로 진연이 돌아온 것이라 알고 있는데, 진연은 어째서 사묵함과 결판을 보겠다며 이리도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천자가 진옥을 바라보자, 진옥은 천천히 진연의 말을 곱씹었다.

진연은 눈물을 흘리다 끝내 바닥과 한 몸이 되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까지 마음이 다 미어질 정도였다.

소천자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계속 진옥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 순간, 진옥은 뭔가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진연의 맞은편에 와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물었다.

“연아, 널 어찌 괴롭혔다는 거냐? 오라비한테 말해봐. 내가 해결해주마.”

진연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진옥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곤 잔뜩 풀이 죽어 말했다.

“오라버니께서도 해결해주실 수 없어요…….”

소천자는 황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일에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진옥은 다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말을 안 해주는데 내가 어찌 해결해주겠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 이젠 내가 황제다. 사 후작도 내 뜻을 거역할 순 없어.”

진연은 한껏 풀이 죽어 기운 없이 말했다. 

“절 막북에 있지도 못하게 하고 매번 절 외면하고 피하기만 합니다. 제가 골칫덩어리라고 느껴져서 돌려보냈나 봐요…….”

소천자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이렇게도 속상할 일인가? 황제도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라더니 맞긴 맞는 말이었다. 

진옥은 또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리고?”

“절 안 좋아해요…….”

진연은 서러워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소천자는 그제야 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연은 사묵함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연의 오라버니 진강과 사묵함의 동생 사방화가 혼인을 했는데, 진연이 사묵함을 좋아한다면……, 족보가 꼬여버리는 것 아닌가? 이젠 사방화의 오라버니와 진강의 동생……. 아이고, 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과연 사묵함이 진연을 외면하고 피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진강이 동생을 황서으로 보낸 이유도 그러했을 것이다. 

천하 백성들 사이에선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거대한 세가 대족에선 보기도 힘든 일이었고, 특히 예를 중시하는 사씨 가문 사람인 사묵함에겐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터였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사씨 일맥, 그중에서도 유일한 적통 가문인 충용후부의 적손들이 모두 황족 영친왕부와 혼인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그때, 진옥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진연에게 물었다. 

“사 후작이 널 싫어한다고 해서 이리도 속상해하는 거야?”

진연은 또다시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옥도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진연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 모습에 소천자가 깜짝 놀라 서둘러 방석을 가지러 달려갔다. 

진연은 울음을 그칠 생각도 없는 듯 구슬 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소천자는 이전에 진강 때문에 진연이 분통이 터져 우는 건 몇 번 봤지만, 이렇게 애간장이 타들어 가듯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정말 진연은 진심으로 사묵함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듯했다.

진옥도 점점 마음이 아파졌다. 본디 진연은 평생 황궁에서, 태후의 손에 자랐기에 진옥과 진연은 친남매처럼 커왔다. 친동생 같은 사촌이 이리도 구슬피 우는데 진옥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는가.

진연은 어릴 때부터 진옥을 따르며 찰싹 붙어 다녔지만, 때와 장소를 잘 구분해 남에게 미움을 사진 않았다. 또 평생을 이 서슬 퍼런 황궁에서 지내서 누구보다도 강인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진옥은 진연이 눈물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연아, 그만 울거라.”

손수건은 순식간에 진연의 눈물로 흠뻑 젖어버렸다. 

진옥도 이제야 진강이 왜 진연을 자신에게 넘겼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진옥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연아, 사 후작이 아니라 진강이 암위에게 시켜 널 이리 보낸 것이다.”

진연이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사 후야가 아니라 오라버니가 보낸 거라고요?”

“그래. 그러니 그만 울거라.”

진연은 잠시 울음을 멈칫하는 듯하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 후야가 오라버니한테 시킨 걸 거예요. 내가 싫으니까 이렇게 보내버린 거라고요…….”

진옥도 지친 듯 소천자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눈물 좀 닦아주거라.”

소천자가 곧장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진옥은 다시 옥안에 앉아 계속해서 상소를 읽기 시작했다. 

진연은 또다시 한참을 울었고, 소천자가 따로 꺼낸 손수건마저도 눈물로 모두 젖어버렸다. 지금껏 참아온 눈물이 오늘에야 터져버린 것인지 진연의 눈물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소천자도 그런 진연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세상에 가지지 못할 것 하나 없는 이 존귀한 영친왕부 군주가 어쩌다 사묵함을 좋아하게 된 걸까? 그것도 새언니의 친 오라버니인 사람을…….

소천자는 계속해서 진옥의 눈치를 살폈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한껏 집중해 상소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보니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태후마마 납시오!”

소천자는 기뻐하며 진옥을 바라보았다.

진옥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천자에게 어서 태후를 모셔오라 손짓했다. 소천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연이는 어디 있느냐?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길래 내 직접 와봤다. 근데 어찌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태후마마, 잘 오셨습니다. 군주께서 울음을 그칠 생각을 않으십니다.”

“왜 그러느냐?”

태후는 몹시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어서재로 들어섰다. 소천자도 그에 맞춰 서둘러 휘장을 열어주었다.

태후는 어서재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슬피 울고 있는 진연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미어져 얼른 다가갔다.

“연아! 어찌 울고 있는 것이냐? 누가 널 괴롭혔어?”

“황숙모님…….”

복숭아처럼 퉁퉁 부어 버린 진연의 눈을 보자 태후는 가슴이 다 저렸고, 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진연은 태후를 껴안고 그 품에 안겨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태후도 어릴 때부터 키웠던 진연을 매우 그리워 해왔다. 물론 배후에서 선황제와 영친왕비를 향해 악한 마음을 품기도 했으나, 단 한 번도 진연만은 소홀히 대한 적도 없이 늘 조심스레 돌봐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진연을 친자식처럼 진심으로 아끼게 되었다.

선황제가 승하하며 과거의 그 수많던 이야기들도 없는 듯 사라졌고, 아들 진옥은 황위에 올라 나라를 돌보느라 바빠 태후와 함께할 시간이 줄었다.

텅 비어버린 궁엔 태후와 말동무를 해줄 만한 사람도 찾기 힘들어, 자연히 친딸 같은 조카 진연을 더더욱 그리워하게 됐다.

그렇게 어서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진연이 오자마자 이토록 슬피 울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태후는 진연이 울음을 기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진옥을 바라봤지만, 상소를 보는 그를 방해할 순 없었다. 그 후로 소천자를 찾았으나 그마저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태후는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자 진연을 토닥이며 말했다. 

“이유가 뭔지 이 황숙모에게 다 말해 보거라. 어느 망할 놈이 우리 연이를 이리 괴롭힌 것이냐? 이 황숙모가 다 알아서 해줄게.”

진옥은 잠시 고개를 들어 태후를 바라보더니 다시 상소를 읽기 시작했다. 

소천자는 문밖에서 식은땀을 닦으며 태후도 이 일을 해결하긴 힘들 거란 걱정과 함께 또 한편으론 사묵함이 망할 놈은 아니지 않느냐며 생각했다.

이윽고 진연도 울다 지쳤는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전 사 후야가 좋은데 그 분은 제가 싫대요. 골칫덩이 같은 제가 보기 싫다고 오라버니에게 시켜 절 도성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태후는 깜짝 놀랐다.

“묵……, 묵함이를 말하는 것이냐?”

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도 단번에 이 문제의 근본을 떠올리며 걱정스레 물었다.

“연아, 어쩌다 묵함을 좋아하게 된 것이냐?”

진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오래전부터요.”

“오래전 언제 말이냐?”

“저도 몰라요. 아무튼 전부터 좋아해 왔습니다.”

태후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진연은 다시 태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후는 진연을 토닥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냈다. 

“묵함이는 몸이 좋지 않잖니.”

“이젠 다 나았어요.”

“성격이 좀 답답하단다.”

“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아직 막북에 있잖으냐. 이번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너도 어서 혼인해야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태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강이와 방화가 혼인했잖느냐. 근데 네가 또 묵함과 혼인하는 건……, 좋지 않다.”

진연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태후도 더 이상 해결해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태후가 힘없이 진옥을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소천자. 영친왕부에 가서 백모님을 모셔오거라.”

소천자는 서둘러 영친왕부로 향했다.

이내 진옥은 태후에게 말했다. 

“우선 연이와 궁에 가 계세요. 울다 지쳤을 테니 쉬어야 할듯합니다.”

태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은 영친왕비와 상의해야 해결이 날 거란 생각에 얼른 진연과 함께 어서재를 빠져나갔다.

* * *

영친왕부.

영친왕비는 한창 화초를 가꾸고 있다, 소천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뭐? 연이가 묵함이를 좋아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군주께서 직접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폐하와 태후마마께서 아무리 달래도 눈물을 그칠 생각을 않으시기에 폐하께서 얼른 왕비마마를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영친왕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갈 테니 그리 전해라.”

소천자는 영친왕부를 빠져나와 황궁으로 향했다. 

이내 영친왕비가 춘란에게 물었다.

“연이가 어쩌다 묵함을 좋아하게 됐는지 아느냐?”

“그간 밖에서 함께 지내오면서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몇 달 간 사 후야께서 줄곧 연 군주를 챙겨주셨잖습니까. 하지만……, 사 후야와 군주께서 정말 혼인하신다면 족보가 꼬이는지라 그게 걱정입니다.”

영친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고금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은 아니니 그건 중요치 않아. 연이가 묵함이를 좋아한다면 묵함은 연이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냐?”

“조금 전 소천자 태감의 말씀도 그렇고 후야께선 우리 군주께 아무 마음이 없으신 듯합니다. 그러니 소왕야께서도 군주를 돌려보내셨겠지요.”

“일이 좀 힘들어지겠구나. 왕야는 어디 계시느냐?”

영친왕비가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 

“좌상부에 가셨습니다. 연 소후야와 최 대인께서 막북으로 가시던 도중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혀 화가 나신 소후야께선 소리를 빽빽 지르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이 문제로 대체 누가 배후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건지 좌상 대인과 상의하고 계십니다. 지원군을 받는데 이렇게 늦어진다면 남진에 좋을 건 없으니 말이지요. 아침에 왕야께서 말씀하셨다만 마마께선 소왕야와 소왕비마마를 걱정하시느라 제대로 듣지 않으셨습니다.”

영친왕비가 물었다.

“사돈 어르신께선 언제쯤 도착하신다더냐?”

“노후야께선 이제 며칠 뒤면 오실 겁니다.”

“우선 난리가 났을 테니 궁에 먼저 다녀와야겠구나.”

영친왕비는 춘란과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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