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화. 야간의 군영 습격
사방화가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얼마나 기습해 온 거야?”
시화가 고개를 저었다.
“마마 곁을 지키느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막사로 오는 족족 무참히 죽이고 있어 감히 접근하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입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밖으로 나가보자.”
시화와 시묵은 서둘러 그녀를 막아섰다.
“마마! 낮에도 피비린내 때문에 고생하셨잖습니까. 나가지 마셔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다 막으면 괜찮을 거야.”
“소왕야께서 필시 마마를 잘 지켜달라고 하셨습니다. 손수건으로도 소용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사방화는 몸 상태를 한번 살펴보곤 말했다.
“아까는 너무 지쳐서 더 그랬던 걸 거야. 자고 일어나니 많이 나아졌어. 지금도 막사 안으로 피비린내가 느껴지지만 멀쩡하잖아. 괜찮을 거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아.”
말릴 새도 없이 사방화는 벌써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떠나버려서,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황급히 사방화의 양쪽에 붙어 따라나섰다.
* * *
막사 문을 나서자 하늘로 치솟는 불꽃이 제일 먼저 시야에 담겼다. 그 주변으로 병기의 그림자들도 이리저리 겹쳐 있는 걸 보니 실로 무자비한 살상이 이뤄진 듯했다. 살육……, 그 끔찍한 단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사방화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었는데, 어떤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자 천천히 손을 뗐다.
시화, 시묵은 걱정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며 잠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한참 주위를 살피던 사방화가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저기 청암 아니야?”
시화와 시묵도 사방화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네, 맞습니다.”
“고모님을 조부님께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인가 보네. 이번에 북제에서 파견한 이들은 특수 훈련을 거친 고수 중에도 고수들이야. 청암이 암위를 배치해둔 덕에 저들도 감히 막사를 뚫고 오지 못하는 거였구나.”
시화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왕야께서 계시지 않아도 청암 공자만 있다면 소인도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방화는 시화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었다.
“네가 청암의 실력을 알아보다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시화는 금세 사방화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마마, 그만 놀리셔요.”
사방화는 고개를 돌리며 웃음기를 거둬들였다.
밤사이 온 사방엔 살육의 피비린내가 가득했고, 잠시 농담을 나누던 그 찰나도 어느새 비명과 뒤엉켜 싸우는 소리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 * *
반 시진이 지나고, 사방에서 무참히 들려오던 살육의 소리가 가라앉고 먼 곳에선 하늘을 뒤흔드는 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청암은 보검에 묻은 피를 닦고 막사로 들어와 사방화에게 예를 갖추었다.
“소왕비마마, 괜찮으십니까?”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응, 난 괜찮아.”
청암은 사방화의 배를 한번 보고는 말없이 한 편에 섰다.
“청암, 고모님은 언제 천기각 천수만에 모셔다드린 거야? 여긴 언제 왔고?”
“어젯밤 천수만에 다다라 한 시진 전에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청암은 여태 제대로 쉬지도 못해 안색도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고모님은 조부님을 만나셨어? 조부님은 좀 어때.”
“노후야께선 정정하십니다.”
“조부님께선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예, 없으셨습니다.”
사방화는 한마디 말도 전하지 않는 조부님이 참 너무하단 생각을 하며, 저 멀리 북제 군영을 쳐다보았다.
“서방님은 북제를 기습하러 가신 거야?”
청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 소왕야께선 아무 병력도 동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방화가 깜짝 놀랐다.
“혼자서 가셨다고?”
청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혼자 가실 수가 있어?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
청암이 말이 없자, 사방화는 즉각 화를 내며 밖으로 향했다.
시화와 시묵은 깜짝 놀라 그녀를 막아섰다.
“마마!”
청암도 재빨리 사방화를 가로막았다.
“소왕비마마, 소왕야께선 무사하실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내가 어떻게 안심할 수 있어! 지금이 어떤 땐데! 북제에 병사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거길 혼자 갔다고? 제언경이 진강을 붙잡아…….”
“안심하십시오, 소왕비마마. 소왕야십니다. 세상에 강 소왕야를 붙잡을 수 있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방화가 말없이 청암을 돌아보자, 그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마마와 소왕야께서 막북에 다다르신 뒤 후야와 소왕야께선 군영을 봉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언경은 두 분께서 여기 계신단 걸 모릅니다. 북제 군은 오늘 밤 총력을 동원해 막북 군영을 일거에 장악해 변경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북제의 모든 시선은 막북 군영에 가 있는 상황이지요. 소왕야께선 바로 그 틈을 타 제언경을 공격하려는 계획이신 겁니다.”
“제언경을 죽이려는 거야?”
청암이 고개를 저었다.
“죽일지, 죽이지 않으실진 모르겠지만 분명 크게 해를 입히실 겁니다.”
사방화도 누구보다 진강의 능력을 잘 알지만, 걱정을 안 할 순 없었다.
진강이 홀로 북제 군영을 왕래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건 확실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제언경도 분명 빈틈을 보이지 않을 상황이었다.
지금 북제 군영으로 가는 건 아주 위험한 선택이지만, 그녀는 지금 몸 상태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무력감……. 그녀는 다시금 분노와 원망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온몸에 흐르는 피를 뽑아내 매족의 뿌리를 끊어내 버리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마마, 소왕야께선 마마를 제일로 생각하시니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시화가 사방화를 위로했다.
“맞습니다. 배 속 작은 공자님을 위해서라도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시묵까지 나서자, 청암도 안색을 굳히고 말했다.
“감히 소인의 목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소왕야께선 아무 일 없으실 테니 염려 마십시오, 소왕비마마.”
사방화는 그제야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난 괜찮아. 여기서 진강이 오기를 기다릴게.”
세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두 시진 후,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큰일이다! 태자전하께서 위험에 빠지셨다!”
“자객이다! 어서 자객을 잡아라!”
“동쪽으로 달아났다! 어서 뒤쫓아라!”
뒤엉켜 싸우는 소리 사이로, 아주 미세한 외침들이 들렸다.
사방화는 깜짝 놀라 북제 군영 쪽을 바라보았지만, 한밤중이라 불빛과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화는 즉각 시화와 시묵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네? 무슨 소리 말씀이십니까?”
“누군가 태자가 위험에 빠졌다고 외쳤잖아.”
시화와 시묵은 고개를 저었고 청암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인도 듣지 못했습니다. 북제 태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양측 군영은 30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제 태자가 북제 군영에서 나와 여기로 오지 않은 이상 30리 밖의 소리를 들을 리는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정말 똑똑히 들었어.”
사방화는 미간을 문지르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밖에서 또다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후방에서 기습해 온다. 어서 철수하라!”
그러자 소리가 돌연 잠잠해지고, 이내 철수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들었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방화는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막북 대영 안이 이렇게 평온한 걸 보니 바깥에서 기를 쓰고 막아내고 있는 듯해. 바깥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나가서 한번 알아보고 와줄래?”
사방화의 분부에, 청암은 사람을 파견했다.
잠시 후, 그 자가 돌아와 아뢰었다.
“북제 군영에서 나온 소식입니다. 제 태자가 공격을 받아 북제 후방의 병사들이 다 공포에 떨던 중, 우리 아군이 북제 군마 뒤로 기병을 배치해 기습하자 지금 모두 다 철수했다고 합니다.”
사방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언경이 정말 공격을 당했다고? 막북 군영에 있는 60만 병력으론 정면에서 북제 병마를 당해내기도 버거울 텐데 어디서 병력을 동원해 후방에서 기습했다는 것이냐?”
그 자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어지러운 상황이라 세세히 알아보진 못했습니다. 소왕비마마께 얼른 보고를 드리려 속히 돌아왔사온데 다시 알아보고 올까요?”
사방화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진강이 어딨는지만 알아내 마중 나가줘.”
이내 청암이 입을 열었다.
“소왕비마마,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밤이 깊으니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시화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북제 상황을 보니 이번 싸움에선 저희가 확실히 이긴 것입니다. 찬 바람 쐬셔서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소왕야께서 또 걱정하실 겁니다.”
사방화는 밖에서 진강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세 사람이 자신 하나를 지키느라 고생하는 걸 생각하니 결국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화와 시묵이 곧 뒤를 따랐고, 청암은 검을 들고 막사 앞을 지켰다.
* * *
사방화가 안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초지가 나타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청암에게 물었다.
“소왕비마마께 무슨 일 있소?”
청암이 고개를 젓자 초지는 다시 돌아갔다.
겉으론 퉁명한 척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초지였지만, 피비린내에 사방화가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사방화도 초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진심을 참 고맙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 시진 후, 사묵함이 돌아왔다.
“사 후야.”
청암이 사묵함에게 예를 갖추었다.
“누이는 어디 있느냐?”
“안에 계십니다.”
청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화와 시묵이 안에서 나왔다가 사묵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후야! 다치셨습니까?”
“괜찮다.”
바로 그때 사방화가 안에서 달려 나와 사묵함의 옷자락을 잡고 물었다.
“오라버니, 어디 다쳤어요?”
“왼쪽 가슴에 칼을 맞았다만 깊은 상처는 아니다. 초지가 치료를 해줬으니 괜찮을 거다.”
사묵함은 사방화의 머리를 매만지며 웃어 보였다.
“내가 확인할 테니 어서 들어와요.”
사방화는 사묵함을 막사 안으로 떠밀곤, 침상에까지 앉혀주었다.
붕대를 풀자 상처는 깊지 않아도 검게 변한 핏자국이 보였다. 독에 걸린 듯했으나 다행히 제때 처치를 받아 독소는 다 빠져나온 상태였다.
사방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상처를 감싸주었다.
사묵함은 웃으며 사방화에게 말했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해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안심하지도 못하지. 이젠 좀 마음이 놓여?”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 상황은 어때요? 진강이 정말 제언경을 죽였어요?”
사묵함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제언경이 죽었는진 모르겠다만 북제 쪽에서도 더 이상 들리는 소식이 없구나. 이번 싸움에선 적은 수로 많은 인원을 물리쳤으니 전승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병력도 부족하고 사상자가 많아. 제언경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한 달 내로는 병력과 사기를 앞세워 막북을 공격해오진 못할 테니 이제 조정의 지원군을 기다리긴 충분해.”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북엔 병력이 60만도 안 남았는데 또 어디서 병력을 지원받나요?”
“설성에서 받아올 거다. 매제가 떠나기 전 모든 준비를 해두고 갔지.”
“오늘 밤에 그 10만 병마도 참전한 거예요?”
“북제에서 알아차릴 것 같아 1만 명만 남진의 옷을 입혔다. 매제가 제언경을 죽이고 나면 북제 후방에다 교란과 기습을 하는 데에 쓰려고. 방화야,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마라. 동이 트기 전에 온다고 했으니 곧 올 거야.”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처로운 눈으로 사묵함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도 어서 쉬어요. 그러다 정말 쓰러지겠어.”
“여기서 같이 기다려줄게.”
“그럼 여기 누워서 기다려요.”
사묵함은 웃으며 사방화의 뜻에 따라 자리에 앉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사묵함은 잠이 들었다.
사방화는 잠든 사묵함을 보며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며, 오라버니와 함께 남진 강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이미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남진 황실과 사씨에게 있어선 더없이 좋은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