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3화 (833/978)

833화. 아름다운 여인 

정효양은 곧 하인을 업고 한 골목에 들어섰다.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화려하게 꾸며진 한 주점이 보였고, 아주 얇은 옷을 입은 아리따운 미인들이 정효양에게 손짓을 했다.

정효양은 곧장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문턱을 막 넘어서는데 순간 누군가 안에서 나와 그를 반겼다.

“아이고! 참 아름답게도 생기신 미남 도련님이 오셨네. 어서 오세요!”

여인의 목소리에, 정효양에게 업혀있던 하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간판을 확인한 순간 하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공자님! 여……, 여긴 못 들어가십니다.”

정효양이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틀었다.

“왜?”

“여긴……, 여기는……, 홍수루(红袖楼)잖습니까…….”

하인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정효양도 고개를 돌려 간판을 힐끗 보곤 태연히 대답했다.

“그래, 홍수루. 내가 오려던 곳이 바로 여기인데?”

“예? 여……, 여기서 뭘 하시려고요? 왕부로 돌아가시려던 것 아니셨습니까? 여기는 기방입니다!”

하인은 바람결에 실려 온 연지분 향기에 아예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래, 나도 아니까 온 것 아니겠느냐. 잠시 미인들과 휴식을 좀 취해야지. 나도 오전 내내 걸었더니 힘들구나.”

정효양이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자, 하인은 급기야 울먹이며 외쳤다.

“들어가시려면 우선……, 저를 내려주셔야지요!”

“나 때문에 걷지도 못하는 애를 잘 보살펴줘야지.”

정효양은 망설임 없이 홍수루로 들어섰다. 

주인은 한눈에 하인이 입은 옷을 보고 영친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화려한 옷을 입고, 누가 봐도 귀족처럼 보이는 정효양이 영친왕부 하인을 업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의아하게 느껴졌다.

주인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정효양에게 물었다.

“외지에서 오신 분이지요? 처음 뵙는 듯합니다.”

“응, 난 정효양이라 한다. 좋은 방에, 좋은 술안주를 내주고, 가장 어여쁜 낭자들을 불러다오. 이제 이 도성에 눌러 살 것 같으니 내 이름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겠지. 오늘 잘 대접해주면 보상도 두둑이 챙겨주고 자주 오마.”

주인은 순간 깜짝 놀랐다. 

“예? 형양 정씨 둘째 공자님이십니까?”

“감히 누가 또 내 이름을 도용한 사람이 있나?”

정효양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주인도 마침 홍수루 식구들과 이틀간 도성에 풍파를 일으킨 정효양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에 그 주인공을 만나게 되다니. 그녀는 서둘러 놀란 빛을 지운 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리 유명하신 효양 공자님 이름을 누가 감히 도용하겠습니까? 제가 미처 몰라 뵀습니다. 위층 풍월각(风月阁)으로 모시겠습니다. 춘화, 추월, 하청, 동매! 어서 손님 모셔라!”

주인의 외침에, 위에서 아리따운 미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들은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다 녹이는 듯했다. 

정효양은 만족해하며 계단을 올랐고, 주인도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평생 이런 곳에 처음 와본 하인은 거의 실신할 듯 사정을 했다.

“공자님, 제발 소인을 내려주십시오! 이제 걸을 수 있습니다!”

“다 왔다.”

하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 * *

위층 풍월각은 과연 그 이름값을 하는 곳이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곳곳마다 그윽한 향취에 각종 악기들로 귀까지 즐겁게 하는 풍월각, 환희가 절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정효양은 만족스러워하며 하인을 의자에 앉혀주곤 자신도 곁에 앉았다.

하인은 앉자마자 튕기듯 일어나느라 다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공자님! 소인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정효양은 간단히 하인의 팔을 잡고 의자에 살포시 앉혀주었다.

“밖에서 뭘 할 게 있다고, 날 따라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여기서 푹 쉬어라. 왕비마마께선 널 탓하지 않으실 테니 그건 걱정 말고.”

“소인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 넌 당연히 돈을 내지 않아도 돼. 편히 쉬어라. 곧 미인들을 불러 안마를 받도록 해줄 테니.”

하인은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곧 춘화, 추월, 하청, 동매라는 미인들이 들고, 차례로 좋은 술과 안주까지 정성스레 차려졌다.

“먼저 저 아이 어깨와 다리 좀 주물러 주거라.”

이어진 정효양의 명에, 미인들은 어리둥절해졌다. 하인의 시중을 들라고?

하지만 주인은 어서 미인들에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공자님 말씀 못 들었어? 어서 가.”

미인들은 할 수 없이 하인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내 정효양은 만족한 듯 씩, 미소를 짓곤 술을 따르려하자 주인이 서둘러 술병을 들고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반면 하인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네 미인들이 자신 하나를 둘러싸고 있고, 주변 곳곳엔 향긋한 향기가 감도는, 태어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경험이었다.

“발도 좀 주물러주고.”

정효양은 술을 마시면서도 하인을 챙겼다.

하지만 미인들은 정효양을 흘겨보며 다소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에 정효양이 품에서 은전 한 자루를 꺼내 탁자 위로 던져주었다.

“이 정도면 됐지?”

미인들은 단숨에 낯빛을 바꿔 활짝 웃으며 하인의 발을 열심히 주물렀다.

곁에서 주인도 웃으며 분위기를 돋웠다.

“당연하지요. 하루는 물론 사흘도 충분할 겁니다. 만족하신다면 마음껏 시간 보내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정효양은 나른히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가무가 없어 흥이 돋질 않네.”

“여봐라! 최고의 악사와 무희를 불러들여라!”

잠시 후, 악사와 무희들이 들어왔다.

정효양은 한가로이 침상에 기대 좋은 술과 음식을 취하며 미인들의 공연을 즐겼다. 현란한 악기소리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하인 역시 미인들이 고단한 다리를 주물러주고, 곁에서 술과 음식까지 먹여주니 꿈인지, 생시인지 동서남북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이렇듯 정효양은 홍수루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바깥에 어떤 소문이 떠도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미 도성에서는 벌건 대낮에 정효양이 영친왕부 하인을 업고 홍수루에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이 한 가득이었고, 그 안에서 미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각 귀족 가문들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 * *

물론 풍문은 대장공주부에도 도착했다.

대장공주는 어제 우상부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 부수고 밥도 거부한 채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렇게 평생을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와 혼인시킨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금연 역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장공주를 만나려했지만 호되게 욕만 먹고 돌아서야했고, 아침이 되어 다시 찾아왔지만 대장공주는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한 채 당장 이 혼사를 취소하라며 핏대만 세웠다.

그러나 금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 딸을 어서 혼인시키고 싶어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평생 홀로 외롭게 살다 죽길 바라십니까?”

“정효양이 어떤 놈인데! 감히 그런 놈이 네 짝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느냐! 네 신발 하나보다 가치가 없는 놈이다!”

“그럼 누가 제 짝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평생을 사랑한 폐하는 결국 절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또 누가 있을까요? 정효순? 어제 이여벽의 방 앞에서 온종일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도 아직 이여벽이 허락해주지도 않았답니다.”

“정효순도 별 볼일 없어! 폐하와 그 집안 말고 다른 사람이 왜 없느냐!”

대장공주는 정효순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심하게 화를 냈다.

“정말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엔 정효양이 괜찮았으니 그를 선택한 겁니다. 제게 잘해주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평생을 잘못한다고 해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 선택이니까요.”

“어미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못해! 재주도, 용모도, 인품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놈이 마음에 든다고? 아무리 정효순이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해 그렇게 막무가내인 놈을 택해선 안 된다!”

대장공주의 말에 금연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정효순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다. 좌절한 것도 아니고요. 어머니께서도 제가 한평생 홀로 사는 걸 원치 않으시잖아요. 화내지 마세요. 제 앞길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좋은 결말이 아니더라도 절대로 타인을 원망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택한 길이니 다 제가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금연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리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지만 대장공주는 차갑게 손만 빼버렸다.

“네가 진정 날 죽일 셈이지?”

금연이 입술을 막 떼려는데, 대장공주부 집사가 다급히 달려와 소리쳤다.

“대장공주마마!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집사는 고개를 들었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금연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왜,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보거라.”

대장공주의 목소리가 더 무거워졌다.

집사는 몹시 당혹스런 빛으로 잠시 망설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효양 공자님께서 영친왕부 하인 하나를 업고 홍수루에 가시어……, 모든 기녀들을 다 불러들여…….”

“뭐?”

대장공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분노에 집사는 벌벌 떨며 말을 이어갔다.

“소인이 사람을 보내 확인해봤으나 다 사실이라고 합니다…….”

대장공주는 바닥에 물 잔을 던져버렸고, 잔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정효양, 그놈이 어찌 감히! 봐라! 그 정도 그릇밖에 되지 않는 놈에게 무슨 더 할 말이 남았느냐?”

금연은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 세상 사내들은 본래 그렇게 다 풍류를 즐기며 삽니다.”

“너……, 내가 지금껏 널 얼마나 고생스레 키워왔는데 겨우 그딴 막돼먹은 놈에게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걸 내 그냥 지켜보란 말이더냐!”

대장공주는 짙은 격노에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러십니까?”

대장공주는 기가 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돌연 밖으로 나섰다.

“마차를 대령하라!”

집사는 후다닥 뛰어나갔고, 금연이 서둘러 어머니의 뒤를 쫓았다.

“어머니, 어딜 가시는 겁니까?”

“홍수루!”

“거기 가서 뭘 하시려고요?”

“그놈의 다리를 내 손으로 직접 분질러 놓아야지! 그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면서도 어찌 감히 내 딸에게 장가를 오겠다고!”

금연이 대장공주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그러자 대장공주는 아예 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래, 너도 나랑 같이 가자!”

금연은 할 수 없이 대장공주와 함께 홍수루로 향해야만 했다.

* * *

잠시 후, 대장공주부 마차가 홍수루에 다다랐다.

막 대장공주가 마차에서 내려 금연과 함께 들어서려는데, 안에서 주인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대장공주는 그녀를 보자마자 벌컥 화를 냈다.

“정효양은 어디 있느냐!”

주인은 그제야 정효양이 대장공주의 예비 사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예, 2층 풍월각에 계십니다.”

대장공주는 씩씩대며 계단을 올라갔다.

흥겨운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풍월각은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있었다.

그 공간에 갑자기 큰소리가 짧은 정적을 일으켰다. 바로 대장공주가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안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고, 금연은 대장공주 뒤에서 안을 지켜보았다.

세상의 마음을 다 녹일 것 같은 아리따운 미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었고 또 어느 미인은 사내에게 술을 따라주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정효양이었다. 그는 벌써 꽤나 취한 듯 곁에 있던 미인이 술을 따라주는 족족 물처럼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대장공주의 눈빛에 거센 불꽃이 타올랐다.

“정효양! 네가 감히 이 황성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단 말이더냐! 진정 내게 죽고 싶은 게야? 여봐라! 어서 저놈의 다리를 분질러 놓아라!”

곧이어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서려하자, 금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막았다.

“아무도 못 들어간다!”

대장공주는 금연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네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아직도 저런 놈과 혼인하고 싶어?”

금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저토록 막 나가는 사람이라도 어머니 딸의 예비 남편이자 사위입니다. 벌써 관원으로 봉해지기까지 했고요. 어머니가 아무리 황실 최고의 공주마마시라고 해도 조정 관원을 함부로 해쳐서는 아니 되지요.”

“날더러 저 막돼먹은 놈을 때리지도 말라고? 그리고 조정 관원이라 했느냐? 폐하께선 대체 저놈의 뭘 보고 사관 자리에 앉히신 것이냐! 황궁에 먹칠을 하는 인사가 아니더냐! 당최 저놈에게 관원다운 모습이 있긴 하느냐!”

“그래도 폐하께서 직접 처벌하심이 옳습니다. 폐하께서 막 성지를 내리시자마자 쾌락을 즐겼으니 어사대에서 포박해가는 것이 옳지요.”

금연이 말했다.

“그래, 그럼 내 직접 바로 어사대로 가겠다.”

대장공주는 다시 거칠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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