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3화 (793/978)

793화 육방의 정탐꾼 (1) 

진옥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운계 공자와 운란 공자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오?”

사방화는 또 한 번 진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심수간으로 돌아가진 않았겠지요?”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곳에 돌아가서 뭘 하겠소? 국고에 있는 양식으로 한동안은 버틸 수 있소. 물론 장기간의 흥병엔 사씨 미량의 도움이 필요하나 우선은 그리 급하지 않아.”

진강이 대답을 한 뒤, 진옥이 건넨 종이를 품에 넣고 떡 하나도 집어 사방화의 입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북제가 남진에 심어둔 정탐꾼을 제거하는 일은 내게 넘겨다오. 월낙만 좀 잠시 빌리겠다.”

“그래, 월낙에게 분부만 내리면 돼.”

진옥도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사흘이면 된다. 일찍이 북제에서 탄로 나 숨길 수 없는 정탐꾼들은 모두 철수시키고 제언경과 옥가의 시선을 피해 숨길 수 있는 자들은 또 쓸 데가 있을 테니 들키지 않게만 숨겨두면 될 거야.”

진강의 답에, 진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숨겨둘 수만 있다면 가장 좋지. 북제에 손해를 볼 순 없으니까. 어쨌거나 남진에 있는 북제의 정탐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사씨의 뿌리가 남진 전체에 걸쳐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거다. 사씨 또한 황숙께서 호시탐탐 노리셨던 탓에 그 엄청난 세력을 숨길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하지.

사씨가 있는 한 북제의 정탐꾼을 남진에서 뿌리째 뽑는 건 문제도 아니다. 북제 옥가도 사사로이 북제의 군사와 군권에만 전념했으니 집안 뿌리와 암위의 염탐에 있어선 사씨의 발끝에도 못 미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옥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사흘 줄 테니 서둘러다오.”

진강이 말했다.

“응? 다른 볼거리라도 있나?”

진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제 정오도 다 됐으니 같이 식사나 하자!”

그러나 사방화의 손을 잡고 일어난 진강을 보고 진옥이 미간을 찌푸렸다.

“평생 황궁 밥을 먹고 지내왔으면서 뭘 그리 급하게 가느냐?”

“급하다며. 소인, 사력을 다해 황명을 받들러 갑니다!”

그렇게 사방화의 손을 잡고 나가버린 진강을 보고, 진옥은 잠시 멍하니 흔들리는 주렴을 바라보기만 했다.

곧 소천자가 들어와 진옥에게 말했다.

“폐하, 소왕야와 소왕비마마를 배웅해드리고 오겠습니다.”

“필요 없으니 봉란궁에 가 어마마마께 점심을 같이 하겠다 말씀 드려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소천자는 서둘러 봉란궁으로 향했다.

* * *

태후의 침소, 봉란궁.

태후는 진옥이 진강과 사방화를 불렀단 소식을 듣고 불안해져 이리저리 방을 돌아다니다 결국 여의에게 어서재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 지시했다.

여의는 어서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곤 진강과 사방화가 황궁을 나가는 걸 확인했다. 그 순간 눈치 빠른 소천자가 여의를 발견하고 웃었다.

“하하, 여의. 어서 태후마마께 전해주시오. 폐하께서 태후마마와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소.”

여의가 기뻐하며 소천자에게 물었다.

“폐하는 오늘 좀 어떠셨어요? 소왕야와 다투진 않으셨지요?”

“기분 좋게 웃으며 말씀 나누셨소.”

여의는 순간 잘못 들었나싶어 잠시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웃으며 말씀을 나누셨다고요? 폐하와 소왕야께서요?”

소천자가 웃으며 여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다른 이에게서 들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오. 하지만 정말 기분 좋게 말씀 나누셨소. 폐하께서 장난스럽게 소왕야의 발을 한번 걷어차기도 하셨지만 소왕야께선 전혀 받아치지도 않으시고 기분 좋게 받아주셨소. 나랏일도 허심탄회하게 상의하셨고.

폐하께서 점심도 함께 하자고 하셨지만, 소왕야께선 소일거리가 있다고 하시며 소왕비마마와 함께 황궁을 나서셨소. 그래서 폐하께선 태후마마와 점심을 함께 하시겠다고 분부를 내리셨소.”

“어찌 이리 좋은 일이! 그럼……, 폐하께선 소왕비마마와는 어찌…….”

여의가 매우 기뻐하다 또 조심스레 물었다.

“건강에 대해 여쭈시곤 잔소리를 하시자 소왕비마마와 소왕야께서 부모님보다 더하다며 질색을 하셨소. 그러자 폐하께선 애초에 한 가족이 아니면 걱정을 하겠느냐고 답하셨지. 이젠 폐하께서도 마음을 여신 듯하오.”

“정말 잘됐네요! 태후마마께서도 드디어 안심하시겠어요! 내 태후마마께 말씀 전하고 식사도 준비할 테니 괜히 헛걸음하지 마세요.”

소천자도 잘 됐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어서재 바깥을 지켰다.

여의는 아주 기뻐하며 돌아서 서둘러 봉란궁으로 향했다.

* * *

진강과 사방화는 황궁을 나오자마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와 마주쳤다. 이목청과 연석이었다.

진강은 두 사람을 보고 눈썹을 까딱이며 걸음을 멈췄다.

연석과 이목청은 두 사람을 기다리며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이목청은 진강과 사방화가 서로 맞잡은 손을 꼭 쥐며 웃음을 지었고, 연석도 다가와 사방화를 한번 살핀 뒤 진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소왕야, 제가 어릴 적부터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다만 정말 졌습니다. 여태 소왕비마마를 모시고 어디까지 갔던 겁니까? 우리한텐 한마디 말도 없이.”

진강은 연석을 향해 대충 손을 휘저었다.

“한가로이 떠들 시간 없으니 저녁에 래복루에서 보자.”

“왜요, 낙매거가 그리워서 이리도 서두르는 겁니까?”

진강이 콧방귀를 뀌자, 연석이 사방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저녁에 래복루에서 보자고 하시는데 같이 가시지요.”

진강은 바로 사방화의 어깨를 감싸며 연석과 거리를 띄웠다.

“시간 없어.”

연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 짐승 보듯이 하십니까? 걱정 마세요. 형제의 아내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다 했거늘, 일찌감치 단념했으니 뺏을 일도 없습니다.”

“뺏어가려 해도 애초에 뺏어갈 수도 없지!”

“근데 뭘 걱정하시는 겁니까?”

“몸이 좋질 않아서 그래.”

“그럼 낙매거로 놀러 가겠습니다. 괜찮지요, 소왕비마마?”

연석이 진강에게 대충 답한 뒤 사방화를 향해 물었다.

사방화는 따뜻하게 웃으며 진강을 힐끗 보곤 말했다.

“네, 좋습니다. 술안주를 준비해 드릴게요.”

“역시 화끈하십니다! 어찌 사내가 돼서 혼인했다고 형제들을 잊을 수 있습니까? 죽마고우도 아닌 소왕비마마께서 우리를 더 생각해주시는군요.”

연석이 비웃음을 흘리며 진강을 비난했다.

그러자 진강도 연석을 째려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이 늘어난 걸 보니 이제 좀 살만한가 보군.”

“뭐가 살만하단 겁니까? 힘들어 죽겠는데. 목청에게 물어보세요. 어찌나 부려먹는지 곧 진옥의 개가 될 것 같습니다.”

연석이 제 어깨를 콩콩, 두드리며 말했다.

이내 이목청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면 어떡하나? 누가 말을 전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연석이 콧방귀를 뀌었다.

“황제에게 감히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어디 한번 해보라고 하지!”

이목청이 다시 픽, 웃곤 진강과 사방화를 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 돌아오셨단 얘길 듣고 연석이 저를 끌고 영친왕부로 갔다가 다시 황궁으로 뒤따라 왔습니다. 며칠 정말 힘들었었는데 이제 두 분께서 돌아오셨으니 좀 편해지겠네요.”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황폐하께서 두고 가신 골칫거리들을 막 즉위하신 폐하와 막 조정에 입문하신 공자님, 소후야께서 처리하시긴 무리가 있지요. 그 누구 하나 쉬운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으니 이제 다 짐을 나눠지어요.”

“소왕비마마는 건강이 우선입니다.”

이목청의 따뜻한 말에 사방화도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진강은 사방화의 손을 잡고 마차로 걸어갔다.

“그럼 저녁에 알아서들 낙매거로 와라.”

“좋습니다!”

연석과 이목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차 휘장이 내려지고 진강과 사방화가 탄 마차는 영친왕부로 달려갔다.

두 사람이 멀리로 사라지자, 연석은 입술을 삐죽이며 이목청에게 말했다.

“대체 몇 평생의 복을 받은 것일까?”

이목청이 웃으며 물었다.

“강 소왕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방화 아가씨?”

“당연히 강 소왕이지, 방화 아가씨가 무슨 복을 받았단 말이냐?”

연석의 반응에, 이목청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분이 저리도 깊은 마음을 나누며 함께 있을 수 있는 데는 단순히 한 사람에게서만 온 복은 아니지.”

“그래, 일리 있는 말이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니 어서 가자! 얼른 끝내야 낙매거로 가지.”

연석은 바로 한껏 인상을 구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맘대로 놀기만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밥 한 끼 먹으며 한숨 돌릴 수 있는 데에 기대 살아가야 하다니, 참…….”

“이제 아버지들께서 평생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겠는가. 우리가 맘껏 놀 때 조당에 자리를 지키셨던 분들이 힘이 없어지셨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지.”

이목청의 의젓한 말에, 연석은 이마를 문지르다가 갑자기 물었다.

“여벽이 출가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던데 진짜인가?”

이목청은 순간 발걸음을 멈칫하며 안색을 굳혔다.

“응.”

연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일로?”

이목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이는 고집이 세 한번 마음 준 곳엔 절대로 뜻을 꺾지 않아. 부족할지언정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법이 없지. 어릴 때부터 강 소왕을 좋아했는데 이젠 일말의 희망조차 없으니 속세를 떠나 모든 마음을 비우려는 거지.”

연석이 탄식하며 말했다.

“노설영과 내 동생을 비롯해 남진 수많은 여인들이 강 소왕을 좋아했어도 이제는 다 마음을 접고 편히 살아가는데 어찌 그러단 것이냐? 아버님께서도 동의하셨고?”

“선황폐하께서 처음 우상부와 영친왕부에 혼사를 내려주려 하셨을 때 아버지께서도 강 소왕을 한번 떠봤었어. 마침 강 소왕이 우상부에 연말 선물을 전하러 왔었거든. 하지만 강 소왕은 노골적으로 거절하고 곧장 영작대로 가 방화 아가씨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었잖아.”

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떠나기 전이었으니 그건 알고 있어.”

이목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의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자책하고 계신다. 우상부와 영친왕부가 혼약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누이가 강 소왕을 연모하는 걸 내버려둬서 오늘날 이런 꼴이 난 것이라고. 아버지, 어머니, 나, 우리 가족 그 누구도 누이 뜻을 꺾지 못하고 있어.”

연석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목청 네 어머님이 평소 그토록 예불 드리는 걸 좋아하셨는데 결국 따님을 부처님께 보내기 위한 것이었나.”

이목청 역시 미간을 문지르며 힘없이 말했다.

“어머니께선 몇 년간 후원에서 몰래 손을 써 피를 보시곤 날마다 향을 피우며 마음을 다스리셨는데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시는 모습을 보니 후회가 돼. 아버지의 첩실이 또 임신했단 사실을 아시고도 가만히 계실 정도니까.”

연석이 픽, 비웃음 같은 웃음을 흘렸다.

“너희 아버님은 여전히 힘이 넘치시는가보네.”

이목청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마음에 품은 여인이 없으니 한평생 최고의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셨어도 그 쓸쓸함을 감추지 못해 저리 아무렇게나 사시는 것이겠지.”

연석이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

“네 아버님도 참 여우 같으시다. 여태 어머님께서 하셨던 모든 행동을 모르실 것 같지도 않은데.”

이목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모르시겠어! 마음이 없으니 그냥 못 본 척하시는 것이지.”

“네 어머님께선 평소 여벽을 목숨처럼 생각하시지 않았나? 여벽을 따라 나가려고 하시진 않고?”

“세상은 늘 현모양처를 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이 남진에서도 속내를 잘 모르는 이들은 다들 우상부 부인이 참 현명하고 어질어 후원 첩실 부인들에게도 공손히 대해주신다고 떠들어대고.

하지만 이제 나도 우리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차라리 연석 너희 어머님이 훨씬 더 나은 편이었어. 아무리 무지막지하다는 평가를 받으셔도 후원이 깨끗하니 이런 일은 없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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