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표창을 날려 서신을 보내다
이목청이 검을 거두고 호위들에게 손짓하자 그들은 곧장 이소와 절명 이가 사람들을 끌고 가 철저히 감시했다.
이소와 절명 이가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으나, 이목청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이목청이 저렇게 무서운 칼날을 들이밀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고, 형양 정씨부는 더 참혹한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목청은 이소가 던져준 천절검으로 장치가 있던 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천절검은 그 이름답게 닿는 곳마다 현철 판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목청을 둘러싼 호위들은 아래로 파면 팔수록 마음이 섬뜩해졌다. 안쪽엔 온통 조각난 현철 잔해들만 쌓여있을 뿐, 온전히 남아있는 판은 찾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인도 살아남을 수 없을 곳에 그 가녀린 사방화가 살아남는다고? 몇 번을 봐도 이 안에 갇혀 있었을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망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목청은 포기하지 않고 땅을 팠고, 호위들도 힘을 합쳤다.
* * *
시간이 지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때는 어느새 오시(*午時: 아침 11시 ~ 오후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목청의 손은 보검에 짓이겨 피멍울이 맺혔고 호위들의 손도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뙤약볕 아래, 벌써 형양 정씨 객실 장치가 숨겨진 땅은 30자(尺)도 넘게 파여 있었다. 거의 집 한 채를 들여도 될 깊이였지만, 아직도 장치 밑바닥은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때, 마침내 소등자가 깨어났다.
소등자는 여전히 쓰러질 듯한 얼굴이었지만, 미칠 듯이 땅을 파고 있는 이목청을 보고 얼른 다가가 천절검을 덥석 잡아들었다.
“이 대인, 제가 하겠습니다.”
이목청은 손에서 검이 빠져나가자 몸을 크게 휘청이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이내 소등자는 필사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편, 이목청이 이 형양 정씨부에 도착한 뒤로 대문은 줄곧 열려 있어서, 호기심에 찬 백성들이 모여들어 안을 구경하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저 정도 참혹한 광경이면 사방화는 정말 사망한 게 맞을 것 같았다. 소문은 결국 기정사실이 되고, 형양성 전체는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여느 백성들은 미인박명이란 말을 절감하며, 따로 집에서 조문을 드리기도 했다.
* * *
그때, 사방화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날은 이미 오후가 되어 사방화는 곧바로 일어나 방을 나와봤다.
곧 가을이 다가올 무렵이지만, 여름은 끝자락에 잊지 못할 작별 인사를 남기려는 듯 실로 타는 듯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뜨거운 오후 햇살 아래, 의자에 기대 잠도 얼추 자지 못한 시화, 시묵이 보였다. 그녀들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또 곧장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마! 일어나셨습니까?”
사방화는 매우 지친 두 사람을 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방에 가서 자지 않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마마를 지키지 않고서는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습니다.”
사방화는 어제의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이러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서방님은 아직 안 왔어?”
“소왕야께선 지금껏 소식도 없으시고 아직 돌아오지도 않으셨습니다.”
“바깥 상황은 좀 어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줄곧 마마를 지키느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형양성에 있는 암위들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요.”
“별장 집사를 불러오너라.”
사방화는 방을 나와 문에 나른하게 기대 뜰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집사가 시화를 따라 들어와 사방화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왕비마마, 점심 준비를 마치고 마마께서 일어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곧장 식사를 들이도록 분부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 바깥 상황은 좀 어떤가?”
“형양성 전체에 소왕비마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퍼져 백성들이 모두 사실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목청 대인께서도 절명 이가에서 돌아오시어 거의 미친 듯 진노하시어 절명 이가 가주 이소와 나머지 식구들을 붙잡아 가두셨습니다. 지금은 또 장치가 있던 바닥을 파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사방화가 깜짝 놀랐다.
“목청 공자가 절명 이가 사람들을 손에 넣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절명 이가의 모든 이들을 잡아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 소왕야와 효양 공자 소식은?”
“여태 소식이 없습니다.”
“형양성 바깥엔 어떤 소식이 있지?”
“방원 100리에도 소왕비마마께서 돌아가셨단 소식이 퍼지며 백성들 모두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움직임은 없는 걸 보니 별다른 일은 없는 듯합니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청 공자는 어떻다고? 좀 더 자세히 말해다오.”
“아주 심각하다고 합니다. 이 대인께선 양손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직접 장치를 파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목청이 절명 이가 사람들을 붙잡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형양 정씨와 손을 잡고 남진을 팔아넘기려 한 게 사실로 드러났단 것일까? 아니면 시화, 시묵의 역용술이 들통이라도 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목청은 정말 사방화가 죽었다는 얘기를 믿고 장치를 파내고 있단 것인가! 장치는 언뜻 가늠해도 지하 수십 자(尺)는 넘는 깊이였다. 그것도 다 터져 아수라장이 됐으니 얼마나 더 파야한단 말이지?
이목청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설마 시화, 시묵으로 역용한 시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말 사방화가 죽었다고 믿기에 시신이라도 구하려 장치를 파고 있다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사방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청 공자가 얼마나 총명한 사람인데,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을 직접 보면 믿을지도 몰라. 목청 공자에게 서신을 보내야겠어.”
“예,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소왕비마마.”
집사가 말했다.
그러나 사방화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곤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해 큰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나중에 할게. 아직 시간도 이른 듯하니. 집사, 그냥 식사 준비 먼저 해다오.”
잠시 후, 식사가 차려졌지만 사방화는 입맛이 없어 그냥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침상으로 돌아갔다. 시화, 시묵은 또 계속해서 그녀의 곁을 지켰다.
* * *
사방화는 시화, 시묵에게 그만 들어가 쉴 것을 권유했지만, 진강이 오기 전까진 절대 자리를 비울 수 없단 말에 그냥 내버려 두고 말았다.
기다림은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해가 저물어도 진강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방원 100리에서는 또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황명에 따라 절명 이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432명 모두 처분될 거란 소식이었다.
사내는 젊은이, 노인 모두 그 자리에서 척결되며 여인은 유배되거나 기방으로 팔려 갈 수도 있어 그동안 감옥에 갇혀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절명 이가의 적통, 방계 자손들도 모두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사방화가 장치에 빠져 죽고, 이목청이 절명 이가의 가주와 모두를 붙잡았다는 소식 다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식이었다.
집사는 서둘러 이 소식을 사방화에게 알렸다.
그러자 사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강의 필체로 보이는 걸 보니 절명 이가에 있는 것 같네.”
진강만이 진옥의 황명을 빌려 단박에 절명 이가를 처리할 수 있었다. 정효양이 300리 밖으로는 소식통을 모두 끊어놓았으니 현재 남진 황성에 있는 진옥이 이 소식을 듣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진강은 절명 이가가 형양 정씨처럼 북제 정탐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걸까? 만약 사방화가 그 장치에 빠지지 않았다면 진강, 정효양은 물론 사방화까지 실낱같은 희망도 없이 꼼짝없이 그 자리에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진강이 어찌 절명 이가를 가만히 놔두겠는가? 구족이 아닌 한 세대만을 처리하는 것도 충분히 자비로운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거 말고 다른 소식은 없었어?”
집사가 고개를 저었다.
“음, 효양 공자님께서 소왕비마마 안부를 여쭈시기에 편히 계신다고 전해드린 것 외엔 더 이상 소식은 없었습니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라 분부해줘.”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향했다.
* * *
반 시진이 지났을까, 또 집사가 한껏 어두워진 안색을 하고 달려왔다.
“소왕비마마! 마마께 서신이 왔습니다.”
“무슨 서신? 진강이 보낸 건가?”
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표창에 박힌 서신과 옥패(玉佩)를 건네주었다.
“이름이 없어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옥패도 마마께 드리는 거라 쓰여 있었습니다.”
사방화는 깜짝 놀라 옥패를 보곤 이리저리 살펴보다 서신을 펼쳤다. 곧 그녀의 안색은 집사보다 더 어두워졌다.
「사방화, 자시(*子時: 밤 11시 ~ 새벽 1시)까지 봉양성(凤阳城) 동은사(东隐寺)로 오라. 안 그럼 이 옥패 주인은 구천에서나 보게 될 것이다.」
순간 사방화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옥패는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사운란이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이리저리 살펴도 확실히 사운란의 옥패가 맞았다.
그녀는 이내 조가의 죽음과 사운란의 분심독을 떠올렸다. 대체 누가 그의 목숨으로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것인가.
봉양성은 형양성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 있어, 지금 당장 쾌마를 타고 서둘러야만 자시가 되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사방화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내 정신을 다잡고 집사에게 물었다.
“어디서 보낸 거야? 누가 보낸 거지?”
집사는 송구스러워하며 아뢰었다.
“소왕비마마께 아룁니다. 서신은 바깥의 현판에 박혀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던 자가 무슨 소리에 서둘러 문을 열어보았으나 서신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인이 서둘러 사람을 보내 알아보도록 했으나 방원 5리 내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습니다. 표창이 현판에 박힌 힘으로 봤을 때 한 30자(尺) 바깥에서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뛰어난 무공 고수인 듯합니다.”
사방화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왕비마마, 이 옥패 주인이……, 마마께 아주 중요한 분이신 거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마마를 위협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운란 오라버니 옥패야.”
“사씨 미량 사운란 공자님 말씀이십니까?”
집사가 깜짝 놀라 묻자 사방화가 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왕비마마, 소왕야께서 지금 절명 이가에 계신다면 여기서 300리 떨어진 곳에 계시단 이야깁니다. 봉양성은 200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지금 소왕야께 서신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제때 돌아오지 못하실 겁니다. 소왕야께서 소인에게 소왕비마마를 잘 보살펴달라 신신당부를 하고 나가셨습니다. 지금 이 몸으론 절대 혼자서 떠나실 수 없습니다.”
사방화가 말이 없자 시화가 힘을 보탰다.
“마마, 집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소왕야께선 지금 절명 이가에 계시니 절대 돌아오실 수 없을 겁니다. 자시 전까지 오신다고 하더라도 봉양성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니 절대 혼자 가셔선 아니 됩니다. 이 자는 분명 함정을 파놓은 겁니다. 마마를 유인해 죽이려는 속셈이겠지요. 지금 몸 상태로는 그 누구도 감당하실 수 없습니다. 호위들도 없으니 더더욱 안 됩니다.”
계속해서 말이 없는 사방화를 보곤 이번엔 시묵이 입을 열었다.
“마마, 이제 겨우 소왕야와 다시 만나게 되셨는데 또다시 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소왕야께서도 더는 살아가실 수도 없을 겁니다. 운란 공자님으로 마마를 협박해 죽이려는 악랄한 속셈입니다. 운란 공자님께서 마마께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생각하셔야지요. 만약 마마의 죽음으로 공자님께서 목숨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어찌 기뻐하시겠습니까?”
세 사람은 사방화가 금방이라도 봉양성으로 뛰어갈까 긴장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사방화는 그들을 보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간다고 안 했어.”
세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