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9화 (739/978)

739화 방화의 잠복 (1) 

임안성은 아주 특수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한쪽은 구곡산(九曲山)이라 불리는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한쪽은 구곡수(九曲水)라 불리는 물길로 둘러싸인 이곳은 육로와 수로 모두 사면팔방으로 뚫려 교통이 편리했다. 

때문에 임안성은 남진 건국 이래로 빠르게 번성해 동서남북으로 상무(*商務: 상업상 용무)와 통정이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었고, 그런 이유로 임안성은 다른 성들보다 몇 배나 넘는 수십만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사운계가 떠난 방향은 육로가 있는 북서쪽이었다. 남진의 교통이 발달한 것은 다른 곳의 산들처럼 사람이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르지 않은 데다 길이 굽이굽이 돌아 여러 갈래로 연결돼 막힘없이 잘 통했기 때문이었다.

이 산길은 임안성 북서쪽에서 근처 어디로든 연결되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길이 없어도 임안성으로 올 수 있다는 뜻을 말했다. 심지어 북서쪽의 구곡산은 남서쪽의 구곡수와도 연결되어 육로가 수로와도 이어졌다. 

언신이 배후의 세력을 유인해 임안성을 빠져나가려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지리적 우세 때문이었다. 여기선 임안성에서 할 수 없었던 어떠한 일도 할 수 있었다.

적이 어두운 데에 있고 내가 밝은 곳에 있는 것보다, 적이 밝은 곳에 있고 내가 어두운 곳에 있는 편이 더 나은 법.

사운란은 흔적을 따라 구곡산으로 향했다.

* * *

사운계는 아홉 갈래로 연결된 구곡산 중심 길목에 서서 몇 번이고 돌아 길 하나하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품에서 지성침(地星针)을 꺼내 땅 위에 올려두었다.

찰칵찰칵-

한참 소리를 내며 돌던 지성침은 머지않아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사운계는 눈을 깜빡이며 지성침을 챙겨 가리켰던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길은 구곡산 중에서도 가장 오르기 힘든 길이라, 사운계는 조심스레 발을 디디며 홀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으로 향했다.

낮엔 맑고 푸른 빛깔을, 밤엔 달빛, 별빛으로 장관을 선사하던 하늘은 오늘만큼은 유난히도 짙은 먹구름만 칠해두어서 주변은 온통 검기만 했다. 

실로 별 하나 뜨지 않은 이 밤, 산길은 유달리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운계는 어둠을 밝힐 무엇도 쓰지 않았고, 어느 정도 걸으니 또 어둠에 꽤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 가량, 사운계는 산길을 따라 20리 즈음을 지나와 두 절벽 샛길에 다다랐다.

사방을 둘러봐도 갈수 있는 길은 그 두 절벽 샛길 하나뿐이었다. 지성침도 계속 건너편 절벽 샛길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에 사운계는 할 수 없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샛길로 향했다.

* * *

잠시 후, 사운계가 막 길로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입구에서 소리도 없이 그에게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사운계가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그는 아연실색하며 짧은 외마디 비명만 내질렀다.

이윽고 화살이 그의 왼쪽 팔에 박히려던 순간, 또 갑자기 좌측 산 쪽에서 검 한 자루가 비스듬히 날아왔다.

챙-

다행히 화살은 그 검에 맞아 멀리로 튕겨나갔다.

사운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리다,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곤 금세 화색이 되었다.

“방화 누이?”

사방화는 보검을 거두며 사운계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운계 오라버니? 어찌 여기 계신 거예요? 언제 남진에 돌아오셨어요? 여기는 뭐 하러 오신 거예요?”

사운계는 자신의 왼쪽 팔을 한번 만져보고 아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사방화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팔 한쪽을 잃는 줄 알았소! 누이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제운설에게 잡혀갔던 그 이후 몇 달 만에 돌아온 사운계는 그 짧은 시간에 체격이 어마어마해져 돌아온 것 같았다. 사방화는 갑작스러운 사운계의 등장에 화가 나기도, 변함없는 그가 우습기도 해 바로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내가 묻고 있잖아요. 남진엔 언제 돌아온 거예요? 여긴 대체 왜 있고요?”

사운계가 입을 삐죽이며 답했다.

“누이 때문이 아니고서야 내가 왜 여기 있겠소? 임안성에 역병이 돌고 누이마저 내쳐졌단 얘기를 듣고 곧장 달려왔소. 또 도착하자마자 누이가 흑자초를 갖고 임안성으로 오고 있단 소식에 언신 공자가 재밌는 일을 꾸미려는 것 같아 따라왔지. 하지만 여기서 내 팔이 부러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소.”

“그 못 말리는 성격은 고쳐지질 않네요. 팔도 그냥 부러뜨릴 걸 그랬어요.”

사방화가 이리저리 대충 말하는 사운계를 쏘아보았다.

“누이가 쏜 화살이었소?”

“아니요, 태자전하께서 쏘신 거예요.”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사운계의 눈이 매우 커다래졌다.

“태자전하? 태자전하와 같이 있었다고?”

사방화가 다시 그를 째려보았다.

“태자전하와 같이 있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인가요?”

“그리 놀랄 건 아니다만……. 언제 적을 벗으로 삼은 것이오……?”

사방화는 그의 말에 답을 피하곤 산 입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혼자 오신 거예요?”

사운계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방화가 또다시 물었다.

“언신의 행적을 따라오셨다면서 어찌 언신보다 먼저 오신 거예요?”

사운계는 순간 어리둥절해했다.

“내가 어찌 알겠소? 정말 언신 공자와 만나기로 약조한 것이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여기까진 어떻게 찾아오신 거예요?”

“어르신네가 준 지성침인데 꽤 쓸모가 있소.”

“지성침이요? 무슨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 조부님이요? 아니면 오라버니의 외조부님?”

“아니오. 노후야께선 실로 연로하신 노인장이시고, 내가 말하는 어르신네는 노후야보다 조금 더 젊은 북제 황제폐하를 말하는 것이오. 우리 친아버지.”

이내 사방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라버니는 어째 북제에 다녀오시더니 더 이상해지셨네요. 대체 어느 여인이 오라버니께 시집을 오려 할까요? 평생 계속 그렇게 홀로 지낼지도 모르겠네요. 매족 보물 중 하나이자 땅의 지표와 별의 영의로 사람을 찾는다는 지성침을 이용하셨다니, 오라버니가 찾으려던 사람은 언신이 아니라 나였나 봐요. 지성침은 직선만을 가리키니 날 먼저 찾으신 게 정상이에요.”

사방화는 말하는 동시에 사운계를 절벽 샛길에서 잡아당겼다. 사운계는 그대로 그녀의 손에 이끌려오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보시오, 사방화. 어린애가 뭘 안다고 떠드는 것이오? 세상 여인들이 내게 시집오려 지금도 얼마나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저주를 퍼부으려거든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그나저나 언신 공자는 아직도 안 온 것이오? 나보다 한 시진이나 더 빨리 출발했는데?”

“언신이라면 그 자들을 데리고 구곡산과 구곡수를 한참 돌아올 거예요. 오라버니, 여긴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절벽에 올라가 마저 얘길 나눠요.”

사운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사방화는 옷소매에서 검과 암벽 등반용 밧줄을 꺼내 던졌다.

팅- 저 멀리 위쪽 바위에 못이 박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곧 사방화는 한 손으로는 밧줄을, 나머지 손으론 사운계를 잡고 절벽으로 올랐다. 무공을 겸비한 두 사람은 그 높은 절벽을 단숨에 다 올라갔다.

* * *

절벽에는 두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그곳엔 진옥이 앉아있었다.

사방화는 밧줄을 걷어 올리며 사운계를 바위 위로 끌어당겼다.

“운계 공자셨군. 참 오랜만이오! 공자인 줄도 모르고 화살에 힘을 많이 가해버렸소. 부디 용서해주시오.”

진옥이 먼저 웃으며 사운계에게 인사했다.

“태자전하께선 역병에 걸리셨다고 하던데 그건 다 거짓이었습니까?”

사운계는 인사 대신, 진옥을 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거짓이 아니오. 방화가 흑자초로 만든 약을 먹었을 뿐이오.”

진옥이 고개를 가로젓자, 사운계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곁에 걸터앉았다.

“약을 먹었다고 하시니 역병에 옮을까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군요. 그런데 태자전하께선 줄곧 임안성에 계셨고 방화 누이는 막 경성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 분이 어찌하다 연락이 닿은 것입니까?”

진옥은 말없이 사방화를 보며 미소만 지었다.

사운계도 눈동자만 도르르, 굴려 사방화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묵묵히 밧줄과 검을 거둔 뒤 바위 한쪽에 걸려있던 큰 활만 챙겨들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 대답도 없으니, 사운계도 더는 진옥에게 자초지종을 묻진 않았다. 대신 화제를 바꿔 다른 말을 이었다.

“이곳에 이런 샛길이 있었다니, 천연 요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신 공자가 그들을 유인해오면 단박에 쓸어버리려 이곳에 일부러 매복하신 겁니까?”

“응, 정확하오.”

진옥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서 활과 화살을 가져왔다.

사운계는 그제야 사방화, 진옥의 양쪽에 모두 2, 30개 정도 돼 보이는 화살이 가득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보통 화살보다 3배는 더 굵은 데다 아주 날카롭게 잘 다듬어진 화살이었다. 

무공 실력이 아주 뛰어난 고수가 이런 활을 쏜다면 천군만마도 단박에 그 사람을 대장으로 떠받들 것이다. 사운계는 그 화살에 금세 흥미를 보였다.

“방화 누이, 좀 이따 그들이 오면 나도 몇 발 쏴볼 수 있게 해주오.”

“오라버니, 이런 화살은 써 본 적도 없으시잖아요. 괜히 내 계획을 망치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장난하는 게 아니니 오라버니도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요. 자칫하다간 우리 넷이서 수백 명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요. 계획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여기가 바로 우리 무덤이 될 거예요.”

사방화의 진지한 눈빛에, 사운계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니……. 암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오?”

“구곡수에서부터 흑자초를 무사히 임안성으로 보낼 수 있게 해뒀어요.”

사운계는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북제에 있는 동안에도 남진 내란이 모두 종사가 꾸며낸 것이라는 말을 들었소. 남진 황실을 떠나려 마음먹은 은산 종사는 천년 묵은 산송장도 못 이겨낼 정도로 엄청난데, 누이는 어찌 이리 담대한 것이오? 머릿수가 많다면 이 화살로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것 아니오?”

사방화가 순간 목소리를 더 낮게 깔았다.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다른 장치를 숨겨둔 게 있으니 이제부턴 꼼짝 말고 여기서 자릴 지키다가 우리한테 화살을 넘겨주세요.”

사운계가 바로 사방화를 째려보았다.

“화살을 넘겨주라고?”

“그렇게라도 계실 거 아니면 당장 다른 곳으로 가세요.”

사방화가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사운계도 분위기의 심각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도움이나 주려온 것이지만 진옥과 사방화에게 화살이나 건네는 조수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 사방화의 엄숙한 표정 앞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건네 달라면 줘야지. 천백 년 복을 이어받은 이 귀중한 손으로 전해줄 테니 한 발이라도 허투루 날려서는 안 되오.”

이내 진옥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운계 공자에게 헛수고하셨다는 말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소.”

곧 사방화는 말없이 샛길 입구를 주시하며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사운계도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고 조용히 정신을 다잡았다. 물론 화살을 건네기만 하는 아주 작은 역할이었지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니 제때에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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