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5화. 알콩달콩
이목청이 물었다.
“누가 이 집을 지었지? 그 숙련공은 누군가?”
“천하제일의 숙련공, 절명 이(李)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가?”
이목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대인께선 들어본 적 없으십니까?”
노파의 말에, 이목청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300리 밖에 있는 절명 산장에 사는 이가라면 들어봤다.”
“예, 바로 그 이가입니다. 이가의 장치 기술은 아주 정통해 대대로 천하제일로 치지요. 이가에서 만든 장치는 대라금선과 태상노군도 풀지 못합니다. 한번 빠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선 절명(绝命) 이가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가의 절명 장치는 이가 사람들이 와도 풀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예, 그래도 장치를 설치한 자들인데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번 여쭤보시지요.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셔도 얻는 건 없으실 테니 어서 소왕비마마를 구하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목청도 노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리 있는 말이다. 우선은 자네의 말대로 해보겠다만, 소왕비마마를 구하지 못해 큰일이라도 생겼다간 내가 아니라 폐하께서 자네들을 결코 용서치 않을 거란 것만 똑똑히 알아둬라. 여봐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가두어 한 명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하라!”
“예!”
호위들이 일제히 칼을 거두었다.
형양 정씨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리는 듯했으나 이내 목에 들이민 칼이 머리 위까지 올라온 것이란 생각에 아찔해졌다. 제발 절명 이가 집안이 장치를 풀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목청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이목청이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황제 진옥이 사방화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백성들도 다 알고 있었기에 결과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형양 정씨 뿐 아니라 방계도 위험할 터였다.
그때, 소등자와 시묵이 황급히 달려왔다.
“이 대인! 소왕비마마께 큰일이 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목청은 고개를 끄덕이곤 두 사람에게 물었다.
“비밀 통로에선 뭔가 찾은 게 있느냐?”
“소왕비마마께선 어찌 되셨습니까?”
두 사람은 사방화의 걱정뿐이었다.
이내 이목청이 입술을 깨물자, 시화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마마께서 객실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누군가 장치를 작동해 함정에 빠지셨어. 목청 공자님과 열심히 장치 조작 흔적을 찾아봤는데도 지금껏 마마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
소등자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시묵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럼 어떡해!”
“30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장치에 능통한 절명 이가라는 집안에서 이 형양 정씨부를 만들었대. 그들을 찾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시화가 노파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절명 이가라면 나도 알고 있다. 폐하께서 말씀해주신 적 있었지.”
입을 연 소등자가 곧 이목청을 향해 말했다.
“우상부와 같은 이씨지만 우상부는 적통이고, 절명 이가는 분파로 300년 전에 있던 어떤 사건 이후로 이씨 가문에서 나와 자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구나.”
“셋째 어른의 암실 통로 두 갈래 길을 모두 찾아본 결과 한쪽은 성 밖으로 향하는 곳이었고 다른 한쪽은 조 사야의 관아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이어진 소등자의 말에, 이목청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한쪽이 조 사야의 관아로 통하는 길인데 우린 왜 발견 못한 거지?”
“뒷간이라 악취가 대단하기도 하고 한밤중이었기에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셋째 어른과 조 사야가 아주 가깝게 지내 온 듯하구나.”
소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화는 서둘러 패 하나를 꺼내 이목청에게 보였다.
“이 대인, 성 밖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에서 주운 패입니다. 조 사야가 도망치다 흘린 것 같습니다.”
이목청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나. 우리가 관아로 쳐들어가기 전 소식을 듣고 먼저 셋째 어른을 죽인 뒤 비밀 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빠져나간 듯하군.”
“소인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시묵도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 어르신은 분명 조 사야의 신분을 알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죽어버렸네요. 조 사야도 도망쳐버렸고요. 지금 뒤쫓아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화가 말했다.
“우선 장치를 열어 마마를 구하는 게 급선무야!”
시묵이 외쳤다.
“그래, 당연히 마마를 구하는 게 급선무지. 내 말은 조 사야를 찾으면 그 장치도 실마리를 풀 테니 마마를 구할 수 있을 거란 말이야.”
“맞는 말이네.”
시묵이 시화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이목청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목청이 하늘을 올려다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성에 들어왔을 때 조 사야는 셋째 어른을 죽이고 성을 빠져나갔을 거다. 이미 두 시진이나 지나버린 데다 경각심이 뛰어나고 교활한 자니 조 사야 신분과 행적에 대해서 단시간에 찾아내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구나. 우선 절명 이가 사람을 찾는 게 급선무다. 그 집안에서 만든 절명 장치니 조 사야를 찾는다고 해도 어찌 해결하진 못할 것 같구나.”
“예, 지금 바로 이가 사람들을 모셔오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시화와 시묵이 잇달아 말하자 이목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우상부와 같은 이씨 가문이니 내가 직접 가는 게 낫겠다. 물론 따로 가문을 세우긴 했다만, 어쨌거나 같은 성씨니 너희가 갔다간 사람을 데려오긴커녕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것 같구나.”
“하지만 지금 형양성 형세로 봤을 때 배후에 또 누군가가 악행을 저지른다면 소인들의 힘으론 성을 장악할 수 없을 겁니다.”
시화가 말했다.
“소인은 폐하의 측근이니 절명 이가도 함부로 폐하의 체면을 구길 순 없을 겁니다. 소인이 가겠습니다.”
연이어 소등자가 나서자, 이목청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같이 가자. 50리밖에 병마가 있으니 절명 이가로 향하는 길에 형양성을 장악할 수 있도록 군사를 동원해주마. 호위들을 데리고 형양 정씨 부를 지키고 있거라. 누군가 틈을 노리고 장치를 건드려 소왕비마마를 더 큰 위험에 빠지게만 못하게 이곳을 잘 지키면 된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시화와 시묵도 이제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목청은 시화, 시묵이 형양 정씨부를 잘 지킬 수 있게 호위 절반을 넘겨주고 소등자,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절명 이가로 향했다.
시화와 시묵은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도록 정신을 가다듬었다.
* * *
한편, 사방화는 어떤 강한 힘에 끝없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쉴새 없이 몸을 부딪치며 계속해서 아래로 추락했다.
사방화는 현재 몸을 다친 데다 체력도 극도로 허약해져 도저히 이 수렁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형양 정씨 객실의 그 의자가 함정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기민하고 뛰어난 사방화가 어떤 반응을 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짙은 암흑뿐이었다.
사방화는 내력을 모아보려고도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거란 생각에 요술의 힘까지 모았다. 이 장치가 어디로 떨어질지, 무엇에 부딪힐지 모르니 더 치밀한 준비를 해야만 알 수 없는 미래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까.
쿵-!
사방에서 굉음이 들리며 벽면인 듯, 철판인 듯 보이는 것이 떨어져 사방화의 몸을 연이어 내려쳤다. 이로 인해 사방화의 방향도 바뀌어 버렸다.
사방화도 내력과 요술의 힘을 모으곤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벽에 2번이나 부딪쳐서 충격을 완전히 피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찔한 가운데도 멀리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펑!
또 그러다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화는 어디론가로 추락했다.
왠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단단하긴 해도 바닥처럼 딱딱한 감촉은 아니었으며,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졌다.
“끙…….”
사람이었다!
사방화는 자신이 사람 위로 떨어졌단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어둠 속에도 선명한 이목구비와 고통에 괴로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사방화는 순간 그를 알아보고 넋을 놓았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정효양……?”
그는 정효양이었다. 앉아 있다가 그대로 사방화에게 깔리고 만 것이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자신을 깔아뭉갠 뭔가를 내려치려던 순간, 정효양도 이 무언가가 여인임을 깨달았다.
막 말을 꺼내려는데, 돌아본 여인이 사방화임을 알고 일순 멍해졌다.
“효양 공자?”
사방화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정효양은 사방화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 이내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소왕비마마?”
“응, 나예요.”
정효양이 깜짝 놀랐다.
“마마께선……, 도성에 있던 것 아니십니까? 어떻게 내려온 겁니까?”
“우리 서방님은요?”
사방화의 관심사는 오로지 진강뿐이었다. 진강과 함께 형양 정씨의 일을 처리하러 떠난 정효양이 여기 있다면 진강은 어디 있는 걸까?
정효양은 기침을 한번 하곤 힘겹게 손을 뻗어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보세요.”
사방화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정효양처럼 벽에 기대앉아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이 한 사내가 있었다.
사방화가 낮이나 밤이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 진강이 아니던가.
사방화는 눈을 깜빡이면 진강이 사라져 버릴까,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어떻게든 찾으려 수천 가지 방법을 떠올리며 걱정에 마음마저 닳으려 하던 순간, 기적적으로 진강을 만났다.
어째서 여기 갇혀 있는 걸까? 사방화 자신처럼 추락한 것인가? 아니면 지금 사방화가 환각이라도 보고 있는 걸까?
진강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사방화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가도 푸르스름해져 있었다.
부부는 그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말없이 서로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정효양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사방화를 밀었다.
“소왕비마마……! 가만히 앉아서 뭘 하는 겁니까! 제 위에 앉아 있는 게 그리 편한가요? 깔려 죽을 것 같으니 이젠 제발 좀 내려오세요.”
하지만 사방화는 이제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 같았다.
“저기요? 마마! 깔린 사람은 접니다, 저! 제가 방석이 돼주었으니 머리는 다치지 않으셨겠지요? 제 말 들리십니까?”
그래도 사방화가 미동도 없자, 결국 정효양은 진강에게 소리쳤다.
“소왕야! 부인을 이렇게 외간 사내 위에 앉혀 놓을 겁니까? 어서 모셔가지 않으시면 저만 좋은 경험 하는 겁니다?”
사방화는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고, 진강도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건지 벌떡 일어나 사방화에게로 왔다.
동시에 사방화도 서둘러 달려가 진강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진강, 진강, 진강, 진강……!”
워낙 급작스럽고 빠르게 달려와 진강은 잠시 벽에 쿵 부딪쳤지만, 곧 사방화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나 여기 있소. 나…….”
사방화는 끝내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당신을 찾았어요…….”
진강이 그녀를 더 꼭 껴안으며 말했다.
“당신이 형양성에 온단 걸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함정에 빠졌소.”
“다행히 제가 여기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정말 미칠 뻔했어요. 당신을 찾았으니 됐어요. 여기가 어디든, 함정에 빠졌어도 당신을 찾았으니 다행이에요.”
주룩주룩 흐르는 사방화의 눈물은 금세 진강의 옷을 적셨다.
이내 진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효양이 먼저 소리쳤다.
“아이, 거기 두 분! 지금 제가 여기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귀신으로 보이십니까?”
“그래,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라.”
진강의 지극히도 당당한 말에, 정효양은 순간 얼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