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9화 (799/978)

799화 하나를 끌어들이면 열이 따라온다 (1) 

대장공주와 금연은 태후를 찾아가 금연의 혼사에 있어 진옥에게 허락을 구하러 왔다는 뜻을 전했다.

태후는 깜짝 놀랐지만, 금연이 진정 진옥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알고, 여의를 시켜 진옥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다.

대장공주가 부탁할 일이 있어 왔으니 일단 오시(*午時: 아침 11시 ~ 오후 1시)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전한 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면 금연의 혼사에 관한 일이라고 특별히 전하라했다.

여의는 어서재로 와 진옥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진옥은 붓을 내려놓고 하늘색을 한번 확인하곤 태후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옥은 막 태후궁 입구에 다다라서 영친왕비와 사방화가 어서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다시 어서재로 돌아갔다.

한창 진옥을 기다리고 있던 태후, 대장공주, 금연은 그가 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는 말에 일제히 의아해졌다.

소천자가 남아 세 사람에게 극진한 예를 갖추며 말했다.

“영친왕비와 소왕비마마께서 폐하를 뵙기 위해 어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직접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분명 급한 일이신 듯해 폐하께서 곧장 어서재로 돌아가셨습니다. 먼저 식사를 하시고 대장공주마마와 금연 군주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신다면 속히 일을 끝내고 곧장 태후궁으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오시(午時)가 다 된 시각이었다. 태후는 이 시간에 영친왕비와 사방화가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의아했지만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공주와 금연도 별다른 이견을 표하진 않았다.

“황궁에 오랜만에 들었으니 조금 더 있다가도 괜찮아. 폐하께 마음 편히 일을 다 보고 오셔도 된다고 전해주게.”

소천자가 다시 태후궁을 나섰다.

* * *

진옥은 시급히 어서재로 돌아왔다.

“백모님, 방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영친왕비가 말했다.

“방화가 급한 일이 있다기에 같이 왔습니다.”

“좀 복잡한 일입니다.”

사방화도 연속해서 말을 덧붙였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재 안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하지만 영친왕비는 가만히 서서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사방화도 영친왕비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문득 뒤를 돌았다가, 홀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영친왕비는 자신을 믿기에 함께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방화는 이 시급한 상황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사방화는 어서재에서 진옥과 독대하게 됐다.

“오시(*午時: 아침 11시 ~ 오후 1시)에 무슨 급한 일이오?”

진옥의 물음에, 사방화는 최대한 차분히 설명하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폐하, 고모님께서 금연에게 혼사를 마련해주신 것은 알고 계십니까?”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연의 혼사 문제로 내게 허락을 구하러 궁에 드셨다는 것은 들었소. 지금 어마마마의 궁에 계신데. 왜, 타당치 않은 부분이라도 있는 건가?”

사방화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저도 연람 소군주에게 들었습니다. 형양 정씨의 적자, 정효순과 금연을 맺어주려 하신다고요. 본래 우상 부인께서 이여벽의 짝으로 점쳐 두셨던 분인데 이여벽이 원치 않자 논의되는 혼사라고 들었습니다.”

진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다고 들었소.”

사방화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사씨 정탐꾼에게 명단을 구해오라고 시켜 오늘 그 명단을 받았습니다. 청암에게 시켜 서방님께 곧장 전하도록 했고요. 종이를 한 장 내주신다면 폐하께도 외워온 것을 바로 써드리겠습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붓과 종이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 명단에 형양 정씨가 있기라도 한 건가?”

“보시면 알 것입니다.”

사방화는 순서대로 명단을 써내려갔다.

진옥도 그녀 곁에서 명단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내내 담담했던 눈빛이 서서히 깊어지기 시작했다. 

사방화는 마지막 이름까지 모두 써낸 뒤 붓을 내려두고 진옥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도 뭔지 아시겠지요?”

진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물처럼 흩어져있지만, 그 중심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한 군데군.”

“맞습니다, 겉으로 봐선 아무 관련도 없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 밧줄 하나를 잡아내면 메뚜기 떼 전체를 태워 죽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 밧줄이 아주 깊이 숨겨져 있어 그동안 아무런 종적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게 바로 형양 정씨군.”

“맞습니다. 형양 정씨도 몇 백 년의 역사가 있는 세가입니다. 다른 가문보다 힘이 약해졌을 뿐이지, 어쨌든 썩어도 준치인 겁니다.”

진옥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씨 장방과 형양 정씨는 어찌 정혼했던 건지 알고 있소?”

“사씨 장방 백모님이 조군 이씨지 않습니까? 또 저희 어머님 사촌 동생 분이 조군 이씨 적녀와 혼인하셨고요. 더불어 청하 최씨 둘째 외숙부님의 돌아가신 정실부인이 바로 형양 정씨였다고 합니다. 청언의 어머님이시지요.

저희 어머님과 그 돌아가신 외숙모님은 평생 사이가 좋으셨기에 저희 어머님께서도 청언을 거둬들여 키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저희 어머님과 더 가까워지려 했기에 크게 몰락하지 않은 형양 정씨가 저희 장방 백모님 눈에 드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큰딸, 보향 언니와 형양 정씨 적장자를 맺어주려 하셨던 것이고요. 어차피 사씨 장방도 방계였으니 적당한 혼사이긴 했지요.”

진옥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들었어. 사씨 장방 큰 아가씨와 형양 정씨 적장자의 정혼 소식이 알려진 뒤로 최근 들어 사씨 장방 민 부인이 갖은 방법을 통해 이뤄냈던 혼사라 말들이 많더군.”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이어 받았다.

“사씨 장방이 몰락한 뒤 형양 정씨와의 혼사가 물거품이 됐단 소식에 아무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씨 장방이 어렵사리 이뤄낸 혼사지만, 장방이 몰락했으니 형양 정씨에서도 당연히 혼사를 엎을 수 있지요.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배후에 숨겨져 있던 진짜 목적을 소홀히 하게 됐던 것이었습니다.”

“형양 정씨……. 어찌 이리도 깊이 잘 숨겨놨는지 명단을 추려내 봐도 형양 정씨의 이름은 하나도 보이질 않군. 분명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한 세대 이상은 걸친 듯해.”

“명단을 놓고 봤을 때도 분명 한 세대를 넘어간 것 같습니다. 형양 정씨는 현재 3대가 몰락해 가는 데다 아들들도 조정에 들지 못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아무도 그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지금처럼 더욱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북제의 정탐꾼을 뿌리 뽑는다 해도 남진 정세도 안정되지 않았으니 큰 움직임을 보여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침수 피해와 황제가 바뀐 일만으로도 가뜩이나 민심이 불안해져 있고요.

하지만 지금으로 봐선 대장공주부와 형양 정씨의 혼사가 암암리에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고모님과 금연도 폐하를 찾아오게 된 것이겠지요. 이렇게 되면 정말 큰 관련이 있는 겁니다.”

한참 말이 없던 진옥이 미간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복잡한 일이군.”

“몇 백 년 근간이 있는 세가 대족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하나를 건드리면 결국 모두가 따라올 겁니다. 특히나 고모님과 금연이 얽혀 있습니다.

금연은 평생 폐하를 연모해왔단 것을 아시지요? 쉬이 마음을 접지 못해 고모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형양 정씨와 혼인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니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않고 형양 정씨에게 손을 댄다면 고모님께서도 이 혼사를 쉬이 물리려 하진 않으실 겁니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오! 대장공주부와 형양 정씨의 혼사는 남진 강산의 명운 앞에 언급할 가치도 없을 만큼 조그만 일이니까.”

“고모님과 금연이 아니더라도 형양 정씨라는 수백 년 된 세가를 살피셔야지요. 이 시기에 남진 전체가 흔들린다면 절대 좋을 게 없을 것입니다.”

진옥이 입술을 깨물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빠르게 제거한다면?”

“하룻밤 사이 몇 백 년 기근을 가진 세가 대족을 몰락시키면 이 나라가 평화로울까요? 나머지 세가들이 두려움에 떨고 조정이 흔들리는 것은요?”

진옥은 또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사방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진 않습니다. 어떻게 처리해도 잃을 게 많아 보입니다. 일단 이 명단 하나만으론 증거가 부족합니다. 모든 사람이 폐하와 저처럼 이 명단 하나로 형양 정씨가 개입됐단 엄청난 관계를 알아볼 거란 법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소문이 새나가서도 안 됩니다.”

진옥은 명단을 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사방화는 명 부인에게 이 명단을 받은 뒤로 이 일을 깊이 고심했다.

형양 정씨는 가세가 기울어 다른 세가들 보다 못한 듯 보였지만, 최근엔 그 기세도 잠시 주춤해진 것 같았다. 이것엔 분명 다른 속셈이 있는듯했다. 실을 뽑아 고치를 벗긴다면 그동안의 꼬이고 꼬인 인척 관계도 그대로 드러날 터였다.

특히 근래 들어 형양 정씨가 사돈을 맺음으로써 유겸왕부처럼 경성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배후에 또 다른 계략이 숨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형양 정씨야말로 북제가 남진에 심어둔 가장 큰 정탐꾼 연결고리는 아닐까.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남진은 북제와의 전쟁 뿐 아니라 남진 내부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까지 마주해야한다.

은산 은위를 비롯해 형양 정씨라는 백년 세가까지 줄줄이 따라오는 문제들, 그야말로 하나를 끌어들이니 열이 따라온 너무도 복잡한 문제였다.

한참을 침묵하던 진옥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경성에 돌아온 뒤로 조정 일로 바빠 차마 각 가문들 움직임과 인척 관계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이 명단이 없었다면 형양 정씨가 이렇게 깊이 연관돼 있을 거란 것도 몰랐을 것이오. 우선 어마마마의 궁으로 가 고모님과 금연의 뜻을 들어봐야겠소. 형양 정씨와 혼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니 들어보고 결론을 내려야겠어.”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씨 장방에서 먼저 혼인을 청하고 우상 부인의 눈에 들었다가 고모님 환심까지 사다니 참으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금연이 뜻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만전을 기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형세에 어찌 그냥 가만있을 수 있겠소. 진강은 아침에 경성을 떠났나?”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단을 진강에게도 보냈다했지?”

“예, 지금은 3백리 밖에 나가계십니다.”

진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두른다 해도 한 시진 반은 걸릴 테고 답신을 보내면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일단 계수와 백모님도 함께 어마마마의 궁에 들어 식사하도록 하지. 그런 김에 고모님과 금연의 생각도 들어보고 진강의 답신을 받으면 결정합시다. 어쩌면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사방화, 진옥이 어서재를 나왔다.

진옥은 여태 바깥에서 기다리던 영친왕비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백모님, 벌써 정오도 되었고 하니 계수와 다 같이 함께 어마마마의 궁에서 식사하고 가시지요.”

영친왕비는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웃으며 화답했다.

“네, 태후마마, 대장공주마마를 뵌 지도 오래됐으니 잘 됐어요. 갑시다.”

영친왕비, 사방화, 진옥은 다함께 태후궁으로 향했다.

한참 걷던 영친왕비가 사방화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방화야, 일은 해결됐니?”

사방화가 태후궁을 힐끗 보곤 최대한 간단히 대답했다.

“고모님께서 금연에게 맺어준 혼약에 얽힌 일이 있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태후마마 궁으로 가서 어떤 상황인지 보고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총명한 영친왕비는 단번에 무슨 일인지 대충 알아채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장공주마마께선 밤낮으로 금연의 혼사로 걱정을 하셨잖니. 드디어 어렵게 짝을 정한 데다 금연도 동의를 했으니 또다시 우여곡절을 겪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 참으로 쉽지 않을 듯하구나.”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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