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5화 (765/978)

765화 길을 가로막다 

진옥의 옥련을 필두로 한 긴 대열이 황릉을 나와 경성으로 향했다.

진옥은 돌아갈 때도 똑같이 사방화와 옥련에 함께 올랐고, 3황자와 5황자 사건을 처리하려 남은 영강후를 제외하곤 모두가 함께 경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대열이 막 성문 앞에 다다랐을 무렵, 가마 두 대가 길을 에워싼 채 행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곧 그 가마에선 류 태비, 심 태비가 나와 무릎을 뚫고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폐하!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형제를 해치실 수 있습니까! 선황폐하께서도 결코 편히 잠드시지 못할 겁니다!”

두 태비의 비참하고 엄청난 울음소리는 온 하늘을 찌를듯했다.

백성들도 새 황제가 막 선황제를 안장시키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거리를 둘러싸고 저마다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옥련 안에 있던 진옥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방화도 두 태비의 멍청함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질고 선량한 평판을 가진 진옥을 선황제가 죽자마자 형제를 내치는 파렴치한 황제로 만들려는 의도는 잘 알겠으나, 이로 인해 진옥이 두 황자가 저지른 만행을 공개하기라도 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폐하! 3황자와 5황자는 여태 황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지만, 한 핏줄인 형제를 이렇게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형제를 해쳤다는 걸 백성들이 알게 된다면 어찌 폐하께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한참 두 태비의 울부짖는 소리가 커져갈 즈음, 진옥도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옥련의 휘장을 홱 걷어 젖혔다.

진옥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태비는 더더욱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까지 헐떡이며 우는 두 태비와 따갑도록 쏟아지는 백성들의 시선에 진옥의 안색은 급속도로 굳어버렸다.

“대체 어느 하찮은 이가 두 태비께 썩어빠진 혀를 놀려댄 것이오? 사건의 연유도 묻지 않고 지금 짐의 앞길을 막고 추궁을 하는 것이오?”

두 태비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폐하, 저희 몰래 두 황자를 죽이려고 하셨던 것입니까? 저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면, 3황자와 5황자는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시자마자 폐하께 죽임을 당할 뻔한 것 아닙니까?”

두 태비는 일찌감치 입을 맞춘듯했다.

“3황자와 5황자가 벌인 추악한 짓은 짐뿐만 아니라 아바마마, 또 황릉에 계신 여러 선황폐하들까지 분노케 했소. 백부님, 좌상, 우상, 그리고 친애하는 경들 중 지금 두 태비께 짐이 대체 왜 셋째 형님과 다섯째를 엄벌에 처했는지 말씀해주실 분 계시오?”

진옥의 말에, 영친왕이 제일 먼저 가마에서 내려왔다.

영친왕과 좌상, 우상을 비롯한 대신들은 진옥의 옥련 뒤를 따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두 태비가 진옥이 경성으로 향하는 시간에 딱 맞춰 성문 앞에서 난리를 피워대는 것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연유도 모르고 황상께 그리 추궁해서야 되겠소? 명백히 두 황자들의 잘못이었소. 황상께선 충분히 너그러이 처벌해주신…….”

“저희가 들은 바로는 폐하께서 황릉 내의 편전을 봉쇄하고 물과 음식도 주지 않으며, 3황자와 5황자가 그 안에서 죽게 내버려 두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폐하께서 너그러이 봐주신 거랍니까?”

류 태비와 심 태비는 곧장 영친왕의 말을 끊고 반문했다.

그에 영친왕이 두 태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황상께서 영강후에게 이 일을 처리하도록 맡겨…….”

“어찌 처리하신다는 겁니까?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시니 형제가 황위를 노리고 황권을 위협할까 두려워 3황자와 5황자를 처단하려던 것 아니십니까? 두 황자가 잘못했다는 건 전부 거짓부렁…….”

“나를 포함한 다른 대인들 모두가 직접 보았소! 3황자, 5황자가 선황폐하께서 편히 잠드시기도 전에 불효를 저질렀고, 황상은 그래도 형제임을 감안해 그 자리에서 엄히 다스리지 않은 것이오!”

결국 영친왕도 안색을 굳히며 화를 냈다.

하지만 한참을 통곡하던 두 태비는 도저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왕야! 폐하뿐 아니라 3황자, 5황자도 왕야의 조카입니다! 아무리 황자들이 황위를 이어받은 폐하보다 쓸모없을지라도, 조카들을 사지에서 구해…….”

“무엄하다!”

쾅! 

진옥이 엄청난 분노를 표하며 옥련을 내리쳤다.

진옥의 거센 힘으로 끝내 옥련의 한 귀퉁이가 아예 떨어져나가선, 그대로 두 태비 방향 쪽으로 날아갔다. 두 태비는 순간 울음을 뚝 그쳤다.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시어 채 편히 잠드시기도 전, 두 황자는 신성한 황릉을 더럽혔소! 이미 저들이 저지른 추악한 짓을 짐이 용서한다한들, 선황폐하와 황조들께서 용서하실 수 있을 것 같소?”

류 태비와 심 태비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분명 누군가 모함을 한 겁니다. 황자들의 본심은 아니었을 겁니다…….”

“본심이 아니다? 짐도 그리 생각해 영강후께 철저히 조사하라 명했소. 그런데 두 분은 지금 짐의 옥련을 가로막고 뭘 하려는 것이오? 짐이 이 일을 샅샅이 조사하지 못하게 핍박하려는 것이오? 정녕 태비들의 뜻대로 된다면 짐이 어찌 선황폐하와 황조들께 떳떳할 수 있겠소!”

두 태비들은 동시에 목이 메었다.

“여봐라! 류 태비, 심 태비를 황릉으로 보내 3황자, 5황자가 누명을 쓴 것인지, 아니면 아바마마와 황조들께 불효한 것인지 직접 확인하게 하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곧장 아랫사람이 다가와 류 태비와 심 태비를 일으켰다. 

“황궁으로 돌아가라!”

이내 진옥은 탁, 소리 나게 휘장을 내렸다.

옥련 대열을 가로막은 가마 두 대가 비키자 의장대는 다시 황궁으로 향했고, 백성들은 뒤늦게야 진실을 알아 차렸다. 어질고 온화한 황제, 진옥이 진노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선황제가 승하했는데, 그의 아들인 황자들이 주색에 빠져있던 건 그야말로 엄청난 대죄였다. 효를 하늘처럼 숭상하는 시대에 감히 생각할 수도 불효가 아니던가.

백성들은 귓속말을 해대며 연달아 탄식을 했고, 누군가의 입에선 3황자와 5황자 같은 이들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어제 있었던 일이 지금까지 바깥에 퍼지지 않은 데에는 진옥이 황실의 체면과 형제들을 생각해 그랬던 것이라 짐작을 하며, 그 와중에 두 태비가 성문까지 나와 추태를 부린 건 심히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대열이 멀어지는 와중에도 백성들의 의론은 그치지 않았다.

* * *

황제의 옥련 안.

진옥은 휘장을 내리고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가릴 수 없는 추악함은 가리지 않는 게 정답인 듯하오. 짐을 아주 우습게 알았던 모양이지.”

사방화는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에 3황자, 5황자, 류 태비, 심 태비의 일까지 더해졌으니, 새로 황위를 이어받는 진옥도 참으로 보기 드물게 운수가 사나운 황제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올바른 것이라 봅니다. 이 기회에 류 태비마마, 심 태비마마를 황릉으로 내쫓았으니 더는 황궁에 돌아오실 일도 없을 겁니다.”

“어마마마께서도 반평생 저 둘을 싫어하셨으니 안 돌아왔으면 좋겠소.”

류 태비와 심 태비가 한창 기세등등하던 시절엔 천하의 황후마저 권세가 주춤할 뻔도 하였으나 이젠 그녀들의 아들들이 타락한 대가로 황후는 완벽한 전세역전을 했다.

곧 대열이 황궁에 다다르자, 진옥이 옥련을 멈추고 사방화에게 말했다.

“난 조정의 일을 보고 갈 테니 먼저 돌아가 쉬시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진옥은 옥련에서 내려와 곧장 의사전으로 떠났다. 그에 대신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곤 진옥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사방화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시화, 시묵에게 말했다.

“일전에 두 태비마마께선 내 혼인날 선물을 주셨다. 내게 정을 베풀어 주신 것이니 나도 말씀은 전해 드려야겠지. 황릉에 다다르면 잠자코 영강후의 뜻을 따라야만 3황자와 5황자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전해드리거라.

태후마마와도 쟁쟁히 겨뤘던 데다 오늘 백성들 앞에서 새 황제폐하를 난처하게까지 만들었으니, 이를 태후마마께서 아신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니 황궁으론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도 전해드려라.”

시화와 시묵은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향했다.

이내 사방화가 내실로 들어서는데, 차를 마시고 있는 언신이 보였다.

사방화가 바로 의아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어딜 갔었기에 여태 모습도 보이질 않았던 거야?”

언신이 사방화를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요양을 제대로 못해 안색이 아주 안 좋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으십니다.”

“선황폐하의 죽음에 마음 아파할 사람도 아닌데 안색이 좋지 않을 리가. 그런데 황궁에 들어오고부터 못 봤던 거 같은데 처리할 일이라도 있었어?”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를 틈타 몰래 경성에서 가장 가까운 은산에 들렀다왔습니다.”

사방화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언신이 목소리를 한껏 깔고 말을 덧붙였다.

“이미 폐허가 되어 사람 하나 없더군요.”

사방화가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서 거기가 폐허가 됐단 말이야?”

“누군가 20여일 전에 먼저 와서 처리한 듯합니다. 모조리 해치우진 못했겠지만 남은 이들이 제 발로 떠난 것이겠지요.”

“누가 그런 거지?”

“흔적이 없어 찾지 못했습니다.”

“20일 전이라면 폐하께서도 임안성에서 역병으로 정신없을 때이니 은산을 신경 쓸 새가 없었을 텐데.”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도, 능력도 넘치고 패기까지 있어 은산을 뒤엎을 만한 분이라면……, 천하에 오직 한 분뿐이겠지요.”

사방화의 눈가가 어렴풋이 어두워졌다.

“강 소왕야께서 심수간을 나와 이목청 공자, 최의지 시랑, 연석 소후작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오고 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운란 공자께선 돌아오지 않으시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언신의 말을 듣고도 침묵하던 사방화가 잠시 후 입술을 깨물며 운을 뗐다.

“경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을 방법은 없을까?”

언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을 보내 사력을 다해 가로막도록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은 없지요.”

“그럼 그렇게 하자.”

언신은 말없이 눈빛으로만 그럴 수는 없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자 사방화는 차가 든 찻잔을 그대로 기울여 바닥에 찻물을 떨어뜨렸다. 뜨거운 찻물은 바닥에 스며들어 점차 차가운 온도로 식어갔다.

사방화는 그 바닥을 잠시 바라보다,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와 진강은 이 차처럼 항상 누군가 이 관계를 쥐고 있었어. 이제껏 그가 그랬었지만 이젠 내 차례야.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언신은 하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어두운 그늘이 진 사방화의 눈가를 보며 잠시 후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시니 경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도와야지요. 하지만 사력을 다해도 막을 수 없을까 걱정됩니다. 강 소왕야 아니십니까. 세력도 엄청나시니 쉽게 막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즉위하기 전까지만 막으면 돼.”

“내우외환의 시기에 빠져버린 데다 선황폐하께서 승하하셨으니 조정 대신들도 서둘러 폐하의 즉위를 거행할 것입니다.”

사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면 선황폐하께서 승하한 날부터 한 달 후엔 반드시 즉위해.”

“즉위하시는 날, 바로 황후를 책립하겠지요?”

이내 아무런 말이 없어진 사방화를 보고, 언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기각 모든 세력을 동원해 막아내겠습니다.”

“천기각 하나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폐하께서도 당연히 진강이 돌아오지 않길 바랄 테니 폐하와 힘을 합치면 쉽게 빠져나올 순 없을 거야.”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방화는 서서히 탁자로 시선을 떨궜다.

“언신, 이해가 가진 않겠지만…….”

“아가씨! 영강후 부인과 연 소군주님께서 폐하의 승낙을 받고 아가씨를 뵈러 오셨습니다.”

그때, 밖에서 시화의 목소리가 사방화의 말을 끊었다.

그에 언신도 영강후 부인과 연람이 문 앞까지 와있는 것을 보고 일어났다.

“무슨 일을 하시든 그에 따른 이유가 있으실 테지요. 그 누가 뭐라 한들 전 언제나 주인님 편에 서 있을 겁니다. 제게 맡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사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신, 이번 생에 언신 같은 지기를 얻게 된 건 내 큰 복이야.”

언신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향했고, 사방화는 내실을 나와 화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화, 후 부인과 연람을 안으로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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