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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화 (743/978)

743화 진씨와 사씨 간의 교우 

사운계는 한참을 그렇게 멍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방화를 얻어 이루려는 게 동심입니까, 아니면 진씨, 사씨간 교우입니까.”

“그 둘이 뭐가 다른 것이오? 여태 방화가 날 미워한 건 두 가문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오. 앞서나가려는 진씨를 두고 사씨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것이지.

난 이 황실의 태자로 진씨의 모든 걸 떠맡고 있소. 방화도 충용후부의 적통 아가씨로 조부님, 오라버님만 생각하며 사씨가 무너지지 않기만 간절히 바라고. 이런 우리가 부부가 되는데 불가능할 게 뭐 있겠소?”

진옥의 말을 들으며 사운계는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진옥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북제 황제폐하와 황후마마의 유일한 적자이신 사운계 공자님, 공자도 이미 북제 황궁에 얼굴을 알렸다 들었소. 용모도 폐하와 황후마마를 많이 닮아서 북제 대신들도 다 공자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들었소. 여태 황궁에 적통이 없다고 툴툴대던 원망의 소리도 잦아들었다 하던데.

황후마마께선 지금껏 북제에서 세력을 키우시고 북제 황제폐하께서도 줄곧 합심해오셨으니 만약 공자께서 북제 황태자 자리에 오르려 하신다면 북제의 폐하, 황후마마, 대신들의 지지를 받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옥가의 간섭이 있긴 하겠지만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요.”

이어진 진옥의 말에, 사운계는 그냥 코웃음만 쳤다.

그러자 진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공자께서 그 자리를 원치 않으신다한들, 옥가와 제언경은 절대 공자를 가만히 놔두진 않을 것이오. 여태 북제의 황자는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옥가는 당연히 황좌를 자신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겠소? 하지만 북제 폐하의 유일한 적자인 공자께서 북제로 직접 가 조상도 만나 뵀으니 이젠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마음처럼 쉽진 않을 것이오.”

“그 까짓게 뭐가 대수입니까? 저는 앞으로도 줄곧 방화 누이 곁에만 있을 생각인데 누이의 실력을 알고도 그 누가 감히 덤빌 수 있겠습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하는 사운계를 보고, 진옥이 웃음을 터뜨렸다.

“맞습니다. 방화가 있으니 공자를 어찌할 수는 없겠지요.”

이내 사운계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소릴랑 그만하시고 그런 말씀은 정말 제 사촌 매제가 되시고 나서 다시 말씀하십시오. 오만방자한 진강 소왕야도 못마땅한 건 매한가지나 그렇다고 전하처럼 그 교활한 여우같은 얼굴이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닙니다.

아무런 협박과 그 어떤 협의도 없이 방화 누이를 부인으로 맞게 되었다는 말씀은 전 죽어도 믿지 않습니다. 방화 누이는 모든 일에 적정선을 두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보통 여인들과는 한참 달라 마음을 얻기가 어찌나 힘든지요. 내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습니다.”

사운계는 그만 말문이 다 막혀버렸다.

아예 넋을 잃어버린 사운계의 뒤로는 매우 분주한 풍경이 오가고 있었다.

이들의 주변은 약을 달이고 나르느라 정신이 없어 두 사람의 대화는 미처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갈 틈도 없어보였다.

* * *

한편, 사묵함은 사방화가 있는 방 앞에 다다랐다. 시녀들은 그를 보자마자 곧바로 나와 정중히 예를 갖췄다.

“후야.”

“그래, 누이는 깨어났느냐?”

사묵함이 물었다.

“아직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밤새 약과 물을 여러 차례 먹여 드렸는데 모두 잘 드셨습니다.”

“내 직접 누이를 살펴봐야겠다.”

짙은 약 냄새로 가득 찬 방엔 힘없이 누워있는 사방화가 있었다. 침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휘장을 걷어보니 창백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의 사방화가 보였다.

사묵함은 몹시 걱정스런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다 시화에게 말했다.

“언제까지고 탕약과 물만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진시(*辰時: 아침 7 ~ 9시)니 묽은 죽이나 쌀을 끓여 먹이도록 해라.”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시녀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난 좀 들어가 쉬고 있을 테니 누이가 깨어나면 곧장 알려다오.”

“예! 즉각 알려드릴 테니 후야께선 안심하고 쉬십시오.”

사묵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갔다.

* * *

정오 무렵, 임안성의 모든 백성, 병사, 관원들과 심지어 닭, 개, 양과 같은 동물들까지 역병을 가라앉히는 약을 다 나눠마셨다. 

임안성 하늘을 뒤덮은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자 임안성 곳곳의 상점들도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고 금세 북적이는 인파에 잃었던 생기가 되살아났다.

이제 지칠 대로 지친 진옥도 역병이 잦아든 것을 확인한 뒤 임안성 모든 관원을 수감해 심문을 기다리라고 명했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사방화와 진연을 살펴보고 방으로 돌아갔다.

이어 사운계도 부족한 잠을 보충하러 방으로 돌아갔지만, 오랜만에 되찾은 임안성의 시끌벅적한 활기는 심야까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 * *

깊은 밤, 사운계는 자신을 쪼아대는 매로 인해 잠에서 깼다.

그는 일어나 매의 다리에 묶인 서신을 펼쳐보곤 미간을 팩, 찌푸렸다.

사운계는 즉각 옆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사묵함도 마침 푹 자고 일어나 물을 마시던 중이었다.

“누구시오?”

“접니다.”

“운계?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사묵함이 금방 문을 열어주었다.

“막북 변경에 움직임이 있단 소식입니다. 북제 군영 병력이 이동할 낌새가 있는 듯합니다.”

사묵함도 사운계에게서 서신을 건네받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군. 중대한 사항이니 태자전하와 상의해봐야겠어.”

사운계도 고개를 끄덕였고, 사묵함은 곧장 옷을 챙겨 입은 뒤 사운계와 함께 진옥의 숙소로 향했다.

* * *

진옥의 방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에 사묵함도 망설임 없이 진옥의 방 문을 두드렸다.

“열려 있소, 들어오시오!”

진옥은 탁자에 앉아 서신을 보고 있었다.

“날이 이리도 깊었는데 어찌 안 주무셨습니까? 혹시 태자전하께서도…….”

“막북 변경의 군사 일로 오신 것이오?”

사묵함의 물음에 진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계가 막북 변경에 북제의 병력이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줬습니다. 임안성 역병을 해결했다는 소식도 이렇게 빨리 전해지진 않았을 터인데……. 소식이 알려졌다 하더라도 역병으로 인해 입은 손실이 많아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산더미지요.

우리가 모두 지쳐있는 이 시기를 틈타 만약 북제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품은 것이라면 우린 절대 상대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운계가 고모님께서 주신 은위를 막북 변경에 배치해 북제 군영의 동향을 살피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이리 소식이 온 걸 보면 거의 기정사실일 겁니다.”

사묵함이 말했다.

“어디 계시든 천하에 벌어지는 일을 다 알고 계시다니 태자전하께선 과연 대단하십니다. 저도 방금 소식을 받았는데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리고 사운계는 모처럼 진옥을 보며 감탄했다.

“막북에 반년 남짓 있었으니 당연히 소식통을 남겨뒀지. 국경의 변방이니 항상 신중히 움직임을 살펴야 하지 않겠소.”

진옥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태자전하께선 어찌해야 좋을 듯싶습니까?”

사운계가 물었다.

“운계 공자는 북제 황궁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북제 폐하와 황후마마께 전쟁의 뜻이 있어보였소?”

진옥은 대답대신 사운계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어머니의 고향이 남진이신데 당연히 양국 간 전쟁을 원치 않으시지요. 아버지께서도 어머니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내신 뒤로 날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시어 더더욱 그럴 뜻이 없으신 게 분명하고요. 하지만……. 저는 북제로 돌아가 황위에 앉을 생각이 없으니 분명 그 자리는 제언경의 것이 될 겁니다. 그의 야심으로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사운계가 답했다.

“그럼 북제의 움직임이 제언경의 뜻이란 말이오?”

진옥이 다시 사운계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북제 내의 옥가 세력은 줄곧 제언경이 이끌어 온 것입니다. 정식으로 황태자 자리에 오른 건 아니지만 제언경은 이미 조정을 아우르는 황태자와도 같은 황자입니다. 여태까지 평판도 좋았으니 제언경의 어머님인 옥 귀비마마만이 그 속내를 알겠지요.

하지만 제언경은 어릴 때부터 우리 친어머니 슬하에서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이젠 머리가 굵어졌다고 군사를 움직이려는 뜻을 펼치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조정 대부분도 모두 그의 편이니까요.”

사운계가 말했다.

“그럼 막북의 군영 통제권을 제언경이 쥐고 있다는 말이오?”

진옥이 물었다.

“태자전하께서도 막북의 군권을 일부분 쥐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럼 병력을 움직이는 데에도 폐하께 따로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제언경은 어릴 적부터 온갖 우세를 쥐고 있던 북제의 유일한 황자입니다. 거의 황태자처럼 살아오며 황위까지 노리고 있는 제언경이 어찌 통제권이 없겠습니까?”

이어진 사운계의 답에 진옥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사묵함이 끼어들었다.

“태자전하! 지금 바로 막북으로 가겠습니다. 정말 군사를 움직이려 든다면 태자전하께 좋은 계책이 있으신지요?”

진옥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야께선 아직 몸도 좋지 않으시니 임안성에서 남은 일을 처리해주시오. 내가 직접 막북으로 가겠소.”

“태자전하! 여기서 막북은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이 나라의 명운을 무겁게 지고계신 황태자전하께서 어찌 함부로 막북을 가신단 말입니까? 누군가 그 기회를 틈타 남진에 난동을 피우면 누가 그 국세를 바로잡는단 말입니까?

본래 조정에서 막북의 군영을 이어받기로 임명받았던 사람도 저입니다. 제가 가야 맞지요! 제언경의 병력을 물리칠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반드시 군영의 국세를 바로잡고 오겠습니다.”

사묵함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자, 진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사 후야께 맡길 수밖에 없겠군. 북제 소국구 언신 공자가 이미 옥가 세력 대부분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언신 공자는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군.”

“지금 바로 언신 공자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사묵함이 막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마침 문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실 필요 없소. 언신 공자가 왔군. 소식을 들은 것 같소.”

진옥의 말을 듣고 사묵함이 즉각 문을 열었다. 문밖엔 역시 언신이 있었다.

“우리도 막북 북제 군영의 소식을 듣고 공자를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사묵함이 언신을 맞아주며 말했다.

“네, 저도 소식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

언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진옥과 언신은 먼저 서로를 향해 공수를 올렸다. 그리고 언신이 자리에 앉자마자 진옥이 바로 입을 열었다.

“언신 공자 아니, 북제 소국구께서도 소식을 접하셨는데 어떤 생각이시오?”

언신은 담담히 말했다.

“제가 북제 소국구이긴 하나 그렇다고 옥씨 가문 전체와 북제 황실을 더불어 황자 제언경을 대표하진 않습니다.”

“그 뜻은 이 일에 전혀 나서지 않겠단 뜻이오?”

진옥의 물음에 언신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북제 군영의 움직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태자전하와 후야께서 절 찾으실 것 같아 직접 뵈러 온 것이었습니다. 태자전하께 당분간은 북제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요.”

“남진에 있겠다는 말씀이오?”

진옥이 말했다.

“예, 북제로 돌아갈 생각으로 사 후야와 함께 경성을 떠나왔으나 임안성에서 발이 묶일 줄은 몰랐지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저렇게 다치신 것도 제가 배후의 세력을 유인해 끌고 가려던 책략에서 비롯된 것이니 전 이곳에 남아 주인님을 보살펴 드리는 게 맞습니다. 후야께서 반드시 막북을 가려 하시니 저라도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화도 의술을 익히긴 했으나 스스로 치료할 수는 없으니 언신 공자께서 곁에 남아 돌봐주시는 게 가장 좋긴 하지요.”

진옥이 호응하자 사묵함도 연이어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누이는 여태 자기 몸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언신 공자께서 남아 계시는 것이 한결 더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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