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8화 (858/978)

858화. 심혈을 재촉하는 독 (2)

노부인은 다시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방화야, 무슨 일이냐? 우리 며늘아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명 부인도 심각하게 물었다.

“내가 뭐에 중독이라도 된 거니?”

“방화 언니, 저희 어머니께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사은희도 나서자, 사방화는 재차 그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명 숙모님,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은 없으세요? 숙모님께서도 편찮으시니 혹시 종조모님과 함께 약을 드신 거 아닙니까?”

명 부인은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그래, 이제 생각나는구나! 나도 노 의원이 내어준 약을 먹었다.”

사방화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 의원을 당장 데려오세요.”

노부인도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 의원이…… 우리를 해치려 했단 말이냐……? 우리 집에 머문 지도 3, 40년이 됐고 항상 육방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의원이 다 고쳐주곤 했다.”

사방화는 아주 숙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 숙모님 몸에는 영친왕부의 금옥란에 있던 심혈 발작을 재촉하는 독이 스며들어 있어요. 한번 겪어봐서인지, 전 이 독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명 부인은 안색이 급변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진옥도 새파랗게 질려선 사방화를 얼른 뒤로 물린 뒤 크게 소리쳤다.

“여봐라! 육방의 그 노 의원을 당장 짐 앞에 데려오너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명 부인은 안색이 창백해져, 차마 다가가지도 못하고 사방화에게 물었다.

“방화야, 넌 괜찮니?”

“네, 괜찮아요. 숙모님, 근데 그 약을 며칠이나 드셨어요?”

“3일 전, 몸이 좀 안 좋아서 의원에게 어머님과 같이 감기에 걸린 건 아닌가 하고 맥을 짚어 달라 했었다. 내겐 심하지 않다며 3일만 먹으면 다 낫는다고 했었지. 이틀째 먹고 있는데 몸이 좀 가벼워지더구나.”

사방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남은 약 좀 보여주세요.”

명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은희에게 말했다.

“은희야, 어서 그 약을 내오거라.”

사은희는 곧장 약 그릇 하나를 가져왔다.

“오늘 정오에 먹었어야 했는데 어림군이 오는 바람에 어머님과 나도 약을 챙겨 먹지 못했지.”

진옥은 즉각 사방화 대신 약그릇을 건네받았다.

“그대는 만지지 마시오.”

“네, 들고 계셔주시면 그냥 눈으로만 보겠습니다.”

진옥은 약그릇을 들고 최대한 뒤로 물러나 사방화에게 보여주었다. 

사방화도 멀찍이 떨어져 약을 한번 살피고 냄새를 맡다가 안색이 굳었다.

“숙모님, 이 약에 심혈을 촉발시키는 독이 들어있습니다. 비록 양은 적지만, 오늘까지 이 약을 드셨다면 아마…….”

“아마?”

“대라금선(大罗金仙)이 와도 숙모님을 살리지 못했을 겁니다. 숙모님께 손을 댄 저도 생명의 위협이 있었을 것이고요.”

명 부인은 안색이 돌변해 노부인을 돌아보았다.

“어머님, 정말 우리 집 허 의원이 약도 직접 달여주신 게 맞지요? 허 의원이 어쩌다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그래…….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노부인도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진옥은 급히 약그릇을 사은희에게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

“두 분을 해치려던 게 아니라 계수를 해치려 했던 것 같소. 대체 무슨 이유로 다들 그대를 해치려 노심초사하는지 확인을 해야겠어.”

사방화도 벌써 육방에 3, 40년을 머문 노 의원이 명 부인에게 공심독을 썼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지난번 사방화도 그 독에 크게 당해 한껏 경계를 높이고 있어, 다행히 이번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배후자는 정말 사씨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소천자가 대문 입구에서 아뢰었다.

“폐하! 의원은 이미 숨을 거뒀습니다.”

진옥은 미간을 찌푸리며 밖으로 향했고 사방화도 그 뒤를 따랐다. 

노부인, 명 부인, 사은희도 얼른 뒤따라 나갔다.

* * *

의원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후 경직도 일어나기 전이었다. 

“폐하,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걸 보니 조금 전에 돌아가신 듯합니다.”

소천자의 말에, 사방화가 얼른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진옥이 급히 막았다.

“또다시 함정이 있을 수도 있잖소. 가만히 있으시오.”

사방화도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배후자는 현재 그녀의 심혈이 소진됐다는 걸 알고 그 약점으로 계속 그녀를 죽이려 시도하고 있었다. 명 부인에게까지 손을 쓴 것은 이미 사씨 정탐꾼이 육방의 손에 있다는 걸 알고 그녀와 사씨 정탐꾼까지 한 번에 없애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제가 살펴보지 않으면 사인을 어떻게 밝혀냅니까?”

“의원이 그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소. 소천자! 손 태의부로 가서 손탁을 데려오너라.”

“알겠습니다.”

사방화도 오래전 만났던 손탁을 떠올리며, 손 태의의 친손자니 분명 그 의술을 물려받았으리라 생각했다.

진옥도 곁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손탁은 어릴 적부터 손 태의를 따라 의술을 연마해왔지. 나이가 어려 우선 몇 년 더 수련하도록 뒀다가 때가 되면 태의원으로 들이려던 중이었어. 나이는 어려도 의술만큼은 손 태의의 친손자답게 아주 뛰어나니, 사인을 밝히고 병세를 살펴보는 것쯤은 충분히 해낼 것이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곤 명 부인에게 말했다. 

“명 숙모님, 지금 당장 처방을 내려드릴 테니 어서 약 먼저 드세요.”

명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은희는 서둘러 붓과 종이를 가져왔다.

곧 사방화가 처방전을 써 사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은희야, 꼭 믿을 만한 이에게 약 달이는 걸 지켜보게 하고 준비되는 대로 곧장 숙모님께 가져다드려.”

사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히 처방전을 건네받았다. 

사방화는 처방전 하나를 더 써서 육방 노부인을 모시는 이에게 건넸다.

“여섯째 종조모님께도 서둘러 약을 준비해드리도록 해라.”

이내 노부인은 죽은 노 의원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줄곧 우리를 그렇게 잘 돌봐주던 의원이 어찌……. 사람도 성실하고 나쁜 마음을 먹을 사람은 아닌데 어찌 사람을 해할 수가 있단 말이지? 게다가 이렇게 죽어버렸으니…….”

진옥도 죽은 노 의원을 힐끗 보다 월낙을 찾았다.

“월낙!”

“예, 폐하!”

“허 의원의 경력, 신분과 언제부터 사씨 육방에 왔는지, 최근에 만났던 이들이 누군지 세세하게 알아오너라.”

“네, 말씀 받들겠습니다!”

월낙이 떠나고, 뒤이어 손탁이 소천자와 함께 와 진옥에게 예를 갖췄다.

진옥은 바로 죽은 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허 의원의 사인을 밝히거라.”

손탁은 고개를 끄덕이곤 죽은 노 의원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사방화는 손탁을 지켜보며 나이는 어려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침착한 태도를 보고, 손 태의보다 뛰어난 태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손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옥에게 깍듯이 공수를 올렸다.

“폐하께 아룁니다. 이 의원은 스스로 약을 먹고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약이 아니라 몸속에서 심혈을 빠른 속도로 성장하도록 부추기는 약물로써, 소신이 맥을 짚어본 바로는 심혈이 고갈된 게 느껴집니다.”

진옥은 고개를 끄덕이곤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명 부인께서 드시던 약과 같은 약인 듯하군. 부인도 마지막 약을 챙겨 드셨다면 이렇게 되셨을 지도 모르겠소.”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명 부인은 손탁과 진옥의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니!”

사은희가 서둘러 명 부인을 붙잡아주었다.

명 부인은 사은희에게 의지해 창백한 안색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오래도록 우리 집에 계셨던 허 의원이 어찌…….”

그러나 노부인은 매우 격노한 얼굴이었다.

“폐하께서 오신 걸 알곤 모든 게 탄로 날까 두려워 자진한 게 틀림없다.”

사방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명 숙모님처럼 3일 전부터 이 약을 먹고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은 거라면 자신도 사씨 육방을 해쳤단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고 죽음으로 갚으려 한 것이겠지요.”

명 부인이 즉각 사방화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 의원의 뒤에 또 누군가 있단 말이니?”

“단정할 수는 없어요.”

사방화의 답에, 명 부인은 바로 사은희를 바라보았다.

“은희야, 어서 모든 이를 여기로 불러…….”

그러다 명 부인은 순간 뭔가 떠오른 듯 진옥을 보며 말을 돌렸다.

“폐하, 폐하께서 조사해 주십시오.”

사은희도 진옥을 돌아보자, 진옥은 그녀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한껏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짐이 직접 조사하겠다. 소천자! 사씨 육방 모든 이들을 데려오라!”

* * *

잠시 후, 소천자가 사씨 육방 모든 이들을 데리고 뜰 한가운데로 왔다.

소천자는 진옥의 분부에 따라 허 의원이 누구와 가깝게 지냈는지, 근래 10여 일간 누구와 접촉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등등을 일일이 캐물었다.

사씨 육방은 하인들을 포함해도 사람 수가 매우 적어 단 반 시진 만에 탐문을 다 끝낼 수 있었다. 

허 의원은 고향에서 홍수가 나 가족들을 잃고 발붙일 곳이 없어 도성으로 와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사씨 육방에선 노부인이 의원을 수소문하고 있었고, 허 의원은 육방 가주의 목숨을 살려주며 육방 의원으로 정식 초빙되었다.

노부인은 가까이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던 시녀도 맺어주어, 허 의원은 육방 안에 완전한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 시녀는 5년 뒤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이후 허 의원은 다시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고 여태 육방의 의원으로서만 성실히 살아왔다. 노부인도, 명 부인도 그런 허 의원이 결국 사람을 해치고 세상을 떠날 거라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곧 탐문이 끝났지만, 딱히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없었다. 

그때, 월낙이 무슨 종이 하나를 가지고 돌아와 진옥에게 건넸다. 진옥은 자료를 펼쳐보곤 한껏 굳어진 얼굴로 사방화에게 넘겼다.

사방화도 자료를 보고 급격히 굳은 얼굴로 명 부인에게 말했다.

“명 숙모님, 허 의원은 북제에서 온 정탐꾼입니다. 여태 사씨 육방에서 머물며 기회를 기다렸던 거지요.”

명 부인의 안색이 돌변했다. 

“우리 집에 머무는 이 내막도 하나 알지 못했구나…….”

노부인은 몹시 후회가 된다는 듯 무너지는 얼굴로 말했다.

“며늘아기가 알아보겠다고 나선 걸 내가 막아섰었다……. 며늘아기가 시집오기 전부터 우리 집에서 머물던 의원이기에 난 허 의원을 아주 신뢰했어. 그래서 집에 문제가 있어도 단 한 번도 허 의원을 의심하지 않았다.”

명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님도 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러셨던 거잖습니까. 허 의원이 자신의 뒤를 캐봤단 걸 알면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 불상사가 생길까봐서요.”

“그래, 맞다. 누가 허 의원이 이런……. 며늘아기와 방화 모두 괜찮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씨의 죄인이 될 뻔했구나.”

사방화도 부드러운 어조로 노부인을 다독였다.

“종조모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여섯째 숙부님이 지금껏 평안히 지내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허 의원이 북제의 정탐꾼이었다는 걸 어찌 아셨겠어요. 폐하와 제가 이렇게 온 것도 그 배후자 때문입니다. 보아하니 옥조천과 허 의원을 제외하고 남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숨어 있는 듯해요. 벌써 사씨 정탐꾼 두 무리가 당했으니 이대로 모든 걸 잃을 순 없습니다.”

명 부인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사방화를 쳐다보았다.

“방화야, 내 지난 이틀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뾰족한 수도 떠오르질 않고 적은 음지에 있고 우린 양지에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도 못하겠더구나. 은희는 아직 어리고 미숙해 이 일을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나도 미처 가르치질 못했어. 근데 이렇게 큰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니…….

방화야, 이제 사씨 정탐꾼은 네가 맡거라. 계속 이 무능한 숙모 손에 맡겼다간 모두 잃을지도 모르겠어. 본래 노후야께서도 너와 묵함이 다 자랄 때까지만 대신 짐을 짊어 달라 하셨단다. 네 몸 상태가 아직 좋지 않은 건 안다만 나도 더 이상 방법이 없구나.”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들이 사씨 정탐꾼과 사씨에게까지 손을 댈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동안 제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숙모님께 줄곧 미뤄왔지만, 이젠 제가 이어받는 게 맞는 것 같아 이렇게 온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