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2화 (742/978)

742화 샛길 (2) 

일행은 나란히 화당으로 들어섰다.

시화와 시녀들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돌아온 사방화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서둘러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언신은 곧장 사방화의 처방전을 내려 시화에게 건넸고, 다시 역병에 대한 처방전도 내려 진옥에게 건네주었다.

진옥은 처방전을 잠시 살펴보고는 사묵함에게 한번 보여주었다.

“흑자초 외에 나머지 약재들을 한번 봐주시겠소?”

“네, 나머지 약재들은 모두 다 있습니다. 며칠 전 언신 공자가 역병 처방을 연구한 후, 흑자초 다음으로 급한 약재들을 알려주었기에 미리 다 준비해뒀습니다. 모두 현아의 창고에 있으니 가서 가지고 오기만 하면 됩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사묵함에게 말했다.

“후야, 며칠간 임안성을 지키시느라 힘드셨을 테니 어서 쉬시오. 약을 달이는 건 내가 직접 가 살펴보겠소.”

사묵함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흑자초가 오긴 했어도 태만할 수는 없습니다. 임안성 모든 백성들 역병이 다 나아야만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약을 달이는 틈을 타 또다시 일을 벌인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도 태자전하와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자 진옥이 사묵함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운계 공자가 후야도 역병에 걸렸다 하던데 정말 괜찮겠소?”

“예, 참을만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태자전하.”

“알겠소, 그럼 약을 달이고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까지 모두 사람을 보내 지켜보도록 하지.”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 우리가 데려온 이들과만 함께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임안성 관원들 중 배후 세력이 숨어있습니다. 흑자초가 막 왔을 무렵, 연 군주가 의사당에 가둬 둔 관원 하나가 역병이 발작해죽었다고 하던데 그 자가 배후의 세력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관원들은 모두 배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진 사묵함의 말에, 진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병이 수습되면 임안성 전 관원을 엄벌에 처하고 관풍을 다스려야겠군.”

사묵함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애초에 관원들이 우리에게 숨기지 않고 정보를 제때 알려주기만 했어도 임안성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태자전하께서 임안에 계신 김에 청명사지를 위해 관풍을 다스려주시지요.”

진옥은 고개를 끄덕이곤 침상을 지키는 시화와 시녀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한 발자국도 떼지 말고 방화를 잘 지키고 있거라.”

“걱정 마십시오, 태자전하! 반 발자국도 떼지 않겠습니다!”

시녀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옥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묵함에게 말했다.

“어서가지!”

진옥, 사묵함, 언신이 곧장 화당을 빠져나갔다.

* * *

한편, 사운계는 약 같은 것엔 관심조차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진옥이 건네준 이 검은 책자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자마자 품에서 책자를 꺼내 등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지만 한참을 들여다봐도 특별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시묵, 등 하나를 더 내오너라.”

사운계는 등 하나를 더 주문했고, 시묵은 바로 등을 가져다줬다.

이제 좌우에 등불을 다 하나씩 켜서 대낮보다도 환해졌지만, 밝아진다 해도 더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넘겨도 그냥 검은 소가죽 겉표지에 안쪽은 백황색 종이가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책자였다.

사운계는 이내 맥이 빠져 책자를 내려두고 시녀들에게 손짓했다.

“얘들아, 이리와 이 검은 책자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다오.”

시녀들이 곧장 다가와 책자를 살펴보았다.

한참 후, 시묵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품죽은 백황색 종이를 매만지며 매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그냥 종이가 아니라 마치…….”

“마치?”

“사람의 가죽 같습니다!”

“뭐라?”

사운계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품죽을 바라봤다.

“운계 공자님, 아시다시피 소인은 역용술에 능통해 여태 훌륭한 가면을 만들기 위해 온갖 좋다는 재료들은 모두 다 연구했었습니다. 특히나 역용술에 이용하는 가면 재료 중 가장 뛰어난 재료가 바로 사람 가죽입니다. 얇고, 얼굴에 붙이기도 쉬워 아주 유용하지요.”

“네 말은……, 이게 사람 가죽이란 말이더냐?”

사운계가 손끝으로 누르스름한 종이를 만지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무 종이에 사람 가죽을 혼합해 만든 재료 같습니다. 그래야만 만져 봤을 때 보통 종이처럼 거칠지 않고 끈기가 있지요.”

품죽의 말에, 사운계가 종이를 다시 한번 더 섬세하게 만져보았다.

“과연 그렇구나.”

시녀들도 서둘러 종이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이제 사운계의 눈망울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몹시 초롱초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품죽, 그럼 좀 더 살펴봐다오. 혹 다른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잖느냐?”

품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검은색 책자를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했다.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종이인 이상, 절대 가벼운 물건이 아닐 것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한 건 모르겠습니다.”

“정말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냐?”

사운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운계는 순간 김이 빠져버렸다.

그러자 품죽이 여전히 혼수상태인 사방화를 한번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가씨 역용술은 소인이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엄청난 실력이십니다. 아가씨라면 이 책자에 숨은 비밀을 알아내실 수도 있으니 나중에 깨어나시면 보여드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구나!”

사운계는 금세 또 눈빛을 반짝이며 책자를 소중히 챙겨넣었다.

때마침 시화와 시만이 다 달인 약을 가져왔고, 시묵과 시녀들은 곧장 침상으로 가 사방화를 부축해 숟가락으로 정성스레 약을 떠먹여주었다.

사방화는 약을 먹은 뒤에도 여전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사운계는 장장 한 시진을 더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사방화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아, 몰려드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시화와 시녀들은 한시도 사방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현 관아에선 진옥과 사묵함이 직접 탕약을 달이는 것을 꼼꼼히 감독했고, 언신은 탕약의 불세기까지 세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지와 청언은 호위와 병사들을 데리고 잘 달여진 탕약을 백성들의 집으로 일일이 다 날라주었다.

이렇게 엄격한 수호 아래, 날이 밝을 무렵까지 성 내의 백성 반 이상이 모두 무사히 약을 건네받았다.

* * *

다음 날, 숙면을 취한 사운계는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 뒤 현 관아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아주 지친 기색의 진옥과 사묵함이 보였다. 그래도 본래 체력이 좋은 진옥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사묵함은 더 이상 무리인 듯했다.

“후야, 이제 제가 할 테니 들어가 쉬십시오.”

사운계의 말에, 진옥도 한마디 보탰다.

“그래, 후야는 이만 쉬시오. 방화가 깨어나 후야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마음 아파할 것이오.”

“네, 후야! 어서 들어가시지요. 임안성 일을 해결하고 나면 다시 막북 변경으로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한숨도 쉬시지 않고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알겠네. 그럼 부탁 좀 하겠네, 운계.”

결국 사묵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운계에게 말했다.

“별말씀을!”

사묵함은 그렇게 곧장 사방화의 방으로 걸어갔다.

이내 진옥은 시녀에게 사방화의 상태를 물었다.

“방화는 아직 안 일어났느냐?”

“소인, 여태 방화 아가씨 방을 지키고 있었으나 인기척이 아예 없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일어나시면 곧장 전하께 아뢰겠습니다.”

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운계가 갑자기 진옥을 돌아보며 물었다.

“태자전하, 방화 누이에게 어찌 그리 관심이 많으십니까?”

“방화가 흑자초를 찾아 임안성의 위기를 타개해줬으니 이 남진 강산의 신하로서도 그 공로가 아주 크지. 방화가 아니었다면 임안성은 죽음의 도시가 됐을지도 모르지 않소? 나도 태자로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지.”

사운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이유야 그럴듯하다만 어디까지나 외인들에게만 할 법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씀을 믿지 않으니 그렇게 답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전하, 정말 당당하게 사심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진옥은 조용히 웃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방화를 흠모한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 난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숨긴 적이 없소.”

사운계는 바로 눈썹을 들썩였다.

“방화 누이는 이제 막 부군과 이별했습니다. 천하제일 존귀하신 황태자전하께서 그런 누이에게 관심이 지나쳐선 안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시지요? 아무리 공신이라도 가려야 할 것은 가려야지요.”

“공신은 공신인데 왜 딱히 가려야 하는 것이오?”

진옥의 태연한 태도에 사운계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지금 태자전하 말씀은 제 외사촌누이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계시다는 겁니까? 전하께는 이미 혼인 성지로 맺어진 우상부 이 아가씨가 계시지 않습니까! 이 아가씨의 아버님이 우상 대인이라는 걸 잊으신 건 아니지요? 만천하에 가문의 힘이 막강하고 고결하기로도 이름을 날리신 우상 대인께서 혼인 성지를 거부하는 이 치욕을 가만히 두고만 보고 계실 것 같습니까?”

“그건 운계 공자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우상께서도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시오. 내게는 우상을 넘은 학자 문인들에게까지도 이견이 없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신경 끄셔도 괜찮소.”

이내 사운계는 혀를 쯧쯧 찼다.

“보아하니 일찌감치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방화 누이가 이혼을 했던, 태자전하께 정혼자가 있던, 천재사책에 어찌 기록될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진옥이 곧 웃음을 터뜨렸다.

“상관없소. 나는 아바마마와는 달라 사책에 어찌 기록될지 따위에 대해선 일절 관심도 없소.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 내가 원하는 건 한평생 이 나라를 평안히 이끌고 부인과 금슬 좋은 부부로 사는 것뿐이오.”

“방화 누이 생각은 물어보기나 하셨습니까? 방화 누이도 태자전하께 마음이 있단 그런 허황된 말씀일랑 하지도 마십시오.”

“방화가 승낙했소.”

사운계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요? 언제 말입니까? 어찌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운계 공자, 아무리 외사촌지간이라도 너무 많은 걸 관여하려들면 안 되지 않소? 친 오라버님인 사 후야도 방화가 승낙했다고 하면 절대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오.”

계속 이어지는 진옥의 믿을 수 없는 말에, 사운계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뭘 승낙했단 겁니까? 대체 누이가 왜 그런 승낙을 한단 말입니까?”

“임안성의 위기를 타결하고 난 후, 난 우상부와의 혼약을 거둘 것이오. 방화는 내 청혼을 받아들이고 황태자비가 되어 미래의 황후가 되겠다고 승낙했소. 이틀간 함께하며 정이 많이 들었소. 더군다나 방화의 마음에 이 제국이 있으니 태자인 나와 손을 잡고 일심으로 남진의 번영을 도모한다면 남진 황실과 사씨는 이제 영원히 서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오.”

사운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심각한 눈빛으로 진옥을 바라봤다.

그에 진옥은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운계 공자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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