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5화 (805/978)

805화 각 부의 초대장 

얼마 지나지 않아 영친왕부 꽃놀이 연회 소식이 경성 전역으로 퍼졌다.

당연히 황궁에도 소식이 닿았고, 진옥이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접했다.

“영친왕부에서 꽃놀이 연회를 연다고?”

진옥이 의아한 눈빛으로 소천자에게 물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그렇습니다. 경성 전체에 소문이 난데다 영친 왕비마마와 친분이 있으신 부인들께서 모두 초대장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소천자의 답에, 진옥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기에 백모님께서 어쩌다 꽃놀이 연회를 여신다는 거지?”

“소인이 듣기론 친정에 두 달가량 머물던 영친왕부 큰 마님께서 왕부로 다시 돌아오신 걸 환영하려 소왕비마마께서 제안하신 거라 합니다. 그 때문에 노설영 아가씨와 특별히 친분 있는 아가씨들을 초대하셨고 왕비마마께서도 올해 연회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며 부인들을 초대하셨다고 합니다.”

진옥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방화와 노설영이 가까운 사이였나?”

소천자는 일순간 당황해 어정쩡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노설영 아가씨가 진호 공자님 때문에 고초를 겪고 아기까지 유산하셨는데 소왕비마마께서 노 아가씨 목숨을 구해주셨답니다. 그 때문에 좌상 대인과 좌상 부인께서도 소왕비마마께 감사해하며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옥은 상소를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끌벅적한 거라면 가장 질색하는 방화가 먼저 벌였다고 보긴 힘든 일인데. 게다가 이 시기에 어찌 한가로이 연회를 즐길 마음이 있겠느냐?”

“영친왕부로 가 소왕비마마의 생각을 한번 여쭤보고 올까요?”

“황궁으로 온 초대장은 있느냐?”

소천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태후궁으로 가서 어마마마께 내일 궁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시겠냐고 여쭤보고 오거라. 가겠다고 하시면 내일 짐이 직접 영친왕부로 모시고 가겠다고 전해라.”

소천자가 깜짝 놀랐다.

“예? 폐하께서도 가시는 것이옵니까?”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짐도 간다. 어서 어마마마께 여쭤보고 오거라.”

소천자는 서둘러 태후궁으로 향했다.

* * *

태후도 한참 영친왕부에서 꽃놀이 연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곤 어리둥절해하던 차였다. 하지만 노설영이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 벌인 연회고, 영친왕비도 평소 영친왕부에서 개최하던 연회 차원으로 부인들을 초대했다는 여의의 설명에 태후도 더는 의아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때, 소천자가 태후궁으로 와 진옥의 뜻을 전했다. 

태후는 다시 의아한 얼굴이 됐다.

“황상도 영친왕부에 가시겠다고 했단 말이냐?”

소천자는 교묘히 대답했다.

“태후마마께서 황궁 밖을 나가신 지도 오래되셨다고 하시며 함께 나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태후는 손을 내저었다.

“황상이 정사로 바쁘신데 내 어찌 나만 생각하고 밖을 나서겠느냐? 안 간다고 전해드려라.”

“이 또한 폐하의 효심입니다. 가고 싶으시면 가시지요.”

태후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황상도 참 효심도 지극하시지. 하지만 형님이 내게는 초대장도 안 보내주시지 않았느냐.”

소천자가 웃으며 말했다.

“태후마마께서 가길 원하신다면 영친왕부에 사람을 보내 말씀만 전하면 될 일입니다. 왕비마마께서도 분명 환영하실 겁니다. 태후마마께서 전부터 연회에 참가하지 않으셨기에 초대장을 보내지 않으신 걸 겁니다. 대장공주마마께선 매년 참가해 즐기셨던 분이라 일찌감치 초대장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태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이 이미 형양 정씨로 사람을 보냈다고 했다. 쾌마를 타고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오면 내일쯤 경성에 들어올 텐데 대장공주께선 어찌 사위를 뒤로하고 연회에 가신다는 것이냐?”

소천자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올해 이맘때가 되어서야 영친왕부에서 꽃놀이 연회를 여셨으니 꽃을 좋아하시는 대장공주마마께선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실 테지요. 형양 정씨 사람들이 내일 도착한다고 해도 급히 바로 경성을 떠나실 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만간 보게 되실 텐데요. 금연 군주님도 분명 영친왕부로 가실 테니 대장공주마마께서도 당연히 연회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나. 그래, 황상께 나도 내일 가겠다고 전해드려라.”

태후가 웃으며 동의하자, 소천자도 기뻐하며 서둘러 태후궁을 빠져나갔다.

* * *

소천자가 떠나고, 태후가 여의에게 말했다.

“내일 경성에 있는 아가씨들이 많이 올 거라 보느냐?”

여의는 태후의 심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럴 것입니다. 소왕비마마와 왕비마마께서 모두 초대하셨으니 내일 영친왕부는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대장공주가 형양 정씨와의 혼사를 정한 마당에 금연도 동의를 했으니 이젠 형양 정씨 사람들을 보게 될 일만 남았구나. 일전엔 금연이 황상에 대한 마음으로 궁에 들어오려 난리를 피우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생각을 고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금연의 재주와 미모를 보면 황후 자리에 오르고도 남을 인물이지. 그러나 황상이 싫다는데 어쩔 수 있겠느냐. 우상부 이여벽도 싫다고 하니 대체 어떤 여인과 혼인할지 모르겠어.”

여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난감해, 최대한 고르고 골라 대답했다.

“내일 우상부 아가씨께서도 영친왕부로 가신다고 합니다.”

“응? 출가한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어?”

여의가 고개를 젓자, 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여벽도 재주, 인품, 미모로 따지면 어디 하나 입댈 곳이 없지. 금연도 그렇고, 이 경성에 뛰어난 아가씨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사방화와 비교하자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게 문제긴 하다만.”

여의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마음고생이 참 심하실 듯합니다.”

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지. 억지로 가지려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즉위식 날 놀라 쓰러질 뻔했다만 그래도 강이와 잘 화해하고 풀어서 다행이다. 두 아이 다 대의를 중시하는 아이들이니까.

선황폐하께서 옥이에게 강산을 넘겨주시고, 강이에게 사방화를 돌려주신 것은 생에 마지막으로 하신 가장 최고의 선택이셨다. 선황폐하의 현명한 식견이 아니셨다면 이렇게 평화로이 지낼 순 없었을 게야.

과연 선황폐하께선 어려서부터 쭉 지켜보신 자식들이라 두 아이들을 다 잘 아셨던 게다. 선황폐하께서도 강이 마음속엔 오직 사방화뿐이란 걸 아신 거지. 남진 강산을 위해, 또 그 두 아이들을 위해서도 옳은 선택이었어.

그래야만 형제가 서로 다투지도 않고, 이 강산에도 화근을 남기지 않을 테니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셨던 것이지.”

“예, 선황폐하께선 참으로 현명하신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태후도 여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참……. 살아계실 땐 원망하기 바빴는데, 이렇게 승하하시고 나니 좋았던 기억만 남아 이리 가슴속으로 앓게 되는구나. 조정이 어떻게 되든 내가 걱정해서 될 건 아니지. 그저 앞으로 황상이 마음을 다잡아 황후와 비를 맞길 바랄 뿐이다. 언제까지 후궁이 이렇게 썰렁할 수는 없지 않으냐. 게다가 남진 강산의 후계자도 필요하니 하루빨리 혼인을 하셔야지.”

여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소천자가 어서재로 돌아와 진옥에게 아뢰자, 진옥이 또 손을 내저었다.

“영친왕부로 가서 백모님께 내일 짐이 태후마마를 모시고 영친왕부로 가려한다고 전해 드려라.”

소천자는 서둘러 황궁을 나가 영친왕부로 향했다. 

* * *

영친왕부 낙매거.

한창 옷을 만들던 사방화가 노설영이 온 것을 보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노설영도 반갑게 웃으며 사방화의 손을 잡았다.

“어찌 이리 야위셨습니까? 제가 더 뚱뚱해 보일 정도네요.”

어렴풋이 듣기로 진호는 영친왕이 감금형을 풀어준 뒤로 매일같이 좌상부로 가 사죄를 하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가 난 노설영은 아는 척도 해주지 않았고, 좌상 부인도 이혼시킬 결심을 굳건히 세웠으나 진심으로 뉘우치며 애원하는 진호를 보고 차츰 마음이 약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결국 좌상, 좌상 부인 모두 진호의 정성에 마음이 녹아 다시 노설영을 데려갈 수 있게 허락해 준 것이다. 노설영도 그간 집에서 쉬며 안색이 아주 좋아져있었다.

사방화도 노설영의 손을 다정히 감쌌다.

머릿속엔 문득 노설영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지옥 같은 무명산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시작된 청음이란 이름의 삶……. 그때를 생각하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까지 참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청음이란 이름은 과거로 벗어던진 사방화도, 청음으로서 처음 만난 그때의 노설영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이리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었는데……. 사방화는 남다른 감회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노설영을 방으로 데려갔다.

“어디가 뚱뚱하단 거예요? 보기 좋기만 한데요? 이리도 아름다워지시니 아주버님도 죽기 살기로 모셔오려 하시고 자형원 시녀들도 내보내신 거지요.”

노설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시녀들을 다 내보내면 뭐가 달라진답니까? 조만간 첩실 여덟을 들이면 금세 또 시끌벅적해질 거예요.”

사방화가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네? 첩실 여덟 명이요?”

노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화는 곧 그녀를 앉히고 차를 내어주며 계속 놀란 듯 말했다.

“너무 많잖아요!”

노설영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게나 학대를 해대시는데, 그만한 첩실을 들이지 않고서야 저 홀로 그 화를 어찌 다 풀 수 있겠어요? 전 다시는 생사의 기로에 서고 싶지 않아요.”

사방화는 더더욱 기가 막혔고, 노설영이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놀래신 건가요? 사실 여덟도 많은 건 아니잖아요. 각 가문마다 기본적으로 첩실이 열이고, 스물을 넘어가지 않습니까? 영친왕부에도 처음엔 첩실 부인이 네다섯은 됐지만 왕야께서 왕비마마와 사이가 좋아지시고 나서야 모두 내보내신 것이지요. 지금은 저희 어머님 한 분만 남아계시고요.”

사방화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충용후부와 다른 집안을 비교해선 안 되지요. 충용후부는 줄곧 첩실 없이 정실만을 맞던 집안이잖아요. 사씨 미량, 염창 가주들께서도 가문을 어지럽게 만들지 않으시려고 오직 한 분과만 혼인하셨으니 참 훌륭한 사씨입니다. 사실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저희 아버지 뒤뜰에도 서너 명은 있는걸요.”

사방화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듯해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노설영은 그런 사방화가 귀여웠는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강 소왕야께선 인품이 워낙 뛰어나신 분이라 저희 서방님과는 달리 동서를 애지중지하시지요. 온 세상에 방화가 아니면 혼인도 않겠다며 공표하셨으니 한평생 동서만 보고 사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그리 놀랄 필요 없어요.”

사방화도 웃으며 말했다.

“저뿐만 아니라 왕비마마께서도 아신다면 깜짝 놀라실 것 같아서요.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첩실을 맞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벌써 왕비마마께 말씀드렸는걸요? 놀라시긴 했지만, 제가 너무 확고해 왕비마마께서 길일을 택해주시면 제가 괜찮은 여인들을 택하기만 하면 돼요.”

사방화는 순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가 남편에게 첩실 8명을 추천한다는 건 결코 흔치 않은 일이라 한바탕 비바람이 불 것만 같았다.

한참 그렇게 대화 꽃피우는데, 하인 한 사람이 노설영을 찾아왔다. 진호가 노설영을 모시고 오라 명했다는 것이었다.

노설영은 계속 휘장을 사이에 두고 바깥을 향해 말했다.

“날이 이리 밝은데 어찌 벌써 들어오라는 것이냐?”

“예, 마님께 아룁니다. 좌상부에서 오래 지내다 오신 탓에 불편하실까 싶어 큰 공자님께서 왕부로 돌아와 뜰이 적당한지 살펴보고 계십니다.”

노설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 때문이었구나. 금방 돌아갈 거라고 전해드려라.”

하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노설영은 느긋하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돌아가기 직전 사방화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 하셨어요.”

사방화는 좌상의 숨겨진 뜻을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노설영은 곧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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