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5화 (885/978)

885화. 청천벽력 (2)

한편, 이목청, 소등자는 한밤중 엄청난 속도로 달려 새벽녘 절명 이가에 도착했다. 처음엔 이목청이 왔다는 말만 듣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에 이목청은 소등자를 보내 진옥의 황명임을 전하도록 했다.

감히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백성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 절명 이가와 우상부 사이의 원한으로 이목청의 체면을 짓밟을지언정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순 없었다. 결국 절명 이가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목청, 소등자를 맞은 이는 절명 이가의 가주였다. 그는 이목청 부친이자 우상인 이연과 비슷한 연배로 이름은 이소(李霄)였다.

이목청, 소등자는 최대한 간단히 상황 설명을 한 뒤, 어서 형양 정씨부로 가 사방화를 구해주길 청했다.

그러자 이소가 깜짝 놀라 말했다.

“절명 이가란 건 말 그대로 살아나올 수 없다는 절명 장치라 지금껏 그리 불린 겁니다. 장치가 가동되면 그걸 설치한 자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형양 정씨부 장치를 절명 이가에서 설치한 건 맞지만, 해결 방법은 없지요.”

이목청은 최대한 다급한 티를 감추며 침착하게 말했다. 

“이 세숙(*世叔: 아버지뻘 동년배를 칭하는 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만든 것인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세숙과 같은 이씨 집안 사람이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 자립한 절명 이가지만, 이가란 뿌리를 끊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선조들 세대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저도 익히 들어봤습니다. 절명 이가의 절명 진(阵)에 대해서도 이미 다 알고 있지요. 장치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세숙께서 나서주실지 말지에 달려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이소가 눈썹을 들썩였다.

“지금 내가 방법이 있음에도 소왕비마마를 살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절명 이가에 절명 장치를 깰 수 있는 보물인 천절검(天绝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이 세숙께선 없다고 말씀하시진 않겠지요?”

순간 이소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이목청은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폐하께선 소왕비마마를 아주 극진히 대하십니다. 소왕비마마께서 황성을 나오실 때도 직접 평양성까지 데려다주시곤 제게 소왕비마마를 잘 살피라고 하셨지요. 만약 소왕비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전 죽음으로도 그 죄를 물을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폐하께선 소왕비마마가 절명 이가가 형양 정씨부에 설치한 장치에 빠져 위험에 처했단 걸 아신다면 분명 격노하시겠지요. 살릴 방법이 있음에도 나서지 않았단 얘기를 들으신다면 구족을 연루해 집안을 몰살시키는 걸로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세숙. 지금껏 이렇게 대족을 이루고 후예들도 많아졌는데 이대로 이 훌륭한 가문을 끝내버리실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현질(*賢侄: 남의 조카나 조카뻘 되는 사람을 존칭하는 높임말), 지금 날 협박하는 겁니까?”

“설마요, 그냥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절명 이가가 황성을 떠난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 세숙께선 아직 도성 안팎의 일을 세세히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소왕비마마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시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물며 영친왕부와 충용후부는 어떻겠습니까? 노후야께선 세속을 떠나셨지만, 아직 사 후야까지 모두 높은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이내 이소가 차디찬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과연 어린 나이에 폐하의 중임을 얻고 승상사직이란 엄청난 자리에 오른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군요. 대단합니다. 이씨 가문에 이 현질 같은 분이 있는데 어찌 앞날을 걱정하겠습니까.”

“우상부의 부귀영화는 이미 끝났습니다. 한발 더 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요. 절명 이가와 우상부는 본래 한 뿌리니 세숙께서 소왕비마마를 구해주시면 앞으로 절명 이가에서 절 필요로 하는 일에 꼭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이소는 안색이 어두웠지만, 말투는 차분히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조 세대에 자립해 홀로 가문을 세웠으니 나도 조상님 뜻을 어찌할 수는 없으나 앞으로 이 현질의 도움을 얻을지 말지는 우선 고려해 보겠습니다. 천절검은 절명 이가 선조들에게서 내려온 가보로 지금껏 좀처럼 꺼내 본 적도 없어요. 그러나 폐하를 봐서라도 내 직접 검을 가져다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이 세숙. 폐하께서도 분명 두둑하게 보상해 주실 겁니다.”

이목청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미리 알려드리자면, 이 검으로 장치를 쪼개 소왕비마마를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소왕비마마는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천절검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이 세숙께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시느냐에 달렸겠지요.”

이소는 콧방귀를 뀌며 직접 천절검을 가져왔다. 그런 뒤, 젊은 자손들 몇 명과 호위를 데리고 이목청, 소등자와 함께 절명 이가 부랑을 빠져나왔다.

* * *

그런데 길을 떠난 지 얼마 후, 절명 이가 사람이 엄청난 소식을 전해왔다.

형양 정씨부 절명 장치가 가동되면서 객실이 무너지고 사방화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목청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소등자의 얼굴도 새하얘졌다. 

이소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또 물었다.

“이가의 절명 진은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이목청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소식을 전해온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목청과 소등자를 한번 보곤 말을 이었다.

“직접 눈으로 본 자가 확신하며 형양성에서 전해 온 얘기입니다.”

이소는 천천히 이목청을 돌아봤다. 이목청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져 말 위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내 소등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폐하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소왕비마마를 지켜드리지 못했사옵니다.”

이소가 이목청에게 물었다.

“이 현질,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소왕비마마는 절대로 돌아가실 분이 아닙니다.”

이목청은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는 채찍을 휘둘러 앞으로 향했다. 

소등자가 곧장 그의 뒤를 따르자 호위들도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소는 이목청과 소등자가 쏜살같이 사라지는 모습에 주위를 한번 둘러보곤 소식을 전해온 이에게 물었다.

“정말 확실한 소식이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소에게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확실합니다. 형양 정씨부 객실이 무너져 평지가 돼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럼 절명 진도 무너졌을 텐데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소왕비마마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 시녀 2명도 자결해서 따라 죽었답니다. 이미 형양성 내에는 소문이 자자해 성 전체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절명 진이 무너졌다고 반드시 죽었다 할 순 없지. 매족의 핏줄을 타고나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엄청난 실력이 있다던데 아마 장치 내에 숨은 공간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긴 현철로 만들어져 천절검이 아니면 깨트릴 수가 없는데 땅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거긴 멀쩡할 테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그가 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소왕비마마께서 매족의 핏줄이라 이 소식이 더 확실하단 겁니다. 형양 정씨부 내에 있던 초목이란 초목이 하룻밤 사이에 다 메말라 죽었답니다.”

이소가 깜짝 놀랐다.

“뭐? 그런 일도 있었다고?”

“예, 매족의 핏줄은 천지를 더불어 초목과 함께 살아가는데 현재 초목이 모두 말라 죽어버렸잖습니까. 게다가 소왕비마마께선 본래 몸이 좋지 않으셔서 황성을 나서실 때도 약을 챙겨 나와 매일 챙겨 드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이 큰일을 겪고 살아남으실 수 있을까요? 죽은 게 틀림없습니다.”

“정말 죽었다면…….”

이소는 한참 뒤에야 입을 뗐지만, 제대로 말을 잇진 않았다. 앞쪽을 바라보고 도성 쪽을 돌아본 뒤, 다시 북제 방향을 바라보다 다시 또 침묵했다.

그때, 한 젊은 사내가 물었다.

“백부님, 계속해서 형양성으로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소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다.

“넌 갈 필요 없다. 다른 임무를 줄 테니 와보거라.”

이소가 젊은 남자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이자 그는 말을 돌려 다시 절명 이가 집으로 향했다. 남자가 떠난 뒤, 이소가 남은 이들에게 말했다.

“우린 이목청과 소등자 태감을 따라 형양성으로 간다.”

일행은 이목청의 뒤를 따라 천절검을 들고 형양성을 향해 달렸다. 

이목청과 소등자 대열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이목청과 소등자는 거세게 채찍질을 가해 벌써 형양성에 다다랐다.

때는 아직 오시(*午時: 아침 11시 ~ 오후 1시)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형양성 밖은 이미 병사 3만 명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목청은 곧 한 장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손 장군, 어찌 된 일이오?”

장군 손양(孙阳)은 이목청에게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이 대인께 아룁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인께서 형양성을 떠나시고 얼마 되지 않아 형양 정씨 객실이 무너져 초토화됐고 소왕비마마께서 돌아가시고 시녀 둘도 따라 자결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어찌 성에 들어가지 않았소?”

이목청이 참담한 빛으로 물었다.

“이 대인께서 형양성에 가면 소왕비마마의 시녀들 뜻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성 밖에 막 다다랐을 때 두 시녀가 말을 전하길 성 내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란 말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남진은 군령의 분부 없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대인께서 폐하의 영패를 갖고 계시기에 명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성 내에 소왕비마마께서 돌아가셨단 소식이 있었지만, 명령이 없어 함부로 성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손양의 답에, 이목청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군사 3천을 데리고 나와 함께 성에 들어가 봅시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서 자리를 지키라 하고.”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병사 3천 명이 정비됐지만, 이목청은 애타는 마음에 소등자와 함께 먼저 성으로 들어섰다.

* * *

성을 지키고 있던 이들은 모두 어제 이목청과 사방화가 배치해 두었던 이들로 모두 비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곧 한 사람이 나와 이목청에게 예를 갖추었다.

“어찌 된 일이냐?”

“확실한 정황은 알 수 없사오나 어젯밤 성에 들어와 대인의 분부에 따라 모두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대인께서 떠나시고 얼마 되지 않아 형양 정씨의 객실이 무너졌고 날이 밝자 소왕비마마께서 돌아가셨단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형양 정씨부는 조사해봤느냐?”

“형양 정씨부에 저희 쪽 사람이 남아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날이 밝고 성 내에 소문이 돌기에 부랑을 찾아가 봤습니다. 형양 정씨부 객실은 초토화됐고, 소왕비마마의 두 시녀는 자결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왕비마마의 시신을 찾진 못했습니다.”

이목청은 서둘러 형양 정씨부로 향했고 소등자도 그 뒤를 따랐다.

손양은 3천 병사들을 이끌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신속히 성에 들어섰다. 

정예 기병들이 거리를 지나자 백성들은 놀라 허둥지둥 몸을 피했다. 개중에 누군가는 다급히 형양 정씨부로 향하는 이목청을 알아보고, 사방화의 죽음을 확신하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백성들도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근 1년간 사방화의 명성은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자자했다. 백성 모두가 칭찬 일색으로 그녀를 찬양했다. 특히나 혼례를 시작으로 임안성의 역병, 새 황제의 즉위와 황후 책립까지 그녀에 관한 소문은 끊이지 않고 백성들의 안줏거리가 되어왔다.

백성들은 사방화를 두고 선녀가 이 땅에 내려오신 거라며, 그녀를 위해 정성껏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형양 정씨부 절명 장치에 당해 목숨을 잃었다니……. 혹자는 형양 정씨 같은 세가 대족이 왜 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절명 장치를 만든 것인지 원망을 쏟는 이도 있었다.

형양 정씨는 설마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그게 아니면 성주를 시작으로 집안 어른, 젊은 세대 공자 할 것 없이 어떻게 연달아 사망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사방화도 한밤중 형양성으로 왔다가 형양 정씨부에 설치된 장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백성들은 여러 사건에 저마다 추측을 붙이며 한참을 설왕설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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