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7화 (777/978)

777화 그가 돌아왔다 (1) 

3일 후, 드디어 진옥의 황제 즉위식 날이 밝았다. 

전날 밤새 내린 가랑비에 황궁도, 하늘의 공기도 빗물에 씻겨 새 단장을 했다. 이른 아침 바람결에도 비에 젖은 흙냄새가 살그머니 불어왔다.

9개의 성문에도 모두 중병을 동원해 엄호가 강화됐고, 황궁 내원에도 어림군이 주변을 지켰다. 

그리고 진옥은 아침이 밝자 내관을 통해 사방화의 황후 예복을 전해왔다.

화려한 광채가 돋보이는 예복은 아주 아름다웠다. 진옥이 예복의 기초 형식을 토대로 해 세심한 부분까지 바꿀 수 있도록 애를 쓴 덕에 예복 위의 봉황은 금방이라도 먼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진옥이 위용 넘치는 제왕의 옷을 입고 사방화를 만나러 왔다.

“위례를 시작으로 대사령을 놓고, 즉위 조서 반포, 옥새 수여, 백관들의 축사 등 모든 의식이 끝나면 황후 책립이 있을 것이오. 한나절은 걸릴 것 같으니 여기서 쉬고 있으면 마칠 때쯤 되어 부르겠소.”

사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진옥은 사방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방화, 이 모든 의식이 순조롭게 끝나면 당신이 진정 내 황후가 되는 것이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백년도 바라지 않소. 그저 이번 생에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소. 난 황제가 되고, 당신은 황후가 되어 이 강산을 태평 번영 성세로 일궈 낸다면 이번 생에 후회도 없을 것이오.”

사방화는 고개를 들어 진옥을 올려다보다, 그의 눈빛에 일렁이는 진지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진옥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조용히 대답했다.

“오늘 모든 게 무사히 치러진다면 그 소원, 이루지 못할 것도 없겠지요.”

진옥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사내가 아니더라도 일언은 중천금입니다.”

진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와 그녀를 껴안았다.

“평양성 월하노인 사당에서 월낙에게 당신과 내 이름을 쓴 붉은 천 조각을 회화나무에 걸어달라고 했었지. 수많은 인연을 이어준 천년 묵은 회화나무는 내 기도에도 반응을 해줬나보오.”

사방화는 다시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진옥은 사방화를 천천히 놓고, 그녀의 머리칼을 다정히 쓸어주었다.

“월낙도 내게 그러더군. 세상에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날 극도로 싫어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느냐고. 난 절대 진강보다 당신을 늦게 알지도 않았지만, 그저 운명의 장난일 뿐이라고 답했소. 그저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라오. 내 목숨과 바꿔서라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소.”

결국 사방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떠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어서 가십시오.”

진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내전을 빠져나갔다.

사방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떠나는 진옥의 뒷모습에서 언젠가의 그날이 겹쳐졌다.

당시 진옥은 길고 긴 푸른 옷을 입은 채 붉은 외투를 걸치고 우아한 기품을 뽐냈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펄럭이더니,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의 아름다운 얼굴까지 시원스레 드러났었다. 평양성 월하노인 사당에서 사방화도 진옥과 마주쳤었다.

* * *

황제의 즉위를 알리는 축하의 음률이 온 황궁에 울려 퍼졌다.

시화, 시묵, 시람, 시만, 품청, 품죽, 품훤, 품연은 아름답고 화려한 황후의 복식을 보면서도, 온 황궁에 가득한 경사의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전혀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진옥이 떠난 후엔 태후가 침궁으로 들어섰다. 사방화가 황궁에 들어온 이래 태후가 그녀를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태후는 상냥한 얼굴로 들어와 황후 예복과 창가에 서있는 사방화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그녀를 보니 태후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방화야, 즉위식이 한창인데 어찌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이냐?”

사방화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아직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곧 태후가 다가와 사방화의 손을 잡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황상 즉위와 황후 책립을 치르는 중대한 날이니 급하지 않다고 하셨겠지만 미리 준비를 해서 즉위식이 끝나면 바로 나갈 수 있게 해야지. 나도 황후 책봉 날 긴장돼 어쩔 줄을 몰랐지만 예복은 미리 다 갖춰 입고 있었단다.”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태후마마.”

“여인은 즉위식을 못 보게 하긴 하나 그렇다고 여기 갇혀만 있을 필요는 없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금원(*禁苑: 궁궐의 화원) 내에 있는 봉황대(凤凰台)로 가자. 거기선 황궁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니 즉위식도 볼 수 있어.”

“봉황대요?”

“응, 황궁 금원 내에 있다. 황릉이 경성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대대로 황궁 금원은 위패를 모시는 법당으로 썼지. 평소엔 닫혀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지만 그 당시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젠 황상을 제외하곤 아무도 우릴 막을 사람이 없다.”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황궁 내 사당인데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태후가 웃으며 말했다.

“사당은 금원 안쪽에 있다. 봉황대는 외곽에 있는 전망대라, 조상님들의 안식을 방해하진 않는단다.”

사방화도 끝내 기대감에 부푼 태후를 눈빛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괜찮을 듯합니다.”

태후가 기뻐하며 뒤돌아 사방화에게 어서 황후 예복을 입혀주라고 말했다.

이내 시녀들은 사방화의 세욕과 단장, 환복을 조심스레 도왔다.

얼마 뒤, 모든 준비를 다하고 나가려는데, 소천자가 다급히 달려왔다가 태후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태후마마께서 분명 방화 아가씨와 함께 금원 봉황대로 가 즉위식을 보실 거라며 소인을 보내셨는데 역시 폐하의 짐작이 정확하셨습니다.”

태후도 웃음을 터뜨렸다.

“즉위식으로 바쁜 와중에 내가 방화를 데리고 봉황대에 갈 거란 것까지 신경을 썼단 말이냐? 마침 가려던 참이다. 황상이 무슨 분부라도 하셨느냐?”

소천자가 웃으며 말했다.

“긴 시간 동안 두 분께서 편히 보실 수 있게 청소하라 분부하셨습니다.”

“세심하기도 하지. 잠시 후에 갈 테니 어서 가서 준비해다오.”

태후가 웃으며 손짓했고, 소천자도 즉각 밖으로 달려 나갔다.

태후는 다시 미소 띤 얼굴로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항상 금원을 관리하는 이들이 있긴 했으나, 비바람에 더럽혀져 분명 불편할 게야. 황상이 황후를 위해 이리도 성심껏 준비해주셨으니 우리도 즉위식을 편히 볼 수 있겠어.”

사방화는 웃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 * *

사방화, 태후가 방을 나오자 마침 금원으로 향하는 궁녀와 태감 무리가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금원에 다다랐을 무렵, 소천자는 이미 금원의 문을 활짝 열고 모든 청소와 정돈을 마쳐둔 상태였다.

봉황대에도 눈부신 봉황 꼬리 문양이 빛나는 휘장과 탁자와 의자, 다과까지 모든 준비가 다 돼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폐하께서 소인에게 태후마마와 방화 아가씨의 시중을 들라 하셨습니다.”

소천자가 두 사람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괜찮으니 어서 황상께 가봐라. 황상 측근에 있는 사람이 자리를 비워 일처리도 제대로 못했단 말이 돌면 골치 아프니.”

그에 소천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고, 사방화와 태후는 봉황대로 향했다.

봉황대엔 무려 100개나 되는 계단이 있어 영작대 보다도 높았다. 

반쯤 올랐을까, 태후는 뒤를 돌아보다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사방화가 즉각 부축해줬지만, 태후는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은 데다 낯빛도 창백했다.

“태후마마, 괜찮으십니까?”

태후가 사방화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당시엔 들키기라도 할까 단숨에 올라가 즉위식을 보고 다시 내려와 얌전히 책립을 기다렸었는데, 나도 이제 정말 늙었나보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겨우 반쯤 올라온 것 가지고 이리도 휘청거리고 있으니.”

“태후마마, 그만 내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확실히 높긴 합니다.”

사방화가 걱정스럽게 말해도, 태후는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황상의 즉위만큼 중대한 일을 어찌 직접 지켜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 평생 우리 옥이보다 뛰어난 황자가 없어 황위는 분명 내 아들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난 늘 조마조마하며 지켜봐왔다. 이제야 그 평생의 바람이 이루어졌는데 당연히 직접 봐야지.”

“제가 부축해드릴 테니 조심하세요.”

태후는 그렇게 사방화의 부축을 받으며 한발, 한발, 봉황대를 올랐다.

봉황대는 높은데다 위치도 좋아 한눈에 황궁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즉위식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며, 흥겨운 음악 소리와 함께 백관들이 차례로 들어와 축사를 올렸다.

황제의 즉위란 중대한 일에 걸맞게 예부에선 굉장한 정성을 쏟은듯했다. 금란전 바깥까지 펼쳐진 성대한 광경은 실로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였다.

곧 태후는 땀을 닦으며 의자에 앉아, 금란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반 시진 후, 대신들이 새 황제 진옥을 따라 금란전으로 들어섰다.

“안의 상황은 볼 수 없지만, 한 시진 뒤면 황후 책봉이 있을 게다. 이제 내려가자. 전에 들기 전에 잠시라도 쉬어야지.”

태후가 웃으며 말했다.

“힘드신 것 같으니 먼저 내려가 계십시오. 풍경이 좋아 조금 더 감상하고 싶어집니다. 어차피 시간도 아직 이르니 저는 조금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사방화의 답에, 태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나처럼 부축을 받을 필요도 없으니 더 있다가 내려오너라. 하지만 길시를 놓쳐선 안 되니 적당할 때 내려와야 한다.”

태후가 여의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가자, 사방화는 시화를 돌아보았다.

“시화, 가서 바둑판 좀 가져올래?”

“아가씨, 바람이 셉니다. 몸조심 하셔야지요.”

시화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 날씨에 이 정도 바람은 괜찮아. 어서 가져와.”

시화가 내려간 뒤, 사방화는 이내 시묵을 보며 물었다.

“시묵, 이 금원에 배치된 어림군은 몇이나 돼?”

“침궁 바깥에 있던 만 명을 금원 외곽으로 옮겨왔습니다. 안팎으로 배치된 어림군은 만 오천 정도 될 겁니다.”

“황궁 전체엔 얼마나 있는데?”

“5만 명을 넘진 않을 겁니다.”

사방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묵은 평온한 표정의 사방화를 바라보다 약간 긴장한 빛으로 물었다.

“아가씨, 강 소왕야께서 오늘 정말 황궁으로 오신다면 이 어림군들은…….”

사방화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시묵도 절로 말끝을 흐리며 물러났다.

잠시 후, 시화가 바둑판을 가져왔다.

사방화는 홀로 바둑을 두기 시작했고, 시녀들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섰다.

* * *

반 시진 정도가 지났다. 

봉황대 아래쪽에서 소천자가 달려와 크게 소리쳤다.

“방화 아가씨! 폐하의 즉위식이 곧 마무리되니 그만 내려오십시오!”

그런데 소천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궁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황궁 내 경사스런 악기 소리마저 뒤덮을 만큼 엄청난 소리였다.

시화, 시묵은 동시에 황궁 바깥을 쳐다봤다가 입구의 누군가를 발견했다.

사방화도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쳐다보자 곧장 시화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강 소왕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시묵도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정말 강 소왕야께서 오셨어요!”

사방화는 고개를 숙인 채 바둑을 내려놓으며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소천자는 봉황대 위로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질 않자, 사방화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방화 아가씨, 폐하의 즉위식이 곧 마무리되니 그만 내려오십시오.”

“알았다!”

사방화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대답만 할뿐이었다.

시화, 시묵은 긴장된 눈빛으로 황궁 입구를 주시했다.

진강은 말 위에 꼿꼿이 앉아 황궁을 지키는 호위에게 어떤 지시만 내렸다.

호위는 곧장 문을 열었고, 말발굽 소리는 황궁 금원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에 소천자가 깜짝 놀라 어린 내관에게 말했다.

“어찌 황궁 내에서 말을 타는 이가 있단 말이냐? 어서 확인해 보거라.”

하지만 또 소천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을 탄 그 주인공이 그의 시야로 들어섰다. 소천자는 말을 타고 있는 진강을 보고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강 소왕야?”

소천자가 그를 알아본 순간, 진강은 이미 그를 가볍게 뛰어넘어 질주했다.

진강의 엄청난 기운에 소천자는 일순 힘이 풀려 그대로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봉황대를 쳐다보는 진강이 보였다.

온몸에 먼지바람을 묻히고 있어도 진강은 여전히 눈부시게 멋진 모습이었다.

곧이어 황궁 금원을 지키던 금위군들이 즉시 진강을 향해 활을 당겼다. 

소천자는 믿을 수 없는 듯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진강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소식을 알리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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