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1화(27권) (781/978)

781화 깊은 산속 정원 

한편, 좌상부, 한림대학사부, 감찰어사부를 비롯한 대신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집에서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오늘 이 엄청난 일에 관해 떠들어대기 바빴다.

그렇게 황제의 즉위식 날, 진강이 황궁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방화를 데리고 떠났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남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단연 몇 년이 지나도 절대 시들지 못할 대단한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진강을 찾으러 간 영친왕부의 하인은 하루 종일 헤매도 북성을 나간 후로 아무도 그를 봤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진강은 또다시 종적 하나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 * *

사방화의 시녀들도 결국 진강과 사방화 행방의 실마리 하나 찾지 못하고 다시 영친왕부로 돌아왔다.

영친왕비는 걱정과 동시에 분노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 망할 자식이 방화를 데리고 대체 어딜 갔단 말이냐! 그 막돼먹은 성격으로 방화를 어찌하지만 않으면 좋겠구나!”

그러자 영친왕이 영친왕비를 보며 말했다.

“세상 천하에 당신만큼 힘든 어머니는 없을 것이오. 돌아오지 않을 땐 언제 올려나 목 빠지게 기다리더니 이젠 왕부로 돌아오지 않으니 사방을 찾아 헤매고 방화까지 걱정하는구려. 하루라도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소.”

“걱정할 팔자인가 보지요!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싶어 걱정될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당신이 도울 방법은 없소.”

결국 영친왕비도 손을 내저었다.

“그래요, 됐어요. 신경 안 쓰면 되잖아요.”

“내일이라도 돌아올 테니 어서 주무시오.”

영친왕비도 영친왕의 말을 들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러나 그 다음날도 진강과 사방화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새 황제가 즉위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지만 조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금전 내에서 기다리던 대신들은 소천자에게서 오늘 조회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좌상은 곧장 소천자를 붙잡고 조심스레 황제의 상태를 물었다.

“폐하께선 어제 이후로 어서재를 걸어 잠그고 지금껏 나오시질 않습니다.”

소천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좌상이 깜짝 놀라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좌상 대인. 폐하께선 이틀 정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신 것뿐입니다.”

소천자가 고개를 내젓자, 좌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반드시 폐하를 잘 지켜봐야하네.”

소천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회가 없는 이상 대신들은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 *

3일째. 진강과 사방화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영친왕비도 더는 참을 수 없어 영친왕부 모든 이들을 동원해 두 사람을 찾아 나서려했다. 그런데 그 찰나 진강의 암위, 청암이 나타났다.

청암은 영친왕비에게 두 사람 모두 별일이 없고,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겠다며 안심하란 진강의 말을 전했다.

영친왕비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청암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는데, 청암은 또 바람처럼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순식간에 영친왕부를 떠나간 청암을 보고, 영친왕비가 기가 찬 듯 말했다.

“하! 그 주인에 그 은위구나! 온다간다 말 한마디도 없이 떠나버리다니.”

춘란이 곁에서 바로 그녀를 위로했다.

“왕비마마, 이젠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 소왕야께서 괜찮으시다면 분명 괜찮으신 겁니다.”

영친왕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화의 동의도 없이 데려나가긴 했지만 조용한 곳을 찾아 둘이서 잘 얘기를 나누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 분명 그러실 겁니다. 소왕야께서 얼마나 총명하신 분인데요.”

고개를 끄덕이는 춘란을 보고, 영친왕비가 웃으며 그녀를 흘겨보았다.

“어려서부터 곁에서 커오는 걸 지켜봐왔다고 칭찬하기 여념이 없구나.”

춘란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먹구름처럼 어두웠던 영친왕부의 분위기는 진강이 전한 소식으로 다시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갔다.

* * *

사흘이 지나, 진옥도 드디어 조정에 나왔다. 

대신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석해 양쪽으로 나란히 서서, 조심스레 진옥의 안색을 살폈다. 물론 사흘 전보다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다행히 표정은 평소처럼 온화해서 대신들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즉위 날 벌어진 거대한 소동 그 후, 새 황제가 즉위한지 3일이 지나서야 마침내 새 시대의 조당이 그 개막을 알렸다.

조회가 끝나고, 이목청과 연석은 인적이 드문 찻집을 찾았다.

“목청, 대체 강 소왕야는 방화 아가씨를 데리고 어디로 갔기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걸까? 우리마저 찾을 수 없는 곳이 어디가 있지?”

연석이 몹시 답답하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갔으니 누구도 찾지 못하겠지.”

이목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우린 어릴 적부터 함께 커와 평범한 벗도 아닌 형제나 다름없는데 대체 우리에게 뭘 얼마나 더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어.”

연석의 말에, 이목청은 순간 실소를 했다.

“형제 사이에도 시시콜콜 알려준다는 법이 있던가. 그럼 연석 너도 강 소왕야께 방화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더라면 어찌 됐을 것 같아? 일찍이 너를 때려죽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홀로 가슴앓이하며 떠날 필요도 없고 더 편했을 뻔했나?”

“아무튼 사람 속을 후벼 파는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연석이 울컥해 발길질을 했지만, 이목청은 가볍게 연석의 발을 피했다.

“왜, 내 말이 틀리기라도 했어?”

연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긴 하지! 아무렴, 강 소왕야가 연모하는 분에게 내가 조그만 낌새라도 보였다간 맞아 죽지 않았을 리 없지. 하지만 나도 은연중에 강 소왕야가 방화 아가씨께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사 후야께서 편찮으실 때마다 대번에 충용후부로 달려가 손 태의를 닦달하는데 그 모습을 보곤 절대 방화 아가씨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선 안 되겠다고 느꼈지.”

손 태의의 언급에, 이목청은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정말 손 태의도 참으로 안타까워.”

“그러게 말이다. 남의 손에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이제 남진 경성에 더 이상 뛰어난 태의도 없어.”

“맞아. 또 형부 한 대인도 안타깝기 그지없어.”

“내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참 많은 일을 놓쳤어. 그런데 목청, 강 소왕야가 방화 아가씨를 어찌하진 않겠지?”

“걱정도 참 많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 마시게.”

연석도 눈을 깜빡이다 제 허벅지를 내리쳤다.

“맞아. 본래 강 소왕야는 방화 아가씨 앞에선 꼼짝도 못 하시니까.”

이목청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이목청과 연석 외에도 사방화, 진강, 진옥을 화두에 올린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 황제의 즉위식 날 있었던 일이 어디 보통 일이던가.

백성들이 근 며칠간 그날 일을 이야기했던 것을 쌓아 모은다면 실제로 저 하늘까지 닿을 정도였다.

찻집과 주루에선 새 황제의 존함을 감히 입에 올리진 못했으나 개중에 또 앞뒤가 없는 이들은 그들만의 장소에서 속 깊이 담아둔 말까지 끄집어내 제멋대로 이야기를 논하기 바빴다. 그렇게 진강, 사방화, 진옥이 준 여파는 매일같이 그곳을 인파로 북적이게 만들었다.

* * *

어느 깊은 산속 정원.

세간이 그토록 마르고 닳게 떠드는 주인공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간소한 집 몇 채뿐인 이곳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풍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바깥은 울타리로 담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진강의 암위 청암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사방화는 이곳에서 꼬박 하루 만에 눈을 떴다.

낯선 곳에 잠시 어리둥절해진 사방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순간 황궁에서 진강의 품에 안겨 쓰러지던 찰나가 떠올랐다. 그때가 바로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사방화는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으나 낡은 장식물 몇 개를 제외하곤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공간만 눈에 들어왔다.

방 안 격자창 너머로 희미하게 울타리 쳐진 담장이 보였지만 어디로 봐도 이곳은 너무도 낯설기만 한 장소였다.

사방화는 이내 침상을 내려와 서둘러 방 문을 열었다.

때마침 정오의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듯 떠밀려와 사방화는 급히 손 그늘을 만들어 눈을 가렸다.

“일어났소?”

그때, 꿈결처럼 진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방화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햇빛을 이끌고 걸어오는 진강이 보였다.

양손엔 활과 꿩을 들고 있었지만, 진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태양처럼 찬란했다. 신분을 증명할 그 무엇이 없어도 진강은 항상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찬사를 받을 만큼 본연의 화려한 기품을 자랑하는 사내였다.

낯선 곳에서도 진강의 미모만은 익숙한 아름다움을 발했다.

사방화가 눈을 찡그리며 아리따운 진강을 조용히 바라보고 서 있자, 진강은 활을 내려두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일어났으니 몸도 풀 겸 밥하는 것 좀 도와주시오.”

진강의 목소리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몹시도 평온했다.

사방화는 무슨 답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 뒤 부엌에선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화는 한참동안 부엌을 바라보다 울타리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변은 모두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곳이라 햇빛은 넘치도록 충분히 쏟아졌다. 그리고 고요한 주위론 이따금 새가 재잘재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딘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남진 경성을 벗어났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경성 100리 내엔 법불사를 제외하고는 이런 산림이 없었고 그 산림조차 이런 풍광을 갖추진 못했다.

특히나 바깥엔 정교한 진법이 쳐져 있어 들어올 수만 있을 뿐, 나가는 출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이내 진강이 부엌에서 얼굴을 쏙, 내밀었다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 사방화를 보고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아니면 어떻게 해야 이 진법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생각 중인가?”

사방화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 진법으로 날 한평생 여기 가둘 생각은 아니죠?”

진강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평생 가두면 좀 어떻소? 당신은 영원한 내 짝이오. 한평생은 고사하고 다음 생에도 날 벗어날 생각은 마시오.”

사방화는 웃는 진강을 보고 화를 냈다.

“누가 당신 아내라는 거예요? 전 소왕야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진강은 눈썹을 까딱이다 품에서 황색 성지를 꺼내 그녀 쪽으로 굴렸다.

성지는 바닥으로 도르르, 굴러가 정확히 사방화의 발끝에서 멈췄다.

“직접 보시오. 당신이 내 아내가 아니면 누가 내 아내라는 것인지, 내 말에 반박할 거리라도 있는지.”

사방화는 선황제가 남긴 유언을 말없이 읽다가 다시 진지하게 운을 뗐다.

“또다시 불화가 있다면 헤어질 수도 있다고 적혀 있잖아요.”

결국 내내 평화롭던 진강의 낯빛도 일순간 굳어버렸다. 짧게 한숨을 쉰 그가 들고 있던 마른 장작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으르렁거리듯 낮게 소리쳤다.

“꿈 깨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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