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화. 장치의 함정
시화, 시묵도 안으로 들어서자, 이목청이 말했다.
“우선 이 사람의 사인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사방화는 셋째 어른 가까이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본 뒤에 말했다.
“내복이 모두 터졌습니다. 무공의 고수가 내력을 이용해 심맥을 끊어버린 것 같네요. 그러다 보니 몸부림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무공을 쓴 건진 알 수 없습니까?”
사방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네요. 평범한 장력이긴 하나 온 힘을 다해 쏟아부었으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 셋째 어른은 당연히 버티지 못한 것이지요.”
“그럼 누가 그랬는지도 알아낼 수 없단 말이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사방화는 곧 입구로 걸어가 한 사람에게 분부했다.
“이 뜰의 모든 이들에게 평소 셋째 어르신과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누군지, 이틀간 어르신이 뭘 했었는지 물어보거라. 누가 부에 왔었는지도 자세히 알아보고.”
“예.”
이내 이목청은 사방화의 곁에 서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두 시진 뒤면 날이 밝을 테니 좀 더 알아보기 쉬울 겁니다. 삼경(*三更: 밤 11시 ~ 새벽 1시)이라 손발이 묶여 하나둘씩 놓치게 되는 것 같네요.”
사방화는 가슴이 더 쿵쿵 뛰는 걸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서방님을 찾아 형양성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내야만 합니다.”
“그 말씀은……. 날이 밝으면 강 소왕야가 더 위험해질 거란 말입니까?”
사방화가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어서 진강을 찾지 않으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 와요. 분명 절망 속에 빠져있을 거예요.”
이목청은 순간 그녀의 말에 멍해졌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그런 것일 겁니다. 몸도 다친 데다 이런 상황까지 더해져 조급해진 것일 거예요.”
하지만 사방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방화의 확고한 모습에, 이목청도 심각한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형양에 가장 가까운 병력을 동원해 형양성 안팎을 더 샅샅이 살필까요?”
사방화가 고개를 저었다.
“형양에서 가장 가까운 병력도 50리 밖 남서쪽에 있습니다. 30만이긴 하나 지금 출발해도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서방님이 어딘가 갇혀 있거나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는 거라면, 병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거고요. 보통 병사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니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이목청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사방화는 자신의 옷을 꼭 잡으며 이목청에게 말했다.
“우리 둘은 혈맥이 이어져 있으니, 내가 매술을 쓰면 금방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안 됩니다! 그 몸을 하고 또 어찌 그러겠단 겁니까! 지금 마마의 몸이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진강이 정말 사고가 난 거라면 나도 더 살 수가 없어요.”
결국 이목청도 마음이 약해져,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
“우선 진정하세요. 세상에 누가 감히 강 소왕야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두 시진만 지나면 날이 밝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사방화는 다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서 진강을 찾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가 형양성에 온 지도 한 시진이 넘었어요. 주변이 너무도 고요한 건 그렇다 쳐도 진강의 흔적도, 은위와 호위들의 행적도 찾아볼 수가 없잖아요.”
이목청의 눈가가 어두워졌다.
“형양성에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그럴 리 없어요. 분명 형양성에 있어요.”
“우선 소등자, 시화, 시묵이 들어간 지도 좀 됐으니 기다려 봅시다. 다른 이들이 형양 정씨 저택을 장악하고 있으니 먼저 여길 샅샅이 뒤져보고, 그래도 행방을 찾지 못한다면 그때……, 그때 매술을 쓰세요.”
사방화도 이목청이 어렵사리 내린 결정임을 알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이목청도 잠시라도 사방화의 뜻을 막을 수 있었던 것에 살짝 안도했다.
잠시 후, 호위 하나가 다가와 아뢰었다.
“이 대인께 아룁니다. 셋째 어르신께선 모든 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잘 지내셨다고 합니다. 이틀간, 형양 정씨에서 잇달아 사람이 죽어 나가자 어르신께선 뒷일을 처리하시고 빈소를 마련하셨답니다.
오늘 관아의 조 사야께서 다녀가셨는데, 사야는 빈소에 향을 올리시곤 곧장 떠나셨다고 합니다. 밖에서 당직을 서던 하인이 말하길, 셋째 어르신의 방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고, 돌아오시자마자 지쳐 잠이 드셨답니다.”
이목청이 물었다.
“조 사야가 빈소 말고 또 어딜 갔다더냐?”
“빈소 말고는 없었다고 합니다.”
“빈소가 어딨지?”
“응접실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고 합니다.”
이목청이 손짓했다.
“빈소를 조사해 보거라.”
“말씀 받들겠습니다.”
그때, 시화가 밀실에서 나와 사방화에게 말했다.
“마마, 밀실 안에는 비밀 통로 두 개가 있는데 어찌나 긴지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소등자와 시묵이 각자 한쪽씩 맡아 조사 중입니다. 소인은 마마와 이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실까 싶어 먼저 나왔습니다.”
사방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비밀 통로가 있다고?”
시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방화가 이목청에게 말했다.
“우선 거긴 소등자와 시묵에게 맡겨두고 우린 빈소에 가 봐요.”
두 사람은 곧 셋째 어른 처소를 나와 응접실에 마련된 빈소로 향했다.
사람들도 이젠 갑작스레 쳐들어온 일행에게 익숙해진 것인지 더는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형양 정씨부는 또 바람 소리조차 굉음일 정도로 고요해졌다.
이목청의 명을 따라 흔적을 찾는 이들 외엔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 * *
과연 응접실에는 빈소가 하나 차려져 있었다.
“이 대인, 소왕비마마, 빈소 전체를 조사해 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관도 전부 열어 보았습니다.”
누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말했다.
사방화도 관이 열려 있는 걸 보았다. 그녀는 앞서 호위 100명이 조사했던 것처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걸 발견하진 못했다.
이목청도 사방화의 뒤를 따라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자 빈소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마, 강 소왕야는 축복받은 분이니 반드시 하늘이 도우실 겁니다.”
이내 시화가 위로했지만, 사방화는 더욱 입술을 꼭 깨물며 말했다.
“하늘에서 주신 복들은 이미 다 써버렸는지도 몰라.”
이목청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곤 사방화에게 말했다.
“우선 객실에 가서 좀 쉽시다. 모든 이가 조사를 끝낸 뒤에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면 그때 매술을 쓰세요.”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빈소를 돌아 객실로 들어섰다.
* * *
형양 정씨 집안 저택의 객실은 영친왕부, 충용후부와 같은 대저택 못지않게 기개가 넘쳤다.
객실은 누군가 이미 한바탕 조사를 끝낸 듯 보였고 사방화는 의심 없이 주인 자리에 앉았다.
“마마, 두 분께 물을 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입술이 다 마르셨어요.”
시화가 조심스레 말했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화는 뒤돌아 밖으로 향했다.
“꺅!”
그런데 시화가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사방화의 비명이 들려왔다.
시화는 다급히 뒤돌았지만, 사방화가 앉았던 곳엔 끝없이 깊은 굴과 함께 추락하는 하늘하늘한 옷자락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시화는 사색이 되어 즉시 사방화에게로 몸을 날렸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목청도 시화보다 더 한발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시화, 이목청 모두 그녀의 옷자락은 잡았지만 결국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찢어지며, 사방화는 보이지 않는 저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방화가 추락하자, 의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목청과 시화가 즉각 의자를 두드려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목청은 온 힘을 다해 마침내 의자를 쪼개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화도 이목청과 함께 힘을 써봤으나 의자는 미동도 없었다. 의자 등받이와 다리, 절박하게 곳곳을 더듬어 봐도 장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시화는 끝내 처절한 울음을 터뜨렸다.
“이 대인! 이제 어떡하면 좋습니까?”
안색이 창백해진 이목청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 의자 장치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건드렸을 거다. 어서 장치를 건드린 곳을 찾아 구해야만 한다.”
시화는 이미 정신이 없었지만, 이목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목청은 호위들에게 서둘러 형양 정씨부 전체를 뒤져 비밀 통로의 장치를 찾도록 했다.
다들 사방화가 함정에 빠졌단 소식에 하얗게 질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 이들은 다시 처음부터 집 전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목청은 이미 죽은 종친 숙조부, 셋째 어른 등을 제외한 형양 정씨 상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어른들이 죽어 나가고 주인 자리도 비어있던 터라 정씨 가문의 자손들 무리가 우르르 끌려왔다.
이목청이 비밀 통로에 대해 묻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객실에 있던 장치에 대해 알면서 고하지 않는다면, 형양 정씨 모든 이들을 죽여버리겠다.”
이목청의 격노에, 그들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났다.
형양 정씨 집 전체를 뒤졌지만 사방화가 떨어진 장치는 찾을 수 없었다.
이목청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형양 정씨 사람들을 노려보았고, 다들 겁에 질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시화는 진심으로 사방화가 걱정됐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죽게 될까 두려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대인, 이 사람들은 정말 장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목청도 그저 겁을 주려고만 했을 뿐이지 당연히 이들을 모두 죽일 생각은 없었다. 황명을 받아 형양성에 왔으니 아무리 사방화가 위험에 처했어도 노약자들을 다 죽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목청은 한여름 눈처럼 어울리지 않게 어두워져 말없이 그들을 바라봤다.
형양 정씨 사람들은 그 이목청을 보고 있자니, 꼭 목에 칼이 들이 밀어진 기분이라 벌써 반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 온몸이 서늘했다.
“여봐라!”
한참 후 이목청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단 한 마디였지만, 혼비백산해 기절하는 이도 생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곧 호위들이 나타나 장검을 뽑아 들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목청의 명이 떨어지는 즉시, 모두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분위기였다.
이목청은 아주 천천히, 목소리에 무겁고 서늘한 힘을 실었다.
“이 자들을…….”
“이 대인!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그 순간, 한 노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할 말이 있는 건가? 장치와 연결된 비밀 통로를 알고 있는가?”
이목청의 물음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노파를 향했다.
곧 시화도 다급히 다가가 물었다.
“장치 아래 통로가 어딘가요?”
노파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소인은 노부인의 시녀입니다. 부인께서 돌아가시고 줄곧 형양 정씨부에 남아 지내고 있습니다만, 장치와 통로에 대해선 아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 형양 정씨 부를 누가 지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부가 지어진 지도 300년이 다 돼가지만, 몇십 년마다 한 번씩 당시 장치에 정통한 숙련공을 모셔와 그분께 보수를 맡기셨습니다. 그 자들을 찾는다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