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2화 (792/978)

792화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다 

곧 사방화와 진강은 황궁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니 한창 흠천감 문 대인과 대화하던 영강후가 보였다.

영강후도 마침 진강과 사방화를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와 공수를 올렸다.

“소왕야, 소왕비마마,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영강후, 어찌 이리 초췌해지셨습니까?”

진강이 영강후에게 인사를 건네다, 문 대인을 보고도 눈썹을 까딱였다.

“문 대인께선 또 어찌 더 초췌해 보이시는 것이오? 북제의 흥병(*興兵: 군사를 일으킴) 문제 때문에 흠천감에서도 몇 날 며칠 속을 썩인 것이오?”

문 대인이 공수를 올리며 진강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며칠 전, 폐하께서 우연히 보신 기이한 별의 움직임에 대해 알아내려 며칠 동안 옛 자료들을 들여다봤지만, 도저히…….”

“응? 진옥 아니, 폐하도 그 별을 본 것이오?”

문 대인이 깜짝 놀라 진강에게 말했다.

“예? 소왕야께서도 보셨습니까?”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봤소.”

문 대인이 바로 진강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신이 알기론 소왕야께서 별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과 학론을 가지고 있다 들었사온데 소왕야께서도 보셨다면 그 뜻을 알아보신 겁니까?”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떤가. 그냥 별의 움직임일 뿐인데.”

진강은 돌연 사방화의 손을 잡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진강을 뒤쫓았다.

“소왕야! 예로부터 별을 보고 하늘의 뜻을 헤아려보지 않았습니까? 이 기이한 움직임은 분명 무언가 예시를 하는 듯한데…….”

“영강후께서 알아보실 거라 생각하시고 얘기를 나누고 계신 것이오?”

진강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영강후부에 별에 관련된 고적이 있어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하여 빌리려합니다. 그래야 폐하께도 뭐라 말씀드릴 게 있지 않겠습니까.”

문 대인의 말에, 진강이 영강후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영강후가 말했다.

“그렇소. 나도 마침 문 대인에게 책을 찾아주려던 참이었소. 그 고적에서 이 기이한 현상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문 대인께 찾아드리시고 만약 그 뜻을 알게 되시면 제게도 말씀해 주세요. 저도 그 뒤죽박죽인 별의 움직임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문 대인이 깜짝 놀라 말했다.

“소왕야께서도 직접 보셨지만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진강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신인 줄 아시오?”

그렇게 진강은 사방화와 함께 황궁으로 들어섰고, 문 대인도 걸음을 멈추고 영강후를 돌아보았다.

영강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서 돌아 오시자마자 폐하께서 부르신 걸 보니 그날 일은 더 이상 없을 듯하오. 두 분도 화해하셨나보군.”

문 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해하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폐하와 소왕야께서 사이가 좋아지셨다는 건 남진에 있어서도 좋은 일이지. 그래, 이만 나와 우리 후부로 가지!”

영강후가 문 대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영강후부로 향했다.

* * *

진강과 사방화는 황궁으로 들어가 곧장 어서재로 향했다.

황궁은 궁궐을 지키는 금위군과 어린 태감 몇을 제외하곤 아무도 보이질 않아 심히 고요했다. 진강은 그런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얼마 만에 이리도 조용해진 건지.”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시고 폐하께서 많은 이들을 내보내셨어요. 황궁을 떠나지 않겠다는 이들도 모두 서원에 보내셔서 자연스레 조용해졌지요.”

진강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왜, 후궁을 비우면 당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보지?”

사방화는 그의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남진을 위해서였으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 난장판인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셔야 했으니 폐하께서도 힘드셨을 거예요.”

진강은 바로 눈을 가늘게 뜨며 사방화를 흘기듯 쳐다보았다.

“난 뭐 안 힘들었소? 당신 누구 편이오?”

사방화가 옅게 미소 지었다.

“당신 편이지요.”

진강의 얼굴에도 금세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 * *

황궁 어서재.

소천자가 이제 진옥에게 진강과 사방화가 왔음을 알리려는데, 진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사방화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당황한 소천자는 하는 수 없이 뒤늦게 급히 소리를 쳤다.

“폐하!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서 안으로 드십니다.”

한창 옥안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던 진옥은 인기척을 느끼고 붓을 멈춘 채 고개를 들었다.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진옥이 진강을 보며 무거운 말투로 물었다.

“돌아오는데 아쉽지 않았나 보군?”

진강도 진옥을 흘낏 보곤 사방화와 함께 낮은 침상에 가 반쯤 드러누웠다.

“나야 돌아오기 싫었지만 다급한 네가 황궁이라도 뛰쳐나올까 돌아왔다.”

“내가 급한 걸 알긴 했나보네?”

이내 진강은 옥안 위에 있는 떡을 보고 가볍게 턱짓을 했다.

“가져오너라.”

진옥은 바로 붓을 내려놓고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 짐에게 시키는 것이냐?”

진강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황제 노릇이냐? 방화에게 주려던 거다.”

진옥은 천천히 사방화를 돌아봤고, 사방화는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어찌 만나기만 하면 이러시는지. 전 괜찮으니 이 사람 말 듣지 마십시오.”

그래도 진옥은 사방화에게 떡을 내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그리 야위었소?”

사방화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접시를 받아 한쪽에 올려두었다.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조정에 일이 많아 수고스럽더라도 몸은 챙기셔야지요. 강산 제업이 어디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입니까. 폐하께서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제언경이 제일 신나할 것입니다.”

진옥이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바쁘긴 하나 난 전혀 문제없소. 당신은 좀 어떤가, 계속 약은 먹고 있소?”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서 몸조리한 덕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대 방심해선 아니 돼.”

“알겠습니다. 무슨 부모님보다 더 잔소리가 많으십니까.”

사방화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옥도 웃으며 진강을 툭, 발로 찼다. 

“어찌 저리 야위었느냐, 네 여인 좀 잘 챙겨라.”

“알겠으니 남의 부인에게 신경 쓰지 마라. 무슨 그 황위에만 오르면 하나같이 다들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이냐?”

“난 뭐 이제 가족도 아니라는 말이냐? 가족이 아니면 신경 쓸 일도 없지.”

싸늘히 답하는 진옥을 보고 진강이 씩, 미소를 지었다.

“참 듣기 좋은 말이네. 근데 무슨 급한 일이기에 우릴 부른 것이냐?”

진옥은 금세 진지한 얼굴을 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5일 전, 북제 황제가 황후마마를 모시고 요양을 떠나 북제의 통치권이 모두 제언경에게 넘어갔다. 완전한 통치권이. 알고는 있었겠지?”

“응, 막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었다.”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었다고? 그동안 바깥소식엔 신경도 안 썼다는 것이냐?”

진옥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듯했다.

“시간이 없었다.”

진옥이 더 매섭게 진강을 노려보고 다시 분위기가 고조되자 사방화가 얼른 입을 열어 차분히 이야기했다.

“폐하, 아닙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 상의했었습니다. 우선 제언경이 남진에 심어둔 정탐꾼들을 없애자고요. 하지만 제언경의 보복을 막기 위해선 일단 북제에 있는 남진의 정탐꾼들을 철수시키거나 숨겨야합니다.”

진옥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뜻도 그러하오. 오늘 전해들은 밀보에 따르면 제언경이 며칠 내로 또다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했소.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인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남진을 겨냥하는 것일 테지.”

진강이 입을 뗐다.

“기껏해야 세 가지 중 하나겠지. 첫째, 계속해서 남진의 내란을 부추긴다. 둘째, 남진이 북제에 심어둔 정탐꾼들을 제거한다. 셋째, 변경에 병력을 재배치해 최대한 빨리 쳐부수어 남진을 숨조차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가 이리도 마음이 급한 거다. 어서 남진도 반격해서 잠시라도 흥병을 막아야한다. 그래야 우리도 충분히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진강은 잠시 코웃음을 쳤다.

“정말 북제가 몇 년을 준비하고 병력 배치에 힘썼는지 모르나? 남진은 우리 충용후부 조부님께서 전장에서 물러나신 이래로 병력에 아무 힘도 쓰지 않았다. 사봉 고모님께서 북제로 시집가신 뒤로 남진이 어디 대비할 계획이나 세운 적 있었나? 그래서, 북제가 얼마나 시간을 줘야 충분할 것 같은데?”

진옥은 금세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준비 없는 싸움을 할 순 없지 않느냐.”

진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준비 없는 전쟁을 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진옥이 물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냐?”

“남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을 맞은 상태에서 북제가 전쟁을 치르려 하니 남진이 주동적으로 출병하면 북제도 따라 출병시킬 것이다. 하지만 제언경이 막 북제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이 기회, 우리가 이걸 놓쳐서야 될까?”

진옥은 진강의 말을 곱씹으며 심사숙고 끝에 대답했다.

“그래, 일리 있는 말이다.”

사방화가 바로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지금 막북의 30만 병마도 몇 만은 손해를 본 상황이지 않습니까? 왕귀가 20만을 데려가긴 했으나 또 한 번 싸운 통에 손해를 봤습니다. 물론 북제도 승산을 거두진 못했지만요.

제언경이 북제로 돌아가며 변경에 일찍이 병력을 배치해뒀으니 수적으로 놓고 봤을 때 절대 북제를 뛰어넘을 순 없습니다. 이때 남진이 먼저 출병해 만반의 대비책이 없는 상황이라면 결과가 그리 좋을 거라 볼 순 없습니다.”

그러자 진강이 말했다.

“음, 진의 형님이 사병 5만을 데리고 변경으로 가지 않았소? 그 사병은 한 명 당 열 명을 감당할 수 있소. 그들이 막북에 다다라 예상을 깨고 먼저 북제를 습격한다면 제언경의 경하례를 더 떠들썩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는데.”

진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짜로 보니 진의 형님과 사병들도 곧 막북에 다다를 것이다.”

진강은 곧 사방화를 보며 말했다.

“방화, 지금 가장 빠른 매로 형님께 서신을 보내주시오. 진의 형님이 막북에 다다르면 하루 쉰 뒤 습격하도록 해달라고. 우린 사흘 내로 북제가 남진에 심어둔 정탐꾼을 제거해 제언경에게 큰 선물을 함께 보내줍시다.”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내 진옥은 옥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진강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찾아낸 북제 정탐꾼들의 거점지와 명단이다. 완벽하진 않으니 빈틈을 파악해 메울 수 있을 거다.”

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한번 보곤 사방화에게 건넸다.

명단을 한번 쭉 살펴본 사방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진강에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언신은 북제 소국구 신분이니 양국이 전쟁을 치르는 데에 언신을 끼어들게 할 순 없어요. 아무리 북제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지만, 그래도 언신의 나라잖아요. 제언경도 언신의 조카예요. 그러니 천기각 병력은 쓸 수 없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사씨의 서무를 처리하는 사람을 시켜 철저히 조사해 명단을 더 가져오도록 하는 것뿐이에요.”

진강이 말했다.

“제운설은 더더욱 북제에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질 않소. 지금쯤 언신을 데리고 어딜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둘 사이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많으니 당장은 당신을 비롯해 북제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을 것이오.”

“제운설과 무슨 거래를 하신 거예요? 북제 공주인 제운설을 그리 쉽게 이용하진 못하셨을 텐데요.”

“일찌감치 이름은 없고 알맹이만 남은 여인이오. 요술을 배우다 거꾸로 요술에 걸려 고생하다 오명까지 뒤집어썼고. 내게 마침 청심경이 있어 그걸 줬소. 다행히 청심경으로 요술을 억눌러 큰 관문을 돌파했고, 공주의 공력에도 큰 도움이 됐소.”

“아, 그랬군요.”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진옥이 문득 입을 열었다.

“사씨 또한 무시할 수 없지. 북제의 정탐꾼들을 말끔히 제거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소.”

“사씨 뿌리가 남진에 퍼져있어 조부님, 오라버니께서 제게 서무를 맡기셨습니다. 처리한 게 그리 많진 않았지만……. 운란 오라버니가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라버니는 저보다 사씨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거든요.”

“나도 지금 운란 공자를 찾고 있소. 운계 공자와 함께 내 사람들을 막곤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소. 운란 공자를 찾을 방법만 생각해낸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오. 올해 있었던 수해로 가을철 수확이 작년의 반도 못 미칠 것이오. 흥병에는 엄청난 군량미가 필요하니 사씨 미량에서 도와줄 수만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데.”

“예전엔 얼마든지 오라버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젠…….”

한참 진옥과 대화하던 사방화가 말끝을 흐리며 진강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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