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화. 상처와 꽃을 배상하려면 (2)
이내 우상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도 폐하께서 결정하실 거라 하셨으니 부인은 조용히 계시오.”
진옥은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이 아가씨 상처는 거의 완벽히 치료할 수 있겠소?”
“네. 우선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습니다.”
사방화가 말했다.
“꽃도 더없이 귀하지만 사람의 상처보다 중한 것이 있겠소? 짐이 몇 번이고 심사숙고해보았다만, 어떤 결과든 우상부와 형양 정씨 양측에서 모두 탐탁지 않을 거라 생각되오. 그래도 최대한 공평히 하는 게 낫다고 보는데.”
진옥의 말에, 우상 부인은 행여 정효양을 용서해줄까 서둘러 질문했다.
“폐하, 어찌 공평히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진옥은 우상 부인의 말엔 정일과 정성에게 말했다.
“정 대인들에게 물어보지. 둘째 공자는 아직 혼인하지 않았지?”
정일과 정성은 일제히 멍해졌다.
“예, 이리도 제멋대로 인데다 장남도 아직 혼인하지 않아 혼자입니다.”
진옥이 웃으며 말했다.
“잘됐군. 둘째 공자와 마찬가지로 우상부 이 아가씨도 아직 마땅한 짝을 만나지 못했네. 화해보단 이 방법이 나을 듯한데. 이여벽 아가씨와 정효양 공자의 혼인으로 각각 상처와 꽃을 보상토록 하지.
정효양 공자는 좀 제멋대로이긴 하다만, 짐이 봤을 땐 머리가 비상한 듯한데. 형양 정씨와 우상부 모두 존귀한 세가로서 어디로도 치우침이 없으니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혼약이 될 걸세. 두 가문 모두 어찌 생각하시는가?”
우상과 부인은 넋이 나갔고, 정일, 정성, 정효순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순간, 정효양이 깜짝 놀라 펄쩍 뛰며 반대했다.
“싫습니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여인과 혼인할 수 없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진옥의 인상이 확 굳어졌다.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너다! 당연히 그 책임은 져야지.”
“됐습니다! 그냥 차라리 제 얼굴을 똑같이, 더 심하게 망가트려 주세요.”
우상 부인은 한번 생각이나 해볼까했지만, 귀한 딸을 한사코 거부하는 정효양의 태도에 매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딸이 얼마나 귀한데, 무려 우상부의 딸이다! 네놈이 뭐라고 우리 딸을 욕보이느냐! 네놈이 혼인하겠다고 빌어도 절대 혼인시키지 않을 것이다!”
“잘됐네요. 저도 절대로 장가들고 싶지 않습니다.”
정효양의 말에, 우상 부인은 황급히 진옥을 보며 호소했다.
“폐하, 저놈이 제 얼굴을 망가뜨리겠다던 말 들으셨지요. 어서 명을 내리시어 저놈 얼굴을 똑같이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도 결코 두말 하지 않겠습니다. 얼굴값을 얼굴로 갚았으니 우상부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정효양이 바로 목을 빳빳이 쳐들며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좋습니다. 망가뜨리려면 해보세요. 어차피 전 어떤 몰골로도 살아갈 수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우상 부인을 보고, 정효순이 얼른 다가와 정효양을 뒤로 잡아당긴 후 진옥에게 정중히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부인, 노여움 푸시지요. 폐하, 어릴 적부터 저와 아버지 밑에서 버릇없이 큰 탓이니 형인 제가 아우의 모든 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진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상 부인이 다시 나섰다.
“또 네가 대신하겠다고? 어떻게? 아우 대신 얼굴이라도 해칠 건가?”
정효순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얼굴을 해쳐 부인께서 노여움을 푸실 수 있다면 아우를 대신해 얼마든 얼굴을 망가트리겠습니다.”
우상 부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돌연 정효양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형님, 그냥 나대신 우상부 이 아가씨와 혼인하는 게 얼굴을 해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요?”
정효순은 순간 멍하게 굳어버렸지만, 정효양은 나른히 흥얼거리기만 했다.
이내 정효순은 사방화 곁에 있던 금연을 바라봤다. 그렇게 정효순은 금연과 잠시 눈을 마주쳤고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 진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아우를 대신해 우상부 이 아가씨와 혼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하늘과 같은 은혜로 대장공주부와의 혼약을 거두어 주십시오.”
금연은 눈을 가늘게 떴고, 대장공주는 벌컥 화를 냈다.
“정효순! 지금 혼인 성지가 장난인 줄 아는 것이냐? 폐하께 거두어 달라면 거둬지는 것인 줄 아느냐! 우리 대장공주부 딸을 대체 무엇으로 아는 게야!”
정효순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간곡히 청했다.
“저는 금연 군주님과의 인연이 없었던 듯합니다. 폐하와 대장공주마마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너……!”
“어머니, 온몸을 바쳐 아우를 지키려는 공자님의 의로운 모습에 탄복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금연이 화가 나 앞으로 나서려는 대장공주의 팔을 붙잡고 말린 뒤, 진옥에게 정중히 공수를 올렸다.
“폐하, 정효순 공자님의 뜻을 받아들여주십시오. 이 아가씨께서 당하신 일이니 무엇보다 이 아가씨를 우선으로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대장공주가 바로 화를 냈다.
“그럼 너는! 조금 전 혼인 성지를 받았단 걸 세상이 다 아는데 그새 혼약이 파기됐다는 게 알려지면 널 대체 뭐라고 생각하겠어!”
금연이 말했다.
“동생을 지키려는 형의 의로운 우애를 받아준 것이니 대장공주부에도 영예로운 명성이 따르겠지요. 하지만 백성들이 절 비웃는대도 두렵지 않습니다.”
“너 정말……, 이 어미를 화병으로 죽일 셈이냐!”
대장공주는 아주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만났지만 충분히 기뻐할 시간도 없이 다시 남에게 보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것도 애초에 우상부에서 받아온 혼사를 다시 우상부에게 넘긴다고? 대장공주는 금연에게 화를 내야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 순간, 진옥이 손뼉을 치며 금연을 칭찬했다.
“금연이 넓은 마음으로 효순 공자의 큰 뜻을 품어주니 이는 대장공주부뿐만 아니라 우리 황실에도 아주 큰 영예다. 우상, 부인, 두 분은 효순 공자의 뜻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게…….”
우상은 꿇어앉아 간절히 부탁하는 정효순과 진옥을 번갈아 보며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말끝만 흐렸다.
우상 부인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정효순은 동생 정효양 보다 몇 천 배는 더 뛰어난 인물인 데다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을법한 뛰어난 사윗감이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그녀도 정효순을 사윗감으로 생각했었지만, 딸 이여벽의 반대로 할 수 없이 무른 혼사였다.
우상 부인이 다시 우상을 바라보자, 우상이 심사숙고하며 답했다.
“특별한 일이니만큼 우선 벽이 뜻도 들어보고 신중히 정해야 할 듯합니다.”
그러자 우상 부인이 말했다.
“나리, 벽이 뜻은 들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벽이가 지금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인가요? 얼굴도 다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혼인하겠단 공자인데 이를 거부하면 장차 벽이 한평생을 날려버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강요를 해선 안 되지. 본인이 원치 않는 혼인을 했다간 그냥 평생 원수지간밖에 더 되겠소?”
우상의 말이 끝나자, 정효순이 갑자기 결연하게 말했다.
“한평생 이 아가씨께 잘 대해줄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우상 대인, 제 뜻을 받아주십시오.”
“이것 참……. 청아, 넌 어찌 생각하느냐?”
우상이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이목청에게 물었다.
“우상부 딸이 얼굴을 다쳤다지만, 그 고귀함만큼은 결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혼인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새어 나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상부를 어찌 보겠습니까? 전 반대입니다.”
이목청의 답에, 우상 부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청아, 그럼 네 누이는 어떡한단 말이냐?”
“어머니, 딸의 영예가 용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강제로 효순 공자와 대장공주부의 혼사를 무르고 누이와의 혼인을 추진한다면 누이의 명성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평생 행복은 할까요?”
우상 부인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정효순이 말했다.
“아무도 핍박한 적 없습니다. 제가 아우를 대신해 진심으로 이 아가씨에게 장가들길 청하는 것입니다.”
이목청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이토록 한 몸 다 바쳐 동생을 지켜내시다니 효순 공자는 참으로 좋은 형이군요. 나도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공자, 이 부분은 생각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토록 아우를 아끼시는데 우리 동생이 혼인을 하여 혹여나 싸우게 된다면 벽이와 효양 공자 중 누구 편을 드실 겁니까?”
“효양에게 형수님은 어머니와도 같은 위대한 존재니, 이 아가씨를 평생 존중히 대하도록 아우를 잘 가르치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르쳤다는데 지금도 공자 말을 듣고 있질 않잖습니까. 그런데 우리 누이를 존중히 대하도록 하겠단 말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정효순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아우를 절대 눈감아 주지 않고 더욱 엄격히 대하겠습니다. 이 공자님, 염려 마십시오.”
그 순간, 정효양이 픽,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리 형이 참으로 좋은 형님이셨네요.”
정효순이 매섭게 말했다.
“그 입 다물어라.”
정효양은 금세 또 귀를 또 틀어막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입 닫을게요. 형님은 저 여인과 혼인 많이 하세요.”
“너…….”
정효순은 간신히 화를 눌러 참았다.
하지만 이번엔 우상 부인이 다시 분개하기 시작했다.
“폐하! 저 비열한 놈 좀 보십시오! 지금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정말 죽여 마땅한 놈입니다. 저놈을 벌하지 않으니 실로 제 화가 가라앉질 않습니다!”
진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 형이 아우의 죄를 대신하겠다는 건 선례에도 있던 일일세. 부디 노여움 푸시게나.”
그리고 진옥이 이목청을 돌아보았다.
“목청, 너는 동의하지 않는단 말이냐?”
이목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 누이 모두 동의한다면 저도 별수는 없지요.”
진옥은 다시 숨을 한번 고른 뒤 말했다.
“이 아가씨는 깨어났나? 우상, 만약 이 아가씨가 동의한다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하시고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폐하! 제가 직접 이 아가씨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원수져서 좋을 일은 없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이 아가씨와 혼인해 한평생 책임지고 아가씨를 잘 대해드리겠다는 것도 오로지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괜히 힘들게 우상부에 무게를 실어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소문이 나더라도 제가 직접 나서 아가씨께서 절대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효순이 중간에 진옥을 향해 간청했다.
진옥은 곧 우상을 바라봤고, 우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 효순 공자를 데리고 다녀오너라.”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우상 부인은 이여벽이 반대할까 걱정만 앞섰다. 어쨌든 정효순이 자처한 일이니 소문이 나도 그의 책임이라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에 우상 부인은 우상에게 같이 가겠단 뜻을 표했다.
“저도 가볼게요.”
우상은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정효순, 이목청, 우상 부인이 나란히 이여벽의 뜰로 향했다.
세 사람이 나가고 이번엔 대장공주가 노발대발했다.
“폐하!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멀쩡한 혼사를 물러 대장공주부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잖습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정성은 바로 앞으로 나와 대장공주에게 사죄했다.
“다 우리 집안의 잘못입니다. 대장공주마마를 뵐 면목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대장공주마마께 용서를 비는 것밖엔 달리 방법도 없군요.”
대장공주는 화가 나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