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6화 (806/978)

806화 서재의 밀담 (1) 

한편, 막 영친왕부로 온 소천자가 희순을 따라 영친왕비에게 향했다. 

영친왕비는 태후가 온다는 말에 한번 놀라고 진옥이 태후를 모시고 함께 온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왕년에 태후마마께서 시끌벅적한 걸 싫어하시기에 황궁엔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만, 올해 황상과도 함께 오신다니 참으로 잘됐구나.”

소천자는 심부름을 마치곤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영친왕비는 황제가 태후와 함께 꽃구경을 오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실마리가 풀리질 않았다. 그에 영친왕비도 사방화를 만나러 낙매거로 향했다.

사방화도 노설영을 보내고, 시화에게서 내일 태후와 진옥도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방으로 가 계속 옷을 만들었다.

이내 영친왕비가 낙매거로 들어와 시화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시화, 방화는 지금 쉬고 있느냐?”

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왕비마마께선 지금 옷을 만들고 계십니다.”

영친왕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곤 방으로 들어섰다.

“방화야, 어찌 안 쉬고 일을 하고 있어? 피곤해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영친왕비의 걱정스런 말에, 사방화도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옷 만드는 것에 심히 집중하고 있어 여태 영친왕비가 왔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 어머님. 오셨습니까?”

영친왕비가 다시 사방화를 보며 물었다.

“강이에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냐? 수낭(*绣娘: 자수를 놓는 여공인)에게 맡기고 넌 그냥 쉬거라.”

사방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옷감은 좀 다릅니다. 내복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에요.”

영친왕비는 옷감을 눈으로 한번 살핀 후, 손으로도 한번 만져보았다.

“그냥 설누에로 만든 비단이지 않으냐?”

사방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색도 다르고 용도도 달라 다른 이의 손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모두 서방님께 들릴 겁니다. 좌상께서 주신 형양 정씨의 정탐꾼 지도에요.”

영친왕비가 크게 놀라 다시 옷감을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자 사방화가 옷감을 빛 아래에 비춰주었다. 영친왕비가 더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리 꼭꼭 숨겨두다니, 과연 좌상이구나.”

사방화가 대답을 하려는데, 순간 방으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그녀가 손을 내미니, 독수리는 이내 사방화의 손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독수리 다리엔 매화꽃 향기가 풍기는 쪽지가 하나 묶여 있었다. 

쪽지를 펼치자, 위에는 선 두 줄이 굵직하게 그어져 있고, 그 밖을 커다란 원이 감싸고 있으며 원 바깥쪽에는 서로 교차된 두 선들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사방화는 단번에 이를 이해하곤 탁자로 가 굵직한 선을 두 줄긋고 화살표를 그린 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다 기둥처럼 곧고 굵은 선 하나를 그려 넣었다. 이내 새 다리에 쪽지를 묶어 다시 독수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곁에서 줄곧 지켜보던 영친왕비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방화야, 강이 서신이니?”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어머님.”

“수수께끼 암호로 대화를 주고받는 거니? 난 도통 알아보질 못하겠구나.”

영친왕비가 진강이 보낸 쪽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리둥절해했다.

그러자 사방화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양 정씨가 있는 형양 경내에 강 두 개가 있는데 각각 남북 방향으로 흘러 동해로 흘러가도 합류되지 않고 평행선 두 개를 이루게 됩니다. 그 강을 이 굵은 선으로 표시한 거고 이는 형양 정씨를 뜻합니다.

이 원은 우선 둘러싼 채 당분간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고요. 바깥에 있는, 이 교차한 두 선들은 형양을 제외하고 북제를 포함한 나머지 정탐꾼들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또 제가 답신으로 그린 곳의 굵은 선 두 개는 형양 정씨를 뜻하고, 화살표는 형양 정씨 사람들이 곧 경성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굵고 곧은 선은 천주, 도성 황궁을 의미합니다. 형양 정씨가 도성으로 들어오는데 천자가 이를 알린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여기고 대장공주부와 형양 정씨 혼사에 관한 일이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영친왕비는 그제야 크게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

“둘이서 어찌나 마음이 통하는지, 내가 이 서신을 봤다면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을 게다.”

사방화도 웃으며 말했다.

“워낙 다사다난한 시기인지라 낭군님과 저를 지켜보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독수리도 안전하지 않으니 만일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영친왕비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째 평안하던 남진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돼버렸으니 뭐든 조심하는 게 좋지. 태후마마와 황상이 내일 연회에 오신단 소식은 들었니?”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천자가 왕부로 왔을 때 시화가 듣고 제게 알려줬습니다.”

영친왕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건 아닐까?”

“제가 꽃놀이 연회를 연 목적을 알 수가 없으니 내일 태후마마를 모시고 연회를 온다는 명목으로 여쭤보러 오시는 것일 겁니다.”

영친왕비가 물었다.

“방화야, 근데 나도 좀 궁금하구나. 어째서 내일 연회를 열겠다는 거니?”

“우선 모든 이들 시선을 꽃놀이 연회로 돌려 아무도 낭군님 종적에 눈여겨보지 못하도록 할 겁니다. 암암리에 펼치는 일을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지요. 다음엔 사씨 육방 명 숙모님과 상의할 일이 있어 이 기회를 빌미로 왕부에 모실 생각입니다.

또 조정과 각 가문 뒤뜰에도 각자의 울타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부인은 부인만의 울타리, 아가씨는 아가씨들만의 울타리가요. 이 기회로 이 곡선을 어찌 이용하면 나라를 구하고 형양 정씨를 파헤칠 수 있을지 알아보려합니다.”

영친왕비가 한숨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방화의 볼을 콕, 찔렀다.

“네가 딸이라 다행이구나.”

사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님, 지금 저 칭찬하시는 것이지요?”

영친왕비가 미소 띤 얼굴로 사방화가 만들던 옷을 가져왔다.

“당연히 칭찬하는 거지. 방화야, 이건 내가 할 테니 어서 쉬어라. 널 보는 사람마다 야위었다는 말이 끊이질 않더구나. 몸조리에 신경 써야 얼른 낫지. 그나저나 이 옷감 색이 참으로 곱구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선 다른 게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모르겠어. 내복으로 만든다니 아쉽구나. 바깥에 걸치는 옷으로 만든다면 참 멋있을 텐데.”

사방화도 웃으며 말했다.

“조금 아쉽긴 하다만 낭군님 내복으로 만들어 형양 정씨를 제거할 때 쓰면 될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이다.”

영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 이만 볼일 보러 가셔도 됩니다. 옷은 최대한 천천히 만들어 무리 가지 않게 잘하겠습니다. 내일 연회에 폐하와 태후마마께서도 오신다고 하니 할 일이 더 많아졌을 겁니다.”

그에 영친왕비가 바늘과 실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래. 무리하지 말거라.”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친왕비도 곧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사방화는 다시금 바느질을 시작해 내복 한 벌을 완성했다.

이젠 날이 벌써 어두워져서, 그녀는 남은 옷감을 모아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리고 밤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이튿날 아침, 영친왕부는 새날이 밝자마자 떠들썩해졌다.

영친왕비는 화실에서 차례대로 화분을 꺼내 수사정에다 놓도록 분부했고, 영친왕부는 순식간에 향긋한 꽃향기로 가득해졌다.

사방화는 어젯밤 푹 자고 일어나 상쾌한 기분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리곤 옥작, 임칠에게 낙매거를 지키라 분부한 뒤, 시녀들과 영친왕비를 도왔다.

잠시 후, 수사정으로 가자 일찍이 와있던 노설영이 보였다.

노설영은 사방화를 발견하고 얼른 웃으며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왕비마마께서 부인, 아가씨들과 남자 손님들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시고 주렴으로 거리까지 떨어뜨려 주셨어요.”

“남자 손님도 있다고요?”

노설영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도 오신다니 왕비마마께서 다른 공자님들을 더 초대하셨어요.”

아마도 영친왕비는 사내들이 진옥을 대접할 수 있게 그를 한쪽으로 빼둔 것 같았다. 사방화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그때, 영친왕비가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너희는 수사 안쪽에 있다가 손님들이 오시면 그때 나와서 모셔도 돼. 어서 들어가 있거라. 태후마마와 부인들은 내가 모시고 폐하와 공자들은 진호가 모실 테니 너희는 그냥 아가씨들만 모시면 된단다.”

“아닙니다, 왕비마마. 아직 시간이 이르니 마마를 도와 뭐라도 해야지요. 하지만 동서는 몸이 좋지 않으니 먼저 들어가 쉬도록 보내드리겠습니다.”

노설영의 말에, 영친왕비가 다시 손을 내저었다.

“괜찮으니 너도 어서 들어가 쉬거라.”

그러자 노설영이 사방화를 보고 웃었다.

“왕비마마의 가족이 된 건 정말 복 받은 겁니다. 우린 놀기만 하면 돼요.”

사방화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말이에요!”

영친왕비 역시 웃으며 두 사람을 재촉했다.

“어서 가거라!”

두 사람은 인사를 올린 뒤 함께 수사 안쪽으로 향했다.

* * *

두 사람이 앉자마자 춘란이 사씨 육방의 명 부인과 사은희를 데려왔다.

사방화와 노설영이 바로 일어나자, 명 부인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은희가 이른 아침부터 오자고 난리를 피워 이렇게 일찍이 왔어.”

“어머니께선 일찍 왔다고 하셨는데 아직 영친왕부가 덜 꾸며졌으니 큰일이네요. 제가 어머니께 우리 친정 식구들이 일찍 와서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따라오신 거예요.”

사은희는 바로 사방화에게 팔짱을 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왕비마마께서 일찍이 준비를 다 해두셨는데 우리가 도울 게 뭐 있겠니?”

명 부인이 사은희를 살짝 흘겨보았다.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사은희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형님과 함께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마침 잘 왔어, 은희야.”

사방화도 웃으며 사은희를 토닥였다.

“그러니까요. 왕비마마께서 도울 필요 없으니 그냥 여기서 쉬라 하셨어요.”

노설영도 미소를 지었다.

“왕비마마께서 며느리를 아끼기로 참 유명하시지. 영친왕부에 시집온 것은 정말 복이 많은 거예요. 세상 수많은 낭자들이 얼마나 이 영친왕부로 시집오고 싶어 몰려들었었는지…….”

명 부인의 말에, 사방화, 노설영도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곧 시화, 시묵이 차를 올렸고 모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은희가 갑자기 노설영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설영 언니, 자형원에 있는 자형화가 그렇게 예쁘다고 하던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저 데리고 가서 보여주시면 안 돼요?”

“당연히 되지!”

노설영이 아주 흔쾌히 응했다.

“와! 너무 좋아요! 어머니, 언니께서 승낙해주셨으니까 가도 되죠?”

사은희가 신이 나 소리를 높이며 명 부인의 답을 기다렸다.

“딸이 점잖지 못하고 저리 짹짹대니 남들에게 놀림을 당하지.”

명 부인이 사은희를 흘기며 손을 젓자, 노설영이 서둘러 말했다.

“전 은희의 이런 활발한 모습이 좋은 걸요. 저도 어릴 적엔 이랬습니다. 부인께서도 같이 가시지요. 자형화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명 부인이 다시 손을 내저었다.

“일전에 왔을 때 본 적이 있으니 난 괜찮아.”

“그럼…….”

노설영이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은희가 자형화를 보고 싶다니 형님께서 보여주고 오세요. 난 명 숙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노설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사은희는 웃으며 노설영의 팔짱을 끼곤 명 부인을 향해 혀를 쏙, 내민 뒤 신나서 밖으로 나갔다. 

명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저 얄미운 것.”

사방화도 웃다가 그녀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명 부인에게 말했다.

“명 숙모님, 말씀드릴 게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 얘기 나누시지요.”

“그래요, 소왕비.”

그러자 사방화가 미소를 지으며 다정히 말했다.

“에이, 숙모님. 소왕비는 무슨……. 늘 그랬듯 편하게 대해주세요.”

명 부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화야.”

사방화와 명 부인도 정답게 일어나 안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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