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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화 (842/978)

842화. 해를 끼친 자의 마음 (2) 

방에 제일 급히 달려온 건 연람과 금연이었고, 그녀들은 사방화를 보자마자 걱정을 금치 못했다. 금연은 몹시 애타는 눈빛으로 먼저 입을 뗐다.

“새언니! 집에 돌아가 엉덩이 붙이기도 전에 비보를 듣고 달려왔어요!”

그리고 연람은 아주 낮게 목소리를 깔고 사방화에게 속삭였다.

“방화, 혹시 이여벽이 그런 거 아닐까요? 어제 제가 이여벽이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요. 출가한다고 난리 치던 사람이 갑작스레 조용해져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와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았어요. 그리고 방화가 이렇게 다쳤고…….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연람은 조용히 속삭인다곤 했지만 방 안이 워낙 고요해 또렷이 다 들렸다. 그에 진옥을 시작으로 이목청, 연석, 정명, 송방, 그리고 영친왕비, 태후 모두 연람을 쳐다보았다.

“연람,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결국 사방화가 제지를 시키자, 연람은 매우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제가 뭘 함부로 말했다는 거예요? 어제 분명 제가 이상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방화는 이여벽이 철이 든 것이라고 감싸주기만 했죠? 근데 제가 이여벽 성격을 모를까요? 방화가 예상치 못하게 강 소왕야와 무사히 화해를 했으니 강 소왕야를 포기할 수 없던 이여벽이 분명…….”

“연람!”

사방화가 끝내 소리쳐 연람의 말을 끊어버렸다.

“알겠어요!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으니 더는 말 안 할게요.”

사방화는 사람을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사람을 의심하는 건 옳지도 못하고 별 도움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더더군다나 이여벽은 이목청의 친동생이 아니던가.

이내 진옥이 소천자를 찾았다.

“소천자, 우상 부인과 여벽도 왔느냐?”

“폐하께 아룁니다. 우상 부인께선 오셨으나 이 아가씨께선 현재 얼굴을 다치신 관계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소천자의 말에, 진옥은 조용히 이목청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목청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 누이는 손발을 다친 게 아니라 얼굴을 다친 것이다. 오해가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니 여벽을 반드시 데리고 오너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때마침 우상 부인이 도착해 진옥, 태후, 영친왕 부부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이여벽을 데리러 간다는 말을 듣고 걱정스레 이목청을 붙잡았다.

“청아, 혹시 밖으로 나왔다가 벽이 상처가 덧나기라도 하면…….”

“여기도 의원들이 계시니 문제없습니다. 연회에 왔던 모든 분께서 오셨는데 얼굴을 다쳤다고 해서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소한 문제가 아닌 만큼 어머니께서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우상 부인은 무심히 사방화를 돌아봤다가, 너무도 창백한 얼굴로 침상에 쓰러지듯 누운 사방화를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 * *

잠시 후, 이여벽을 태운 마차가 영친왕부에 다다랐다. 정효순도 함께였는데, 절뚝거리는 걸 보니 얼마나 오래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했다.

이렇게 꽃놀이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영친왕부 드넓은 뜰을 한가득 메웠고, 진옥은 곧이어 방에서 나와 월낙에게 분부를 내렸다.

“월낙, 모두 빠짐없이 검사해봐라.”

월낙은 진옥이 초지에게 받은 흡충을 들고 취하 시신에 다가가 심장에 그릇을 갖다 댔다. 곧 그릇이 덜커덕, 움직이자 사람들에게로 돌아섰다.

다들 그게 무슨 물건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월낙이 무거운 표정을 하고 모두의 심장에 가져다대는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좌상, 우상 부인, 대장공주, 명 부인, 태후, 정일, 정성, 정효순, 금연, 연람, 사은희, 이목청, 연석, 공자들까지 누구 하나 빠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여벽 차례에 다다랐다.

이여벽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남진 최고의 미인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여전히 뛰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내 월낙은 이여벽 심장에 그릇을 가져다댔고, 그 고요했던 그릇이 드디어 덜커덕, 반응을 했다.

월낙은 무겁게 이여벽을 한번 쳐다보다가 진옥을 돌아보았다.

“그릇을 열어보라.”

진옥의 명에, 월낙이 바로 그릇을 열었다. 그릇 속에선 흰 벌레 하나가 통, 튀어나와 순식간에 이여벽의 옷을 뚫고 그녀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아!”

이여벽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심장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벽아!” 

우상 부인은 안색이 돌변해 서둘러 그녀를 붙잡아주었다. 이여벽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도, 고통스런 표정만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폐하! 벽이 몸속에 들어간 것이 무엇입니까? 어서 꺼내주십시오!”

우상 부인이 소리쳤지만, 진옥은 안색을 굳힌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우상 부인은 다시 아들 이목청을 바라봤지만, 그도 무겁게 굳은 안색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우상 부인은 다급히 영친왕비를 향해 소리쳤다.

“왕비마마! 우리 벽이가 소왕비를 해쳤을 리가 없습니다. 이 아이는 어제 줄곧 저와 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친왕비도 말없이 이여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우상 부인은 마지막으로 사방화를 향해 간절히 외쳤다. 

“소왕비……! 어제는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던 것이오! 제발 한번만 용서해주시오! 응? 우리 벽이는 절대…….”

사방화는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여벽을 향해 말했다.

“여벽, 지금 월낙 손에 있는 건 매족에서 전해 내려오는 흡충이에요. 이 벌레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뉘지요. 몸속에 독충이 있는 자를 좋아하거나 이 독충을 가진 자와 접촉했던 이에게서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경우요.”

우상 부인의 안색이 급변했다.

“벽아……?”

이여벽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방화는 입술을 깨물고 굳어버린 이목청을 한번 보고 월낙에게 말했다.

“월낙, 벌레를 다시 꺼내드려.”

진옥도 월낙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월낙이 그릇을 톡톡 건드렸다. 이여벽 몸에선 금방 사라졌던 벌레가 튀어나와 다시 그릇으로 몸을 숨겼다. 하얀 벌레는 이미 새빨간 색으로 변해있었다.

이여벽은 이제야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방화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여벽을 쳐다보았다.

“여벽, 당신 몸엔 취하 몸에 있던 벌레와 같은 벌레가 들어 있어요. 흡충이 들어갈 땐 흰색이었지만, 당신 몸에 있던 벌레를 먹었기에 빨갛게 변해버린 거예요.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요. 진강은 단 한 번 당신에게 희망 하나 심어준 적도 없고,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당신과 혼인할 일은 없습니다. 근데 대체 왜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날 해하려는 거죠?”

면사포 사이로 비치는 이여벽의 두 눈은 처량함과 절망만 가득했다. 누가 보더라도 등골이 서늘해질 것 같은 눈빛이었다. 

“벽아! 어찌 네 몸에……, 벌레가 있단 말이냐? 어찌 이런 게 있단 말이야……? 혹시 뭔가 잘못된 거 아니니?”

우상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여벽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여벽은 말없이 사방화를 바라보았고, 우상 부인의 말에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곧 영친왕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여벽에게 말했다.

“멀쩡한 아이가 어찌 이리됐단 말이냐? 조금 전 네가 좀 이상했다는 연람이 말을 듣고 나니 손님 명단을 작성하다 네 이름을 꺼내는 취하의 표정이 좀 남달랐다는 게 떠오르는구나. 그땐 별일이 아니라 생각했다만, 취하를 시켜 방화를 해하려고 했던 것이냐?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우상 부인은 손을 덜덜 떨며 이여벽에게 물었다.

“벽아! 대체 누가 네 몸에다 그런 걸 집어넣은 것이냐? 네 몸에 그런 게 있었다한들 취하와 함께 소왕비를 해하려한 건 아니지 않니? 소왕비가 다친 건 너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않으냐, 그렇지?”

끝내 말없이 사방화만 바라보는 이여벽을 보고, 우상 부인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어서 말을 좀 해보란 말이다!”

이여벽은 그제야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허망한 눈으로 우상 부인을 바라보았다. 우상 부인은 제발 딸이 아니라고 해주길 바랐지만 이여벽은 질끈 눈을 감고 끝내 어머니의 기대를 배신했다.

“어머니, 실망시켜드려 죄송해요. 취하와 전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소왕비마마를 해하려 한 겁니다.”

우상 부인은 결국 그대로 쓰러졌다. 이목청이 재빨리 우상 부인을 받아낸 덕에 다행히 그녀는 돌에 머리를 찧는 불상사는 피했다.

이목청은 굳은 얼굴로 이여벽을 힐끗 보곤 하인에게 명했다.

“어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라.”

“알겠습니다.”

하인이 다가와 쓰러진 우상 부인을 안아들고 나갔다.

곧이어 이목청은 이여벽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이여벽도 고개를 들었고, 오누이는 한동안 서로의 눈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벽아, 정말로 실망했다.”

마침내 이여벽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목청은 누이의 눈물을 뒤로한 채 진옥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폐하, 어떤 벌을 내리시든 우상부는 마땅히 다 감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옥은 안색을 굳힌 채 이여벽을 바라보았다.

“여벽, 짐이 묻겠다. 어찌 소왕비를 해하려 한 것이냐?”

이여벽은 눈물을 흘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옥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이여벽에게 다가갔다.

“우상부 아가씨 이여벽, 그대는 존귀한 귀족 아가씨로서 타의 모범이 되고 문예실력도 출중하기 그지없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 남진에서도 누구나 제일 첫째로 꼽던 아가씨인데 어찌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 정말 진강이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작 그 이유 하나로 드높은 우상부 가문의 명예도 저버리고 남을 해하려 했단 것이냐?”

여기 모든 이들도 이여벽이 한 짓일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이윽고 이여벽은 한참을 울다 자리에서 일어나 진옥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모두 강 소왕야를 위해 한 일이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상부와는 무관한 일이니 부디 저희 가족들은 용서해주시옵소서.”

진옥은 바로 분노를 드러냈다.

“지금 무슨 면목으로 감히 짐에게 부탁을 청하는 것이냐!”

이여벽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숨김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폐하께서도 아시듯 제게 어찌 이런 벌레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왕비마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밉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제 몸에 이런 벌레가 있다는 것엔 당연히 배후가 있다는 뜻이지요. 제가 아는 모든 걸 말씀드릴 테니 명군이신 폐하께선 부디 우상부와 오라버니를 내치진 말아주십시오. 오라버니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진옥은 눈을 가늘게 뜨다 이목청을 힐끗 보곤 말했다.

“좋다. 말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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