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화. 아우의 죄를 대신하려는 형 (2)
사방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이여벽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방화도 이내 차갑게 굳어버린 이여벽의 눈을 마주했다.
잠시 후, 이여벽이 물었다.
“소왕비마마, 잘 치료될 수 있겠습니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나요?”
사방화는 심사숙고하며 답을 골랐다.
“상처가 깊어 옅은 흉이 남을 것 같지만 그래도 거의 다 회복될 거예요.”
“원래대로 돌아갈 순 없다는 뜻이지요?”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불가능하단 얘기입니까?”
사방화는 잠시 침묵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속 시원히 말씀해주세요.”
사방화는 잠시 이여벽을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선 상처가 회복되는 걸 지켜봐야 해요. 날 비롯해 그 어떤 의원이 와도 무조건 다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요. 내 의술로 보기엔 가까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흉 정도만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대로 회복될 수 없다면 그대로 둬도 됩니다.”
이여벽의 말에, 우상이 벌컥 소리쳤다.
“벽아,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지, 전 그냥 이대로 있겠습니다. 어차피 제게 용모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상이 노하여 꾸짖었고, 우상 부인도 다급히 외쳤다.
“용모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한데! 제때에 잘 치료하지 않으면 한평생을 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상 부인은 조금 전 패기는 간데없이 사방화에게 간청을 했다.
“소왕비, 벽이 말 듣지 마시고 어서 치료해주시오. 잘 회복되기만 한다면 그 은혜 절대 잊지 않겠소.”
영친왕비는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지만, 사방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이여벽 곁에 앉았다.
깨끗한 물로 이여벽 얼굴을 씻기려는데 이여벽이 단호히 고개를 돌렸다.
“치료 안 할 겁니다.”
사방화는 말없이 우상을 올려다보았고, 우상이 바로 애원하듯 설득했다.
“안 된다. 말 듣거라. 멋대로 고집 부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다 큰 아이가 왜 이리 우리 걱정을 시키는 것이냐.”
이목청도 다가와 이여벽을 달랬다.
“누이야, 치료할 시기를 넘겨선 안 된다. 착하지, 어서 말 듣거라.”
이여벽은 더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라버니, 정말 치료하기 싫어요! 어차피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치료를 안 하는 게 나아요.”
조용히 있던 사방화도 입을 열었다.
“완전히 장담할 순 없다고 했지만, 절대 불가능하단 말은 안 했어요. 해보지도 않고 어찌 알아요? 계속 지체하다간 정말 치료가 불가능할 거예요.”
우상 부인은 애가 타는 듯 재차 이여벽을 설득했다.
“벽아, 말 듣거라. 그 죽여 마땅한 정효양은 이 어미가 절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야.”
그러자 우상이 바로 호통을 쳤다.
“어디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오! 폐하께서 계시니 부인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오.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지.”
우상 부인은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체 울긴 왜 우는 것이오! 아휴…….”
우상은 머리가 지끈거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이목청을 바라보았다.
이목청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이여벽의 목덜미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여벽이 의식을 잃자, 이목청이 바로 동생을 품에 안고 말했다.
“이렇게들 모여서 뭘 하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모두 나가 계십시오. 저는 소왕비마마를 도와 누이 치료를 돕겠습니다.”
우상은 고개를 끄덕이곤 우상 부인에게 나오라 손짓했다. 우상 부인도 매서운 우상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뒤를 따라나섰다.
영친왕비, 대장공주도 뒤따라 방을 나갔고, 금연만 홀로 방에 남아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고요해진 방, 이목청이 차분하게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소왕비마마, 시작하시지요. 필요한 게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인 후, 우선 이여벽의 상처를 씻기고 소독했다. 상처는 어찌나 깊은지 뼈가 다 보일 듯했다.
곧 그녀는 가장 좋은 금창약, 기름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로 얼굴을 세심하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손을 씻고 처방전을 써 이목청에게 내밀었다.
이목청이 처방전을 받아들며 나지막이 물었다.
“이렇게 깊은 상처는 진정 완벽히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겁니까?”
사방화는 물음에 답하는 대신, 금창약과 연고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아가씨를 잘 보살펴 주세요. 조금 전 내가 약을 바르던 모습을 보셨죠? 그렇게 하루에 3번씩 발라주시면 됩니다. 절대로 물에 닿아선 안 돼요. 열흘 후, 다시 상황을 보고 말씀드릴게요.”
이목청이 약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화는 금연에게 고갯짓을 한 뒤 함께 방을 나섰다.
계속 바깥에서 기다리던 진옥이 서둘러 사방화에게 다가왔다.
“어떻소?”
“제 의술로 거의 예전만큼 회복되게 할 순 있지만, 가까이서 봐야 보일만큼 아주 미세한 흉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가 너무 깊어 거의 뼈가 다 보일 정도였습니다.”
진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상도 화가 나 형양 정씨 사람들을 힐끗 보곤 진옥에게 대화를 청했다.
“폐하, 객정에 들어가 말씀 나누시지요.”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곤 영친왕비와 사방화에게 말했다.
“백모님, 다 함께 같이 갑시다.”
영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행은 모두 우상부 객정에 다다랐다.
형양 정씨 일가 세 사람은 하나같이 수심에 잠긴 얼굴로 초조해했지만, 정효양이 우상부 어느 곳에 갇혀 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묻지 않았다.
객정에 들어서 모두가 다 자리에 앉기도 전, 우상 부인이 다짜고짜 눈물을 쏟으며 진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께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저와 벽이는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는데 정효양이 갑작스레 마차를 들이받아 마차가 뒤집힐 뻔했습니다. 제가 누구냐 물으려던 순간 느닷없이 채찍을 휘둘러 벽이를 저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폐하, 사람에게 용모가 얼마나 중한 일입니까? 저 간악한 놈을 폐하께서 일벌백계하여 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간 또 누군가 벽이처럼 아무 이유 없이 상처 입는 일이 생기고 말 겁니다.”
진옥은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부인, 우선 일어나시게. 형양 정씨 정 어른, 정 대인, 정 공자 모두 이 자리에 계시니 응당 그 대가를 치러줄 것이네.”
소천자도 얼른 다가와 우상 부인을 일으켰다.
“부인, 어서 일어나시지요. 폐하께서도 이 일을 마냥 지켜보실 분이 아니란 걸 잘 아시잖습니까. 게다가 형양 정씨는 예교가 아주 엄하기로 알려진 세가 대족입니다. 족법이 예법보다도 엄한 대족이니 분명 우상부에 마땅한 보상을 해 주실 겁니다.”
우상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곤 오늘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당장에 정효양을 죽일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일의 하얗고 덥수룩한 수염은 순간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곧 정성이 애써 다급한 기색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나 진옥과 우상에게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아들놈이 소리 없이 뒤따라 경성에 와 우상부 이 아가씨에게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없이 자란 탓에 제가 응석받이로 키운 것…….”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세요. 아드님 교육을 잘못시킨 건 당연히 아버지 책임이지,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해서 뭐 합니까! 대체 어찌 보상해줄 것인지나 말씀하세요. 우리 보물 같은 딸아이 얼굴이 저 지경이 됐습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시면 아드님도 당장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아세요!”
정성은 우상 부인의 말에 순간 넋을 다 잃어버렸다.
그때, 정효순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상과 부인에게 정중히 공수를 올렸다.
“저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아우는 제 아버지와 형인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이 큰 화를 부르고 만 것입니다. 저 정효순이 동생의 죄를 대신해 우상부에서 내려주시는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정효순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너는 너고 아우는 아우지! 네가 대신 벌을 받는다고 동생이 저지른 잘못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우상 부인이 화를 냈다.
“오래도록 제가 아우를 가르쳐 왔기에 아우의 잘못은 이 형의 잘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상 대인과 부인께서 제게 벌을 내려주신다면 모두 다 군말 없이 달게 받겠습니다.”
정효순이 숙연하게 말했다.
우상 부인은 정효순을 가만히 바라보다, 진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네가 스스로 자처해 대신 벌을 받겠다고 한 거다. 폐하, 들으셨지요. 정효순이 아우의 죄를 대신해 받겠다고 합니다. 제 딸의 용모는 결코 이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으니 엄벌을 내려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진옥은 다시 정일과 정성을 보며 말했다.
“정 어른, 정 대인께선 어찌 생각하시는가?”
정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형양 정씨에서 백번 잘못한 일입니다. 정성은 아들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요, 효순도 아우를 가르치는 데에 책임이 있으니 폐하께서 뜻을 내려주십시오. 폐하께서 어찌 처리하시든 형양 정씨는 절대 원망치 않겠습니다.”
사방화는 정일을 다시 보았다. 형양 정씨의 가주인 정일은 극한의 상황 앞에선 기꺼이 자신의 가족까지 내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형양 정씨 적통 장자가 철없는 동생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겠다고 나섰는데, 형양 정씨 가주는 이에 대해 군말 없이 감싸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의아해 아무런 말도 이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내 대장공주가 뭔가 반박을 하려는데, 순간 금연이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장공주는 하는 수 없이 우상을 보고 물었다.
“우상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우상은 정효순이 아우를 대신해 벌을 받겠다며 나설 줄은 몰라서 순간적으로 더 당황했다. 정효양을 용서해 주자니 딸의 얼굴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죄를 쉽사리 용서하기 힘들었다. 또 정효양을 용서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누구나 우상부를 만만하게 보고 행패를 부리려할 게 뻔했다.
그럼 용서하지 않는다면? 형양 정씨 적자 정효순이 대신 벌을 받겠다는데 이를 어찌 수락할 수 있을까. 특히 정효순은 금연과 혼인 성지를 받아 대장공주의 사위가 됐고, 진옥도 되도록 형양 정씨를 구슬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 우상 부인이 다시 통곡을 하며 외쳤다.
“나리, 마음 약해지셔선 안 됩니다! 벽이 얼굴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셨잖습니까. 앞으로 시집은 또 어떻게 가겠어요? 한평생을 날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벌을 내리지 않으면 한평생 마음에 한이 될 거예요!”
우상은 짙은 한숨을 내쉰 뒤 진옥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그러자 우상 부인은 또 서둘러 진옥에게 말했다.
“폐하, 절대 용서해주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머리를 박고 죽겠습니다.”
우상은 벌컥 화를 냈다.
“부인! 뭐 하는 짓이오!”
우상 부인은 계속 울면서 호소했다.
“나리! 평생 소첩이 이렇게 난리 치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제 딸이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상처 입는 걸 똑똑히 봤어요! 제 심장을 파내는 것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형양 정씨가 자식 교육을 잘못해 저런 자식을 밖으로 내보냈잖아요! 저 오만방자하고 난폭한 정효양을 보세요. 여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을지도 모릅니다!”
우상은 서둘러 진옥에게 용서를 구했다.
“폐하, 부인은 여태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고 무례하게 군 적이 없었습니다. 소신의 딸이 다쳤다는 점을 헤아려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마음은 짐도 충분히 이해하네. 짐도 정효양을 용서치 않을 테니 부인께서도 안심하게나. 우상, 지금 정효양은 어디 있는가?”
“예, 부인이 사람을 시켜 가뒀다고 했으나 소신은 아직 못봤습니다.”
그리고 우상은 말없이 우상 부인을 바라보았다.
“폐하께 아룁니다. 땔감 창고에다 가두어 감시하라고 시켜두었습니다.”
우상 부인의 말에,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
“우선 그자를 데려오시게. 짐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벌을 내리겠네.”
우상이 고개를 끄덕이곤 집사에게 말했다.
“정효양을 데리고 오거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