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8화 (818/978)

818화. 아우의 죄를 대신하려는 형 (1) 

이야기는 반 시진이 지나도록 멈출 줄을 몰랐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시화의 등장에 사방화는 대화를 잠시 멈췄다.

“소왕비마마, 조금 전 명 부인께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형양 정씨에서 온 사람이 세 분이 아니라 둘째 공자님 한 분이 더 계신다고 합니다.”

“뭐?”

사방화가 고개를 돌렸다.

“정효순 공자님의 친동생이신 둘째 공자님도 오셨다고 하네요. 평소 그저 빈둥빈둥 놀며 다양한 풍류만 즐기고 큰 뜻도 없어 썩 잘난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 부인께서 둘째 공자님을 회임하셨을 때, 태아와 심장이 이어져 자라나 부인께선 아드님을 위해 생을 마감하셨답니다. 임종 전 큰 나리, 큰 공자님께 둘째 공자님을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떠나셔서 과분한 귀애를 받고 자랐답니다. 한마디로 버릇이 잘못 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왜 폐하께는 알리지 않은 거지?”

“세 분보다 뒤늦게 경성에 오신 거라고 합니다. 게다가 형양 정씨에서 특출 난 자손도 아니니 아무도 둘째 공자님을 신경 쓰지 않았겠지요.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아뢰지 않았을 겁니다.”

“명 숙모님께서 뭐라고 더 하신 말씀은 없고?”

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형양 정씨를 민감하게 보고 있으니 둘째 공자님 명성도 좋지 않고 한 가족이라 더 주시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명 숙모님께 알겠다고 전해드려. 폐하께선 아직 안 가셨지?”

“네.”

“그럼 소천자에게도 알려.”

시화가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바깥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화가 나가자마자 누군가 낙매거로 와 부인들도 이제 자리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 아가씨들도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고 인사하며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사방화는 아가씨들을 입구까지 배웅하려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데, 시화가 다시 다가와 말을 전했다.

“소왕비마마, 둘째 공자님께서 길에서 우상부로 돌아가던 우상부 마차를 들이받았답니다. 우상 부인께서 무슨 일이냐 물으시려는데, 돌연 길을 막지 말라 채찍을 휘둘렀고 우상 부인을 보호하려던 이 아가씨가 얼굴 한쪽에 큰 상처를 입었답니다. 둘째 공자님은 바로 우상부로 잡혀가셨고요.”

사방화는 순간 넋을 잃었다.

“우상 부인과 여벽은 일찍이 왕부를 떠나셨잖아……?”

“가시는 길에 우상 부인께서 잠시 물건을 산다고 시간을 지체했던 게 둘째 공자님과 맞닥뜨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사방화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형양 정씨 둘째 공자가 정일, 정성, 정효순을 뒤따라 경성에 입성하자마자 하필 우연히 우상부 마차를 들이받고, 이여벽 얼굴에 상처까지 냈다고?

우상 부인이 이를 어찌 가만히 두고만 보겠는가? 우상도 분명 격노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 둘째 공자는 아버지 정성과 형 정효순이 보배처럼 여기는 인물이었다. 이제 형양 정씨와 우상부는 서로 원수가 되는 것인가?

우상은 벌써 두 황제를 모신 중신으로 선황의 중임을 얻고, 장차 진옥에게도 중용될 것이 당연한 인물이었다. 

형양 정씨는 얽힌 게 많아 아주 깊이 고인 물과 같아서 서서히, 또 조용히 한 번에 제거해야만했다. 거기다 조금 전 대장공주부와 사돈을 맺었는데 이 시점에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가. 자칫하다간 강산이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갑작스레 일어난 일로 인해 진옥이 중간에 난처해진 터였다.

사방화는 이 엄청난 관계를 빠르게 정리한 뒤, 시화에게 물었다.

“시화, 그래서 형양 정씨 둘째 공자가 우상부로 잡혀갔다고?”

“예, 우상부로 압송되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니?”

“지금쯤이면 아실 듯합니다.”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폐하께선 아직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지?”

“그렇습니다.”

사방화가 다급히 수사로 걸음 하려는데, 마침 소천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소왕비마마! 폐하께서 어서 우상부로 오시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우상부 이 아가씨의 상처가 심각해 태의께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소왕비마마께서 와주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어. 폐하는 어디에 계셔?”

“폐하께선 지금 대문에서 소왕비마마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방화는 발걸음을 돌려 대문으로 향했다. 

영친왕부 대문에 다다르니 진옥, 정일, 정성, 정효순, 영친왕비, 대장공주, 금연이 모두 모여 있었다.

“우상부로 갑시다. 우선 이 아가씨를 치료하고 다시 얘기하지.” 

진옥의 말에, 사방화도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진옥의 옥련을 선두로 각자 말과 마차를 타고 함께 우상부로 향했고, 사방화와 영친왕비는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 * *

영친왕부 마차 안.

“방화야, 네가 보기엔 일이 너무 공교롭다고 생각되지 않니? 오늘 날씨가 이리도 좋으니 거리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큼 당연히 마차도 많을 텐데 형양 정씨 둘째 공자는 어찌 하필 우상부 마차만 들이받은 것일까?”

영친왕비의 말에,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서 살펴봐야겠습니다.”

영친왕비가 다시 걱정스레 말했다.

“정말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 어찌 하필이면 형양 정씨 둘째 공자가 나타난단 말이냐? 이 둘째 공자에 대해서 알고 있니?”

“예, 시화가 알아봐주었습니다.”

사방화는 명 부인이 전해준 소식을 영친왕비에게도 들려주었다. 

“그랬구나. 역시 응석받이로 큰 자네. 이여벽의 상처가 잘 치료될 수만 있다면 좋겠구나.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진 이르지 않아야 할 텐데.”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 * *

또 다른 마차 안, 이곳엔 대장공주와 금연이 타고 있었다.

“형양 정씨에 둘째 공자도 있었단 말이야?”

대장공주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설마 모르셨던 건 아니지요? 제 짝을 찾아준다고 하셨을 때 형양 정씨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안 알아보셨어요?”

금연이 말했다.

“형양이 좀 멀어야지. 정효순은 민 부인과 우상 부인의 엄청난 기준을 뚫고 선택받은 공자였으니 당연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자세히 묻지 않았다.”

금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언니는 아실 수도 있으니 조금 이따 물어볼게요.”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이런 일이 난단 말이냐. 조용히 해결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구나. 금방 혼인 성지를 받은 너희에게 불길한 기운이 더해져선 안 될 텐데.”

금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하든 불길하든 무슨 상관인가? 그녀가 선택한 길은 이미 가시밭길이었으나 첫판부터 우상부까지 얽혀 시끌벅적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뿐이었다.

* * *

황제의 옥련 내에선 진옥이 소천자에게 분부를 내리고 있었다.

“형양 정씨 둘째 공자에 대해 알아보거라.”

그렇게 소천자는 서둘러 길을 떠났고, 말을 탄 정일, 정성, 정효순도 긴장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도 정효양이 소리 없이 세 사람의 뒤를 따라 경성으로 와 엄청난 사고를 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보였다.

* * *

일행은 서둘러 우상부에 다다랐다.

소식을 들은 우상도 다급히 부로 돌아왔고 그와 함께 조사를 보던 영친왕과 좌상, 영강후도 함께 왔다. 이목청도 소식을 듣고 이미 돌아와 있었다. 

일행들은 문어귀에서 진옥을 맞으려 대기하고 있었다.

이내 진옥이 옥련에서 내려 우상에게 손짓했다. 

“짐도 소식을 듣고 서둘러 왔네. 우리 계수의 의술이라면 충분히 여벽을 잘 살펴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함께 모셔왔네.”

“감사합니다, 폐하. 감사하오, 소왕비.”

우상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진옥과 사방화에게 공수를 올렸다. 

“이 아가씨는 어디 계십니까? 어서 안내해 주십시오. 치료가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사방화의 말에 우상이 고개를 끄덕이곤 길을 안내했다. 

일행은 나란히 우상부 내원으로 향했다.

* * *

이여벽은 곧장 방으로 옮겨졌고 우상 부인과 이목청이 그녀의 방에 함께 있었다. 두 태의도 이미 먼저 와 있는 상태였다.

이여벽의 뜰은 우상 부인의 울음소리와 원망 섞인 욕설로 가득했다.

그때, 정일, 정성, 정효순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외간 사내는 여인의 규방에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옥 역시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영친왕비에게 말했다.

“백모님, 계수와 함께 우상을 따라 들어가시지요.”

영친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화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이내 정일이 대장공주에게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대장공주마마, 군주와 함께 들어가 살펴보시고 저희에게도 상황이 어떤지 알려주십시오.”

대장공주는 이여벽의 상처가 어떤지 직접 봐야 형양 정씨도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역시 금연의 손을 이끌고 함께 들어섰다.

방 안 침상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이여벽이 앉아있었다.

우상 부인은 딸 곁에 앉아 목 놓아 울며 이성을 잃은 듯 욕설을 하고 있었다. 항상 단정하고 현숙했던 그녀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녀가 다쳤는데 세상 그 어떤 어머니가 평온할 수 있을까. 본래 부모에게 자녀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목숨보다 존귀한 존재였다.

방 한쪽에 서 있던 오라버니 이목청도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두 태의 역시 속수무책, 답이 없다는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 우상과 함께 들어온 사방화, 영친왕비를 보고 이목청이 고개를 돌렸다. 우상도 막 입을 떼려는데, 순간 우상 부인이 사방화에게 화를 냈다.

“소왕비! 자네가 여기 왜 온 것인가! 당장 나가!”

사방화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분노한 우상 부인을 바라보았다. 

영친왕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상 부인을 호통 쳤다.

“지금 뭐 하는 것인가! 방화는 여벽을 치료를 해주러 온 의원인데 방화를 내보내면 누가 자네 딸을 치료해주겠는가? 속상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만 원수는 따로 있는데 아무에게나 화풀이해선 안 되지!”

사방화는 우상 부인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상도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보탰다.

“울긴 왜 우시오? 나가야 할 사람은 당신이오. 방해하지나 말고 나가 계시오. 청아, 어머니 모시고 좀 나가 있거라.”

그러자 이목청이 바로 다가와 우상 부인을 일으켰다.

“어머니, 나가서 진정 좀 하고 오시지요.”

우상 부인이 울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안 나간다.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야! 내가 휘장을 열고 정효양을 추궁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벽이가 저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모두 내 탓이다!”

“이제와 자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소? 치료가 우선이니 어서 나가계시오.”

그리고 우상은 사방화에게 공수를 올렸다.

“소왕비, 부인이 잠시 이성을 잃어 멋대로 한 말이니 왕비마마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오.”

사방화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부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 갑니다. 우상 대인께서도 안심하세요. 최선을 다해 치료해 보겠습니다.”

우상이 감격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화는 이여벽에게 다가가며 분부를 내렸다.

“맑은 물 한 대야를 떠오너라.”

이여벽의 상처를 자세히 마주하게 된 순간, 사방화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처라면 이런 상처라면 언신의 그 뛰어난 의술로도 흉이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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