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화 가까운 곳에 병력을 배치하다 (1)
진연이 머무는 곳엔 바깥에서부터 약초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니, 마침 임안성의 노 의원이 진연의 맥을 짚고 있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진연을 보니 깨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진옥은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연아, 깨어났느냐?”
진연은 고개를 돌렸다가 진옥을 발견하고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태자 오라버니?”
“그래, 나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으로 다가와 노 의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 의원은 진연의 손을 내려두고 진옥에게 공손히 공수를 올렸다.
“태자전하께 아룁니다. 연 군주님께선 무사히 위기를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적어도 열흘간은 함부로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상처가 다 아물고 나면 천천히 가벼운 산보 정도는 하셔도 됩니다만, 예전처럼 돌아가시려면 적어도 두 달은 요양하셔야 합니다.”
진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진연에게 물었다.
“들었느냐? 네가 아무리 복을 타고났다지만, 앞으로 요양에 힘써야 한다.”
진연은 잠시 눈망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의 명치 쪽을 만져보고 진옥에게 물었다.
“검에 맞고 성벽 밖으로 떨어진 것 같은데……. 누가 절 구해주신 겁니까?”
“사운계.”
“사운계 공자요?”
진연은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마침 운계 공자가 임안성에 도착해 성벽 밑에서 널 받아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넌 그대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깨어났으니 다행이구나. 운계 공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 사람은 실종됐던 게 아니었나요? 어찌 갑자기 임안성에 나타나서 절 받아냈단 겁니까? 운계 공자에게 목숨을 구명 받았다니, 차라리 그대로 죽어버리는 게 나았습니다!”
진연이 한껏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어디 감히 그런 소리를! 네가 임안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났다면 내 어마마마는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느냐? 앞으로 백부님과 백모님은 어찌 뵈란 말이야!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의원의 말을 잘 듣거라, 알겠느냐?”
진옥이 걱정하며 야단을 치자, 진연이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후야는요?”
“북제 군사들의 움직임이 있어 어젯밤 곧장 막북으로 떠났다.”
“네? 막북에 가셨다고요? 그럼 저는요?”
진연은 급히 일어나려다 실수로 명치의 상처를 건드리고는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진옥은 얼른 그녀를 붙잡아주며 말했다.
“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리 움직이다니! 얼른 널 지켜볼 사람을 옆에 데려다 놔야겠구나. 의원, 실수로 상처를 건드렸으니 어서 봐주게.”
진옥의 명에, 노 의원이 황급히 다가와 진연의 상처를 살폈다. 그녀의 상처를 감싼 곳에선 어렴풋한 핏기가 비치고 있었다.
“상처가 깊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가장 좋은 금창약을 바르긴 했으나 아직 아물지 않았으니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진연은 고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옥은 손수건을 꺼내 진연 이마의 식은땀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된다! 알겠느냐? 네 심장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망정이지 정말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저도 막북에 가고 싶었는데 어찌 저를 두고 가셨답니까?”
“북제 군사가 움직임을 보였으나 막북 군영에 책임자가 없어 국세를 통제하기 위해 가셨다. 북제가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남진이 위태로워지는 건 순식간이다. 저 멀리 하늘 끝에 있는 것도 아니니 다 낫고 나면 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지금은 가라고 해도 갈 수도 없네요. 태자 오라버니, 그런데 흑자초는 찾으셨나요?”
“응, 찾았다.”
“오라버니께서 찾으신 겁니까?”
진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화가 찾았다.”
“우리 새언니께서요? 새언니께서 임안성에 오셨나요?”
“휴서 성지가 내려졌단 고시가 만천하에 퍼졌으니 더 이상 네 새언니가 아니다. 당분간은 그리 부르지 마라. 중상을 입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진연은 잠시 멍하니 진옥을 바라보다, 그간의 상황을 천천히 떠올렸다. 임안성엔 역병이 퍼지고, 남진 전역엔 사방화와 진강의 이혼 소식이 퍼졌다. 진연은 다시 진옥의 눈가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화 언니는 어쩌다 중상을 입으신 거예요?”
“말하자면 길다. 어쨌거나 흑자초를 찾다가 그렇게 되었으니 나중에 다시 자세히 얘기해줄게. 약을 먹었으니 이제 좀 푹 쉬거라.”
진옥이 진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래, 참 착하구나.”
그런 뒤 진옥이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시녀들에게 당부했다.
“군주님을 잘 보살펴 드려라. 절대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된다. 만약 또다시 상처를 건드린다면 내 너희를 문책할 것이다.”
“예! 말씀 받잡겠습니다, 태자전하!”
두 시녀가 일제히 땅에 무릎을 꿇었다.
진옥이 방을 떠나고, 진연은 천천히 눈을 떠 문 쪽을 향해 혓바닥을 쏙, 내밀곤 시녀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방화 언니께선 어디 계셔? 나와 가까운 곳에 계시느냐?”
시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화 아가씨는 맞은편 동쪽 뜰에 계십니다. 여기서 어느 정도는 걸어야 나옵니다.”
진연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너희들 중에 누가 날 들고 가면 어때?”
두 시녀는 깜짝 놀라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주님께 아룁니다. 의원님과 태자전하께서도 당부하셨듯이 절대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적어도 열흘은 침상에 그대로 계셔야합니다. 감히 군주님을 들어 올리다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책임질 자신이 없사옵니다.”
진연은 입술을 삐죽였다.
“운계 공자는 어디 있는 거야?”
“운계 공자님께서는 사 후야께서 계시던 방 맞은편에 계십니다.”
두 시녀의 답을 듣고, 진연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아무리 날 구해줬다고 한들 그 성가신 공자를 보고 싶진 않아.”
“며칠만 잘 참으시면 금방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진연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 시녀도 진연이 더 이상 사방화에게 가겠다고 떼를 쓰지 않는 것에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진옥은 진연의 방에서 나온 그 즉시, 동쪽 사방화의 숙소로 향했다.
시화, 시묵, 시람, 시만, 품죽, 품청, 품훤, 품연은 4인 1조로 나누어 낮과 밤을 돌아가며 한시도 사방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내 시화, 시묵, 시람, 시만이 진옥을 발견하고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태자전하.”
진옥이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방화는 깨어났느냐?”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내 직접 살펴보겠다.”
그녀들은 서둘러 휘장을 걷어주었다.
짙은 약 냄새로 가득한 방 안, 사방화는 너무도 깊이 잠든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히 창백했던 얼굴에 붉은 빛도 감돌았고 호흡도 가벼워보였다.
이내 진옥은 침상 머리맡에 앉아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시묵이 곧 차 한 잔을 권했으나, 진옥이 손을 가로저었다.
“태자전하, 서쪽 뜰에 연 군주님께서 깨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연 군주님께 다녀오시는 길이십니까? 군주님께선 좀 어떠십니까?”
시화가 물었다.
“괜찮더구나. 열흘 정도 있다 상처가 아물면 침상에서도 내려올 수 있다.”
“제대로 살피지 못한 소인들 탓입니다. 군주님 복이 많으셔서 다행입니다.”
“너희 탓이 아니다.”
진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반 시진 후, 계속 자리를 지키던 진옥이 천천히 일어났다.
“방화가 깨어나거든 내게 알려다오.”
“염려 마십시오. 아가씨께서 일어나시는 대로 곧장 아뢰겠습니다.”
그리고 진옥이 방에서 나와 뜰로 향하는데, 순간 방 안에서 기뻐하는 시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깨어나셨습니까?”
진옥과 그를 배웅해주던 시화가 동시에 멈춰 섰다. 시화는 곧장 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진옥도 시급히 그 뒤를 따랐다.
사방화는 아주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금방 막 정신을 차린듯했다.
“아가씨, 정말 깨어나셨군요! 아가씨, 물 좀 드시겠습니까?”
시화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감격에 젖어 소리쳤다.
사방화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시화 뒤로 걸어오는 진옥을 보고 잠시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소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막 가려던 참인데 드디어 깨어났군. 몸은 좀 어떻소? 불편한 곳은?”
사방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진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쓰러지고 우리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다행히 언신 공자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바로 맥을 짚고 내복의 기혈이 심하게 부족한 상태라 하더군. 갑작스레 심혈을 많이 써버린 탓에 손상이 심했소.”
사방화는 그날을 떠올리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족의 비술을 연달아 많이 사용한 탓에 심혈이 닳아버려 심맥을 안정시키는 약을 먹였소. 적어도 반년 내에는 절대 매술을 써선 안 되고, 한 달 내로는 내력도 써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
하지만 바로 이어진 진옥의 말에 사방화는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진옥은 아예 침상 맡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온화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족의 비술은 심혈에 기초해 만물의 영을 지배하는 것으로 결국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하오. 그로 인해 매술을 쓸 때마다 심혈이 닳는 것이니 앞으로 되도록 쓰지 마시오.”
사방화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겁니까?”
“꼬박 하루.”
“흑자초는 임안성으로 잘 보내졌습니까? 역병은 어찌 되었습니까?”
“무사히 임안성에 도착했고 역병도 잘 해결됐소.”
“오라버니와 언신, 운계 오라버니는요? 모두 무사하십니까?”
“어젯밤 북제에 군사 움직임이 포착됐단 소식에 사 후야께선 바로 막북 군영에 가셨소. 언신 공자는 구곡산에서 돌아온 후로 역병을 해결한 뒤 쉬고 있고. 아직 그대가 깨어났단 말은 전하지 못했소. 그리고 운계 공자는 아침부터 어딜 놀러 나가신 듯하오.”
“북제에 군사의 움직임이 있었다고요?”
사방화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방화가 더 심각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어째서요? 북제 황제폐하의 뜻이랍니까?”
“북제에서 돌아온 운계 공자에게 물어봤으나 북제 폐하의 뜻은 아니라하오. 우리가 추측한 바로는 야망 가득한 제언경 황자의 뜻일 듯하오. 오랫동안 옥가의 지지를 받아온 데다 북제에 황자라곤 자신 하나뿐이니 북제 조정과 백성들까지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지. 줄곧 남진을 뒤흔들려던 야망으로 내우외환의 기회를 틈타 군사를 움직였다는 것으로 추측되오.”
사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언경 황자와 옥가의 뜻이라면 당해내기 힘들겠습니다. 북제와 남진의 병제가 달라 제언경 황자와 옥가가 일찍이 모든 준비를 다 해둔 거라면 우리 남진은 맞설 상대도 못되지요. 현재 막북 변경에 책임자도 없고, 북제 변경은 연합까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언경 황자의 군대는 막북 30만 대군의 2배가 넘는데 오라버니께선 뭘 어찌하시려고 간 것입니까?”
진옥은 사방화의 식견에 감탄하며 말했다.
“북제에 군사가 움직인다는 걸 듣자마자 남진과 북제 병제의 다른 점을 떠올리다니 역시 총명하시오. 안 그래도 어제 일찌감치 800리 급보로 아바마마께 병제를 바꿔달라는 서신을 보냈소.”
“동의하실까요?”
진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지. 하지만 막북 방원 백리의 군사들을 막북으로 이동시키라는 성지를 내려주셨소.”
“성지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텐데 그때쯤이면 이미 손쓸 새도 없이 늦을 텐데요? 폐하께서도 이젠 많이 노쇠해지셨나봅니다. 사씨를 없애는 것과 남진 강산의 명운을 놓고 무엇이 더 중한지도 모르시는 듯합니다.”
사방화가 황제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평생 고수하신 것이니 이제와 병제를 바꾸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아바마마께선 절대 그 수모를 감당해내실 분이 아니오. 승하하시는 그날까지도 병제를 바꾸겠다는 말씀은 안 하실 지도 모르지.”
“태자전하는요?”
“난 즉위하는 그 즉시 병제부터 바꿀 것이오.”
그에 사방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막북의 위기는 어찌 벗어납니까? 좋은 대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사 후야께선 막북 군권을 다잡고 설성에 병력을 요청하러 가셨소. 막북에서 가장 가까운 곳도 설성이니 말이오. 제언경과 옥가가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분명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을 것이오. 막북 변경 주변의 병력을 도움 받는다 해도 그들의 상대가 될 순 없을 테니 설성에 요청을 하는 수밖에.”
“설성에 병력을 요청해요?”
사방화는 눈을 가늘게 뜨다, 덮은 비단 이불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어졌다.
“설성이 해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사씨 가문에서 백만분의 곡식을 빌려주어 설성은 대대로 사씨를 극진히 모셔왔소. 사씨 적자이신 사 후야께서 직접 내 밀서를 갖고 설성으로 가면 그래도 반 정도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