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7화 (737/978)

737화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다 (2) 

사묵함의 답에, 청언은 다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남진과 북제가 줄곧 화목하게 잘 지내서 다행입니다.”

그에 사묵함이 무언가 떠오른 듯 혼잣말을 했다.

“화목이라…….”

“왜 그러십니까, 후야?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는지요?”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사묵함의 표정을 보고, 청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사묵함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것 아니다. 그냥 화목이란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남진과 북제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화목한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 

우리 고모님은 남진을 위해 북제와 사돈을 맺고 북제의 황후마마가 되셨다. 고모님은 절대 두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원치 않으실 거야. 하지만 북제의 2황자는 입장이 전혀 다를 것이다.

고모님은 큰 병을 앓으시다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셨고, 몇 달 전 북제의 2황자, 제언경은 남진으로 와 암암리에 모략을 꾸미려했다. 물론 소왕야께 역으로 이용당하긴 했으나 그 또한 태자전하와 소왕야 사이의 힘겨루기에 불과했지. 그런데 화목이라…….

아마 제언경이 황태자 자리에 오르고 결국엔 북제의 황제 자리까지 오른다면 아마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당황한 청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가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남진에 내란이 일어나 경성 안팎이 난리 통인데다 나도 여기 임안성에 발이 묶여 현재 막북 변경 군부의 우두머리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운계마저 남진으로 돌아온 사이, 이 기회를 틈타 제언경이 무슨 수라도 쓰게 되면 그땐 정말 큰일이 나고 말 거다.” 

말을 잇던 사묵함이 돌연 소리쳐 품죽을 불렀다.

“품죽!”

“예, 후야!”

품죽이 곧장 방에서 달려 나왔다.

“군주가 무사하다니 내 직접 들어가 살펴보진 않으마. 품훤, 품청, 품연 너희 넷이 잘 지키고 있거라. 군주가 깨어나면 즉시 의원을 부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사묵함은 분부를 내린 뒤, 바로 사운계의 숙소로 향했다.

청언은 사묵함이 한참 말을 하다 안색이 바뀐 것도 마음에 걸렸고,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분명 사운계와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에 바로 뒤를 따라갔다.

* * *

이내 사운계 숙소에 도착한 사묵함이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나일세.”

“군주는 살아났답니까? 어찌 이리도 빨리 찾아오셨는지요. 혹시라도 제게 군주가 잘못됐으니 방법을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시려거든 송구하오나 장소를 잘못 찾아오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닐세, 세욕은 다 마쳤는가? 중요한 할 말이 있어 왔네.”

진지해 보이는 사묵함의 목소리에 사운계도 이내 점잖게 답변했다.

“제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하시니 나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네.”

사묵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사운계는 아주 홀가분하다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가 근심 가득한 사묵함의 얼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군주 일이 아니라면 임안성에 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겁니까? 또 누가 훼방을 놓던가요?”

“아니, 일단 들어가서 말해줄 테니 추측은 그만두게나.”

이내 사운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이야기했다.

“소왕야께 데려온 이 아이 말입니다. 어찌나 실력이 형편없는지, 도로 소왕야께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더 괜찮은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청언이 발끈해 바로 반박을 하려던 찰나, 사묵함은 또 다툼이 붙을까 얼른 사운계를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청언은 분이 풀리지 않아 끙끙대면서도 최소한 저 사운계에게만큼은 절대로 밉보여선 안 되겠다는 걸 또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 * *

사묵함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앉지도 않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만났는가? 제언경과 옥가 사람들은?”

사운계는 바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겨우 이걸 말씀하시는 거였습니까?”

그리고 사운계는 자리에 앉아 차를 한잔 따라 사묵함에게 건넨 후,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답했다.

“모두 뵀습니다.”

“어땠는가? 어서 말해보시게.”

사묵함의 다급한 질문에도 사운계는 시종일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뭐 특별할 게 있었겠습니까? 제운설 공주가 저를 북제로 끌고 가던 중 슬쩍 빠져나왔었지요. 그 어르신네 말에 저를 데리러 남진으로 온 것이긴 하지만 그대로 붙잡혀 간다면 제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여 제운설 공주를 따돌리고 제 발로 북제 황궁으로 찾아갔지요. 제운설 공주는 제가 도망쳐 남진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는지 북제 변경을 막고 여기저기 절 찾아다니느라 진을 뺐지요. 제가 감히 스스로 북제 황궁을 찾아가리란 걸 상상조차 했겠습니까?”

사묵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운설 공주 손에서 빠져나갔다니 실로 재주가 대단하군.”

사운계는 바로 콧방귀를 뀌었다.

“사내가 여인에게 잡혔다가 빠져나간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랍니까? 그저 복수했기에 억울하지나 않을 뿐이지요.”

“연약한 여인이라도 실력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지. 북제 황실 공주마마에 자네의 친 고모님이지 않은가. 여느 연약하고 평범한 여인은 아니지.”

사묵함이 말했다.

“친고모이든 아니든 관심 없습니다. 그저 제 동의 없이 멋대로 절 끌고 갔으니 벌을 받은 게지요. 북제에 도착해 몰래 황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고모님을 먼저 뵈러 간 것인가?”

사운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옥 귀비를 만나러 갔습니다.”

사묵함은 금세 어리둥절해졌다.

“북제 황궁까지 가 놓고 어찌 고모님보다 옥 귀비를 먼저 보러 갔는가?”

“옥 귀비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하기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러 갔었지요.”

사묵함은 순간 얼이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운계는 실망이 역력한 기색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역시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그저 황제폐하께 버림받은 귀비일 뿐이더군요.”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있던 사묵함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옥 귀비라면 나도 초상화로 본 적이 있지. 실로 아름답더군. 하지만 우리 고모님은 뛰어나신 미모에 지극히 총명하시어 수단도 탁월하게 쓰실 줄 아는 능수능란한 솜씨의 소유자시지.

북제 황제폐하께선 우리 고모님을 사랑하게 되셨으니 옥 귀비가 아무리 북제 폐하와 죽마고우였다고 한들, 옥가가 떠받들어주던 인재였다고 한들 모두 다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 오랜 세월 울분을 떠안고 살아왔으니 예전보다 미모가 덜한 건 당연한 얘기네.”

사운계는 피식, 입을 실룩이며 말했다.

“그렇게나 총명하신 어머니께서 어찌 그 어르신네를 연모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후궁의 비빈들과 겨루기 위해서요? 아무리 총애를 받는다 해도 절대 한 사람을 마음에 품을 분이 아니십니다.”

사묵함도 엷은 웃음을 터뜨렸다.

“북제 황제폐하께선 왜 갑자기 어르신네가 돼버린 건가?”

“딱히 볼만한 것도 없으니 그냥 어르신네인 것이지요. 노후야보다 조금 더 젊은 어르신일 뿐입니다.”

사묵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내 청언과 대화를 하다 뭔가 급히 찾아온 것이네. 북제와 남진이 화목하다는 말에 문득 정신이 번쩍 들더군. 북제에도 다녀온 데다 특별한 신분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줄곧 남진에서만 자란 자네는 조금 더 객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여 물어보는 것이네.”

사운계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화목이요? 어머니는 미인계로 그 어르신의 야망을 잠재우고 남진과 북제를 통일하는 데에 힘쓰셨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화목이라면……. 용솟음치는 물 아래 얇은 얼음을 한 겹 덮어 놓은 정도라 비유하면 될까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뭔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또 옥가와 제언경은 지금 남진을 겨냥해 모략을 짜고 있는 건 아닌가? 내 알기론 남진의 이 모든 내란이 황실 은산 은위와 관련이 있다던데, 혹 북제의 옥가와도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사운계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북제 경성에 얼마 살아본 게 아닌데 알 길이 있을 리가요. 그 어르신네도 어쩔 수 없이 절 떠나보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겠지요. 

북제 옥가는 절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을 테고요. 황궁 안은 온통 불구덩이 같았고 황궁 바깥은 얼음 같았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돌아온 것입니다. 역시 저는 남진이 좋습니다, 공기부터가 달라요.”

이내 사묵함은 심사숙고하며 말했다.

“며칠 있지도 않아놓고선. 옥가가 자네를 달가워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 나는 고모님이 중병에 걸리셨을 때 그들이 고모님을 죽일 줄로 알았네. 막판엔 일을 그르쳤는지 실패로 돌아갔지만.

누구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우리 고모님에, 유일한 적통인 자네마저 북제로 돌아갔으니 어찌 경계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자네가 황위에 뜻이 있다면 고모님 부부 힘으로 자네를 그 자리에 올리는 건 일도 아니네.

그로 인해 현재 북제에 유일하게 있던 후계자 제언경과 옥 귀비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그러니 옥가에서 자네를 죽이려 안달이 난 건 당연한 얘기지.”

“평생 고통만 받는 그 자리를 대체 누가 탐낸답니까? 제게 그냥 떠먹여준다고 해도 거절할 겁니다. 온 천하의 추앙을 받는대도 절대로 안 합니다. 그 자리가 어찌 평온하기만 하겠습니까? 아름다운 경치와 음식이 평생 책임지고 행복과 평화만 가져다준답니까?”

“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지위를 원하지만, 그 자리가 얼마나 쓸쓸하고 고단한지는 아무도 모르네. 특히나 황제의 자리란 모든 정과 욕망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지.

날마다 부지런히 나라를 위해 힘써도 대대손손 이름을 남기는 자가 없고 잠시 나태해지기라도 하면 나라가 평안할 날이 없으니, 천재와 인재 모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그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자네를 이상하게 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자네를 충분히 이해하네.”

사운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역병으로 성 전체가 난리인 와중에도 차 맛은 참 좋군요.”

그때, 다시 사묵함이 물었다.

“자네는 그 자리를 원치 않아 신분을 숨긴 것인가?”

“어르신네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절 끝없이 시험했습니다만 어머니는 당신께선 평생 황궁에 갇혀 살아도 좋으니 제 인생만큼은 스스로 결정해 살라고 하셨습니다. 절 낳아주신 분이긴 하나, 절 키우진 않으셨으니 당연히 제 생활에 간섭도 없으셨고요. 그에 저도 제 스스로의 결정을 따른 겁니다.”

“우리 고모님도 한평생 북제 황궁에 발이 묶여 계시니 참으로 힘드실 것이네. 북제로 시집을 가시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셨으니 얼마나 그리우시겠는가. 조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고모님은 늘 활발하시고 나가 놀기를 좋아하셨다는데 우리 어머님을 따라 막북에 갔다가 한평생 그곳에 발이 묶여버리셨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네.”

“어머니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거잖아요.”

사운계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남진으로 돌아왔다는 걸 고모님, 고모부님은 다 아시는가?”

이내 사운계는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 어르신네는 모릅니다. 어머니께선 알고 계시고요. 제게 따로 암위도 붙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하시지요. 몇 없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자인 암위를 데리고 계셨습니다. 다 하나같이 일당백은 하는 인물들이지요. 북제에 허투루 간 게 아니라 참 다행입니다. 절 죽이려던 옥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으니 말이죠. 하하…….”

“고모님이 자네에게 암위를 붙여주셨다고? 그런데 왜 여태 보이질 않지?”

사묵함이 눈을 깜빡이며 묻자, 사운계가 바로 손을 내저었다.

“막북 변경에 남겨뒀습니다. 제가 평생 사씨 염창에서 길러온 혜안으론 제언경이 무슨 계략을 꾸미는지 눈을 감아도 다 알 수 있지요. 지금 남진은 이 소란이 난데다 후야께서도 임안성에 발이 묶여 막북 변경으로 가실 수 없는 상황인데 이 틈을 타 제언경이 수를 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걸 막기 위해 막북 변경에 남겨두고 온 겁니다. 제언경이 변경에서 수를 쓰기라도 하면 그들이 먼저 나서서 막을 겁니다. 막지 못하게 된다면 제게 보고할 수도 있고, 후야를 위해 시간을 지체시켜 재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금세 사묵함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안 그래도 자네에게 이 말을 하려 찾아온 것이었는데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두었으니 내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겠군. 운계, 자네가 있어 참 다행이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