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3화 (753/978)

753화 연석의 종적 

사운계는 또 차를 한입 마신 뒤, 사방화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좋은 계획이라도 있소?”

“계획이요?”

사운계가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북제가 군사를 일으키려 하는데 사태가 어찌 될지 궁금하지도 않소? 임안성에선 보일 기미도 없는데 한번 나가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이오?”

“나더러 막북에 가라는 말씀이세요?”

사운계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영인 막북에 궁금할 게 뭐 있겠소. 설성 말이오. 누이는 가본 적 있소?”

“없어요.”

“안 가봤다니 아주 잘 됐군!”

“안 가봤어도 안 갈 거예요.”

사방화의 답에, 사운계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성이 궁금하지 않소?”

“네.”

사운계는 답답함에 눈까지 크게 떴다.

“후야께서 태자전하 밀서를 들고 설성에 병력요청을 하러 가신 건 아오?”

“네, 알아요. 태자전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그래! 조금 전 태자전하께서 주군현의 병사를 동원해 막북에 원조를 보낸다는 소식이 있고 바로 누이가 깨어났다기에 당연히 누이의 뜻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 보면 설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같잖소.”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설성에 관심 없는 게 이상할 일인가요? 설성은 북제와 남진의 경계에 있어 지금껏 양국 일엔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어요. 오라버니가 직접 병력을 청해도 그 가능성은 반밖에 안 된다는데 스스로 해결하는 게 더 낫지요.”

사운계는 사방화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따지고 보면 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천천히 언신을 돌아보았다.

“언신 공자, 누이가 어딘가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언신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저 몸 상태로는 어디도 갈 수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선 임안성이 가장 평화로우니 여기서 쉬시는 게 가장 좋지요. 그러니 막북이니 설성이니 주인님을 등 떠미실 생각은 마십시오.”

“아, 누이의 몸 상태를 깜빡했습니다! 용서하시지요.”

그때, 사방화가 입을 뗐다.

“운계 오라버니, 가고 싶으시면 가보셔도 돼요.”

“함께 갈 사람이 없는데 무슨 재미로 가겠소? 안 가느니만 못하지. 아! 혹시 연석을 만났소?”

사운계는 곧장 고개를 젓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연석이요? 언신이 북제에서 지내도록 해뒀었잖아요.”

사운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휴서 성지가 천하에 알려지고, 연석이 북제에서 나와 남진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사운계가 뒤쫓아보려 했지만 끝내 놓쳤다는 이야기에, 사방화는 바로 언신을 바라보았다.

언신은 사방화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즉각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석 소후작이 임안성에 왔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사방화의 얼굴도 잠시 심각해졌다.

“대체 어딜 간 걸까요? 무슨 일이 난 건 아니어야 할 텐데.”

그러자 사운계도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누이를 찾으러 떠난 것이었으니 임안성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여기로 와야 맞는 것인데 이틀째 아무 그림자도 보이질 않으니……. 좀 이상한데? 어느 홍등가로 빠져버린 건 아니겠지?”

“사내가 전부 오라버니 같은 줄 아세요? 언신, 경가에게 한번 찾아보라고 해줘. 아직 임안성에 있지?”

사방화는 바로 사운계를 팩, 째려보곤 언신에게 부탁을 했다.

“네, 있습니다. 곧장 찾아보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언신이 방을 떠나고, 사운계는 다리를 꼬고 좀 더 편안히 누웠다.

한참 차를 홀짝홀짝 마시던 사운계가 이내 천천히 운을 뗐다.

“누이, 태자전하께서 누이가 시집을 오겠다고 응했다던데 사실이오?”

사방화는 서서히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사운계가 서둘러 찻잔을 내려두고 심각하게 물었다.

“정말 사실이었군! 대체 왜?”

“운계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처음으로 내게 이 질문을 한 분이세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 질문을 하게 될까요? 세상 모든 일에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유가 없다고 답한다면 오라버니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믿지 않겠지요? 하지만 나도 그 이유에 대해 반드시 답해야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운계는 잠시 멍하게 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누이 말이 맞소. 하지만 난 그래도 누이 외사촌 오라비잖소. 내게만 말해주시오. 절대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겠소. 진강 소왕야와 그리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아 그렇소. 만약 태자전하께서 누이를 협박한 게 아니라면 내 때려죽인대도 믿지 않겠소.”

“그런 건 없었어요.”

사운계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당혹스런 얼굴이 되었다.

“그럼 대체…….”

사방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운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궁금하긴 했으나, 전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방화를 보고 그냥 대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대답은 누이 자유지. 뭐 따지고 보면 태자전하도 나쁘진 않소.”

사방화는 피식, 엷게 웃으며 사운계를 바라보았다.

* * *

한 시진 후, 언신이 다시 돌아왔다.

“임안성 방원 백리에 심어둔 정탐꾼들이 있으니 연석이 임안성의 지계를 지났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방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시화와 시묵이 약사발을 치우고 점심을 들여왔고, 한창 세 사람의 식사가 끝날 무렵 경가의 서신이 도착했다.

언신은 서신을 읽고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틀 전 연석이 임안성의 지계를 지나간 건 맞으나 성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장 험준한 산길을 통해 구곡산으로 향했답니다. 구곡산 너머에 구곡림으로 들어간 뒤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구곡림?”

사방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구곡산과 구곡수 말고 구곡림이란 게 있었소?”

사운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아무 말이 없어진 사방화를 두고 언신이 대신 답을 이었다.

“구곡림은 보통 숲과는 달라 한번 들어가면 바다처럼 깊어지고 돌아오기도 힘든 곳입니다. 내하 절벽과도 연결된 곳이지요.”

사운계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 전설 속 죽음의 숲에 대체 뭘 하러 갔단 말입니까?”

이번엔 언신도 말이 없어졌다.

잠시 후,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사방화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찾으러 간 걸 거예요.”

“누이를 위해 남진으로 돌아왔잖소? 누이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오?”

사운계의 물음에, 사방화가 다시 담담히 말했다.

“구곡림에 간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운란 오라버니께 서신을 보내 잘 살펴달라고 말씀드릴게요.”

사운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운란이 구곡림에 있소?”

사방화는 고개를 가로젓다 이내 다시 끄덕였다.

“구곡림에 있는 건 아니지만, 구곡림은 오라버니의 지반이나 다름없어요.”

그때, 사운계는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목소리가 커졌다.

“진강 소왕야께서 구곡림에 계시잖소! 급히 떠나느라 나처럼 언신 공자에게 연락할 생각도 못했을 테니 누이를 찾을 길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오. 하지만 소왕야와는 어릴 때부터 친우였으니 연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사방화는 사운계의 말을 무시한 채, 서신을 써 사운란에게 매를 날렸다.

사운계는 얼른 매를 뒤쫓아 마당 밖으로 뛰쳐나와 지붕으로 올라갔다. 매는 북동쪽으로 날아가 구름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갔다.

이내 풀이 잔뜩 죽어 돌아온 사운계가 사방화에게 물었다.

“운란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심수간이요.”

“심수간이 어디요?”

난생 처음 듣는 이름에 사운계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하 절벽 아래 흐르는 분수령을 심수간이라 불러요. 구곡산. 구곡수와 구곡림과도 연결돼있지요.”

사운계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구곡산, 구곡수와 구곡림이 이어지는 개울로 들어가면 그곳이 바로 심수간이란 말이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눈을 깜빡이던 사운계가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진강 소왕야께서 운란과 같이 계시오?”

사방화는 아주 담담히 답했다.

“여기 있는 게 무료해서 운란 오라버니를 찾으러 가고 싶으신 거라면 쓸데없는 말 그만하시고 가세요.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내 앞에서 시답잖은 말씀은 그만하시고요. 그럼 다시 북제로 돌려보내는 수가 있어요.”

사운계가 다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찌 이 오라비를 싫어하는 것이오?”

“여기서 키우는 앵무가 오라버니보다 더 말을 잘 들을 거예요. 언제 말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잘 알 거라고요. 날 만난 후로 지금껏 잠시도 입을 쉬질 않으니, 참.”

귀찮아하는 사방화의 손짓에, 사운계는 헛기침을 한번하고 이야기했다.

“이 양심 없는 동생 같으니, 오라비가 누이를 걱정하는 것도 안 된단 말이오? 내게 이리도 정 없이 굴어대니 나도 이만 운란이나 찾으러 가야겠소! 나중에 날 보고 싶어 하지나 마시오, 누이.”

“그럼 가시는 김에 내 말도 좀 전해 주세요.”

“조금 전 서신을 보내놓고 또 무슨 말을 전할 게 있소?”

“운란 오라버니 말고요.”

사운계는 눈을 깜빡이다 이내 깨달은 듯 말했다.

“오호, 진강 소왕야께 할 말이 있다는 것이군? 어서 말해보시오! 진강 소왕야, 내 평소 소왕야를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소왕야보다 훨씬 더 악독한 사람에게 들볶이게 생겼군!”

사방화가 바로 사운계를 째려보았다.

“태자전하를 말한 것이오.”

사운계의 실없는 행동에도, 사방화는 웃음기 하나 없이 매우 담담한 얼굴로 천천히 운을 뗐다.

“애정은 한 줄기 연기 같은 것이니 지나간 모든 것들은 다 잊어버리라고 전해줘요. 그 분은 앞으로도 영친왕부의 소왕야일 것이고, 난 충용후부의 적녀일 테니까 이제 각자 자신의 짝을 찾도록 하자고요.”

사운계는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시화, 침상 위로 좀 올려줘.”

곧 시화가 서둘러 사방화를 부축해 침상에 앉혀줄 때까지 사운계는 꽤 충격을 받은 듯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사운계가 침상으로 다가와 물었다.

“정말 그리 말하란 것이오?”

사방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운계는 머리를 긁적였다.

“화가 나 날 죽이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이오?”

“겁나세요?”

사방화가 사운계를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자 사운계는 곧장 또 가슴을 내밀며 자신 있다는 듯 큰소리를 쳤다.

“그럴 리가!”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지 얼마나 됐다고, 사운계는 또 한동안 침상 앞을 서성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독한 것 아니오? 뭐 그다지 장점이 있는 분은 아니긴 하나 그래도…….”

“가실 거예요, 안 가실 거예요? 안 가실 거면 됐어요.”

결국 계속 아무 말이 없던 사방화도 한 소리를 했다.

그에 사운계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문 앞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알겠소, 알겠소. 갈 것이오, 갈 것인데! 그냥 난 심수간이 궁금해 산보도 하고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할 겸 가려던 것인데 이런 말을 전하라니……. 마음이 무겁잖소. 마……, 만일 소왕야께서 날 죽이려 하면 어찌하오? 이 연약한 오라비는 소왕야를 당해낼 자신이 없단 말이오.”

“염려마세요. 운란 오라버니가 있는 한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에 사운계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운란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정말 날 지켜줄 수 있단 말이오? 진강 소왕야가 운란에게 상대가 안 된단 것이오?”

“운란 오라버니가 본래 사씨 미량 후계자가 아닌 건 알지요? 운란 오라버니는 사실 매족 왕실의 후예에요.”

“아, 이제 알겠네! 운란도 매술을 쓸 수 있다했지? 어쩐지 그 진강 소왕야를 두려워하지 않더라니! 좋아, 다녀오겠소!”

사운계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을 넘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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