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4화 (724/978)

724화 운란자초 (1) 

영친왕비가 낙매거에서 나오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춘란이 바로 달려왔다.

“왕비마마, 이제 소왕야께서 돌아오신 겁니까?”

영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쳐 쉬러 들어갔으니 깨워선 안 된다. 임안성 일은 강이가 나서지 않는 데도 분명 생각이 있을 테니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게야.”

춘란도 비로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 내 눈엔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 몇 마디만 나누면 마음이 차분해진단 말이다. 아무리 심각한 일이라도 강이만 있으면 마음이 놓여.”

이어진 영친왕비의 말에, 춘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소왕야께선 실로 그런 느낌을 주시는 분이지요. 이틀 동안 어딜 다녀오셨는지는 물어보셨습니까?”

“말도 마라.”

영친왕비가 손을 내저었다.

“소왕비마마를 찾으러 가셨답니까?”

춘란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영친왕비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엔 무사히 혼인해 내게 손자를 안겨주기만 바랬지만, 손자는 고사하고 휴서까지 내려왔으니 더 이상 부부도 아닌 게지. 이젠 그저 아이들이 각자 다 무사히 잘 지내기만 바래야지. 내 더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다.”

춘란이 곧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마마, 소왕야도 돌아오셨으니 마마께서도 어서 들어가 편히 쉬시지요.”

영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본원으로 향했다.

* * *

한편, 낙매거에서 허탕을 친 영친왕과 좌상은 부랴부랴 영친왕부를 나서 황궁 어서재에 도착했다.

어서재 밖에는 이미 궁에 들었던 대신들이 수심에 가득한 얼굴로 모여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영친왕과 좌상을 발견하고 서둘러 가까이 다가왔다.

“왕야, 좌상 대인, 부중에 흑자초가 있었습니까?”

영친왕과 좌상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들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제 어쩐답니까, 저희 부중에도 흑자초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흑자초가 없으니 어찌 태자전하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흑자초가 자라는 계절이 아니니 직접 산에 가더라도 구하진 못할 겁니다.”

“허면 태자전하의 목숨은 어쩐답니까?”

“태자전하의 목숨뿐이겠습니까? 임안성 십 수만 백성들이 죽습니다!”

대신들은 애가 타 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흑자초는 단 한 포기조차 찾을 수 없으니 임안성 십 수만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건 고사하고, 진옥의 목숨 하나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한 소태감이 어서재에서 나와 대신들을 향해 말했다.

“폐하께서 심란하시니 대인들께선 목소리를 낮춰 주시지요.”

원래는 오권이 나와야했으나 그는 영친왕부에 휴서 성지를 전하러 갔다가 때아닌 봉변을 당한 상황이었다. 진강의 장풍에 맞은 그는 현재 병석에 몸져누운 상황인지라 현재는 소태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곧 소태감은 영친왕과 좌상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왕야, 좌상 대인, 폐하께서 들라하십니다.”

영친왕과 좌상은 서로를 한번 마주 보고는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 * *

황제는 한껏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곤 옥안에 서 있었다.

또 그 밑으로는 이미 우상, 영강후, 감찰어사, 한림대학사 등이 와있었다.

그때, 황제가 영친왕과 좌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좌상과 형님 부중에도 흑자초는 없던 것이오?”

영친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집에는 본래 약을 많이 들여놓질 않아 흑자초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어진 좌상의 말에, 황제가 격노했다.

“대체 어쩐단 말이냐! 이 당당한 남진 대국에 흑자초 한 포기도 찾을 수 없다니! 이 사실이 천하에 알려진다면 뻔한 웃음거리가 될 것이야!”

그러자 영친왕이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건 상관없습니다. 태자와 임안성 백성의 목숨이 더 큰일이지요. 이제 임안성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강후도 말을 덧붙였다.

“남진 위아래로 흑자초가 모두 수탈된 이상, 누가 이 흑자초를 수탈한 것인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배후의 그 자를 찾아 흑자초를 뺏어와야만 태자와 임안성 수십만 백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황제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말이 쉽지 누가 찾아내겠는가! 경들이 나서 줄 것인가? 짐의 황궁에, 짐과 경들의 등잔 밑에서 누군가 소리 소문 없이 소란을 피웠는데도 아무도 몰랐던 상황에 대체 누가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영강후도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우상이 좌상에게 물었다.

“좌상, 소왕야에게 부탁하러 영친왕부로 가지 않았던가? 소왕야는 뭐라고 하시던가?”

“소왕야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네.”

“소왕야는 어딜 간 것인가?”

“아침까지는 있었는데 언제 나갔는지, 어딜 간지도 모른다고 했네.”

좌상이 고개를 내젓자, 우상은 이내 다시 영친왕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런데 진강의 이야기가 나오니 황제가 돌연 차분한 태도로 손을 저었다.

“흑자초도 없는데 짐 앞에 앉아 뭣들하고 있는 것인가? 손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할 거면 어서 돌아가 방법이나 생각해보시게들!”

그리고 황제가 영친왕을 향해 말했다.

“형님, 왕부로 돌아가 진강이 오거든 짐이 찾는다고 좀 전해주시오. 궁에 들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직접 찾아가겠소.”

영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대신들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일제히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 * *

궁에서 나온 대신들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잠시 밖에서 머물렀다.

그때, 우상이 영친왕에게 다가와 물었다.

“왕야, 소왕야가 부중에 없는 게 확실하지요?”

영친왕이 우상을 보며 말했다.

“그렇소.”

“왕야께서도 어딜 간지 모르시는 겁니까?”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화가 떠나고 휴서 성지까지 만천하에 알려진 뒤로 충격이 이만저만 아닐게요. 상황이 이러하니 남진 강산 사직을 위해 나서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소. 방화를 찾으러 간 건지, 뭘 하러 간 건지 모르겠소.”

우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자전하께서 역병에 걸리고 임안성이 위기에 처했으니 이 상황에선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소왕야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소왕야까지 나서지 않는다면 이 남진은 정말 위험에 빠지겠지요.”

영친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 사람에게만 그 막중한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각 부에도 재능이 출중한 공자들이 있잖소? 우상의 아드님만 해도 문무를 겸비한 인재인데 어찌 소식은 좀 없었소?”

우상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태 소식이 없어 어딜 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친왕은 긴 한숨을 쉬며 탄식을 했다.

“태자와 진강, 충용후부 사 후작, 이목청 공자를 제외하고 지금 현재 누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겠소. 몇 대째 인재가 나오는 이 강산에 큰일이 없을 땐 모두 출중함을 뽐내기 바쁘다 여겼거늘, 정작 큰일이 난 뒤로는 아무도 찾아볼 수가 없구려.”

그에 우상이 다시 차분하게 답했다.

“남진의 후대에 인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지금 이 큰일을 도맡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태자전하와 사 후작은 현재 임안성에 갇혔고, 소왕야와 제 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영강후부의 연석도 섣달 그믐날 밤에 떠나 지금껏 소식이 없답니다.

사씨 미량의 사운란 공자도 여운암에서 큰일을 겪은 뒤 여태 행방을 찾지 못했고, 사씨 염창의 사운계 공자도 실종됐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사씨 장방의 사임계 공자도 노후야, 무위 장군과 함께 암암리에 떠나버렸지요.

감찰어사부, 한림대학사부의 두 공자는 문(文)에만 능할 뿐이라 그저 8황자마마를 안정적으로 보필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는 겁니다. 솔직히 다른 황자마마들 중엔 하나도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 어린 8황자마마께서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기르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나을 지경이지요.”

영친왕도 한숨을 내쉬었다.

“남진 시정에서 전해 내려오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듯싶소. 남진의 뛰어난 인물 절반이 사씨라는 이야기 말이오. 사씨 가문 사람들을 조금만 살펴봐도 큰 칭호를 얻은 인재들이 넘치니 말이지요.”

우상도 호응하며 말을 이었다.

“네,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 폐하께서도 지금껏 사씨를 내치려 애쓰셨고 충용후부도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줬지요. 하지만 얼마 전부터 벌어지는 일들만 봐도 모두 사씨를 노리고 온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노후야께서도 십중팔구 마음을 다잡았으니 이 속세를 떠나버리신 겁니다. 그러니 이젠 아무리 큰일이 난다 한들 사씨도 관여하지 않을 테고요. 내내 의지했던 충용후부도, 사씨도 없으니 이젠 다 각자 힘으로 살아내야 할 텐데 이제 또 어느 누가 남진을 위해 나서려 하겠습니까?”

영친왕이 말했다.

“우상의 말이 날 일깨워주는구려. 하늘 아래 천자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그 땅을 이끄는 제후 또한 천자의 신하라 했지요. 

하지만 사씨는 세가대족을 이뤄 와룡(*臥龍: 엎드린 용, 초야에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큰 인물)처럼 이 땅에 대대로 수많은 세대를 이어온 가문이 아니오?

사씨 가문엔 분명 그 뿌리가 있을 것이오. 설령 배후에 있는 그들이 남진 전체의 약방과 약상을 장악했다 한들 사씨에게 손을 댈 수는 없지 않겠소?”

우상도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그럼 왕야의 말씀은 사씨에게 반드시 흑자초가 있을 거란 뜻입니까?”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사씨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상도 잘 알지 않소?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반드시 속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소.”

우상이 말했다.

“하지만 충용후부도 이미 텅 비고 사씨도 가문을 나눠버렸으니 혹여…….”

“사씨 미량과 사씨 염창에 가 보는 게 어떻겠소? 충용후부가 비어버리긴 했어도 그곳 주인들은 아직 남아 있잖소. 아직 사씨 육방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요. 가문을 나눠도 사씨가 이 남진의 백성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소.”

“왕야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상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곧장 떠날 채비를 했다.

“우상, 왕야, 부로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

그때, 좌상이 다가와 묻자 우상은 영친왕을 한번 보고서 대답했다.

“왕야와 함께 사씨 미량과 염창에 흑자초가 있는지 찾아보고 오려 하네.”

좌상은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

“그래, 사씨가 있었지! 나도 함께 가도 되겠는가?”

우상이 웃으며 말했다.

“태자전하의 안위를 가장 생각하시는 좌상이니 당연히 좋지요.”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면 좋은 일 아닙니까?”

영강후도 다가와 합류하겠단 뜻을 전했다.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좌우상과 영강후, 영친왕은 함께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머지 대신들은 잠시 각자 담소를 나누다 삼삼오오 흩어졌다.

* * *

반 시진 후, 영친왕, 좌우상, 영강후는 사씨 미량에 도착했다.

문지기는 한꺼번에 조정의 큰 인물들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에 놀라 잠시 멍하게 있다가 이내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주인을 만나러 왔으니 보고 드리거라.”

영친왕이 말했다.

“왕야께 아룁니다. 현재 주인님께선 부에 안 계십니다.”

문지기의 말에 영친왕이 깜짝 놀랐다.

“어딜 가신 게냐?”

“공자님을 찾으러 가셨습니다. 방화 아가씨를 따라 여운암에 가신 뒤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신 바람에 주인님께서 바로 찾으러 나가셨으나 며칠째 감감무소식입니다.”

문지기가 얼굴을 구기며 답했다.

영친왕은 잠시 좌우상을 돌아보다 물었다.

“그럼 다른 이들은?”

“부인께선 주인님이 떠나시고 절에 가 불공을 드리며 두 분께서 무사하기만 빌고 계십니다. 부중에 힘이 좀 있다는 이들은 모두 주인님을 따라 공자님을 찾으러 떠나셨고요. 소인과 나이든 노비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습니다.”

우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씨 미량의 기둥이었던 운란 공자에게 사고가 났으니 놀란 마음에 찾으러 나간 게 당연하지요. 사람도 없다고 하니 사씨 염창으로 가 봅시다.”

좌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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