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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화 (754/978)

754화 귀경을 알리는 급보 

언신은 그렇게 떠나간 사운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위도 계승하려 하지 않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사씨 염창 숙부님께서 운계 오라버니를 북제에서 사씨로 데려오셨을 때, 우리 조부님은 그리도 소탈한 성격이던 고모님이 하필 북제 황궁을 지키겠다고 결연한 뜻을 보이시는 걸 보고 감개무량하셨어.

물론 한평생 존경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본성을 감추고 한 곳에서만 살아야 하니 즐거움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 운계 오라버니도 고모님 뒤를 이으려 하지 않는 거야. 아무리 존귀한 북제 황실 유일한 적자라 해도 사람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나도 저런 모습이 참 부럽다.”

“부러워도 부러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지요.”

“맞아. 부러워도 부러워할 수 없다는 말이 맞네. 언신, 이제 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쉬어. 날도 어두워졌네.”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언신도 인사한 후 곧바로 방을 나섰다.

모두가 떠나고, 시화가 들어와 조심스레 물었다.

“아가씨, 좀 누우시겠습니까?”

“아니, 앉아 있을게.”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시화가 의자를 가져와 침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가서 쉬어도 돼.”

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만 남겨두고 혼자 떠나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가씨, 앞으로 홀로 위험한 일에 뛰어드시면 안 됩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희 여덟 명 모두 자결로 후야께 사죄를 드려야 할 거예요.”

이내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도 내 성격을 아시니까 너희를 탓하진 않을 거야. 아무도 막을 수 없게 혼자 떠나는데 사죄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아무리 저희가 쓸모가 없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가씨를 대신해 화살을 막을 순 있지 않습니까?”

계속된 시화의 호소에 사방화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

“군주님께서 화살을 맞으셨을 때도 비록 후야께선 벌하지 않으셨지만, 아이들은 모두 밤낮으로 무술을 연마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습니다.”

시화가 말했다.

“너희는 본래 무술이 아니라 각자 뛰어난 부분을 가지고 날 돕기 위해 온 것이잖아. 무술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겠지만, 또 정도를 지나쳐 너희의 특기를 잃어서도 안 돼. 앞으론 혼자서 어디 가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 쉬어. 아이들한테도 더 이상 자책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게 약조하셨으니 꼭 지키셔야합니다.”

“알겠어, 또 지금 이 몸 상태로 어딜 나갈 수 있겠어?”

시화는 그제야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조심스레 문을 닫아주었다.

비로소 혼자 남게 된 방, 사방화는 침상에 기대 창가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을 느꼈다. 창밖으로 울어대는 말매미 소리는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작년 겨울, 막북에서 경성으로 돌아온 지 어언 반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하면 길었을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하지만 왠지 남은 하반기엔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 * *

반 시진 정도 앉아 있었을까, 지친 사방화가 막 자리에 누우려는데 창밖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보니, 진옥이 걸어오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 진옥의 금의는 더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발했다.

“태자전하!”

시화와 시녀들이 즉각 예를 갖추었다.

“방화는 어떠하냐?”

“아가씨께선 지금 쉬고 계십니다.”

“방 안에 누가 있느냐?”

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전에 언신 공자님, 운계 공자님께서 오셨다가 돌아가시곤 현재는 혼자 계십니다. 지금쯤 낮잠을 주무시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들어가 보마.”

시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진옥은 화당을 지나 내실 입구에 다다랐다. 휘장 사이로도 침상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방화가 보였다.

“방화.”

사방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옥이 휘장을 걷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찌 낮잠도 자지 않고 있소? 방이 너무 더운 건 아니오? 혹시 매미가 너무 시끄러운 거라면 몽땅 잡아들이라 시키겠소.”

사방화도 순간 피식, 웃음이 터졌다.

“제가 어디 그렇게 까다롭습니까? 잠은 이미 충분히 잤습니다. 밤에 잠을 못잘까 싶어 일부러 일어나 있는 겁니다.”

“그도 그렇지!”

진옥이 웃으며 침상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병사는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20만.”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만이라면 북제도 진입하기 쉽진 않을 겁니다. 언제쯤 떠나실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오늘 저녁이오.”

“누가 책임자로 가는 겁니까?”

“임안성에서 80리 떨어진 구곡관을 지키는 총책임자 왕귀(王贵)가 갈 것이오. 그만한 적임자가 없소.”

“덕자 태후마마의 친정, 왕씨 가문의 사람 말입니까?”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확실히 왕씨 가문 사람만큼 막북 변경에서 북제 옥씨 가문을 당해낼 인물은 없지요. 남진의 왕씨 가문과 북제의 옥씨 가문은 300년간 원수로 지내오며, 한시도 서로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가문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이는 없을 겁니다.”

“같은 생각이오. 사실 내가 막북으로 갔어야 하는 게 맞지만, 오늘 좌상께서 보내신 서신을 전해 받았소. 아바마마께서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다고. 진경은 태비마마 손에 커서 국정에 관여해본 적이 없소. 또 어린 아우가 나라 일을 맡기엔 부족한 점이 한 둘이 아니오. 아바마마께서 잘못되시기라도 하는 날엔 난 즉시 경성으로 돌아가 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하오.”

“경성에 있을 때 폐하께 적어도 반년이 남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그리 빠르진 않을 겁니다.”

진옥은 점점 더 마음이 아파왔다.

“아바마마께서 조금만 더 버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오. 나이도 들고 병도 드셨지만, 아바마마께서 계셨기에 이 남진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소. 어릴 적 위풍당당한 아바마마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꼭 저런 황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아바마마께선 암암리에 모략을 꾸미는, 그리 좋은 황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소. 돌아보니 난 눈 깜짝할 사이 이렇게 커버렸고, 아바마마께선 더 연세가 드셨소. 이제와…….”

진옥은 짙게 한숨을 쉬며 말도 채 끝맺지 못했다.

잠시 후, 사방화가 다시 웃으며 물었다.

“언제쯤 임안성 일을 다 마무리 지을 수 있겠습니까?”

“보름이 걸릴 듯 하오.”

사방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후 막북이 별 탈 없다면 경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방화, 나와 같이 가겠소?”

이어진 진옥의 말에, 사방화는 홀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다시 얘기하시지요.”

“그게 좋겠소. 건강이 최우선이니 생각이 많아져선 안 되오.”

사방화는 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진옥은 왕귀가 병사들을 데리고 임안성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향했다.

진옥이 떠나고 사방화는 비로소 침상에 지친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시화, 시묵은 사방화에게 아무 일도 없음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줬다.

* * *

그날 오후, 왕귀는 진옥의 명으로 20만 병마를 이끌고 막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옥은 임안성 각 주군현 관원들을 조사하며 관풍 정돈에 나섰다.

머지않아 경성에도 20만 병마가 막북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에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황태자 진옥의 영민함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임안성에서 가까운 병사들을 움직인다면 열흘 내에 무조건 막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게다가 덕자 태후의 친정, 왕씨 가문 사람을 보낸 것은 북제 옥가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내린 셈이기도 했다. 

영친왕, 좌우상, 영강후와 대신들은 이른 아침부터 조당에 모여 황제를 기다리며 진옥을 칭찬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조회 시간이 지나서야 오권이 공수를 올리며 이야기했다.

“폐하의 옥체가 불편하시어 금일 조회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들은 일제히 조당을 빠져나갔다.

황궁을 빠져나온 영친왕은 잠시 고개를 돌려 궁궐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영친왕부로 돌아갔다.

그때, 좌상이 우상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어제 노하신 게 지금까지 풀리지 않으신 건가? 아니면 정말 옥체가 불편하신 걸까?”

“둘 다일 수도 있겠지.”

우상이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태자전하께서 하루빨리 임안성 일을 정리하시고 경성으로 돌아오시기 만을 바랄 뿐이네.”

이어진 좌상의 말에, 우상은 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황제는 이틀 내내 조회를 열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째에 접어들던 날, 막북에서 한 소식이 들려왔다. 북제의 한 병사가 황자 제언경에게 대들곤 북제 군영을 탈영해 막북 군영에 수용됐다는 소식이었다.

북제 변경을 지키는 비호 장군이 막북 군영을 찾아가 탈영병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공교롭게도 북제로 시집간 막북 군대 부장군 누이의 남편이 그 탈영병의 처남이었던 터라 그 요구를 거절하고 말았다.

이에 북제 비호 장군이 격노해 이 사실을 제언경에게 알렸고 막북 군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수년간 이어졌던 남진과 북제의 평화는 끝내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깨지게 되고, 결국 이로써 양국 국경전의 서막이 열리게 됐다.

임안성에 발이 묶였던 사묵함이 서둘러 막북으로 향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사건은 그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벌어지고 말았다.

부 책임자는 북제 군사의 움직임이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대응을 하긴 했으나, 기세등등한 북제군의 상대가 될 순 없었다. 결과는 막북군 대영에서 2중 전패를 하는 등 처절한 참패의 성적표 뿐, 남진은 엄청난 사상자만 발생했고, 북제는 완승을 거뒀다.

이 비보에 남진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영친왕, 좌우상, 영강후와 대신들은 아침 일찍부터 황궁을 찾아와 침전 밖에서 황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 * *

반 시진 후, 오권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나왔다.

“며칠 내내 태의께서 다녀가셨지만, 왕야와 대인들께서도 아시듯 폐하께선 더 이상 일어나질 못하십니다.”

이내 영친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며칠 전까지도 괜찮으셨는데 어찌 돌연 일어나지 못하신다는 것이냐?”

“왕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의 병환은 줄곧 좋아졌다, 나빠졌다 했었습니다. 기분이 좋으실 땐 조정의 일도 처리할 수 있으셨지만, 좋지 않으실 땐 마음의 병이 더해지셨습니다. 조금 전 폐하께서 잠시 일어나셨는데 왕야와 대인들께 어서 태자전하를 귀경시키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친왕을 필두로 좌우상, 영강후를 비롯한 대신들 안색이 급변했다.

황태자를 시급히 귀경하도록 만드는 상황엔 어떤 것이 있을까? 진옥은 임안성에 맡은 일들이 있어 부득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아직 돌아올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황제가 급히 진옥을 귀경시키려 한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겠는가? 모두의 머릿속에선 단 한 가지 가능성만 떠올랐다.

“태자전하께서 오시기 전까진 폐하께선 누구도 뵙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오권은 말을 전한 뒤 다시 내전으로 향했다.

영친왕과 대신들은 서로 눈빛만 주고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황제는 이미 병세가 매우 심각해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더 이상 국경 전쟁에 대해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내 모두의 안색은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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