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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화 (866/978)

866화. 요술의 기운

정정헌 별원은 성 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목청은 진옥과 사방화를 안으로 모시며 문지기에게 말했다. 

“본실의 가장 좋은 방은 청소해 두었느냐? 폐하께서 머무실 것이다.”

“예, 대인께 아룁니다. 말끔히 청소해 두었습니다.”

그러자 진옥이 손을 내저었다.

“짐은 밤새 경성으로 돌아갈 거라 괜찮다. 곧 있으면 갈 거야.”

이목청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곤 진옥에게 말했다.

“폐하, 옥체 보존하셔야 합니다. 쉬시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나서시지요. 내일 조회를 하루 놓친다고 하더라도 급할 건 없습니다.”

“됐다.”

진옥이 단번에 거절하자, 이목청은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네, 가시라고 하세요. 시기가 시기인 만큼 폐하께선 도성을 지키고 계셔야죠. 힘들어도 돌아가서 쉬시라고 하세요.”

이목청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일행은 화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진옥이 자리에 앉자마자 월낙이 협장(*脇杖: 걸음을 걸을 때 짚는 지팡이, 목발)을 짚으며 나타나 진옥에게 사죄를 했다. 

진옥은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리는 왜 그런 것이냐?”

“며칠이면 나을 겁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손을 내저었다.

“일어나라. 내가 일찍이 알아보지 못한 탓이지 넌 잘못 없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구나.”

월낙은 진옥에게 감동을 했다.

“황송합니다, 폐하.”

“월낙, 짐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예, 가능합니다.”

진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말해 보거라. 잠시 쉬다 떠날 채비가 끝나면 곧장 출발할 것이다.”

월낙은 고개를 끄덕이곤 진옥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날 월낙은 도성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살피던 중 진옥의 신호탄을 보고 곧장 배후자의 뒤를 쫓았다.

그는 진옥이 신호를 날릴 정도면 아주 중요한 인물일 거라 생각하곤 인원수를 충분히 채워 사씨 정탐꾼 한 무리도 데려갔다고 한다.

늦지 않게 뒤쫓았지만, 배후자의 기마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평양성까지 다다라서야 그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다 시체 더미가 가득한 난장판에 다다라 배후자가 갑자기 모습을 감췄고 월낙은 함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주위를 살폈지만, 금세 검은 옷을 입은 이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들은 일찌감치 매복해 엄청난 진법들을 깔아뒀고 눈 깜짝할 새 화살이 날아들었다고 했다. 월낙은 엄청나다는 암위들을 데리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레 벌어진 그 순간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마침 그때 다행히 월낭과 이목청이 나타나 그를 구해준 것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의 얼굴은 보았느냐?”

진옥의 물음에, 월낙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봤습니다.”

“익숙한 기운이었느냐?”

월낙은 면목이 없는 듯 고개까지 떨궜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엔 맞붙지 않았느냐?”

“포위된 뒤로 그 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진옥의 안색이 굳어졌다.

“심기가 아주 엄청나군. 목청, 너는 뭐라도 발견한 게 있느냐?”

진옥은 돌연 이목청에게 질문을 돌렸다. 이목청은 잠시 사방화를 돌아봤고, 사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자 이목청도 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가에게 요술을 당했었다는 거 기억하십니까?”

진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운설?”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날 이후 전 요술의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습니다. 월낙이 포위됐던 그때 그곳에서 요술의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확실해?”

“확실하지 않은 건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도 않습니다.”

진옥은 다시 사방화를 쳐다보았다.

“이게 그대가 여기 와야만 했던 이유요? 제운설이 언신의 정혼자라서?”

“제운설은 북제 황제의 누이고, 북제 공주입니다. 여태 아무 흔적도 찾아내지 못하고 허탕만 쳐왔는데 유일한 실마리가 발견됐다는 말에 제가 어찌 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언신이 지금껏 뭘 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분명 제운설과 같이 있을 거예요. 제가 언신에게 서방님이 도성으로 돌아오는 걸 막아달라 했을 때 서방님은 제운설을 찾아 언신을 방해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언신도 꼼짝 못하고 있겠지요. 제운설을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됩니다.”

“그 엄청난 요술 실력은 누구도 얕볼 수 없습니다.”

이목청은 제운설에게 잡힌 그때가 떠올랐는지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 

진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운설은 어릴 적부터 북제 황궁을 떠나 정화곡에서 요술을 익혔다고 들었소. 북제 황궁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데에 뭔가 속내가 있지 않겠소?”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사방화는 제운설을 직접 마주했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제운설은 어찌나 어여쁘던지 웃고 있는 얼굴에선 꼭 만다라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다라는 분명 짙은 독을 품고 있는 꽃이었다.

“근데 진강은 어떻게 제운설과 연락해 언신을 방해했던 거지?”

“자세히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사방화가 진옥에게 답을 한 뒤, 다시 이목청에게 물었다.

“저번에 내가 묻지는 않았는데, 따로 언신을 조사해본 적 있었죠?”

“응.”

“그때 언신을 조사하다가 제운설까지 건드리셨죠? 제운설을 만났을 때 물었던 적이 있어요. 목청 공자가 따로 미움을 산 게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정혼자에 대해 궁금해하며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많은 걸 조사했다고요.

하지만 제운설은 그 문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아무리 많은 걸 찾아내도 제운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제운설은 그저 목청 공자가 동생을 언신과 맺어주려 했단 그 이유로 공자님 목숨을 앗아가려 했던 거예요.

나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공자님이 누이 녹의를 언신과 이어 주고 싶어 했던 건 맞으니까요. 내가 공자님께 언신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으니 뒤에서 알아본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죠.”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녹의와 맺어주고 싶어 언신을 조사해봤었습니다. 마마와 언신 공자의 관계가 궁금하기도 했고.”

사방화가 물었다.

“그때 언신에 대해 뭘 알아내셨어요?”

“천기각에 대한 것과 마마와의 관계요.”

“그게 다인가요?”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방화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다른 건 없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겉핥기식으로 알아낸 게 제운설을 건드렸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에요.”

이목청이 깜짝 놀랐다.

“그럼 내가 녹의를 언신 공자와 이어 주고 싶어 한다는 것 때문에 제운설 공주가 질투를 하고 화를 낸 거란 말입니까?”

사방화가 차분히 설명했다.

“지난번 제운설이 언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건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제운설은 녹의 때문에 질투를 할 만한 여인은 아닙니다. 녹의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제운설과 비교할 수는 없단 거 아시잖아요.

녹의는 대단한 우상부 출신인 건 맞지만, 서출이고 여태 기방에 머물며 기계를 팔아왔지요. 반면 제운설은 정화곡에서 모습을 감추고 지낸 건 맞지만 북제 황실 공주에 무공도 사내들과도 맞설 만한 대단한 능력이 있어요.

또 제운설은 규방에서만 지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일로 질투를 할 사람도 아니고요. 분명 공자님께 손을 쓴 건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목청 공자, 확실히 요술 기운을 느꼈다고 했죠? 이 천하에 제운설 모친과 제운설 외에 이 정도로 악랄한 요술을 부릴 수 있는 이가 더 있을까요?

제운설 어머님이 남진에 왔을 수도 있겠지만, 난 제운설이라고 봐요. 월낙을 포위했던 그 장소에 나타났던 것도 분명 이번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거고요. 관련이 없어도 우선은 단서가 된 상황이니 그냥 넘어갈 순 없고요.”

이목청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월낙이 다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통에 어렴풋이 익숙하단 느낌은 받았지만, 그땐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오늘 그 자리에 다시 가봤더니 확실히 요술의 기운이 맞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달 넘게 머물며 직감으로 겨우 이 정도 단서밖에 찾지 못했단 게 놀랍습니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찌 이리 완벽하게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건지 대단하군요.

제운설과 관련이 있으니 분명 언신 공자와도 뭔가 얽혀 있을 거란 생각에 마마께 서신을 전했던 겁니다. 소왕비마마라면 뭔가 눈치를 챘거나 찾아낸 게 있을 거란 생각에서요.”

사방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난 절대 언신이 날 죽이려 했다거나 배후자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언신은 북제 소국구니 그 배후자를 안다거나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믿을 수 있겠지만요.”

이목청이 말했다.

“아, 생각났습니다! 천기각을 포함해 마마와 언신 공자 관계를 알아낸 동시에 언신 공자의 신분과 북제 옥가와의 관계도 알아냈었습니다. 하지만 단서를 다 찾기 전에 요술에 빠졌지.”

“바로 그거예요! 언신은 북제 소국구잖아요. 언신이 어떻게 옥가를 떠나게 됐는지, 지금 옥가와 관계가 어떤지, 제운설과의 관계는 어떤지 이 모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겁니다. 분명 이 안에 제운설이 목청 공자께 손을 쓴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목청이 문득 사방화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소왕비마마, 진정 언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믿으십니까?”

“네.”

사방화의 확신에 이목청도 더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진옥을 바라보았다. 

그에 진옥은 사방화를 힐끗 보곤 이목청에게 말했다.

“제운설을 찾았으니 계속 한번 알아보거라. 짐은 황성을 떠날 수가 없는 몸이니 소왕비가 진강을 확실히 만나기 전까지 목청 네게 소왕비의 안전을 맡긴다. 반드시 잘 살펴라. 결코 저번처럼 방화를 놓쳐선 안 돼.”

“염려 마십시오, 폐하. 그땐 신이 소홀했지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사방화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진옥을 째려보곤 이목청에게 말했다.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뭘 그렇게까지 해요? 이번엔 멋대로 도망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요.”

“소왕비마마, 이미 마마의 말씀엔 신뢰가 없습니다. 폐하뿐만 아니라 저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그러니 강 소왕야를 만나기 전까진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사방화는 어이가 없어 그냥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진옥이 갑작스레 물었다.

“아! 목청, 월낙은 봤다만 월낭은 어디 있나?”

사방화도 월낭이 떠올라 이목청을 바라보았다. 

“월낭은 어제 떠났습니다.”

사방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딜 가는지는 말했습니까?”

이목청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만 하고 떠났습니다. 어찌 거기서 나타났냐고 물으니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했지만, 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걸 물어보려 했는데 물 건너 가버렸네요.”

진옥은 다시 사방화를 보며 말했다. 

“찬찬히 조사하면 언젠가 알게 될 테니 심각하게 생각지 마시오. 알겠지?”

“네에, 알겠습니다.”

사방화가 한숨을 쉬며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진옥은 픽, 웃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청, 월낙은 짐이 데려가고 은위 한 무리를 남겨두겠다. 제일 중요한 건 방화가 우선이니 아무 단서를 찾지 못한대도 절대 서두르지 마라. 알겠지?”

이목청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려 마십시오, 폐하. 제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소왕비마마는 반드시 무사히 지키겠습니다.”

진옥은 고개를 끄덕이곤 사방화에게 경고했다. 

“방화, 그대 스스로도 잘 챙기시오. 그대의 목숨에는 그대 하나만이 아닌 여러 사람이 걸려 있단 걸 절대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진옥이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목청이 사방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옆방에서 잠시 쉬고 계세요. 폐하를 배웅해드리고 오겠습니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는 진옥을 향해 말했다.

“폐하, 몸조심하십시오. 밀려드는 상소에 허리가 굽으시면 안 됩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시고,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있는 건 맡기면서 하세요.”

진옥이 발걸음을 멈칫하곤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양심은 있군. 알겠으니 그대 몸이나 잘 챙기시오.”

사방화도 웃으며 이목청이 준비해둔 방으로 넘어갔다. 시화, 시묵은 즉각 따뜻한 물을 준비해줬고 사방화는 세욕 후 곧장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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