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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화 (918/978)

918화. 막북 군영

“5리 후퇴하라!”

겨우 숨을 돌리고 있던 사방화도 매우 놀라 진강을 돌아보았다.

“네? 뭐 하시는 거예요?”

진강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당신이 피비린내를 견디지 못하니 피해 가려고.”

“그래도 후퇴는 안 돼요. 이리 힘들게 왔잖아요. 전 괜찮으니 어서 가요.”

“얼굴이 이렇게 새하얘졌는데 뭐가 괜찮단 것이오?”

사방화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아요. 후퇴하지 마요.”

“방화, 말 들어요. 후퇴하란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후퇴하라!”

눈앞에 막북 군영이 점점 멀어지자, 사방화가 다시 소리쳤다.

“후퇴하지 마라!”

대열은 둘 중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눈만 깜빡였다.

진강은 즉각 인상을 찌푸리고 사방화를 쳐다보았다.

“그 몸을 하고 어찌 이리 고집을 부리는 것이오? 어차피 다 왔으니 조금 둘러 간다고 해서 큰일 날 거 없소.”

사방화도 진강을 노려보았다. 

“고집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아요. 토하고 나니까 멀쩡해요.”

“안 된다고 했소. 다들 어서 후퇴하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이냐!”

완강한 진강을 보자, 사방화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진강을 노려보자, 그도 마음이 약해졌다. 난생 처음보는 모습이기도 해서, 진강은 얼른 그녀를 껴안고 다독거렸다.

“방화, 화내지 마시오. 후퇴하지 않겠소. 울지 마시오.”

소등자와 일행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했다. 

사방화도 상태가 좋지 않고, 자신을 위한 마음인 것도 이해하지만 기껏 힘들게 온 길을 후퇴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강이 이렇게 다정히 마음을 달래주니 화가 풀려야 하는 것도 정상이었지만, 눈물은 사방화가 미처 통제할 새도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도저히 참아도 참을 수가 없었다.

진강은 금세 허둥대기 시작했다.

“방화, 울지 마시오. 내가 다 잘못했소. 절대 당신에게 화낸 게 아니오. 당신 말대로 하겠소. 절대 후퇴 안 하오.”

사방화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도 울고 싶어서 우는 건 아니었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물꼬를 튼 홍수처럼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진강의 옷을 적시고, 마음도 파고들었다. 진강은 그녀의 눈물에 당황해 그녀를 안고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방화, 그냥 날 때리시오. 내가 죽일 놈이오. 당신에게 화를 내선 안 됐소. 안 그래도 힘들 텐데 거기다 대고 화를 내다니, 난 죽어 마땅하오.”

사방화는 갑자기 진강의 입을 막고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맞아요. 그거 때문에 운 건 아닌데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울고 싶었어요.”

진강은 그제야 안도하며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울고 싶으면 우시오. 날 눈물에 담가도 괜찮소.”

사방화도 결국 진강의 말에 울음을 그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강은 금세 울다 웃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또 멍해졌다. 회임을 하면 원래 이리 신비하게 변하는 걸까? 그는 문득 그녀의 배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방화, 당신……, 요괴를 밴 건 아니겠지?”

사방화는 순간 헛웃음이 터졌다. 이 아이가 요괴면 진강은 요괴 아버지인가?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진강을 올려다보다 그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당신이야말로 요괴예요.”

진강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당신, 회임하고 난 뒤부터 많이 변했소. 그러니 내가 의심할 수밖에.”

사방화는 진강을 살짝 흘겨보다 역시 미안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저도 그렇게 느껴요.”

진강이 금세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도 느끼지? 내가 틀린 게 아니었소. 정말 요괴면 어떡하오?”

“본래 회임하면 기분이 시시때때로 변해요.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해서 울고 웃고 성질내는 덴 전부 아무런 이유도 없어요. 요괴가 아니라고요.”

“정말?”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등자에게 말했다. 

“다들 회임하면 모두 이렇지 않으냐?”

소등자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왕야. 지극히 정상입니다.”

진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요괴가 아니라면 됐어.”

사방화가 다시 실소하자, 진강은 그녀를 껴안고 눈물을 마저 닦아줬다.

“이젠 좀 괜찮아졌어? 몸은 어떻소?”

“이제 괜찮아요. 어서 가요.”

진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한번 내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방화, 후퇴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좀 쉬다가 갑시다. 피비린내가 좀 사라지고 나면 다시 가요.”

사방화는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무려 150만 대군이잖아요. 오라버니 홀로 어찌 감당하겠어요. 분명 위험할 거예요. 어서 가야 해요.”

“지금 간다고 해도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소. 형님을 얕봐선 안 되지, 며칠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오. 더는 날 놀라게 하지 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껏 조심스럽게 달래는 진강을 보니, 정말 매우 놀란듯했다. 그에 사방화도 마음이 아파져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진강은 웃으며 소등자에게 분부했다. 

“마차를 나무 그늘에 대고 잠시 쉬어가자꾸나.”

“예, 명 받들겠습니다.”

소등자도 현재 상태에서 전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곧장 대열을 멀지 않은 나무 그늘 쪽으로 옮겼다.

* * *

무성한 나무 아래, 향긋한 풀냄새는 피비린내를 얼추 다 가려주었다.

사방화는 또 단단한 진강의 품에 기대, 마음 놓고 휴식을 취했다.

진강이 그녀의 배를 소중히 어루만지며 물었다. 

“아까 먹은 걸 다 토해냈는데 배고프진 않소?”

“괜찮아요.”

“그래도 소등자에게 뭐라도 간단히 만들라고 하겠소.”

영 마음을 놓지 못하는 진강을 보고, 사방화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잠시 쉬기만 하면 돼요. 피비린내가 좀 사라지면 바로 출발할 거예요.”

“아직 10리나 남았어.”

“입맛도 없어 어차피 먹지도 못해요. 정말 괜찮으니까 쉬게 내버려 둬요.”

사방화가 진강의 옷을 잡아당기자, 진강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 * *

그로부터 반 시진이 흘렀다.

이젠 피비린내가 좀 옅어진 듯해, 사방화는 조급한 마음에 진강에게 눈빛을 보냈다. 대열은 금세 다시 여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앞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호위들은 모두 검을 굳게 움켜쥐고 마차를 빈틈없이 엄호했다. 

진강과 사방화는 휘장을 걷고 고개를 내밀었는데, 경쾌한 말발굽 소리만 봐도 최소한 천 명은 넘는 듯했다. 또 하나같이 기마 실력도 대단해 보였다.

잠시 후, 대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열을 이끈 이는 바로 유겸왕의 큰 공자, 진의였다.

진의는 말을 멈춘 뒤,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진강에게 웃으며 말했다.

“강아, 조금 전 한바탕 싸움이 있었다. 사 후야께서 너와 계수씨가 온다는 걸 듣고 내게 두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셨고.”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생 많습니다. 사촌 형님.”

“하하, 가족끼리 뭘. 가자.”

진의는 먼저 말머리를 돌리며 길을 안내했다. 

사방화는 진의에게 조금 전 싸움이 어땠냐고 묻고 싶었지만, 진강이 말을 않자 할 수 없이 말을 아꼈다. 하지만 진강은 바로 그 마음을 읽고 말했다.

“어차피 군영에 다다르면 알게 될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맞아요.”

사방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반 시진이 지나, 막북 군영에 다다랐다. 

진의는 말에서 내려와 뒤편 마차를 향해 말했다.

“다 왔습니다.”

진강은 사방화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조금 전 한바탕 싸움이 있었던지라 부상자들은 하나둘씩 군영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상자들에게서도 역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고, 사방화는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방화는 필사적으로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허리를 숙이고 토했다.

진강은 이내 또 사색이 되어 사방화를 부축해주었다.

아침에 먹은 것들은 일찍이 다 토해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었지만, 사방화는 정말 몸속에 있는 것들이 다 올라올 것만 같은 느낌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행히 진강이 붙잡아줘서 겨우 쓰러지지만 않았을 뿐이었다.

사방화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진의도 깜짝 놀라 다가왔다.

“계수씨, 왜 그러시오? 피비린내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하지만 무명산에서 무수한 백골을 밟아오며 지내온 사방화가 겨우 이 정도 피비린내를 견디지 못한다고? 진의는 말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했다.

그때, 진연도 군영 안에서 뛰쳐나오다 깜짝 놀라 멈춰섰다.

“새언니! 왜 그래요!”

진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사방화를 부축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고, 소등자, 시화, 시묵 역시 근심 가득한 얼굴로 사방화만 지켜보았다.

진강과 사방화에게도, 시화, 시묵에게도 화를 낼 순 없기에 진연은 즉각 소등자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묻고 있잖아!”

이내 소등자가 말했다.

“예, 연 군주님께 아룁니다. 소왕비마마께선 회임을 하시어 피비린내를 견디지 못하고 토하시는 겁니다.”

진연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는지 바보 같은 질문을 내뱉었다. 

“회임이 뭔데?”

소등자도 너무 어이없는 질문에 멍해져 있는데, 진의가 먼저 사방화를 향해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 것이었군. 계수씨, 축하하오.”

이어 진연이 진의를 올려다보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실소하며 말했다.

“연아, 회임이 회임이지. 넌 이제 고모가 되는 거다.”

진연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사방화는 주변의 그 어떤 소리에도 속만 뒤틀려 자칫하면 배 속 아이까지 토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진강의 손을 꼭 쥐고 힘겹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옮겨줘요…….”

진강은 서둘러 사방화를 들쳐 안고 군영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우리가 머물 곳은 마련됐느냐?”

진연이 급히 대답했다.

“네, 내가 직접 마련해뒀어요. 어서 날 따라와요.”

소등자, 시화, 시묵도 곧장 뒤를 따랐다. 

이내 진의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부하에게 명했다.

“사 후야께 소왕비마마께서 회임하시어 피비린내를 맡으시고 토를 심하게 하셨는데 군중의 의원을 모셔올 수 있는지 한번 여쭤보거라.”

곧 진의도 그들을 따라 서둘러 안으로 향했다.

* * *

한창 전후 사상자 통계를 처리하고 있던 사묵함은 사방화의 임신 소식을 듣고 멍해졌다. 혹시나 잘못 들었는지 착각까지 들어 재차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예, 소왕비마마께선 군영 입구에 오시자마자 토를 심하게 하셨습니다. 진의 공자님께선 군중 의원님을 모셔가도 되는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어서 모셔가라!”

부하가 서둘러 돌아서는데, 사묵함이 또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 군중 의원들은 다 사병들 상처 치료에 바쁘니 초지를 보내마.”

“알겠습니다.”

부하도 사묵함의 전속 의원인 초지의 의술 솜씨가 군중 의원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알기에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사묵함도 하던 일을 두고 급히 자리를 뜨다 입구에서 청언을 불렀다.

“청언!”

“예, 후야.”

청언도 사방화의 임신 소식을 듣고 한결 걸음이 바빠져 있었다.

“어서 부엌에 가서 흰죽과 가벼운 찬 좀 준비해다오. 조금 전에 다 토해버려서 빈속일 거다.”

“예!”

청언은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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