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4화 (824/978)

824화. 이해가 가지 않는다 (1) 

진강은 침상 위에 사방화를 조심히 눕힌 뒤 아주 긴 입맞춤을 나눴다.

그러다 사방화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진강도 만족한 듯 입술을 떼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아직 날이 일러요. 먼저 쉬세요.”

“흠, 그 전에 뭘 좀 하고 싶은데.”

진강이 엷게 웃으며 사방화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겼다. 그리고 진강은 사방화의 고운 목덜미와 쇄골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진강. 조금 있으면 어머님도 오실 거예요, 그러니 그만…….”

“오늘은 어머니를 뵐 시간이 없소.”

살짝 밀어내도 단호한 진강에, 사방화도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먼저 쉬셔야지요. 이렇게나 피곤해하시면서 어찌 잊지 않고……. 이만 내려가세요.”

사방화가 돌연 말끝을 흐리며 진강을 밀어냈다.

“응? 뭘 잊지 않았단 거지?”

진강은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였다.

“음욕은 잊지도 않으신다고요. 제가 말 못할 줄 아셨죠?”

사방화가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진강은 픽, 웃으며 사방화의 이마와 뺨에 입맞춤 한 뒤 그녀의 위에서 내려와 한 품에 꼭 끌어안았다.

“난 잘 자고 있었는데 당신이 유혹했잖아.”

사방화가 진강을 흘기며 실소를 했다.

“그럼 그냥 고뿔에 걸리던 찬물에서 주무시게 놔뒀어야 맞는 건가요?”

“아쉽진 않소?”

진강이 눈을 감고 말했다.

사방화는 어이가 없어 다시 헛웃음만 터뜨렸다.

하지만 잠시 후, 진강은 많이 피곤했던지 정말로 잠이 들었다. 

사방화는 잠든 진강을 또 고요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왕부를 떠나 지금껏 한숨도 못잔 걸까? 이틀간 뭘 하다 온 거지? 북제 정탐꾼들을 모두 다 제거한 걸까? 이렇게나 빨리 했을 리가 없는데…….’

사방화는 묻고 싶은 말이 한 가득이었지만, 진강이 편히 쉬고 난 뒤에 묻자고 다짐한 뒤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얼마 후, 바깥에서 시화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왕비마마.”

사방화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진강의 품에 안겨 있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에 그냥 누운 그대로 살짝 소리만 냈다.

“응, 무슨 일이야?”

“소천자 태감님이 오셨습니다. 폐하께서 소왕야가 돌아오셨단 소식을 듣고 지금 바로 황궁으로 드시라 하셨답니다.”

사방화는 진옥의 소식통이 참 빠르단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우상부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진옥이 이렇게 시간을 낼 리가 없는데…….

“우상부 일은 어떻게 됐어?”

“이여벽 아가씨가 일어나셔서 혼인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러자 정효순 공자님이 반드시 아우를 대신해 책임져야 한다며 이 아가씨 방 앞에 꿇어앉아 동의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상 대인, 목청 공자님도 일이 이렇게까지 됐으니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으나 정효순 공자님도 고집을 부리시며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직도 우상부에서 대치중이라고 합니다.”

“그럼 폐하와 정일 어르신, 정성 대인은?”

“폐하께선 그냥 정효순 공자님, 이여벽 아가씨 공으로 넘기고 황궁으로 가셨습니다. 아직 일이 해결되지 않은 터라 우상 대인께선 우선 형양 정씨 일가를 우상부에 머물게 하셨고요.”

“정효양 공자는?”

“왕비마마께서 한때 최 시랑께서 머무시던 뜰을 내주셨습니다. 낙매거에서 멀지 않습니다. 세욕 후에 머리를 누이자마자 잠이 드셨다고 하네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 지금껏 이런 일을 겪었으니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드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대장공주부는 좀 어때?”

“대장공주마마께선 댁에 돌아가시자마자 홧김에 방에 있던 물건을 부쉈다고 합니다. 마음을 굳히신 금연 군주님은 그냥 방으로 가버리셨다고 해요.”

“그래, 시화. 일단 소천자에게 우리 서방님이 막 돌아오셔서 겨우 잠드셨으니 일어나는 대로 입궁하겠다고 전해줘.”

시화가 대답 후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사방화는 진강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점차 같이 잠에 들었다.

* * *

날이 저물어 세상이 어둑어둑해졌을 무렵, 영친왕비가 낙매거를 찾아왔다.

영친왕비도 자식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나 진강이 이틀간 일을 끝내고 난 뒤에도 돌아오는 소식이 아무것도 없자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시화는 바로 영친왕비를 맞으며 이야기했다.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선 함께 잠이 드시어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영친왕비도 곧장 걸음을 멈췄다.

“어쩐지 그림자도 보이질 않더라니, 잠이 들었구나.”

“주무신 지 어느 정도 되긴 하셨다만……, 소인이 가서 깨워 볼까요?”

시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괜찮다. 걱정이 되어 좀 물어보려했는데 일어나면 얘기하면 된다. 편히 자게 두거라.”

영친왕비는 그대로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 * *

영친왕비는 본원으로 돌아가다, 마침 왕부로 돌아온 영친왕과 마주쳤다.

“부인, 강이가 돌아왔소?”

“네.”

“어떻소? 일은 잘 처리했다고 했소?”

영친왕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오자마자 잠이 들어 아직도 일어나질 않았답니다. 저도 지금 막 낙매거에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영친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자게 내버려 두지요.”

“우상부는 어떻게 됐어요? 여벽이 거절해도 정효순이 고집을 부렸다던데?”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아직도 대치중이라 하오. 우상도 무척이나 머리가 아플 거요. 갑자기 나타난 형양 정씨 두 공자가 어찌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참.”

영친왕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특히 그 둘째 공자 말입니다.”

영친왕이 홀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 아이를 우리 왕부로 데려온 데엔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오?”

영친왕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계획이랄 건 없고 그저 눈에 익은 것뿐이에요. 경성에 들어오기까지 아무 기척도 없이 들어왔다가 하필 우상부 마차를 들이받아 이여벽을 다치게 했어요. 게다가 정효순이 동생을 대신해 모든 벌을 받겠다며 그 일에 쏙 빠지는 게 그냥 간단한 아이가 아닌 것 같아요. 방화도 정효양을 유심히 살펴보는 걸 보니 뭔가 있을 것 같아 데리고 온 거예요.”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명성도 떨치지 못해 경성에서도 형양 정씨 큰 공자만 알았지 둘째 공자가 있을 거란 건 아무도 몰랐다던데. 하지만 하루아침에 경성을 이렇게 발칵 뒤집어 놓을 뻔한 인물이니 결코 얕봐선 안 될 듯하오.”

영친왕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금연이도 다시 봤어요. 참 대단하던데요, 대장공주보다 더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이 일로 각 집안들끼리 원수도 지지 않고 나라도 요동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볼 수 있지요. 들어갑시다. 나도 피곤하구려.”

영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영친왕과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 * *

하늘색이 조금 더 짙어진 저녁, 사방화가 잠에서 깼다. 진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사방화는 또 조용히 잠든 진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잠시 후, 돌연 바깥에서 진강을 부르는 연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화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휘장이 쳐있어 밖이 보이질 않았다.

곧 어렴풋이 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석 소후야, 소왕야께선 몹시 지쳐 주무시고 계십니다.”

“반나절이나 지났는데 아직 주무신다고? 어서 깨워야지.”

연석이 거침없이 안으로 향하려 하자 시화가 얼른 그를 붙잡았다.

“소왕비마마께서 함께 계시니 들어가시면 아니 됩니다.”

연석은 멈춰서 잠시 눈을 깜빡이다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부터…….”

시화는 얼굴을 붉히며 깜짝 놀라 연석의 발을 힘껏 밟았다. 

연석은 바로 비명을 질렀다.

“아! 내 발은 왜 밟느냐?”

시화가 얼른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연석 소후야, 용서하십시오.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선 그냥 주무시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내 연석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네가 가서 깨워다오. 상의할 일이 있어 온 것이니.”

시화는 조심히 문 쪽으로 다가가 아주 작게 소리를 쳤다.

“소왕비마마, 연석 소후야께서 오셨습니다.”

사방화도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를 다 듣고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짓고 있었다. 진강도 바깥의 소란이 시끄러워서 잠에서 깬 듯했다. 

“진강, 연석 소후야가 왔대요. 일어나세요.”

“무시해도 되오.”

진강은 사방화를 더 꼭 끌어안았다.

“시화만 없다면 방으로 아예 쳐들어올 기세인데요?”

“감히 그랬다간 내 그놈 다리를 분질러 놓고 말지.”

사방화는 피식 웃으며 진강의 등을 토닥였다.

“어서 일어나세요. 반나절이나 주무셨어요. 어머님도 오셨다가 다시 돌아가셨던 것 같은데 참을성 없는 연석은 또 시끄럽게 굴 거예요.”

진강이 못 들은 척 미동도 않자, 사방화가 그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

“입 맞춰주시오.”

사방화는 옅게 웃으며 진강을 바라보았다.

조금 잠을 청했던 덕에 진강의 얼굴엔 어느새 피곤한 기색이 다 사라지고 본래의 몹시도 아리따운 미모만 빛나고 있었다.

사방화는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진강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잠자리가 물 위에 내려앉듯, 아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일어나세요, 이제.”

“부족해.”

사방화는 입술을 톡, 내민 진강을 보곤 엷게 웃으며 그의 뺨을 쓸어주었다.

“어찌 이리 빨리 돌아오신 거예요?”

“말 돌리지 마시오.”

사방화는 실소를 하며 그를 일으키려했다.

“아기도 아니고, 어서 일어나세요.”

“그럼 밤에 보상해 주시오. 약조하지 않으면 안 일어날 것이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진강을 보고, 사방화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수많은 사람과 일거리가 서방님만 기다리고 있는데요. 일단 바쁜 일을 다 끝내야 보상도 가능한 것이지요.”

진강이 사방화를 고쳐 안으며 부드러운 목에 입을 맞췄다.

“허락해준다는 것이지요?”

“허락하지 않는대도 통하지 않을 거잖아요?”

사방화가 진강을 째려보자, 그도 픽, 웃었다.

“그렇지.”

“옷 가져다 드릴 테니 조금만 더 쉬고 계세요.”

진강도 순순히 사방화를 놓아주었다. 

사방화는 침상을 내려가 옷장 앞으로 갔다. 그리곤 아주 찬란하고 화려한 새 옷을 꺼내 진강에게 건네주었다. 

“입혀 주시오.”

진강이 아이처럼 팔을 쭉 폈다.

고작 이틀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진강은 돌연 어린이가 되어 돌아왔다. 잠시도 사방화와 떨어질 생각도 않고, 더 곁에 찰싹 붙어 있겠단 요구만 했다.

사방화도 결국 스스로는 절대 입지 않겠단 진강의 결연한 눈빛을 보고, 할 수 없이 옷을 입혀 주었다.

진강은 또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사방화가 옷을 입혀주고, 머리를 정돈해 주는 것을 행복하게 만끽했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다 끝나고 사방화가 말했다.

“다 됐어요, 이제 어서 나가세요.”

진강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곤 문기둥에 나른히 기대있는 연석을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맞고 싶으냐? 이제 막 돌아왔건만 왜 이리 소란스레 구는 것이냐?”

연석은 헛기침을 하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 뭐 돌아오자마자 주무실 줄 알았습니까?”

“무슨 일인데?”

“오늘 경성에서 있었던 일은 알고 계십니까? 어찌 생각하세요?”

“무슨 일?”

“네? 아직 모르는 겁니까?”

“네가 방금 돌아오자마자 주무셨다며, 내가.”

“형양 정씨, 우상부, 대장공주부에 관련된 일이요. 돌아와 여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도 않은 것입니까?”

진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썹만 까딱였다.

“사족은 떼고 제대로 말해. 너랑 지금 스무고개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

연석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하다, 이틀간 있던 일을 간략히 말해주었다. 

“정효양?”

진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누군지 아십니까?”

“그놈 때문에 돌아온 거다만.”

연석은 어리둥절해 눈을 크게 떴다.

“응?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 청오산 그 가파른 절벽에서 정인화를 따갔겠지. 운계 형님이 한발 늦어 죽어라 쫓아갔는데도 놓쳤다며 나더러 막으라고 하더군.”

연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문엔 폐물이라던데 그게 아닌가봅니다?”

“애초에 귀족 자제인데 폐물이겠느냐?”

연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옥이 날 깨우라 한 것이지?”

이어진 진강의 말에, 연석의 눈이 또 동그래졌다.

“어? 어찌 알았습니까?”

“그 귀한 연석 소후야께서 언제부터 진옥의 심부름꾼이 된 것이냐?”

“폐하를 만날 일이 있어 황궁에 들렸다가 폐하께서도 강 소왕야께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다 지금이 몇 시진인데 아직도 자고 있냐며 저더러 가보라 하시더군요. 마침 저도 와보고 싶어서 왔고요.”

진강도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연석에게 말했다.

“그래, 지금 바로 황궁에 갈 테니 마차를 준비시키시지요, 석 소후야.”

연석은 황당함에 순간 멍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네? 지금 제게 마차를 준비하라고요?”

“그래! 네가 기꺼이 심부름꾼 노릇을 자처하지 않았더냐?”

연석이 몇 번이고 진강을 불렀지만, 진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석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 터덜터덜,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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