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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화 (770/978)

770화 당신이 있어 다행입니다 (1) 

황후 책립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진옥과 영친왕비의 약조로 막을 내렸다. 

조회를 마친 후 진옥은 자신의 궁전으로 향했고, 사방화는 영친왕비가 금전에서 난리를 피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방화는 약을 다 마시고 빈 그릇을 시화에게 건네며 미간을 문질렀다.

곧이어 사방화의 처소로 진옥이 왔다.

시화, 시묵이 급히 마중을 나가자 진옥은 그녀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진옥도 사방화의 낯빛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조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소?”

고개를 끄덕이는 사방화를 보며 진옥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백모님께서 아바마마를 고발하겠다고 하시는데 참으로 전무후무한 일이오. 어릴 적부터 저런 어머니를 가진 진강을 참 부러워했었지. 어젯밤 언신 공자와 계획을 짜긴 했지만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요. 하지만 어찌됐든 어의국에서 그대의 옷을 맞추도록 할 것이오.”

한동안 말이 없던 사방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진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에 일어나 어서재로 향했다.

* * *

한편, 영친왕은 영친왕비와 함께 왕부로 돌아와 시급하게 물어보았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해낸 것이오?”

“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어찌 그리 고집스러운 것이오? 방화는 황상과 혼인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았소. 서로가 원하는 혼인인데 잠시는 막아도 더 이상 어떻게 더 막겠소?”

영친왕비가 벌컥 화를 냈다.

“방화가 제 딸은 아니지만, 함께한 날이 있으니 그 아이의 성격을 아주 잘 압니다. 방화는 모든 일에 이를 깨물고서라도 강인함으로 버티는 아이예요. 이번 일도 분명 어쩔 수 없는 고충이 있을 겁니다.”

“무슨 고충이 있단 말이오? 사씨와 충용후부를 위해 그랬을 거란 뜻이오?”

“노후야의 행방이 묘연해 몰래 알아봤지만, 동쪽 바다로는 가지 않으셨다고 했어요. 경성을 떠나신 열흘 뒤부터 아예 종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분명 방화가 충용후부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철저히 피신시키기 위해 계획한 것일 거예요.

이제 경성엔 사씨 육방과 막북 변경에 있는 묵함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냥 사씨를 위해서였다면 이 정도까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선황폐하께선 승하하셨고, 옥이 아니, 황상은 사씨를 없애려는 마음이 없으니 어디서나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일찍이 심히 손해를 입긴 했으나 이젠 평안히 속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가문을 나누고 노후야를 경성에서 떠나보냈으니 충용후부가 텅 빈 것처럼 보여도, 모든 가족이 다 은신했단 것쯤은 알 수 있소. 이렇게 충용후부도 평안해졌는데 대체 무슨 고충이 또 있을 거란 말이오?”

“아마 저희가 생각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어느 부분 말이오?”

“방화가 강이와 혼인한 뒤로 경성 안팎은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화가 경성을 떠나 임안성 위기를 해결한 뒤로, 막북 변경에 군사의 움직임이 있는 것 외엔 경성이 이상하게 평안해졌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런 듯하오. 하지만 구곡산에서 황상과 방화가 힘을 합쳐 누군가를 죽였다고 들었소. 경성이 평안해진 데는 배후에 숨은 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오.”

“맞아요. 방화가 떠나자마자 경성이 평안해졌다는 건 모두 방화를 노리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우리 왕부를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선황폐하께 휴서 성지를 내리게 했던 것이면요? 아마 배후의 세력이 완벽히 가라앉지 않았으니 황상과 함께 돌아온 것 같아요…….”

“당신 생각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잖소. 지금 신경 써야할 건 황상 즉위식에 강이가 돌아올 수 있을지가 문제요.”

영친왕비의 얼굴에 더욱 근심이 차올랐다.

“황상은 어릴 때부터 봐왔던 조카인데, 황상의 성정은 우리가 제일 잘 알지요. 분명 계획한 게 있으니 즉위식까지 강이를 기다려주겠다 한 겁니다.”

영친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즉위식 전에 강이가 돌아와 소란을 피우길 원치 않았겠지.”

“황상이 어떤 여인과 혼인하든, 강이가 그 전에 돌아오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 상대가 방화니 절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요. 분명 강이가 돌아오지 못하게 준비해뒀을 테니 우리도 어서 맞대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숨을 내쉬던 영친왕이 돌연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왕부 사람과 황상의 사람을 맞서게 하겠단 말이오? 안 되오! 변경에 전쟁이 난 것만 해도 힘든데 왕부와 황상이 내분을 해선 안 되는 거요!”

결국 영친왕비의 언성도 높아졌다.

“항상 그렇게 남진 강산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시지요. 황상이 당신 며느리를 뺏어가려는데 변경의 전쟁이나 내분 따위를 신경 쓸 거라 생각하세요?”

“……황상이 반드시 강이를 돌아오지 못하게 막을 거란 법도 없잖소.”

“어찌 그런 법이 없답니까? 반드시 막을 거예요.”

영친왕이 다시 영친왕비를 보며 차분히 설득했다.

“황상과 강이 세력이 대치한다면 남진은 현재 상황에서 더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이오. 명색이 황제라는 자가 그리 현명하지 못할 리는 없소.”

“방화 하나를 위해 황위마저 마다하려 했던 아이입니다! 정녕 연정 앞에 현명함 따위가 통할 거라 생각하세요? 왕야께서 동의하지 않으신 대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왕부의 힘만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럼 제 친정의 힘을 빌려서라도 할 테니 막을 생각 마세요.”

영친왕도 끝내 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소.”

영친왕비는 홱, 뒤돌아 가버렸고 영친왕은 그저 긴 한숨만 내쉬었다.

* * *

그날, 예부에서는 곧장 황제의 즉위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진옥은 예부에 황후 책립 예제와 즉위를 함께 준비하도록 분부했고, 어의국에도 황후의 예복을 재단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4일 후, 막북 변경에 왕귀가 이끄는 20만 병마가 도착해 사묵함과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만 병마는 긴 여정에 지치기도 했지만, 사기는 충분했다. 

그날 밤, 북제 군은 또다시 막북 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왕귀의 20만 병사가 합류하니 더 이상 북제 군도 맥을 쓰지 못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남진은 왕가에 대한 칭찬 일색으로 뒤덮였다. 과연 왕가는 썩어도 준치라며, 오랫동안 조정에 있진 못했지만 아직도 300년 전 위세를 지니고 있다고 입을 모으며 다들 모처럼 들린 승전보에 기뻐했다.

* * *

그동안 진옥과 사방화는 막북 변경에 두 차례 더 병마를 동원하기 위한 상의를 했다. 부대를 이끌 장군을 누구로 세울지 아주 잘 따져보아야 했지만, 조정엔 현재 마땅히 군대를 통솔할 인물이 없는 상황이었다. 

진옥은 조정에서 대신들과도 상의해봤지만, 대신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논의하던 중, 문득 좌상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폐하, 우상부 이목청 공자가 적임일 듯합니다. 나라를 이끌만한 문무를 겸비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인재는 없지요. 심성이 침착하고 도량도 넓고 충용후부 사 후작과도 친분이 두터우니 북제를 물리치는 데도 적격입니다.”

순간 우상이 고개를 들었다. 좌상이 이렇게 갑자기 자신의 아들을 추천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까닭이었다.

애초에 진옥은 파혼을 청하며 이목청에게 관직을 주겠단 약조를 했었기에 우상은 이목청이 문직에 올라 자신의 직위를 이어받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목청은 사묵함과 맞먹을 정도의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 군을 이끌만한 중임을 감당할 인물이기도 했다. 

“폐하, 소신의 아들이 떠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사옵니다.”

이어진 우상의 말에, 좌상이 바로 입을 열었다.

“경성으로 돌아오는 중이라 들었으니 조만간 도착할 것이오. 며칠 내로 도착만 하면 중임을 맡는 데는 지장이 없지. 폐하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자 진옥도 좌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무를 겸비한 인재니 며칠 내로 돌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연석 소후작도 이목청 공자와 함께 돌아오는 중이라 들었네.”

좌상은 얼떨결에 맞장구를 쳤다.

“예, 폐하. 영강후부의 연 소후작도 함께 돌아오는 중입니다.”

이내 진옥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짐이 이목청 공자와 연석 소후작을 함께 막북으로 보낸다면, 영강후와 부인께서 마음 졸이실까 염려되는군.”

좌상과 우상은 서로 눈치를 살피곤 영강후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영강후는 3황자, 5황자의 일을 처리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병부상서가 나와 아뢰었다.

“연 소후작은 남진을 떠나 북제 소국구부에서 지내왔다고 들었사옵니다. 소후작이 돌아올 무렵 막북에서 군사의 움직임이 보였으니, 소후작을 기용하기엔 부적절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진옥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경들, 그리 심각히 생각하실 필요 없네. 연석은 북제 소국구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그곳에서 지냈던 것이니 나랏일과는 상관없어. 짐은 영강후부와 연석 소후작을 믿는다네.”

병부상서가 말했다.

“예, 소신의 걱정이 과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우선 서산 군영에 병마를 선별해 두고 목청과 연석이 돌아오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대신들은 일제히 진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옥은 조회를 마치고 사방화가 있는 전내로 향했다.

사방화는 마침 탁자 위의 약사발만 뚱하게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뾰로통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약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진옥이 웃음을 터뜨리며 묻자, 사방화도 그제야 진옥이 온 것을 발견하고 손을 내려놓았다.

“언신이 가기 전에 처방을 새로 내려줬는데 제가 가장 싫어하는 약입니다.”

“매번 물처럼 약을 들이키기에, 그대가 싫어하는 약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진옥이 약사발을 집어 들고 냄새를 한번 맡은 뒤 다시 내려놓았다.

“그대 대신에 마셔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오.”

사방화는 진옥을 살짝 째려보고는 약사발을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다 식겠군.”

그때, 시화가 문 앞에서 아뢰었다.

“폐하! 아가씨께서 약을 드시도록 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벌써 세 번이나 다시 데워드렸는데도 드시질 않습니다. 언신 공자님이 반드시 약을 드시게 하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쏟아버리면 마실 때까지 다시 달이라고 하셨고요.”

그러자 사방화가 이제 시화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냥 언신에게 비밀로 하고 약재를 바꿔주면 되잖아.”

“이 약재는 절대 빠져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 다른 약재로 바꾸셔도 절대 이 약효가 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시화가 답답해하며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까다롭지 않아 모시기도 수월했던 사방화가 약재 하나로 이리 고집을 부릴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빠져선 안 될 약재라니 어서 드시오.”

진옥이 다시 약사발을 내밀자 사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옥은 그녀의 행동에 갈수록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상의할 게 있으니 어서 드시오.”

“지금 말씀하십시오.”

진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신 공자가 당신을 힘들게 하지 말라며 내게 신신당부했었소. 약을 마시기 전까진 말해주지 않을 것이오.”

사방화는 진옥을 째려보곤 코를 쥐고 힘겹게 약을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잠시 후 갑자기 한구석으로 달려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진옥이 깜짝 놀라 굳어있는데, 한참 괴로워하던 사방화가 눈물까지 흘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약만 마시면 구역질을 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진옥이 서둘러 사방화에게 다가갔다.

“계속해서 그런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계속 그런 건 아니라니 다행이군. 눈물을 닦으시오.”

진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내밀었지만, 사방화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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