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화 방화의 잠복 (2)
반 시진 후, 샛길로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방화와 진옥은 재빨리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들어 활을 당겼고 화살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모든 준비를 다 갖췄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샛길로 뛰어들었다.
사운계는 즉각 눈을 부릅떴고 검은 옷을 입은 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사방화와 진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살을 쏠 생각조차 없는 그들을 보고 사운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정체를 눈치 챘다.
저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언신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론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왜 다짜고짜 나에게 화살을 쐈던 것과 달리 언신에게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
사운계는 당장이라도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두 사람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하려던 말을 다 삼켜버렸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는 샛길로 들어와 안쪽으로 대략 열 몇 걸음을 걸어와선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휘파람 소리였다.
그러자 몇 십 자(尺)는 훨씬 떨어진 어느 곳에서도 언신에게 화답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사운계가 눈을 크게 뜨고 샛길 안쪽으로 난 곳을 돌아봤고, 언신은 휘파람 소리에 크게 기뻐하며 안으로 돌진했다.
언신이 안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샛길 입구로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가 들어섰다.
이 칠흑 같은 밤, 하나같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은 가뜩이나 어두운 샛길을 더욱더 음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한순간 지옥에서 나타난 자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방화와 진옥은 서로 눈만 마주치곤 가만히 그들을 지켜만 보았다.
대략 십여 명 되는 검은 옷 무리는 모두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아마 이들은 앞장선 결사대 은위로 추정됐다. 종사는 필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기운을 풍기기에 사운계도 이들 중엔 종사가 섞여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잠시 샛길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두머리의 손짓에 모두 안쪽으로 돌진했다. 숫자는 무려 십여 명에 달했지만, 과연 인기척만 느껴질 뿐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또다시 한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다섯 명으로 이 안엔 분명 다른 이들보다 더욱 음침하고 악한 기운을 내뿜는 자가 있었다. 그 자가 바로 틀림없는 종사였다.
사운계는 몰래 숨을 한번 들이마시곤 다시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다. 전설 속 은위 종사는 가히 기운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풍겨서, 자신의 무공 실력이라면 두 사람이 붙어도 종사 하나의 적수도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윽고 사방화와 진옥은 또다시 서로 눈을 맞췄고, 사방화가 고개를 가로젓자 진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활을 쏘지 않았고, 아직도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두 번째 무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숫자는 셋뿐이었지만 그들의 어마 무시할 만큼 탁한 기운은 검은 먹구름을 만들어 샛길 입구를 일순간 어둠의 기운으로 뒤덮었다.
사운계는 깜짝 놀라 이미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세 사람은 전에 들어간 자들과는 다르게 샛길 입구에 나란히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어두운 기운만 뿜어내 산 벽 전체를 뒤덮어갔다.
그때, 진옥이 갑자기 사방화, 사운계에게만 들리도록 말을 전했다.
“위험하오. 저들의 내력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닿는다면 금세 들켜버리고 말 것이오.”
“염려 마세요. 들킬 일은 없습니다.”
곧 사방화가 천천히 손을 들자 그녀의 손목에서 한 층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눈 깜짝할 사이 숨구멍도 통하지 않는 투명한 그물이 되어 그녀와 진옥, 사운계가 있는 바위까지 꼼꼼히 둘러쌌다.
그녀가 그물을 만들자마자 세 종사의 내력은 끝없는 어둠의 기운을 안고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곳까지 덮쳐왔다. 그야말로 지옥의 광풍이 따로 없는 이 어두운 기운은 그물을 누르고 금세 온 양쪽 절벽까지 다 뒤덮었다.
사운계는 이 그물이 덮이자마자 마치 봄처럼 따스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에 신기한 듯 눈을 깜빡였다. 바로 사방화에게 무슨 내력을 쓴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호기심도 꾹 참았다.
진옥 역시 가늘고 촘촘히 엮여 어두운 기운에도 꿈쩍하지 않는 이 따뜻한 그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차츰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처럼 티도 나지 않는 보호막은 내공의 술법이 아닌 매족만이 쓸 수 있는 비술이었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음기를 닦은 은위 종사도 제 아무리 내력이 강하다한들 이 그물 앞에선 절대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방화는 짙은 어둠 속에서 흔들림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종사는 내력으로 양쪽 산과 근방에 있는 1리 땅까지 다 훑었지만, 샛길 안으로 먼저 들어간 무리의 인기척과 기운 외엔 무엇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 종사는 일제히 샛길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사방화는 속으로 묵묵히 숫자를 셌다. 내공이 막강한 세 종사의 한 걸음은 거의 보통 사람의 네다섯 걸음에 맞먹었다.
이내 종사들이 세 번째 걸음을 내디딘 순간, 사방화는 곧장 비술 그물을 치워버리곤 진옥을 바라보았다. 진옥도 바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화와 진옥은 일제히 활을 당겼고 화살은 세 개씩 나란히 발사됐다. 사방화와 진옥 역시 엄청난 실력의 무공 고수였기에 화살은 아무도 소리 없이 사운계에게 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거세게 날아갔다.
사운계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그제야 진옥이 자신에게는 그다지 힘도 싣지 않고 화살을 쏜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화살을 맞은 즉시 단번에 숨을 거뒀으리라 확신이 들 만큼 진옥의 실력은 실로 엄청났다.
사방화와 진옥이 연달아 날린 화살을 보고, 사운계는 두 사람의 막강한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나 화살을 제때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이 또다시 활시위를 당기자, 한 종사가 외쳤다.
“위험하다, 매복해 있다!”
곧 나머지 두 종사도 화살이 날아온단 걸 알아차렸지만 날카롭고 억센 화살은 워낙 소리도 없이 날아와서 거리가 아주 가까워진 후에야 눈치를 챘다.
세 종사는 순간적으로 내력을 이끌어내 온몸에 방호벽을 쳤다. 하지만 사방화와 진옥이 내력을 실은 화살은 순식간에 그 방호벽까지 뚫고 그들을 향해 정곡으로 쏟아졌다.
세 종사는 아연실색이 됐지만 역시 종사답게 화살 여섯 개 모두를 다 피했다.
그러나 화살 외에도 사방화가 숨겨둔 장치가 있었으니, 화살 하나가 장치가 묻힌 땅에 꽂히자 펑,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화약이 폭발했다.
세 종사는 마침 화약이 묻힌 한중간에 서 있었다.
이때, 진옥과 사방화의 두 번째 화살이 세 종사에게로 쏟아졌다.
쉭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옷을 뚫고 살을 파고들었다.
사운계는 아주 기뻐하며 사방화와 진옥에게 다시 화살을 건넸고, 두 사람은 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다음 화살을 날렸다.
“누구냐!”
분노에 찬 종사가 악귀처럼 소리쳤지만, 사운계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두 사람에게 화살을 넘기는 데만 집중했다.
그 순간, 한 종사가 소리쳤다.
“왼쪽 절벽 위쪽이다!”
“올라가자!”
동시에 두 종사의 그림자가 폭발한 화약에서 나온 검은 연기를 뚫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두 종사는 살기를 형형히 빛내며 보검 두 자루를 쥐고서 세 사람이 있는 절벽 쪽으로 다가왔다.
진옥과 사방화는 또 동시에 활을 쏘아 올렸다.
다시 화살 여섯 개가 한 번에 날아들자 종사들은 이를 피할 수 없다는 걸 판단하고 서둘러 검으로 화살을 쳐냈다. 곧 화살과 검이 부딪혀 불똥이 튀고, 귀를 찢을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과연 종사는 종사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도 막아내기 어려운 화살을 힘을 합쳐 파죽지세로 달려들어 어떤 상처도 입지 않고 화살 여섯 개를 다 막아냈다. 사방화와 진옥의 안색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사운계도 순간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화약으로 다친 한 종사를 제외하고도 나머지 이 두 종사의 무공 실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세 사람이 한데 뭉쳐도 절대로 당해낼 수 없을 실력이었다.
그 순간, 사방화가 돌연 사운계에게 화살을 내밀었다.
“오라버니가 나서보세요!”
잠자코 화살만 건네주라던 그녀가 어째서 갑자기 활을 넘겨주는 것일까?
“내가? 아까는…….”
“내가 저들을 붙잡을 테니 두 분은 기회를 틈타 화살을 쏘세요.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진옥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사운계는 사방화가 어떻게 저 두 사람을 붙잡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세 종사의 내력을 피했던 방법을 쓰겠다는 뜻일 거라 이해하고 서둘러 활을 잡아당겼다.
이내 사방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뒤집더니 푸른 연기를 피어 올려 순식간에 두 종사를 향해 날렸다. 푸른 연기는 한데 모여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었고 단번에 두 종사를 뒤덮었다.
두 종사가 그물에 걸려 허둥대던 그때, 사방화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쉭-
사운계가 먼저 화살 세 개를 날렸고, 진옥도 뒤따라 두 종사의 급소로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그물에 닿을 무렵, 사방화는 재빨리 그물을 치웠고 화살은 쉭쉭 소리를 내며 종사들의 옷을 뚫었다.
명중이었다.
종사들이 추락하자 사운계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주 좋아! 통쾌하구만!”
쿵쿵- 거대한 소리가 두 번을 연이어 울려 퍼지고, 종사들은 땅으로 쓰러졌다. 샛길 안으로도 화약 냄새, 먼지 냄새,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고, 주변엔 무수한 연기들이 가득 차올랐다.
“다 죽었겠지? 내려가 확인해보는 게 어떻겠소?”
사운계가 사방화를 바라보자, 사방화는 고개를 저으며 진옥에게 말했다.
“태자전하, 혹시 모르니 모든 장치를 전부 여십시오.”
진옥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침 그 생각 중이었소. 종사는 일반사람과는 한참 다르니 말이지.”
이윽고 진옥이 남은 화살 하나를 활에 끼워 저 멀리 한 곳을 향해 쐈다.
찰칵찰칵- 펑! 펑! 펑!
화살이 닿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이어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선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고 한참 후, 사방화가 말했다.
“내려가 봐요.”
진옥과 사운계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 사람은 야명주를 들고 나란히 절벽을 내려와 샛길에 다다랐다.
땅에는 이미 사지가 온전치 못한 시체 두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화살에 맞고, 화약 폭발에 다친 시신들은 각자 팔과 다리 한 짝씩을 잃은 상태였다.
“으……. 근데 어찌 두 사람밖에 없는 거지? 나머지 하나는?”
사운계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하다 물었다.
사방화의 눈이 가늘어졌고, 진옥은 야명주를 들고 사방을 살펴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틈을 타 빠져나간 것 같군.”
“여길 빠져나갔다고요? 우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는데 어찌 빠져나갈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에 폭발한 장치에 다친 놈으로 인해 나머지 두 종사가 우리의 은신처를 발견해냈소. 그 두 놈이 방화의 그물에 걸려 화살을 맞고 떨어진 후 남은 장치를 모두 터트렸지. 보아하니 이 두 사람은 조금 전 우릴 공격하려 했던 그 두 놈이오. 처음으로 다쳤던 그놈이 기회를 틈타 빠져나간 듯싶소.”
“중상을 입었을 테니 얼마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뒤따라갑시다!”
사운계가 말했다.
“됐어요. 어차피 그렇게 빠져나갔다 한들 거의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에요. 앞에 지나쳐 보낸 두 무리가 남아 있잖아요. 적당한 계획을 짜두긴 했지만 그래도 언신 혼자서는 힘들 테니 어서 가 봐요.”
사방화가 먼저 안쪽으로 향했다.
사운계도 언신이 사방화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잘 알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잠시 쪼그려 앉아 시신의 복면을 벗겨 얼굴을 확인하곤 조용히 홀로 중얼거렸다.
“진짜 장설귀(*长舌鬼: 귀신의 일종)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평범하게 생긴 자들이라니, 대체 얼마나 수련을 하면 이렇게 난폭해질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