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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화 (808/978)

808화 직설적인 청혼 (1) 

세 사람이 웃고 떠드는 사이, 또 바깥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금연은 바로 고개를 돌려 이야기했다.

“정엽미, 왕자명, 정옥병, 송금염이 왔네. 미인 대회 나가는 것 마냥 하나하나 꽃단장을 하고 왔어.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그러다 금연이 픽, 웃으며 연람에게 말했다.

“람아, 너는 태후마마와 폐하께서도 오시는 날인데 너무 성의 없이 평소처럼 하고 온 거 아니니?”

연람이 목을 움츠리며 바로 금연의 말을 맞받아쳤다.

“군주님은 뭐 다른 줄 아세요?”

“내가 어찌 너랑 같아? 난 이미 혼사도 거의 정해진 몸인데.”

그에 연람은 곧장 금연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결정하신 거예요? 아무리 형양 정씨 정효양이 좋다고 해도 폐하께는 비교도 안 될 텐데, 나중에 후회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후회 안 해.”

금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형양은 너무 멀리 있잖아요.”

“그리 먼 것도 아니야. 우직하게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 올 수 있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와도 돼.”

연람이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경성 밖에 나가본 적도 없는걸요. 대신 시집가는 날 곁에 있어 드릴게요.”

금연이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시집가는 날 벗이 옆에 있어 준다는 규율도 있나?”

“규율은 사람이 정한 것뿐이에요. 방화가 혼인하던 날에도 우리가 자매처럼 황궁에 같이 있어줬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리고 연람은 사방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방화, 형양이 그렇게 놀기 좋은 곳이라던데 우리 같이 가 봐요. 어때요?”

사방화는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면 금연을 배웅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금연은 사방화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먼 곳까지 가는 게 부담스럽지만 않다면 저도 함께 있어 긴장하지 않을 수 있으니 좋지요.”

“그래요! 동의했으니까 그렇게 정한 거예요?”

연람의 말에, 내내 조용하던 명 부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금연이 아니라 대장공주마마께서 허락해주셔야지.”

연람은 그제야 대장공주가 생각났는지 얼른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그러네요? 꼼꼼하신 대장공주마마께선 우리 둘이 혹여나 분위기를 망칠까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형양 정씨 사람들도 아직 경성에 오기 전인데 벌써부터 이런 얘기를 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나요?”

금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정엽미, 왕자명, 정옥병, 송금염이 들어왔다.

여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기 바빴고, 명 부인은 순식간에 꽉 들어찬 주변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로 일어났다.

“그래, 숙녀 분들은 정답게 이야기 나누세요. 나는 부인들께 가봐야겠어. 부인들도 다 오셨지?”

그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들 모두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연이어 사방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모님, 수사에 가서 같이 꽃구경해요.”

연람도 바로 동의했다.

“맞아요. 난각에선 꽃을 볼 수 없잖아요. 같이 가세요. 부인과 아가씨, 남자 손님들 자리를 전부 따로 마련해두셨다고 들었지만, 어차피 모두 수사에 있으니 다 같이 가면 돼요.”

명 부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여인들은 웃고 떠들며 일어나 나란히 수사로 걸어갔다.

* * *

맑고 창창한 날씨, 햇빛도 적당했다. 수사의 호수도 바람 옷을 입고 주변에 시원한 공기를 만들어주었다.

수사에 다다르니, 영친왕비와 부인들이 한쪽에서 담소를 나누며 꽃구경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부 전체는 꽃향기로 가득했고, 아리따운 여인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입은 것을 보니 꼭 살아 숨 쉬는 한 폭의 그림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이내 아가씨들이 부인들에게 인사하자, 부인들도 미소를 지으며 아가씨들을 바라보았다.

많은 아가씨들 중에서도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역시 사방화였다.

사방화는 살이 빠져 야윈 모습이었지만, 그림처럼 고운 눈매와 기품 있는 분위기는 이 미인들 가운데서도 눈에 확 띌 만큼 아리따웠다.

과연 이 아름다운 사씨 아가씨는 또 얼마나 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진강과 진옥, 그 뛰어난 형제들이 연정을 위해 그토록 열렬한 다툼을 벌인 것에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인들은 한동안 그렇게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 정겹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나눈 뒤, 영친왕비가 문득 사방화에게 물었다.

“방화야, 근데 설영이는 어디 갔니?”

“아, 은희가 자형화를 보고 싶대서 데려가셨습니다.”

영친왕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진호 뜰의 자형화가 볼만하긴 하지. 조금 저 경이도 자형화를 보러 진호와 함께 갔단다.”

명 부인은 순간 넋을 잃었다.

사방화는 이내 말없이 고개를 돌려 자형원 쪽을 바라봤다가, 마침 멀리서 노설영과 함께 걸어오는 사은희를 발견했다.

그런데 왠지 사은희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아보였다.

사방화는 문득 지난 번 낙매거에서 진경이 공자들 앞에서 사은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날이 떠올랐다.

연람도 곧 노설영과 사은희가 걸어오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제 오네요.”

모두의 고개가 돌아가자, 사은희는 갑자기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고개를 쏙, 내밀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하, 은희만 보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볼 때마다 저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으니 우리 왕부에 가득한 꽃보다도 더 고운 것 같네.”

영친왕비의 말에, 명 부인이 몹시 부끄러워했다.

“왕비마마, 제 얼굴이 더 닳아 오르겠습니다. 그만 하십시오.”

“은희를 보면 늘 우리 연이가 떠올라. 한참 전 임안성에서 요양을 하고 있단 말을 마지막으로 여태 소식이 없으니 좀 괜찮아진 건지 모르겠네.”

금세 걱정에 젖은 영친왕비를 보고, 사방화가 얼른 말을 꺼냈다.

“어머님, 염려마세요. 지금쯤이면 거의 다 나았을 겁니다.”

영친왕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때마침 노설영과 사은희가 다가와 부인과 아가씨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셨어요, 부인. 아가씨들도 안녕하세요.”

사은희의 명랑한 인사에, 한 부인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명 부인은 복도 많으시지. 편히 해.”

영친왕비도 사은희를 칭찬하려는데, 뒤쪽에서 걸어오는 진호와 진경이 보였다. 진경은 또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에 영친왕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또 왜 저런다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명 부인이 고개를 돌려 사은희를 바라보자, 사은희는 금세 사방화에게 가서 방긋방긋 웃으며 사방화의 팔을 달랑달랑, 흔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명 부인은 다시 진경과 진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한편 사방화는 제 팔을 흔드는 사은희의 손에 다소 힘이 들어간 걸 느꼈다. 웃고 있지만, 숨결에선 다소 불안함과 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방화도 어느 정도 상황이 추측되었다.

진경은 영친왕부로 오자마자 사은희를 먼저 찾았지만, 그녀가 노설영과 자형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진호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듯했다. 아마도 그곳에서 사은희에게 무슨 말을 했던 거겠지……. 사방화는 사은희의 손등에 손을 얹고, 조용히 그녀의 손을 토닥거렸다.

사은희는 계속 사방화의 팔을 흔들며 일부러 근처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부끄러운 말을 했다.

“방화 언니, 저 소피가 마려워요. 아까 꽃구경하느라 못 갔는데 저랑 같이 변소 좀 찾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명 부인이 다급히 사은희를 나무랐다.

“시녀에게 말하면 될 걸 어찌 손님맞이를 할 방화에게 그러는 것이야?”

그러자 연람이 웃으며 사방화를 떠밀었다.

“괜찮습니다, 명 부인. 다들 가까운 친우인데 특별히 맞이할 것도 없지요. 저도 사씨 자매들 중에 은희가 방화를 제일 잘 따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방화, 어서 동생을 변소로 데려다주세요.”

“연람 언니가 절 놀려요.”

사은희는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이내 사방화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사방화도 사은희가 따로 할 얘기가 있어 부른 것임을 알고 군말 없이 웃으며 사은희에게 이끌려나왔다.

* * *

수사를 나오니, 맞은편엔 진경과 진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방화는 담담히 진호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주버님.”

진호는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나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에 답했다.

“계수, 편히 하세요.”

진호는 정말 많이 반성하고 있는 듯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낭군님이 안 계셔서 오늘 아주버님께서 대신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한 가족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아우를 대신해 최선을 다해보겠소.”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호는 영친왕비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내 홀로 남은 진경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사은희를 보며 입술을 떼려는데, 사은희가 즉각 냉정한 소리로 경고했다.

“여기서 아무런 말씀이나 하셨다가는 정말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진경은 안색이 급변했고, 사은희는 그대로 사방화를 끌고 가버렸다.

진경은 한동안 멀어지는 그녀들을 보다 입술을 꾹 깨물며 소리쳤다.

“형수님!”

사방화는 제대로 성이 난 사은희를 살짝 보곤 진경을 돌아보았다.

진경의 애절한 표정에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사방화는 결국 사은희의 손에 이끌려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그림자마저 자취를 감추고, 진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 *

진호는 문득 진경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다시 돌아가려다 부인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있는 것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망에 휩싸여있는 진경, 잔뜩 모인 부인들 중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

그때, 부인들이 먼저 이쪽으로 다가와 진호는 바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영친왕비가 진호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진호야, 경이는 왜 저러고 있는 것이냐?”

진호가 고개를 들어 잠시 노설영을 보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좋아하는 귀뚜라미 한 쌍을 데려왔는데 조금 전 연석에게 뺏겨 시무룩한 가 봅니다.”

연람이 바로 반응을 했다.

“응? 우리 오라버니도 오셨어요? 어디 계십니까?”

“귀뚜라미를 가지곤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아. 그래서 더 화가 난 거다.”

진호의 답에, 영친왕비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 귀뚜라미를 가지고 노느냐. 그걸 뺏는 연석도 참.”

“분명 아주 특별한 귀뚜라미일 겁니다. 별 볼 일 없는 귀뚜라미라면 오라버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예요.”

진호는 연람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진경을 돌아보았다.

“경아, 이리 오거라.”

진경은 서둘러 안색을 고치고 다가와 부인들에게 인사했다.

“경아, 태황태비마마께선 어찌 안 오신 것이냐?”

영친왕비가 웃으며 물었다.

“태황태비마마께선 늙으신 몸이라며 이런 떠들썩한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영친왕비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마께서도 참, 진호가 말하길 연석이 네 귀뚜라미를 뺏어갔다던데?”

진경은 진호를 흘낏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큰어미가 찾아줄 테니 즐겁게 있다가 가거라.”

영친왕비가 다정히 진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진경은 얼굴을 붉히며 잠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 한껏 진지한 모습으로 영친왕비를 바라보았다.

“백모님, 형님께 꼭 찾아주셔야 해요. 그 귀뚜라미는 혼담을 꺼내려고 준비해 온 것입니다.”

영친왕비를 비롯한 부인들 전체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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