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0화 (840/978)

840화. 철저히 조사하라! 

진옥은 문턱을 넘어 싸늘한 취하의 시신을 지나 내실로 향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에 윤기가 돌고 멀쩡했던 사방화가 너무도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진옥은 잔뜩 구겨진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다 사방화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진옥은 그래도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물었다.

사방화도 이마에 땀을 구슬처럼 매단 채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가오는 진옥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괜찮습니다.”

“정말?”

진옥은 사방화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고 있었다.

“예, 당연하지요. 어찌 제가 제 몸을 가지고 장난을 하겠습니까? 정말 괜찮으니 염려 마십시오, 폐하.”

“이 지경이 됐는데도 괜찮다는 말이 나오는가! 여봐라! 태의원 모든 태의들을 다 불러오너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막 대문에 다다랐던 소천자가 진옥의 명을 듣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저도 의술을 익힌 자입니다. 무슨…….”

“못 믿겠어.”

진옥의 단호하게 말을 끊자, 사방화도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영친왕비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도 제가 태의를 데려오려 했으나 방화 의술이 더 뛰어나다 생각해 그냥 뒀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이렇게 괜찮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놓이질 않군요. 태의를 데려오는 게 좋겠습니다.”

사방화는 할 수 없다는 듯 영친왕비를 바라보았다.

진옥이 다시 사방화에게 말했다.

“맥을 짚어줄 테니 손 좀 줘보시오.”

“의술을 익히셨습니까?”

“맥 짚는 정도는 할 수 있소.”

사방화가 손을 내밀고, 진옥은 맥을 짚자마자 어두워진 얼굴로 화를 냈다.

“이게 지금 괜찮다는 거였소?”

“지금껏 몸조리해왔던 게 물거품이 된 것뿐입니다. 큰일은 아니에요.”

“이렇게 힘도 없이 허약해졌는데 어찌 괜찮다는 것이오! 뭐 거의 죽을 지경이 돼야 큰일이라고 할 건가?”

사방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닙니다.”

“정말 혼날 짓만 골라 하네! 여봐라! 소왕비를 낙매거로 모셔다드려라!”

하인들이 몰려오자 사방화는 연신 손을 내저었다.

“저 없이 독충술에 걸려서 죽은 사람을 누가…….”

“짐이 철저히 조사하겠소.”

사방화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여기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되잖습니까. 저도 대체 누가 절 해치려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침상에 앓아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란 말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오!”

사방화도 점점 화가 났다.

“낙매거에 있으면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무리 황제폐하라고 하셔도 이리 난폭하게 대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진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내 영친왕비가 얼른 중재에 나섰다.

“방화야, 화내지 마라. 화내선 안 돼. 황상, 방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낙매거에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니 여기서 지켜보며 함께 조사하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또 태의가 오면 방화를 보러 다시 낙매거로 우르르 몰려가야 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피를 토했던 터라 화를 내다 또다시 기혈이 심해져선 안 되니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진옥도 그제야 짧게 한숨을 쉬며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그럼 침상에 가 누워있으시오.”

사방화도 비로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진옥이 자신을 위하는 말임을 다 알기에 호의를 나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곧 영친왕비가 춘란에게 분부했다.

“춘란, 어서 침상으로 부축해드려.”

춘란이 서둘러 사방화를 부축해 가까운 침상에 눕히곤 등받이와 이불을 가져와 기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진옥도 사방화가 자리에 편히 누운 걸 보고 영친왕비를 돌아봤다.

“백모님, 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자 영친왕비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유 측비, 진호, 설영, 춘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다 나가 있거라.”

차를 올리던 시녀 두 명은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유 측비는 영친왕비가 자신을 포함해 진호, 노설영을 남이라 여기지 않는 모습에 감동이 일었다.

“왕비마마, 비밀로 해야 하시는 일이라면 저도 나가 있겠습니다.”

“모르는 게 더 좋은 일이 있긴 하지. 하지만 다 같은 가족인데 남아계시게. 오늘 일은 우리 왕부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반증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오늘 일을 마음에 잘 새겨두고 항상 조심해야하네. 오늘 나랑 방화도 방심한 사이에 함정에 빠진 거야.”

유 측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희순은 취하의 시신을 거둔 뒤 방 문을 닫아주었다.

곧 영친왕비는 어떻게 금옥란에 꽃봉오리가 핀 걸 발견 했는지, 마침 사방화가 본원으로 와 함께 꽃을 살펴보다 사방화가 꽃봉오리를 건드리자 심혈이 폭발해 피를 토했다는 것, 또 춘란에게서 취하가 관련 있단 말을 듣고 취하에게 물으려던 찰나 문 앞에 죽어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간단히 추린 이야기였지만, 듣는 사람들은 충분히 충격에 빠졌다.

특히나 진옥은 다시 사방화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기에 그렇게 조심성이 없었소! 어찌 그렇게 함부로 꽃에 손을 댄 것이오!”

사방화는 그간 사운란의 행적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영친왕비가 분명 어제는 꽃봉오리가 피어있지 않았다고 확신한 것을 토대로 손을 댄 것이었다. 필경 사운란의 흔적이란 추측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평소 사방화라면 모든 일에 사전방지를 하고, 미리 철저히 방비 태세를 취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손을 댈 거란 사실엔 변함이 없었으니 사방화도 확실히 방심한 것은 맞았다. 혹은 배후에 숨은 자의 계략이 매우 치밀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진옥이 사방화에게 화가 난 것도 당연했다. 많은 이들이 사방화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몸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왔고, 그녀 스스로도 조심을 기울였지만 오늘 하루아침에 그간의 고생이 다 물거품이 되고만 것이었다.

그때, 영친왕비가 몹시 자책하며 이야기했다.

“황상, 따지고 보면 다 제 탓이니 방화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이용한 것이니 앞으로 더 이상 왕부에서 꽃을 키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도 풀이 죽어버린 영친왕비를 보니 사방화도 가슴이 아팠다.

“어머님, 누군가 해치려 마음먹은 자는 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방법을 썼을 겁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건 당연합니다. 어머님, 자책 마셔요. 꽃을 좋아하시는 것이 왜 잘못됐습니까, 제가 방심한 탓입니다.”

영친왕비가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남진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사람의 마음, 성품, 절기, 지리, 꽃까지 이용해 문제를 삼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 순간 오래도록 영친왕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누구 탓이라 책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서 범인을 잡아야지.”

진옥도 다소 가라앉은 안색으로 옷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선 태의에게 진맥 받고 다시 얘기하지. 짐은 이 영친왕부 일을 확실히 처리하고 난 뒤에 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영친왕과 영친왕비도 진강이 떠난 사이, 진옥이 대신 남아 조사해준다면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 *

잠시 후, 소천자가 태의원의 모든 태의들을 다 데려왔다.

진옥의 분부 아래 모든 태의가 돌아가며 사방화를 진맥했다.

사방화는 한꺼번에 스물이 넘는 태의가 들어오자 별 수 없이 손을 내밀었다. 진옥은 바로 손수건을 꺼내 사방화 손목에다 올려둔 뒤 진맥을 명했고, 맥을 짚어본 후 뒤로 물러서는 태의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진맥은 한 시진이 지나서야 끝났다.

“몸 상태가 어떤지 한 명씩 말해보라.” 

진옥이 말했다.

태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한 사람이 먼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예, 폐하께 아룁니다. 소왕비마마께선 심혈이 뿔뿔이 흩어지시고 몸 자체가 허약해지시어 신통치 않습니다.”

또 다른 태의가 나섰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왕비마마께선 심혈 외에도 경맥이 소멸하시는 증상이 있사옵니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왕비마마께선 비장과 신장에 엄청난 해를 입으셨고 심혈이 부족해 서둘러 요양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왕비마마께선 내복에 상해를 입으셨고 간과 폐가 말라 맥박 또한 극도로 쇠해지셨습니다. 초목이 물을 필요로 하는 상태와 같으나 소왕비마마께선 그 근원조차 사라지시어 고목처럼 마르신 상태입니다.”

“…….”

모든 태의가 나와 한 마디씩 진맥한 바를 밝혔지만, 어쨌든 이 모든 말을 종합하면 사방화는 현재 온 몸이 단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다는 뜻이었다.

진옥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안색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사방화는 제 몸 상태의 심각성을 다 밝혀내는 태의들을 보고 영 쓸모없는 실력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반면, 영친왕비는 사방화 상태가 이렇게나 심각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몸이 메말라간다는 것은 곧 생명줄이 사라져가고 있단 뜻이었다. 영친왕비의 안색은 세상 누구보다 심각하게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영친왕도 영친왕비 못지않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유 측비, 진호, 노설영도 사방화의 몸 상태가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지 못해서 누구 하나 말 한 마디 보태지 못하고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방화에게 문제가 생기면 진강도 함께 죽게 되는 운명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때, 사방화가 미간을 문지르며 정적을 깨트렸다. 

“사실 태의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 심각하진 않습니다. 의원들께선 평소 다들 증세를 조금 더 부풀려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염려 마세요, 약을 지어 먹으면 금방 나아질 겁니다.”

사방화가 애써 밝게 이야기했지만, 태의들은 단칼에 그녀의 노력을 잘랐다.

“소왕비마마, 저희들은 조금도 부풀려 말씀드린 것이 없사옵니다. 사실 저희가 말씀드린 것보다 더 심각하신 상태입니다.”

“알겠으니 모두 물러가보라.”

진옥의 무거운 음성에, 태의들이 일제히 밖으로 물러갔다. 

진옥은 다시 굳은 얼굴을 하고 사방화에게 물었다.

“처방은 지었소?”

“시묵이 벌써 약을 달이고 있습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월낙!”

“폐하!”

월낙이 나타나자, 진옥이 영친왕비에게 물었다.

“백모님, 왕부에 있던 모든 이들은 빠짐없이 모두 다 모인 겁니까?”

“네, 다 불러 모아 희순이 확인도 해봤습니다. 빠짐없이 다 모였어요.”

“명부 좀 주십시오.”

영친왕비가 곧장 진옥에게 명부를 넘기자, 진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부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영친왕과 진호도 곧 그의 뒤를 따랐다.

<『경문풍월』 29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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