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1화 (791/978)

791화 다시 돌아가다 

진강과 사방화는 드디어 깊은 산에서 나와 도성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진강은 평소처럼 사방화와 함께 말을 타고 달렸다.

막 관도를 지나는데, 백성들의 말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북제가 황태자를 책립했고, 현재 북제 황제 대신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북제 황제가 정식으로 남진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왔다.

진강은 금세 미간을 찌푸렸고, 사방화는 바로 입을 열었다.

“북제가 황태자를 책립했다고요? 제언경일까요?”

“제언경이 아니면 누구겠소? 돌아가면 그놈이 남진에 심어둔 정탐꾼들을 찾아내 제사나 지내야겠소.”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북제로 소식을 전하는 걸 막으려면 그들부터 없애야지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남진이 북제에 심어둔 정탐꾼들을 철수시키거나 숨겨야 해요. 북제의 정탐꾼들이 당했단 소식을 들으면 제언경도 곧장 손을 쓸 테니까요.”

“그렇겠군.”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윽고 북쪽 성문에 다다르자,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진강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곧 황궁에도 사방화, 진강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두 사람이 성으로 들어서자 백성들이 기뻐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 소왕야와 소왕비마마께서 돌아오셨다!”

두 사람의 귀환 소식은 순식간에 남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영친왕부에도 이 희보가 전해지자, 영친왕비는 몹시 기뻐하며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그렇게 며칠 전까지 암울한 그림자만 드리웠던 영친왕부에 시끌벅적한 활기가 피어났다.

* * *

영친왕부 대문 앞.

대문 어귀엔 영친왕비를 비롯해 유 측비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진강은 웃음을 터뜨리며 영친왕비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게 다 뭡니까?”

하지만 영친왕비는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방화만 쳐다보았다.

“방화야……! 어서 내려오너라.”

사방화도 감격에 젖은 영친왕비의 눈을 마주했다.

지난날, 영친왕비는 험난한 고생도 마다 않고 사방화를 쫓아왔었다. 그러나 사방화는 그런 영친왕비에게 진까지 쳐서 그녀의 앞길을 막고,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 황궁에 틀어박혀있기까지 했었다.

자신의 지난 과오가 떠오르자 사방화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어머님…….”

영친왕비는 눈시울을 붉히며 앞으로 다가와 진강을 다그쳤다.

“어서 내려오지 않고 뭐하느냐!”

진강이 바로 사방화를 안고 말에서 내려오자, 영친왕비는 더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사방화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힘든 게 있으면 말을 해야지. 혼자 그렇게 감당해선 안 된다, 아가야.”

“다 제 잘못입니다. 어머님을 걱정시켜드렸어요.”

“걱정이 뭐 별것이겠느냐. 이 녀석과 화해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어서 들어가자! 네 아버님은 조정에 나가셨다. 너희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낙매거도 매일 청소해 두었단다.”

영친왕비는 사방화의 손을 꼭 잡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이다 진강을 힐끗 돌아보았다.

진강은 시종일관 투명하게 소외돼있었지만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영친왕부의 모든 사람들도 두 사람의 귀환에 기뻐하며 왕부로 들어섰다.

* * *

본원에 들어서자 유 측비를 비롯한 이들은 인사를 올린 뒤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고, 이젠 영친왕비와 사방화, 진강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영친왕비가 서둘러 사방화에게 물었다.

“방화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는 좀 말해줄 수 있겠니?”

사방화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됐지만, 진강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몹시 간략하게 지난 사연을 설명했다.

이내 영친왕비의 고운 눈가에 눈물이 맺혀들었다.

“우리 아가, 나도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옥완과 네 아버님은 일찍이 떠나셨지만, 옥완이 남긴 물건을 네게 전해주라고 했었지. 매족 규율이 남달라 너희가 이어지는 게 힘들 거란 생각은 했지만…….”

사방화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아 조용히 침묵만 지켰다.

다행히 진강이 전생과 현생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무겁게 차오르는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이 진강을 힘들게 만든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지만 않았더라면 진강은 결코 힘든 길을 걷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다. 사방화는 진강과 영친왕비에게 너무도 미안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영친왕비가 다시 한 번 사방화의 손을 따스하게 토닥였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건 하늘이 맺어준 깊은 인연이란 뜻이다. 헤어질 수도 없는 인연이지. 하지만 세상에 매족이 있는 것 또한 전부 하늘의 뜻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분명 방법이 있을 게다. 네 외조부님도 이미 매국에 가계시지 않니? 사람의 힘으로도 충분히 운명을 극복할 수 있어.”

영친왕비의 다정한 위로에 사방화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

“그래,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서 들어가 쉬어.”

사방화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어서 들어가 쉬어야지!”

그렇게 사방화는 어쩔 수 없이 진강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 * *

낙매거로 향하는 길은 전과 변함이 없었다.

아름다운 풍경, 풀과 나무들까지 꼭 어제처럼 그대로였다.

“분명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줄 알았어요.”

“나쁜 사람. 아주 나쁜 여인이오.”

진강은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면서도 눈빛 속 짙은 상처는 숨기질 못했다. 그에 사방화는 몹시 미안한 눈망울로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맞아요, 아주 나빴어요, 제가.”

진강도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더 꼭 잡고서 낙매거로 향했다.

시화를 비롯한 8명의 시녀들, 옥작, 임칠도 일찍이 소식을 듣고 낙매거 입구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매거 안에선 옅은 바람도 두 사람을 맞으러 달려 나왔다. 바닥에 한가롭게 누워있던 매화 꽃잎들도 때마침 바람결에 몸을 싣고 즐겁게 춤을 추었다. 곧 새로 피어날 꽃들에서도 싱그러운 향기가 모두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때, 안에서 백청과 자야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백청과 자야도 사방화, 진강의 옷자락에 몸을 비비며 그간의 그리움을 마음껏 토해냈다.

사방화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깊은 산 속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취가 있었지만, 영친왕부는 이 시끄러운 도성 안에서도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새 많이 통통해졌네.”

진강의 말에, 옥작이 얼른 말을 거들었다.

“사촌 형님, 말도 마세요. 두 분이 안 계실 동안 임칠이 두 분의 식사를 모두 이놈들에게 먹였습니다. 살이 안 찔 수가 없지요.”

“어쩐지. 그럼 음식 솜씨가 좀 늘었다는 말인가?”

진강이 임칠을 돌아보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오시(*午時: 오전 11시 ~ 오후 1시)에 식사 준비가 다 되면 두 분께서 직접 평가해 주시지요.”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화는 한참 쪼그려 앉아 백청과 자야를 토닥이고 있었는데, 이내 진강이 대충 손짓으로 동물들을 쫓아버리곤 사방화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 * *

방 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자마자 희순이 달려왔다.

“소왕야, 소왕비마마, 황궁에도 두 분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져 폐하께서 즉시 입궁하라 청하셨습니다.”

진강이 눈썹을 들썩였다.

“방금 돌아와 엉덩이도 제대로 붙이질 못했는데 왜 그리 급한 것이냐?”

“소천자 태감이 직접 왔습니다.”

희순의 말에도 진강은 콧방귀만 뀌었다.

“맘껏 쉬다 황궁으로 가겠다고 전해라.”

희순은 바로 소천자에게 말을 전했고, 그는 다시 서둘러 황궁으로 향했다.

* * *

곧 황궁 어서재에도 진강의 말이 전해졌다.

진옥은 소천자의 말을 듣고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지체할 시간 없으니 오늘 반드시 궁에 들어야 한다고 전해라.”

그렇게 소천자는 다시 영친왕부로 달려갔다. 

희순이 또 소천자가 돌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집사, 소왕야가 계신 낙매거로 안내해 주시면 안 되겠소? 폐하께서 정말 급한 일로 두 분께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소. 더 이상 시간이 지체돼선 안 된다고 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희순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천자를 데리고 낙매거로 향했다.

* * *

그때, 낙매거 방 안에선 사방화도 한참 진강을 설득하고 있었다.

“정말 급한 일인가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방금 돌아온 사람을 다급히 부를 리가 없잖아요.”

“혼자 급하게 두라지.”

“아마 한 번 더 올 거예요.”

진강은 코웃음을 쳤다.

“이 몸이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은 아닌데.”

사방화도 피식, 웃음이 터졌다.

“어서 옷 갈아입으세요. 어차피 별로 힘들지도 않으니 저녁에 편히 쉬어요. 북제 문제가 가장 급하잖아요.”

진강은 그래도 요지부동이라 사방화가 그의 팔을 잡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러자 진강이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며칠 내내 참았으니 오늘 밤엔 행복한 기대를 해도 될까?”

“지금 저랑 거래하시는 거예요?”

사방화는 웃음을 터뜨렸고, 진강은 그녀를 품에 꼭 안고 말했다.

“당신을 안기만 하고 만지질 못하니 얼마나 힘들던지…….”

“눈에 쌍심지 켜지 않고 차분히 잘 말씀 나누신다고 하시면요.”

“그럼 그 자식 태도에 달렸소.”

사방화는 즉각 옷장으로 가 그의 옷을 찾아주었다.

진강이 먼저 옷을 입고 나오니 역시 사방화 예상대로 소천자가 있었다.

“소왕야, 폐하께서 며칠 내내 북제 일로 밤새 고생하시며 두 분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진강은 소천자를 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거 참 좋은 심부름꾼이네.”

소천자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주인님 걱정과 근심을 나눠 짊어지고 있으니 어서 소인과 함께 궁으로 드시지요.”

“황궁에 또 누가 있느냐?”

“폐하 홀로 어서재에 계십니다.”

“나라의 녹을 받는 대신들은 어디 있느냐? 아무 쓸모없단 말은 하지 말고.”

진강이 느릿느릿 걸으며 말했다.

“조정 일은 잘 알지 못합니다만, 북제의 태자가 나라를 다스린단 소식이 전해지자 노신들께선 화병이 나 그만…….”

“안일함에 길들어진 폐물들 같으니.”

그때, 사방화도 옷을 갈아입고 안에서 나와 진강의 손을 잡았다.

“가요.”

소천자는 사방화를 보자마자 매우 기쁜 얼굴로 말했다.

“소왕비마마, 안색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병도 다 나으신 것 같군요.”

사방화가 미소를 지었다.

“응, 많이 좋아졌어.”

“희순! 마차를 준비해라.”

이어진 진강의 명에, 희순이 서둘러 낙매거를 빠져나갔다.

* * *

영친왕비도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본원에서 나왔다. 일전의 갈등에 도저히 마음 편하게만 있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영친왕비가 바로 소천자에게 물었다.

“방금 돌아와 쉬지도 못한 애들을 어쩐 일로 부르시는 것이냐?”

“왕비마마, 염려 마십시오. 폐하께선 북제 문제로 두 분을 청하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왕야께서 폐하께……, 예……. 폐하께서도 소왕야께 어찌하시진 않을 것입니다.”

소천자는 진강의 눈치를 보며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에 진강은 살짝 콧방귀만 뀌었다. 

이내 영친왕비가 다시 사방화를 보고서 물었다.

“방화도 가는 것이냐?”

“왕비마마, 걱정 마십시오. 폐하께선 그저 북제 일로 부르신 것입니다.”

소천자에 이어 사방화도 영친왕비를 안심시켰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전 괜찮습니다. 궁에 다녀와 쉬면됩니다.”

영친왕비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진강에게 말했다.

“네 부인도 찾아왔으니 더 이상 황상께 버릇없이 굴어선 아니 된다.”

진강은 허공을 보며 매우 대충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어서 다녀오너라.”

영친왕비의 배웅을 받으며 진강, 사방화는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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